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하 전남도경 국장
1949. 육사(8기) 임관
1950. 한국전쟁 참전
1961. 화랑무공훈장
1962. 군에서 경찰로 전직
1979. 전남도경 국장 부임
1980. 5. “절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의 희생이 있더라도)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평화로운 시위 대응 지시, 경찰병력 총기 회수
1980. 5. 27 이후 ‘직무유기’ 혐의로 직위 해제,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전두환)에서 14일간 고문을 받은 뒤 ‘자진 사표’ 형식으로 석방
1988.10.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2017.11. 치안감 추서
그들의 5·18 :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②
D-29

향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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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향팔님의 대화: 안병하 전남도경 국장
1949. 육사(8기) 임관
1950. 한국전쟁 참전
1961. 화랑무공훈장
1962. 군에서 경찰로 전직
1979. 전남도경 국장 부임
1980. 5. “절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의 희생이 있더라도)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평화로운 시위 대응 지시, 경찰병력 총기 회수
1980. 5. 27 이후 ‘직무유기’ 혐의로 직위 해제,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전두환)에서 14일간 고문을 받은 뒤 ‘자진 사표’ 형식으로 석방
1988.10.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2017.11. 치안감 추서
“ 참여정부 시절 경찰청 과거사위원회는 안병하 국장의 해직사건을 진상규명 대상 사건으로 선정,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남지방경찰청은 2006년 8월에 “직무 수행과 관련해 불법 구금, 고문, 혹독한 심문으로 인해 상이(상처)를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투병 중 사망하였다”고 평가하고, “공무 수행과 법률상, 의학상 상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며 그를 ‘순직 경찰’로 인정하여 국립 현충원 경찰묘역으로 이장했다. 2017년 전남지방경찰청은 그의 흉상을 제작해 청사 현관에 건립했다. ”
『그들의 5.18 -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노영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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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5월 18일 오전 금남로에서 발생한 학생 시위에 경찰 6개 중대 800여 명을 투입하고 해산시킨 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 경찰의 물리력만으로도 학생 시위에 대처할 수 있었으나 공수부대를 추가로 투입했고, 이것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
『그들의 5.18 -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노영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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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아직 7공수여단이 광주 시내에 투입되기도 전에 11공수여단의 광주 파병이 결정됐다. (p.157)
11공수여단의 추가 투입은 광주 시내의 시위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사항이며, 더군다나 이 명령은 전교사나 31사단의 지휘계통과도 상관없이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p.154)
아직 전교사에서 추가 병력 파병을 요청하지 않은 시각인데도 3공수여단의 파병이 결정된 것이다. 이는 광주의 상황이나 정식 명령계통과는 상관없이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p.210) ”
『그들의 5.18 -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노영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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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詩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 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향팔
