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어긋남, 혹은 오해랄까요 배우자분은 스스로 멋있는 말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웃픔)...결혼 전에 서로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시간이 많지 않으셨나 봅니다~
[📚수북플러스] 2.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D-29

최영장군

하뭇
정말 제 상황을 대입시키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일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남편의 지지는 큰 힘이 돼요.
저도 결혼 후 초반에는, 남편이 제 일을 용돈벌이 취급해서 서운했지만
이젠 수입을 떠나 제 진심과 상황을 이해해주는 거 같아요.
작년에 부당해고구제신청 할 때, 남편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이긴 뒤에 말하기를, 속으로는 이길 줄 몰랐다고,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대요. 개인이 집단을 상대로 이기기는 어려운 거라고요.
대리인 수임료 버릴 각오했다고.
같이 분노해주고 같이 기뻐해줘서 고마웠어요.

최영장군
남편이 내편이 된, 두 가지 결론 모두 해피엔딩이네요~!!ㅎㅎ

하뭇
이 문장이 너무 제 얘기 같아서 기분이 복잡미묘했어요. 제 수입으로 생계는 되지 않아요. 주수입은 남편의 월급이지만, 그렇다고 제 일이 용돈벌이로 취급받는 건 기분이 좋지 않은데... 오히려 그게 자격지심으로 보일까봐 겉으로는 그냥 나 커피값 버는 거야, 노느니 나 쓸 돈 버는거지 뭐... 하면서 쿨한 척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다보니 진짜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언젠간 그만두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짤리니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에는 억울하고 분통터지고.
일 안 하고 살 수 있음 좋겠다 하면서도 정말 일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되고.
휴... 정말 책 뒤표지 문장을 절로 되뇌게 돼요.
왜 이렇게 일하는 게 힘들까.


최영장군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것 같아요... 일은 보람되는데 벌이가 별로일 때도 있고, 출근하러 눈 뜨는 게 죽을 것만큼 싫은데도 수입은 괜찮을 때도 있고 말이죠. 두 가지가 겹치면 행운 혹은 불운이고 그 가운데가 보통의 일인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
비가 소강상태가 되니, 오히려 후텁지근한 불면의 밤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모임 시작한 지 이제 열흘이 지났네요. 열흘에 맞춰 열 번째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질문은 예고해 드린 '사실주의'에 관한 것입니다.
질문 10)
문학사에서 사실주의의 선구자라고 하면, 스탕달을 꼽을 때가 많습니다. 미술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쿠르베를 아마 꼽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사실주의도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나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도 사실주의 작품으로 일컬어집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해와오해가교차하는방식>은 '사실주의' 느낌이 들었습니까? 미술작품으로 비교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나요?
그리고 혹시 <귀하의노고에감사드립니다>의 다른 수록작품도 읽으셨다면, 수록작품들을 쿠르베 느낌, 호퍼 느낌, 혹은 다른 미술작품 느낌 등으로 비교해서 의견 주셔도 좋겠습니다.

하뭇
미술 보자마자 에드워드 호퍼 생각났는데 말씀해주셨네요.ㅋ

최영장군
오호~👍 호퍼의 여러 작품 중에 이오교와 매치가 되거나 영감을 주었을 것 같은 특정 작품이 혹시 있을까요?

연해
저는 <이오교>를 읽으면서 이슬아 작가가 떠올랐어요(글을 쓰는 이슬아 작가와 다른 분입니다). 이분의 작품은 '이길이구'라는 갤러리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요(이 갤러리는 '콰야'라는 작가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슬아 작가는 저와 동갑이기도 한데(아무 의미 없지만), 도시의 관찰자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분이 그리는 대부분의 그림이 도시 안에 혼재되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거든요. 당시에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자신이 하고 있는 건 '사라지는 걸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도시의 일상으로 흐르는 매일 똑같은 현대인들의 멈춰진 시간이 작업 소재가 된다고. 이분을 찾다보면 SNS 스타작가로 젊은층에서 유명해지신 것 같았는데, 저는 유행과 무관하게 이분 고유의 작품관(평범한 일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이 좋았답니다.
작품을 보면서는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계속해서 떠올랐어요(작가님도 사람, 더 정확히는 현대 도시인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거든요). 사람이 없는 도시는 생명력을 잃은 것과 같고, 언뜻 보면 일상의 단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결국은 사람들 사는 이야기. <이오교>도 그 안에서 이해와 오해가 쌓이는 (그리고 풀리는) 과정이라 여겨서 더더욱 이 작품들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저작권 때문에 작품을 다운받을 수는 없으니 링크로 걸어두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국화랑협회랑 아무 연고가 없답니다(하하). 그나마 작품을 가장 많이 수록한 글이길래 올려봅니다.
https://koreagalleries.or.kr/%EC%9D%B4%EC%8A%AC%EC%95%84-%E5%B1%95/

