1. 저도 처음엔 딩쯔타오의 남편이 흑막이 아닐까 의심했고, 류진위안이 과거에 딩쯔와 가족들에게 직접적이고 커다란 죄를 저지른 게 아니었을까 의심했어요.. ㅋㅋ
2. 기억을 덮어두는 행위 역시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3. 고전에 들어갈만한 책이 어떤 것일지 저 역시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당대에 작품성을 인정 받으며 널리 읽혔던 작품도 불과 두어 세대 만에 잊히기도 하고, 철저하게 무시 당했던 작품이 훗날 고전으로 인정받으며 재발견되기도 하니까요.
[이 계절의 소설_여름] 『연매장』 함께 읽기
D-29

금정연

Alice2023
저도 드디어 다 읽었습니 다. 후반부에 뭔가 좀더 극적인 전개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 정도의 결말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문제적 마무리라고 한 시간에 연매장하는 방법을 택한 칭린에 대해서는 저도 조금 비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 입장에서는 망각을 택했지만 제 3자인 친구 륭중융이 기록을 택한 것을 보면 그 차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은 강함일 수는 있지만 누구를 위한 것일까 싶었어요.
제가 당사자라면 내가 모르는 과거가 있다는 것은 계속 뭔가 불완전한것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잘 모른다면 굳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는지를 계속 강조하는 군요.
하늘이 덮은 일이라는 표현까지.. 결론은 각자가 편한 방식을 취하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일까요

금정연
후반부에 극적인 전개가 없다는 것--그것이 어떻게 보면 '평범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장르 소설'이 아닌 '순문학'으로 분류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들을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달리 표현하기가 어려워서요... 다만 여기에 어떤 위계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꼭 덧붙이고 싶네요.) 망각이라는 것도 개인의 차원과 사회의 차원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사자의 후손으로서 칭린의 선택은 그 자체로 용기 있고 존중 받아야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누군가는--사회적으로는--이것을 기록해야 한다... 라는 결말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Alice2023
개인으로서의 잊혀질 권리 또는 덮을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끔은 저희가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의 차원에서 이러한 비극이 잊혀지거나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군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Alice2023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니? 세상의 어떤 일도 진정한 진실을 가질 수 없는데
『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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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강보원
<연매장>을 읽고 기억과 망각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저는 우선 팡팡이 <연매장>이라는 소설을 쓴 것은 철저하게 기억과 삶의 양립 불가능성이라는 전제 위에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억이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거시적이고, 구조적이고, 역사적이고, 또 공동체적인 기억이고요. 개인의 삶은 그러한 기억에 대한 망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건 당시 중국, 구체적으로는 토지개혁과 관련된 비극들이라는 특정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보편적인 함의 역시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예전에 마약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과거가 작은 문으로 표현되는 그런 방식들을 통해서요.
일차적으로 그러한 망각으로 지탱되는 개인의 삶이 일종의 기만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이윈의 입장에서 <연매장>은 그녀가 삶-망각(기만)의 쌍으로부터 죽음-기억(진실)이라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여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팡팡은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지대를 거의 남겨놓지 않음으로써 이것을 어떤 해소할 수 없는 딜레마로 바라보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두 극단 중 어느 쪽에 더 높은 가치를 둘 것이냐고 했을 때 뭔가 자연스럽게 그래도 기만이 아니라 진실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팡팡의 구도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거예요.
가령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용기'있냐고만 보았을 때, 저는 망각 속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살아갔던 다이윈과 지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진실에 다가서던 다이윈 중 어느 한쪽이 더 용기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느껴져요. 용기는 양쪽에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추상적인 가치만 놓고 보면 기만과 망각이 진실과 기억에 비해 안 좋은 것은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막상 삶이라는 것 자체가 기만과 망각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못박아놓은 상태에서는 그 두 조건도 무작정 나쁘게만 볼 수가 없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삶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감각, 말하자면 삶 그 자체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또 그 이전에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기도 하다는 점이 작용을 하는 것 같고요.

