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맞습니다. 천하의 제발트도 누군가에게는 겸손하고 온유할 겁니다. 그런 대상이 누굴까 생각하며 『기억의 유령』을 들쳐보았는데 일단 제 결론은 제발트의 외동딸과 반려견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보면 제발트가 외동딸을 끔찍이 사랑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딸은 제발트가 자동차 사고로 즉사했을 때 조수석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가 연보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나옵니다. 1975년에 제발트의 반려견은 초식(!)만 하는 래브라도였습니다. 래브라도는 총명하고 온화한 대형견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탐지견이나 인명구조견으로 활약이 대단하지요. 『기억의 유령』만 봐서는 제발트가 200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래브라도 종을 키웠는지 알 길이 없지만, 본문에서 글쓰기 방식을 설명할 때 언급하는 개는 래브라도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원래 체계적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연구 조사를 할 때도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무작위로, 되는 대로 해 나가는 식이었죠. 작업이 착착 진행되어 가면서 저는 중요한 뭔가를 찾을 길은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하자면 개가 들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꼴과 같은 방식입니다. 코가 이끄는 대로 다니는 개를 보면 좌표를 설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들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개는 찾던 걸 반드시 찾아요. 저는 늘 개를 키웠습니다만, 제 방식은 개를 보고 배운 겁니다."(178~179쪽)
PS. 제발트가 어린 래브라도와 함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있어 올려봅니다. 사진 속 제발트가 마이클 헐스의 번역 원고에 빨간 줄을 쫙쫙 긋는 그 제발트가 맞을까요? ^^; 한 달 간 제발트 북클럽과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