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이야." 이런 고백을 작품 속에 담는 일이, 지금이야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는 목숨을 걸거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일을 각오해야 할 만큼의 용기까지는 요구하지 않지만, 1937년생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영국 미술계에 입문하던 시기에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죠. 엄연히 불법인 데다가 까닥 잘못하면 전기충격이나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했으니까요.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감이 호크니의 정체성을 더욱 강렬하게 나타내는 것 같아요. 반면에 호퍼는....( ㅎㅎㅎ😉 )
[📚수북플러스] 2.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D-29

최영장군

연해
아, 호크니가 성소수자였군요. 작가님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또 알아갑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색감이 풍부하고 채도가 높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이 작품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지는 몰랐어요. 예술이란 정말 알면 알수록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 또한 마찬가지고요. 작가님들의 내면에는 어떤 불꽃들이 담겨있을까 싶고, 자신만의 서사가 묻어난 작품들은 그 고유성이 유독 더 반짝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최영장군
👍 자신만의 서사가 묻어나는,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서사를 쓰면 @연해 님 말씀처럼 고유성이 반짝거릴 것 같습니다~ (믈론 고유성이 반짝이지 않도록 절제 내지 제거하는 작가들도 있고요ㅎ)

연해
화가들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자꾸 언급되고 있는 호퍼에 대한 작가님 생각도 살짝 궁금해집니다. 그의 작품(혹은 그)에 대해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아도 괜찮을까요? 저는 조심스럽지만 작품 자체만으로 '호'였다가 전시회를 다녀오고, 그를 다시 보게 됐어요.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고유성과 연결된 지점 같은데요. 호크니처럼 그의 개인적인 서사를 알고 나니 작품이 달리 보이더라고요(다시 시작된 '주관'의 개미지옥 토크...).

최영장군
작품에 주관을 배제한다고 해서 작가에게 주관이 없다는 뜻은 아닐 거예요... 호퍼는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자기 주관대로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은둔형인 호퍼는 대외적으로는 별 스캔들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받지만, 개인사에 있어서는 아내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했다는 자료도 나오고 해서, 작품이 주는 느낌과는 동 떨어진 면이 있긴 하죠...
그림에 나오는 사람이 왜 죄다 백인이냐고 비판하기도 하던데, 예술이 정치적으로 올발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점에서는 이오교도 비난 받을 수 있겠죠. 사실주의라면서 지금도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이 얼만데, 먹물 먹은 번역가 세 사람이 볕 드는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장면이나 그리고 앉았느냐고 말이죠. 누가 그런다면 호퍼의 말을 대신 전해 주려고요.
"All I wanted to do was to paint sunlight on the side of a house."

연해
답변 감사합니다. 맞아요. 저도 아내와의 일화를 알고 작품이 달리보이긴 했는데, 뭐 그건 어디까지나 제 의견일 뿐이니까요. 굳이 작가와 작품을 일치시킬 필요도 없고(이 또한 개인의 자유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책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해놓고, 아직도 제자리 걸음(허허허). 그림 속 인물들이 백인만 있다는 건 몰랐어요. 작가님 덕분에 또 새로운 정보를 알았네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작가와 작품의 도덕성을 둘러싼 여러 종류의 논의를 아우르고, 활용할 만한 기초적 인 이론과 분석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다.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책장 바로가기

최영장군
일단 죄다 백인이라는 이야기는 저도 관련된 분에게 들은 거라 100퍼센트 정확한지는 몰라요... 그런데 대표 작품들 보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리고 아내와의 문제는 우리나라도 김수영 시인의 사례를 봤을 때 제삼자가 이해하기 힘든 둘만의 뭔가가 있는가 싶기도 하고요...