최영장군
의미 있는 지점인데요~ 에드워드 호퍼, 데이비드 호크니, 이슬아, 워너 브롱크호스트... 이들 미술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언어 매체보다 시각 매체가 더 직접 지각되는 측면이 있으니까, 미술을 통해 이야기를 발전시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ㅎ)

연해
음,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자면요. 공통점은 작가님이 말씀해주셨던 사실주의 같고, 차이점이라면 그 작가들이 집중하는 대상 혹은 관점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아니면 세밀함의 정도라던가). 제가 올해 다녀왔던 전시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징그럽다 여겼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했던 론 뮤익의 전시였는데요. 작품이 몇 점 없었는데도 극사실주의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어요. 작년에 읽었던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언캐니 밸리'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기억도 나는데요. 론 뮤닉의 작품이야말로 언캐니 밸리가 아닌가...
론 뮤익의 작품에 대해서는 제 문장으로 설명이 빈약할 것 같아 작품을 볼 수 있는 링크를 또 걸어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29540

최영장군
호퍼는 통상 사실주의 계열로 분류하지만, 호크니는 신표현주의 계열로 보통 분류하거든요... 그래서 이오교가 쿠르베 쪽이냐, 호퍼 쪽이냐, 호크니 쪽이냐 하는 논의는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이오교 앞장 '각주' 부분에 나오는 미니멀리즘과도 관계가 있고요.
(작년 수북 <로메리고 주식회사> 때 계셨던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주관(개성, 표현)'을 담지 않으려 머리도 깎았어요. 옷도 무늬나 상표가 아예 없거나 최소화된 것들 위주로 입고요...ㅋ 그래서 론 뮤익과 같은 극사실주의 계열도 좋아한답니다. '과장'이라는 형식이 주관적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렇다고 표현주의적 작품을 좋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훌륭한 작품과 작가들이 많죠.
아무튼 관련한 이야기는 모임 분위기를 봐서 더 들어가거나 아니면 다른 얘기로 전환하거나 하려고요...😉

연해
우와, 이토록 자세한 설명이라니, 감동입니다(감사합니다). 미술 작가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소설을 분류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롭습니다(앞으로 배워야 할 게 더더 많아지네요!).
작가님의 모습은 작가 소개 등의 사진(여담이지만 저 '일하는 사람의 초상'도 좋아합니다)을 통해 봐왔던 터라 알고는 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으셨군요. '주관'을 담지 않으려 머리도 깎고, 옷도 무늬나 상표가 아예 없거나 최소화된 것들 위주로 입으신다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저는 머리스타일이나 옷이 해가 가도 크게 변하지 않고 비슷한 편인데, 이게 저의 주관인 것 같아요(하하하). 단정하고 청결하게?
(미술에서) 극사실주의 계열은 저에게는 아직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론 뮤익의 작품을 보면서는 흠칫흠칫 놀라곤 했거든요. 근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은 러닝타임이 길었 는데도 꽤 오랫동안 봤어요. 작가의 하루가 온통 작품으로 시작해서 작품으로 끝나더라고요. 그 장면들이 정성스럽고 좋았습니다.