서율
개인의 기억과 집단, 공동체로서의 기억이라는 대립구조가 흥미롭습니다. 연매장을 읽고 동아시아 현대 소설에 관심이 생겨서 소전독서단 책 신청을 주로 아시아 작가로 택하게 되는데요, 6월에 읽은 홍콩의 소설가 찬와이의 '동생' 본문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즈음 '집단 기억'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나는 무척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기억마저 집단의 이름에 기대야만 뿌리를 내리고 언급될 수 있다니 안타까웠다. 내 기억은 누구도 빼앗거나 점유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다. 나는 커러가 나중에 스타페리 부두와 관련해 다른 사람과의 집단 기억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억을 가졌으면 했다." 78쪽 (찬와이, 동생)
'동생'은 2000년대 이후 홍콩 독립 시위를 겪으며 좌절하고 삶의 양상이 변화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고, 스타페리 부두 시위를 따로 찾아보니 굉장히 격한 반중 시위로 기록되었더라고요. 연매장 이후 연달아 읽게 되어서 두 권을 계속 나란히 놓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급속한 서구화와 현대화의 사회 구조 변혁 속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개인은 반강제적으로 너무 강력한 '공동체적 기억'에 '개인의 기억'이 좌지우지 되었던...그런 삶의 양태를 가진건 아닐까 싶었어요. 다이윈이 공동체적 기억을 전부 망각해버리는 극단적인 장치를 통해서만 개인의 기억으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다행이었다면, 역설적으로 동시대를 경험한 많은 개인들에게 해당 집단 기억 자체가 트라우마로 존재한다는 뜻 아닐까 싶어요. 우리나라 역시 트라우마에 가까운 다양한 공동체 기억이 과잉 생산..되는 사회라고 생각해보면 다이윈의 삶을 좀 더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강보원
그래서 이것이 딜레마가 되는데, 물론 팡팡이 설정해둔 이 구도가 중간지대를 너무 축소시켜둔 나머지 극단적인 측면만 보이게 된 것이라고 접근하면서 이 딜레마를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이 삶과 기억의 이 극단적인 대립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게, 우리가 진정으로 얽혀 있는 모든 문제를 짊어져야한다면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거든요. 지나간 시간들도 너무 겹겹이 쌓여있고, 또 동시대만 해도 너무 많은 연결성 속에서만 삶이 지탱되기 때문에 이것을 '정산'하면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감당 불가능한 책임의 무게가 지워질 수밖에 없어보여서요.
사실은 그래서 칭린과 룽중융으로 나누어서 망각과 기억을 동시에 <연매장>이라는 책 안에 담아내고자 했던 팡팡의 선택이 탁월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그 선택이라는 것이 꼭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없는 거죠. 각각의 사람이 놓인 상황과 여러 조건들에 따라서, 누군가는 기억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삶을 추구하며 이어지는 것이 인류라는 공동체의 더 큰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둘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한 쪽이 없으면 다른 한 쪽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쩌면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함으로써 이 대립을 해소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인 기만이 아닐까 싶기도 한 거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망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이 똑같이 각자의 의무로서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최가은
“ 칭린은 더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머니가 발병하기 전에 보였던 이상한 모습이 차례차례 눈앞에 떠올랐다. 대문, 사조의 시, 귀곡자가 하산하는 그림이 그려진 화병 그리고 당신 아버지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어머니의 말, 보라색 비단 이불 등등.
어머니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냈던 그 단편적인 단어들 뒤에 무엇이 있을까? 맞다. 어머니는 무척 두려워했어. 누가 재산을 빼앗아간다고 했는데 설마 무슨 일을 겪은 건가? 공교롭게도 체런루라는 집이 정말로 있었어. 무엇보다 어머니 어투가 이곳 방언과 비슷하고. ”
『연매장』 177,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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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가은
두 번째 토론 주제인 "어머니의 과거를 끝까지 파헤치기보다, 기억에서 흘려보내기로 한 칭린의 결정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기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용기일까요, 회피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역시 여러분이 정리해주신대로 기억-망각의 대립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제가 인용한 문장에서 딩쯔타오에게 기억이란 의식/무의식이나 언어/비언어의 층위를 넘어서 각인된 무엇을 해석하는 시도이거나, 혹은 과거와 무관한 현재에 계속해서 그 회로를 바꾸어 침입하는 무엇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177쪽에서 칭린에게 떠오른 어머니의 "이상한 모습"은 사실 그녀의 숨겨진 '진짜' 계급을 드러내기 위한 징표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생각보다 더 배운 사람이고, 더 높은 지위의 귀한 사람이고, 그 때문에 어떤 일을 겪었을 수 있다는 추론을 위한 것이죠. 그런데 좀더 생각해보면 이는 그 자체로 어떤 사람의 기억이 그 한 사람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한 명의 개인이 스스로의 기억에 대해 망각하기를 선택한다고 해서 해소되거나 사라질 수 없는 것. 그 '나'가 그것을 철저히 외면한다고 해도 말이죠.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각인된 제스처, 습관, 말투나 앎의 흔적 등등은 사회적 기호이기도 하기에,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그 망각자의 기억을 '추론'할 수 있게 하며, 기억 자체가 일종의 픽션이라면 상대가 추론한 그 가능성이 그 사람의 기억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을 테니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가은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저는 마지막에 룽중융과 칭린으로 나뉜 기억(기록)-망각(삶)이라는 구도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조금 손쉬운 해법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점점 드는 것 같아요. 기억하기, 망각하기의 복잡한 속성을 생각한다면요.
최근에 저는 뒤라스의 <롤 베 스타인의 환희>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롤라'는 10년 전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미친 여자가 되었다고 말해지는 여인입니다. 롤라는 제정신이 아니고, 사람들은 그 제정신 아님에 납득 가능한 어떤 이유를 설정하고 싶어 하는데요. 그 때문에 그녀는 무엇보다 10년 전의 기억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그 기억이 유령처럼 그녀의 현재를 휘어잡고 있는 거라고들 말하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보이기도 해요. 롤라는 어떤 때는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굴다가도, 어떤 때는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다가서거나, 회피하는 '그것'이 대체 뭘까요?)뒤라스는 자신이 만든 이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녀는 기억과 타협하지 못하고, 기억에 짓눌립니다. 그 기억은 매일, 그녀가 살아가는 매일 새로워지고, 신선함을, 일종의 원초적 신선함을 다시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롤 베 스타인은 매일 모든 것을 처음으로 기억하는 인물이지요. 그 모든 것은 매일 반복되고, 그녀는 마치 롤 베 스타인의 날들 사이에 가늠할 길 없는 망각의 구렁텅이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매일 처음인 양 그것을 떠올립니다. 그녀는 기억에 습관이 들지 않아요. 게다가 망각에도 습관이 들지 않지요." <<뒤라스의 그곳들>>, 124p.
기억에 습관이 들지 않고, 망각에도 습관이 들지 않는 사람. 뒤라스는 이 인물을 글쓰기(기록하기), 우리로 치면 룽중융의 위치와 겹쳐놓긴 하지만, 사실 삶을 그저 살아간다는 행위 그 자체에도 위와 같은 작동이 번갈아 발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란 게 있을 수 있다면 그런 식으로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금정연
다들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또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1. 진실을 아는 것이 꼭 중요할까요?
칭린은 어머니의 과거를 끝까지 밝히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여러분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진실을 밝히는 것—그게 정말 중요할까요, 아니면 어떤 진실은 묻어두는 게 더 나은 걸까요?
2. 이 소설은 냉소적인가요, 희망적인가요?
마지막 장면에서 칭린은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니?”라고 말하며 냉소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어떤 독자들은 딩쯔타오가 고통스러운 지옥의 18 계단을 올라 마침내 빛 속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하시기도 했는데요.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결국 희망적인 이야기라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슬프고 씁쓸한 이야기로 읽히셨나요?
지니00
모든 망각을 배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망각은 살아남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연매장』 p.17,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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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00
사실 속는 일이 워낙 많다보니, 하나 더 속는다고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연매장』 p.19,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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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00
시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난 연매장 싫어요. 연매장하면 환생할 수 없어.” 시아버지가 타박했다. “또 태어나고 싶어? 이 세상에 또 와서 뭐하게?”
『연매장』 p.207,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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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00
“ 걱정 없이 잘 먹고 마시고 놀면 그만이야. 어떤 인생이든 사실은 소소한 인생이고 누구나 소소한 일상을 제일 많이 살아. 다시 말해 소소한 인생은 소소한 일상과 어울려야만 가장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고. ”
『연매장』 p.229,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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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00
드니 빌뇌브의 영화 <그을린 사랑>을 봤는데 이 책이 떠올랐어요. 2010년 영화인데 재개봉해서 보았습니다. 엄마가 사망한 후 유언으로 자식들이 엄마의 과거(남편과 아들)를 찾아나가는 내용 이에요. 이 책과는 완전 다른 결이지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명작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추천드립니다!