최영장군
'지독한' 작품을 문학이든 미술이든 자주 접하시면 좋겠네요~ 그러면 내 지독함이 더 명료해지지 않을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
고만고만한 목소리를 담아도 됩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의 일시적인 관심과 공감은 고만고만한 목소리를 들려줄 때 더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건 @연해 님의 선택일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
장마가 끝난 것 같으면서도, 제가 있는 곳의 날씨는 주말 내내 흐리네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열네 번째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지나간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언제든 하셔도 됩니다. 질문은 계획된 일정에 따라 나가니까요. 제가 INTJ 였던 것 같은데, MBTI의 신빙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 건지, 아니면 자기실현적인 부분이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ㅎ
질문 14)
초반에 노동의 계급적 측면이 현대 노동 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또 쿠르베와 호퍼에 관한 질문도 드렸습니다. 이는 작금의 '주된' 노동 현실이 계급이라는 집단적 현실인지, 아니면 저마다의 선택에 따른 개인적 현실인지에 관한 시각차를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업계나 직종에 따 라 갈리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 에서는 번역 업계에 있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다정, 소연, 희정입니다. 이 세 인물 중 다른 두 인물과 '다른 처지'로 느껴지는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연해
저는 다정씨가 소연씨, 희정씨와는 조금 다른 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퇴사를 결심하고 있지만 아직은 소속된 곳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 사람의 속마음이 참 미묘했어요. 소속된 곳이 있는 다정씨는 프리랜서로 독립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번역을 하며 살고 싶다 말하고, 다른 두 사람은 어딘가에 다시 소속되길 바라고. 타인의 삶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저도 과거에는 누군가의 일면만 보고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할 때가 있었는데요. 이제는 생각을 다시 고치곤 합니다.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모두 저마다의 짐(?)을 안고 살아갈 테니까요.

최영장군
'주관'식 질문이라, 저마다의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해요~ '소속'이란 게 자동차 안전벨트처럼 보호장치면서 동시에 갑갑하게도 만들고 그러죠...
다정, 소연, 희정 중 그 상황이나 심정을 좀 더 이해하기 수월한 인물이 있을 것도 같고요~

연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어딘가에 소속되면 처음에는 안정감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답답해지고. 그러다 그 집단을 떠나고 나면 처음에는 홀가분해하다가 다시 또 불안해지는? 이해와 오해의 교차처럼요. 전에《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요. 막상 자유를 줬더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어떤 사람일까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원가정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딱히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게 이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거든요(아직 확신이 없달까요). 새로운 가정을 만들었는데, 도망치고 싶어지면 어쩌지? 원가정처럼? 근데 남편이 있다면? 아이가 있다면? (네네, 생각이 지독해지려하니 이쯤에서 그만하겠습니다)
저는 언제 어디서나 훌훌 떠나는 사람이고 싶은 것 같아요. 느슨한 연대인 그믐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고요.

최영장군
제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남자들인데, 일로 만나게 되는 분들은 (직업상?)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에요. 그래서 간혹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할 때도 있는데, 미혼인 분들 중에는 @연해 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아예 비혼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요....(그런데 그렇게 선언한 뒤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결혼하는 케이스도 절반은 되는 듯한... 사랑은 못 말려...😂)

연해
저도 어릴 때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서 "그런 말 하는 애들이 제일 일찍 가더라"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더랬죠. 하하하, 근데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저 하나도 키우기 벅차서 이런 제가 누군가와 다시 융합해서 살아갈 수 있나, 자신이 없기도 하고, 제도에 대한 반감도 있는 편이죠(과거에 만났던 연인 중에 결혼을 자꾸 독촉해서 헤어짐을 고해버렸던 적도 있을 만큼요). 하지만 사랑은 못 말린다는 말에는 공감하게 되네요. 꼭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주변인들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갑자기 공익광고인가).

최영장군
연애와 결혼은 다른 차원이죠... 연애가 서로의 주관을 감싸는 둘만의 연극이라면, 결혼 생활은, 특히 아이가 있는 결혼 생활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객관적인 역할을 강요받는, 일종의 역할극 같다는...

연해
역할극이라는 말씀에도 공감합니다(미혼 인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둘 사이의 일을 넘어 가족과 가족의 연결이라 생각하니, 굳이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원가정과 분리하기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또? (싫어 싫어)

향팔
희정씨가 좀 다른 처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희정씨는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지금 두 달째 일이 없어서 카페 구석 테이블에서 빛 관찰, 사람 관찰만 하고 있고요. 다른 두 사람은 그래도 자기가 가보지 않은 업계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어서(환상은 깨지겠지만요),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더 좋아 보이는(알고보면 그리 좋은 게 아니지만요) 업계로의 이직을 꿈꾸지만, 희정씨는 다른 것 같아요. “번역을 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 존재의 증명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고, 용돈벌이 취급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로 다시 (“그런대로 괜찮”은) 인하우스 번역사의 길로 돌아가려 한다는 점이…

최영장군
이런 깊은 관찰력과 논리력이라면, 난이도 높은 15번 질문도 너끈하실 것 같은데요?!! 👍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
열다섯 번째 질문도 이어서 드리겠습니다. 열네 번째 질문과 연계된 내용입니다. 14번 질문이 '주관'을 물어보는 질문에 가깝다면, 15번 질문은 '객관'을 찾아내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질문 15)
14번 질문에서 나온 세 인물의 다른 처지를 비유 혹은 상징하는 소설 속 장치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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