최영장군
물론 민무늬 말고도 체크 같은 기하학 무늬 또한 괜찮습니다 ㅋㅋㅋ (말하고 보니 형상을 반대하고 기하학 무늬를 선호하는 이슬람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고...😉)
나중에 질문으로 나갈 텐데, 첫 번째 문장의 수동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머리모양과 옷 입는 스타일이 일관성이 있으신가 보군요!!ㅎ 자기 스타일을 찾으면, 맵시를 내는 데 크게 에너지 소모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주구장창(주야장천) 블랙만 입는 것도 이해가 되고요...ㅎ
미술에서 극사실주의는 '우리 눈이 실제로 보는 모습'을 옮긴 게 아니고, '대상의 실제'를 그대로(혹은 사이즈를 변형해서) 옮긴 것이다 보니 우리의 익숙한 기대치와의 간극이 더 커져서 쾌가 되었든 불쾌가 되었든, 낯선 느낌만큼은 확실히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해 님이 말씀하신 내용에도 나오는데, 제작과정에 공이 많이 들어가는 점도 믿음직(?)하다고 할까요?😂

연해
일단 작가님은 이슬람 스타일이신 걸로(메모메모).
"첫 번째 문장의 수동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라는 말씀에 이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찾아 읽어봤어요. 각주에 대한 문장도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오해 아니고, 이.해.). '작가의 인격적 개입이 최소화된 형태'라는 문장도요(이해력이 부족해서 많이 더딥니다).
작가님 작품을 읽다보니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여러 상황 뿐만 아니라 소설 곳곳에 의미심장한 내용이 많았었네요(치밀하달까요, 물론 좋은 의미로요). 문득 이런 궁금증도 생깁니다. 이 단편이 '오해'와 '이해'에 대한 주제라 그런 것일까, 작가님의 스타일(?)이신 걸까. 하지만 궁금증을 품다 보니 앞서 말씀해주신 이 대목에서 살짝 멈칫하게 되네요. "주관(개성, 표현)'을 담지 않으려 머리도 깎았어요." 스타일과 주관은 어떤 의미로 다른 것일까.
극사실주의에 대한 설명도 감사합니다. 우리 눈이 실제로 보는 모습과 대상의 실제가 다르다는 점에서 끄덕끄덕했어요. 생각해보니 이건 어떤 의미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과도 같네요. 제가 보는 저(거울에 비친 앞모습)와 영상이나 사진에 담긴 저(타인이 바라보는 저이기도 하겠죠)가 생각보다 다르더라고요. 목소리도 마찬가지고요.

최영장군
스타일과 주관은 어떤 의미로 다른 것일까... 일단 제 말은 정답이 아니니까 참고로만 해 주세염 ㅋ
주관이나 개성 등이 반복적으로 표현되면서 스타일이 되어요. 그리고 문학, 예술 계통은 개성의 표현, 스타일(문체, 작풍, 화풍)이 중요시되는 분야고요.
예를 들어, 도시의 일상을 작품에 담는다고 할 때, '따뜻하게' 담는 것과 '있는 그대로' 담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요. 작업이 반복되면 둘 다 '(나름의) 작품 스타일'은 있게 되겠지만, 작가의 스타일(주관)이 들어갔는지 여부는 다르니까요.
결국 제 주관을 담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작품의 스타일은 제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생기게 된다고 봅니다~ㅎ

연해
네, 참고만 하겠습니다, 헷(이런 말 잘 듣는 편). 작가님이 말씀하신 걸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주관의 다음 단계가 하나의 스타일일까요? 다만 스타일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만들어져버린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고, 주관은 내가 담을 수도, 담지 않을 수도, 진짜 내 주관일 수도, 아닐 수도... (그만해)
제가 오늘 퇴근길 지하철에서 장강명 작가님의 『먼저 온 미래』를 계속 읽었는데요. 그 책에서 등장하는 '기풍'과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주관, 스타일 등이 미묘하게 연결고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표현 자체가 달라진달까요. 그래서 이걸 풀어가는 게 재미있고, 정의하는 것도 재미있고? 이 책에서는 등장하는 '기풍'이라는 단어는 바둑기사들에게 꽤나 중요한 단어 같았습니다(정체성 같기도 하고). 흔히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할 때, 감정의 여부를 논하는 것처럼, 바둑기사와 인공지능의 바둑을 비교할 때도 기풍이 사라졌다는 듯이 말하더라고요(그들에게는 이게 하나의 주관이지 않을까).
"기풍은 도대체 무엇인가? 경향성인가, 성격인가, 철학인가, 세계관인가?
(중략)
결국 바둑계에서 사용해 온 ‘기풍’이라는 단어는 현실 세계의 특정한 현상에 대한 모호한 비유였다. 따지고 보면 ‘성격’이나 ‘철학’이라는 단어 역시 그렇다. 인간은 그런 개념어와 비유에 기대어 세계를 파악한다. 언어는 도구다. 그 도구에 기대지 않는 인공지능이 언어라는 도구에 기대야만 하는 인간들보다 더 훌륭하게 과제들을 수행할 때, 언어에는 균열이 생긴다. 우리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를 비로소 제대로 묻게 된다."

