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난 것 같으면서도, 제가 있는 곳의 날씨는 주말 내내 흐리네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열네 번째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지나간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언제든 하셔도 됩니다. 질문은 계획된 일정에 따라 나가니까요. 제가 INTJ 였던 것 같은데, MBTI의 신빙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 건지, 아니면 자기실현적인 부분이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ㅎ
질문 14)
초반에 노동의 계급적 측면이 현대 노동 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또 쿠르베와 호퍼에 관한 질문도 드렸습니다. 이는 작금의 '주된' 노동 현실이 계급이라는 집단적 현실인지, 아니면 저마다의 선택에 따른 개인적 현실인지에 관한 시각차를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업계나 직종에 따 라 갈리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 에서는 번역 업계에 있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다정, 소연, 희정입니다. 이 세 인물 중 다른 두 인물과 '다른 처지'로 느껴지는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수북플러스] 2.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

연해
저는 다정씨가 소연씨, 희정씨와는 조금 다른 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퇴사를 결심하고 있지만 아직은 소속된 곳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 사람의 속마음이 참 미묘했어요. 소속된 곳이 있는 다정씨는 프리랜서로 독립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번역을 하며 살고 싶다 말하고, 다른 두 사람은 어딘가에 다시 소속되길 바라고. 타인의 삶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저도 과거에는 누군가의 일면만 보고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할 때가 있었는데요. 이제는 생각을 다시 고치곤 합니다.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모두 저마다의 짐(?)을 안고 살아갈 테니까요.

최영장군
'주관'식 질문이라, 저마다의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해요~ '소속'이란 게 자동차 안전벨트처럼 보호장치면서 동시에 갑갑하게도 만들고 그러죠...
다정, 소연, 희정 중 그 상황이나 심정을 좀 더 이해하기 수월한 인물이 있을 것도 같고요~

연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어딘가에 소속되면 처음에는 안정감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답답해지고. 그러다 그 집단을 떠나고 나면 처음에는 홀가분해하다가 다시 또 불안해지는? 이해와 오해의 교차처럼요. 전에《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요. 막상 자유를 줬더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어떤 사람일까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원가정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딱히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게 이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거든요(아직 확신이 없달까요). 새로운 가정을 만들었는데, 도망치고 싶어지면 어쩌지? 원가정처럼? 근데 남편이 있다면? 아이가 있다면? (네네, 생각이 지독해지려하니 이쯤에서 그만하겠습니다)
저는 언제 어디서나 훌훌 떠나는 사람이고 싶은 것 같아요. 느슨한 연대인 그믐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고요.

최영장군
제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남자들인데, 일로 만나게 되는 분들은 (직업상?)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에요. 그래서 간혹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할 때도 있는데, 미혼인 분들 중에는 @연해 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아예 비혼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요....(그런데 그렇게 선언한 뒤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결혼하는 케이스도 절반은 되는 듯한... 사랑은 못 말려...😂)

연해
저도 어릴 때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서 "그런 말 하는 애들이 제일 일찍 가더라"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더랬죠. 하하하, 근데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저 하나도 키우기 벅차서 이런 제가 누군가와 다시 융합해서 살아갈 수 있나, 자신이 없기도 하고, 제도에 대한 반감도 있는 편이죠(과거에 만났던 연인 중에 결혼을 자꾸 독촉해서 헤어짐을 고해버렸던 적도 있을 만큼요). 하지만 사랑은 못 말린다는 말에는 공감하게 되네요. 꼭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주변인들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갑자기 공익광고인가).

최영장군
연애와 결혼은 다른 차원이죠... 연애가 서로의 주관을 감싸는 둘만의 연극이라면, 결혼 생활은, 특히 아이가 있는 결혼 생활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객관적인 역할을 강요받는, 일종의 역할극 같다는...

연해
역할극이라는 말씀에도 공감합니다(미혼인 제가 이런 말 을 해도 되는 건지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둘 사이의 일을 넘어 가족과 가족의 연결이라 생각하니, 굳이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원가정과 분리하기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또? (싫어 싫어)

향팔
희정씨가 좀 다른 처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희정씨는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지금 두 달째 일이 없어서 카페 구석 테이블에서 빛 관찰, 사람 관찰만 하고 있고요. 다른 두 사람은 그래도 자기가 가보지 않은 업계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어서(환상은 깨지겠지만요),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더 좋아 보이는(알고보면 그리 좋은 게 아니지만요) 업계로의 이직을 꿈꾸지만, 희정씨는 다른 것 같아요. “번역을 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 존재의 증명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고, 용돈벌이 취급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로 다시 (“그런대로 괜찮”은) 인하우스 번역사의 길로 돌아가려 한다는 점이…

최영장군
이런 깊은 관찰력과 논리력이라면, 난이도 높은 15번 질문도 너끈하실 것 같은데요?!! 👍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
열다섯 번째 질문도 이어서 드리겠습니다. 열네 번째 질문과 연계된 내용입니다. 14번 질문이 '주관'을 물어보는 질문에 가깝다면, 15번 질문은 '객관'을 찾아내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질문 15)
14번 질문에서 나온 세 인물의 다른 처지를 비유 혹은 상징하는 소설 속 장치는 무엇인가요?