금정연
<그을린 사랑>을 보지 못했는데, 꼭 봐야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그을린 사랑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자신이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 또한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있다. 시몬은 유언을 따르길 거부하지만 진실이 궁금한 잔느는 지도교수의 도움을 얻어 중동에 있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난다.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 잔느.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어머니의 과거의 끝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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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찌니
'중국 토지개혁'과 관련된 소설이라길래 어렴풋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첫장부터 술술 잘 읽혔습니다. 심지어 다음 장이 궁금해 쉽게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딩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에 계속 다음 챕터가 궁금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패왕별희', '삼체'를 봐서 그런지 다이윈(딩쯔)이 가족들을 저버리고 자기비판 하는 모습은 '패왕별희'와 '삼체'에서 친구와 가족을 저버리고 자기비판 하던 인물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선을 넘을 수 밖에 없다'는 류진위안의 말. 하지만 그 선을 넘을지 말 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나가 되면 안됩니다. 어떤 이의 목숨도 '회의를 열고 누구를 죽여야 한다'는 말에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안됩니다. '지주의 땅을 가난한 소작농에게 나눠준다'는 취지의 토지개혁은 언뜻 보기엔 좋은 개혁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제도라도 폭력적으로 변질되어 갈 때는 그것을 멈출 제도적 브레이크도 필요합니다. 사실 그 시대는 중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폭력의 브레이크가 없던 시대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런 폭력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해준 책이었습니다.

금정연
마침 최근에 <패왕별희>와 <삼체>를 보셨다니 <연매장>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좀더 두터운 층위로 느껴지셨을 것 같아요. 토지개혁 문제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그 시기를 살았던 개개인들에게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했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기억 혹은 망각할 것인지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둘은 양립할 수 있고, 양립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소설이었다고... 남겨주신 댓글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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