최영장군
아주 의미 있는 말씀이네요... 바둑 인공지능이 지금은(알파고 제로 수준에서는) 인간의 기보를 넘어 스스로 수많은 대국을 벌이고 그 내용을 학습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어쨌든 기풍은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경망처럼 강화 학습을 하는 한 축적된 편향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과거 이세돌 사범의 저돌적 스타일보다는 과거 이창호 사범의 두터운 바둑이 확률적으로 인공지능에 더 가까운 기풍이 될 듯 보이네요. 집과 세력의 극강적 균형을 찾는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예전에 읽은 이창호 사범의 책에서 자신이 조언 받았다는 '아름다운' 기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확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승리만을 위한 바둑에서 벗어그나기를 바라는 일본의 바둑 원로가 조언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기풍(바둑 스타일)을 말씀하셔서 저도 이리저리 생각을 좀 해 보았습니다~ㅎㅎ

연해
오오, 작가님이 말씀하신 두 분이 이 책에도 등장합니다.
“이세돌 9단에게는 ‘이세돌류’가 있었고, 이창호 9단에게는 ‘이창호류’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 기사의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감상하면서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했고 그게 문화가 되어 전해졌어요. 그런데 요즘은 기풍 이야기 안 하잖아요. 박정환 9단과 최철한 9단의 차이를 아세요? 신민준 9단과 강동윤 9단의 차이를 아십니까? 모르잖아요. 기사들의 기풍이 없어지니까 영웅적인 캐릭터도 만들어지지 않아요. 누구는 몇 위, 누구는 몇 위, 그런 얘기밖에 안 해요. 랭킹 10위권에 있는 선수들인데도 차별화가 안 되니까 그냥 뭉뚱그려서 보게 돼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승리(승리만을 위한 바둑에서 벗어나기)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좋은 바둑이란 무엇인가, 바둑의 목표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면서 '이기는 바둑과 좋은 바둑은 아주 다르다', '바둑은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이라는 문장도 등장하죠(저도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결론은 잘 모릅니다). 사실주의에서 시작해 AI까지 이야기가 너무 확장되고 있는데, 어쨌든. 이 책을 읽던 중에 작가님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뇌가 간질간질, 하고 싶은 말은 와르륵 더 많지만 차근차근 또 나눠보겠습니다. 제 길고도 긴 글에 매번 정성스럽게 답해주셔서 (계속) 감사합니다.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해 온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이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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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
바둑도 갈수록 기사들의 실력이 향상되니까, 경쟁 강도도 높아지고, 상대의 장점도 흡수하면서 그만큼 자신의 기풍도 흐려지고 하는 것 같아요.... 이종격투기가 아니라 종합격투기처럼 변했다고나 할까요...
귀노감에 실린 11편의 작품 중에도 뭔가 '풍'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고, 내용 위주의 작품이 있고 그렇듯이요~
물론 월급'사실주의' 동인 작품집이니까 '내용'의 전달이 빠질 수는 없겠죠. 다만, 그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방식의 문제는 작가들마다 달라서 '풍(스타일)'이 다들 다를 것이고요...
예를 들면, 작가의 주관(사상/감정)이 들어간 스타일의 작품, 작가의 주관을 배제하는 스타일의 작품, 스타일보다 내용을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 스타일보다 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작품 등등...
(그런데 같은 스타일이라도 미술의 시각적인 화풍이 문학의 언어적인 문체보다는, 적어도 큰 틀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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