향팔
케이크가 아닐까요? 일단 다정씨랑 소연씨는 처음부터 커피(아아/라떼)와 조각 케이크를 같이 먹는 데 비해 희정씨는 캐모마일티만 마시고요. 소연씨의 경우 업무상의 뿌듯함에서 오는 “심리적 포만감”으로 “브라우니는 괜히 주문했다는 생각”을 하는 반면, 두 달째 일이 없는 희정씨는 “괜한 허기”를 느낀 후에 케이크를 주문해 먹지요. 그런 디테일이 그들의 다른 처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최영장군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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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이번에도 마음포인트 백만 점 ㅎㅎ)

향팔
나야나 향파리 (거들먹)
느티나무
통찰력이 뛰어나시네요~ 전 아직까지는 어려운 질문에는 답을 하기가 어려워서요. 답변하신걸 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워야겠어요 !!

향팔
아아 통찰력이라니 어림없는 말씀이십니다. 워낙 하찮은 머리통인데요. 책을 평소처럼 읽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최영장군 님께서 좋은 질문을 해주시니 이리저리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네요. (정답이라는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독자 입장에서 그동안 잘 몰랐는데 이번에 이오교를 읽으며 느낀 게, 소설이라는 것이 꼭 무슨 건축처럼 짜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쓰시는 분들의 노고가 스며든…

최영장군
이런 말씀으로 제게 마음포인트를 주시는군요 ㅎㅎ 감사합니다~!!
느티나무
향팔님은 저에게 있어서는 통찰력이 뛰어나보여요 !!
저는 묵묵히 질문과 답변을 보면서 조금씩 배워볼게요 ~~~ 이오교라는 소설이 건축처럼 짜여져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장군님의 노고가... 얼마나 스며들었는지 가늠이 안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
오늘은 정말 놀랍게도 온도계가 40도 언저리른 가리키고 있네요. 만두가 될 것 같은 무더위 잘 버티고 계신가요? 실내에 있으면 에어컨 때문에 더위가 실감나지 않아야 하는데도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은 A타입 질문으로 골랐습니다. 열여섯 번째 질문입니다.
질문 16)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은 공간이 심리나 분위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여러분의 업무 공간에 관한 질문도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카페라는 공간에 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카페라고 할 만한 카페가 있으신가요? 그런 공간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만약, 인생 카페 같은 공간을 아직 만나보지 못하셨다면, 이오교 속 등장인물들이 일할 만한 업무공간으로서 좋은 카페를 소개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향팔
제 일상 속의 카페는 한동안 머물러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아 사러 들르는 곳이에요. (카페인 중독이라 아아든 뭐든 수혈을 하려면 꼭 가야 합니다) 카페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도 하고, 보통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 얼른 살 것만 사고 빠져나오고픈 공간이요.
가끔 집 앞에 조용하고 커피도 맛있는 카페가 생기긴 해도 곧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되니, 인생 카페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잘 없지요.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카페에서 독서도 하시지만 저는 밖에선 책을 잘 못 읽어요. 집중도 안 되고 그냥 집에서 읽는 게 편해서요. 좁아도 조용하고 방해하는 인간도 없고 언제나 음악과 고양이가 함께하니 완벽하거든요. (집은 열 평밖에 안 되는데 스피커는 두 세트가 있어요. 친구 말론 이거만 보면 집이 한 40평은 되는 줄 알겠다고 하하) 그리고 책 읽다보면 사람이 좀 눕기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집만한 데가 없어서…(긁적) 굳이 카페에 갈 필요성을 못 느낀답니다.
그래서 저는 일상에서 일하고 책읽고 사람 만나는 그런 공간으로서의 카페는 잘 이용하지 않고, (인간관계가 망해서 만날 사람도 없지만, 만나도 보통 술을 먹지 카페는 잘 안 가서요) 일탈이나 휴식처로서의 특별한 카페를 좋아합니다. 야외 공간이어야 더 좋고요. 그래서 지금 얘기할 카페들도 업무공간으로 이용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 양해를…
두 군데가 생각나는데 너무 좋은 곳이라서기보단 바로 옆 동네라는 이유가 더 크겠네요.
1. 수연산방
서울 성북동에 있는 이태준 선생 가옥으로 유명하죠.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서 가기 싫고, 가능하면 평일 한낮에 가야 한적하고 좋더라고요. 봄가을에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차가운 오미자차 한잔 마시면 천국이 따로 없지요. (꼬꼬마 때는 인사동 찻집에도 자주 갔지만 이제 그동네는 안 간 지가 오래됐네요.)
2. 제이스파크(J’s Park)
서울 수유리 4.19묘역 근처 북한산 올라가는 길에 4.19카페거리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자주 가는 곳이에요. 봄이나 초여름에 주로 가는데요. 산 바로 아래에 있어서 바람이 참 시원하거든요. 그리고 여긴 야외 테이블에 동물을 데리고 있는 게 가능해서 남의 강아지들이 노는 모습을 실컷 훔쳐볼 수가 있어요(흑심 사심 발동). 맥주도 팔고요 하하.
아, 좀 멀지만 또 한 곳 생각났어요.
3. 전등사 내 죽림다원
태어나서 단 한 번밖에 안 가본 곳도 인생 카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일인데.
산속 사찰 안에 자리잡아 나무 냄새 그윽하고 바람 따라 풍경 소리 더불어 잔잔하고 조금은 슬픈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연잎으로 뒤덮인 못가 통나무 탁자에 환상의 오미자차를 올려놓고(네, 제가 오미자차를 좋아합니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 편안한 저녁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다시 강화에 가면 꼭 들르고 싶은데, 추억이 부풀렸을지도 모를 환상이 현실이랑 일치할지는 조금 염려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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