“ 광주 시민들과 계엄군들이 본격 대립하는 가운데, 5월 19일 오후 5·18항쟁 기간 중 처음으로 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했다. 이날 오후 4시 50분경 광주시 동구 계림동 광주고와 계림파출소 사이의 동원빌딩 부근에서 시위 진압에 투입된 계엄군의 장갑차가 인도와 도로 사이에 걸려 멈춰 섰다. 인근의 시민들이 장갑차로 달려들자 장갑차에 타고 있던 11공수여단 한 장교가 해치를 열고 M16소총을 발사했다. 부근에 있던 김영찬(조대부고 3학년·19)이 그 유탄에 맞아 총상을 입었다. 쓰러진 김영찬은 곧바로 인근의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은 뒤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
『그들의 5.18 -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노영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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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향팔님의 문장 수집: "광주 시민들과 계엄군들이 본격 대립하는 가운데, 5월 19일 오후 5·18항쟁 기간 중 처음으로 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했다. 이날 오후 4시 50분경 광주시 동구 계림동 광주고와 계림파출소 사이의 동원빌딩 부근에서 시위 진압에 투입된 계엄군의 장갑차가 인도와 도로 사이에 걸려 멈춰 섰다. 인근의 시민들이 장갑차로 달려들자 장갑차에 타고 있던 11공수여단 한 장교가 해치를 열고 M16소총을 발사했다. 부근에 있던 김영찬(조대부고 3학년·19)이 그 유탄에 맞아 총상을 입었다. 쓰러진 김영찬은 곧바로 인근의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은 뒤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최초 발포에 관한 군 등의 기록 (1980년 5월 당시)
- 보안사령부, 〈광주사태 일일 속보철〉
“특정 배후조직에 의한 조직적이고 기동력 있는 데모대로 판단”, “[…] 고교생은 특정 데모세력에 의해 무성 권총으로 사격, 계엄군이 발포한 것으로 선동키 위한 지능적 수법”
- 계엄사령부, 〈충정업무 일일 주요 사항〉
“김영찬 5월 19일 17:00 광주시 계림동 5거리에서 데모대에 가입, 장갑차에 방화하려다가 복부 관통 상해 […] 총기 제원 판단 곤란”
- 광주시 동구청, 〈5·18사태일지〉
“광주고에서 계림파출소 사이 장갑차가 고장으로 있을 때 시민에게 총 발사로 국교생 2명, 중학생 1명, 고교생 1명 부상”
- 20사단, 〈광주권 충정작전 분석〉
“사전 철저히 준비된 유언비어 유포로 데모 군중이 삽시간에 2,000여 명으로 급증, 진로 차단 및 포위를 하게 되어 …… 최악의 사태에 돌입하자 즉각 조치로 내부에 있던 공수부대 **장교가 햇치를 열고 공포를 발사하여 순간을 모면하는 찰라 […] 고교생 1명이 복부 관통상 부상(원인: 공포 발사 시 유탄에 의함)했고 장갑차는 […] 기동 불가 […] 이때부터 계엄군은 자위권을 발동하지 않으면 많은 사상자를 내리라는 것을 예측하게 되었음.”
(5·18항쟁 무력진압 뒤 발간, 사단장이던 박준병 소장이 1981년 4월 보안사령부에 제공한 자료)
- 2군사령부, 전교사, 31사단, 11공수여단 자료에는 관련 기록 없음.

향팔
“ 5월 19일 23시 25분에 2군사령부는 충정작전지침(작상전 426호)을 내려보냈다. 핵심은 “도시게릴라식 소요 및 난동 형태에 대비. […] 전 작전 가용 병력 최대 운용. 바둑판식 분할 점령. 대대 단위 기동타격대 보유 조기에 분할 타격 체포. […]” 등이었다.
[…] 또한 “치명상을 입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감한 타격”을 주문하고 있다. 달리 보면 ‘죽지 않을 만큼’만 구타하라는 명령으로 읽힌다. 실제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도 더욱 강력하게 시위를 진압했다. 공수부대원들의 폭력 강도가 상부의 명령에 의해 더욱 상승한 셈이었다. ”
『그들의 5.18 -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노영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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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한 가지 주목되는 조치는 5월 19일 04:00시부로 광주 지역에 배치된 공수부대의 작전 지휘권이 31사단 96연대장에서 11공수여단장으로 변경된 점이다. […] 공수부대에 대한 작전 지휘권의 변화는 광주에서의 지휘권 이원화와 연관되는 문제이다. 즉 광주에 파견된 공수부대의 활동 이 지역의 계엄분소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전개된다는 의미이다. ”
『그들의 5.18 -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노영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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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향팔님의 문장 수집: "아직 7공수여단이 광주 시내에 투입되기도 전에 11공수여단의 광주 파병이 결정됐다. (p.157)
11공수여단의 추가 투입은 광주 시내의 시위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사항이며, 더군다나 이 명령은 전교사나 31사단의 지휘계통과도 상관없이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p.154)
아직 전교사에서 추가 병력 파병을 요청하지 않은 시각인데도 3공수여단의 파병이 결정된 것이다. 이는 광주의 상황이나 정식 명령계통과는 상관없이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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