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증정] 내일의 고전 <불새>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D-29
선을 향해 걷게 될 것이다. 선이 되어 갈 것이다. 그림자는 검고 어둡다.
불새 p216, 신종원 지음, 한규현 그림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을 더 말하자면 메인 서사라고 할 수 있을 바오로 신부와 헬레나의 사연과 목소리가 좀 더 드러났으면 소설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습지장례법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 불새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네요. 그럼에도 전작보다 플롯의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 더 나아졌다고 여기기에 아쉬운 점이면서도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네요.
겨우겨우 완독했습니다. 중간중간 몰입감 읽게 읽혔던 부분과 무슨말인지 모르겠는 부분이 섞여 있었던것 같아요. 처음으로 돌아가다시 읽어보려고요. 전체 그림을 한번 보고 다시 읽으면 이해 안되던 디테일이 다르게 다가올것으로 기대하면서요.
앗, 저는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조직(ETA)단원이었던 페트리를 빌바오 현지 핀초스 투어로 알게 되었다는 대목에서 ETA 순서를 바꾸면 EAT가 되는 걸 연상하며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성배와 관련된 역사나 신화, 전설 같은 여러 이야기들 말고도 문자나 기호, 발성 방법에 대해 장황할 만큼 자세하게 언급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어서 두 번 째는 여러 감각을 사용해서 책을 읽어보려고 했어요. 책에 유난히 다양한 감각을 위한 표현들이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치 중세 시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성서를 이해했을까를 생각하면서요. 성당 안에 들어가면 높은 천장과 어스럼한 성당 내부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위에서 아래로 비치고, 제단 정면과 양 옆에 종교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은 대부분 위에 2층에 위치해 있고, 높은 종탑에서 종이 울립니다. 모든 것은 위와 아래를 수직적으로 구분하는데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교화도 수직으로 구성된 공간 안에 땅에 붙어 있는 사람들, 어떨 때는 땅 속의 해골까지, 그리고 상승하는 예수님이나 천사, 성인 등으로 삶과 영생을 높낮이를 전달하는 그림이 꽤 많고요. 책에서도 이러한 높낮이를 표현한 구절이 많은데, 저는 가장 낮은 위치에 헬레나를 두고, 높낮이에서 자유로운 불새의 상승과 하강을 이야기한 것이 마음에 듭니다. 지나치게 장황하고 현학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 종교가 없는 저에게 성서의 구절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 잠시 의도인가도 생각해봤어요. 대부분 신비주의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들은 그렇잖아요. 어려운 말로 현혹시키는거죠. 그리고 아직 작가의 다른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 의도대로 저는 이 작품에 확실히 낚였습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성배와 관련된 역사나 신화, 전설 같은 여러 이야기들 말고도 문자나 기호, 발성 방법에 대해 장황할 만큼 자세한 언급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어서 두 번 째는 여러 감각을 사용해서 책을 읽어보려고 했어요. 책에 유난히 다양한 감각을 위한 표현들이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치 중세 시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성서를 이해했을까를 생각하면서요. 성당 안에 들어가면 높은 천장과 어스름한 성당 내부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위에서 아래로 비치고, 제단 정면과 양 옆에 종교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은 대부분 위에 2층에 위치해 있고, 높은 종탑에서 종이 울립니다. 모든 것은 위와 아래를 수직적으로 구분하는데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교화도 수직으로 구성된 공간 안에 땅에 붙어 있는 사람들, 어떨 때는 땅 속의 해골까지, 그리고 상승하는 예수님이나 천사, 성인 등으로 삶과 영생을 높낮이를 전달하는 그림이 꽤 많고요. 책에서도 이러한 높낮이를 표현한 구절이 많은데, 저는 가장 낮은 위치에 헬레나를 두고, 높낮이에서 자유로운 불새의 상승과 하강을 이야기한 것이 마음에 듭니다. 지나치게 장황하고 현학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 종교가 없는 저에게 성서의 구절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 잠시 의도인가도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아직 작가의 다른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 의도대로 저는 이 작품에 확실히 낚였습니다. 헬레나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침묵과의 대결을 시작할 것이다. (142p)(380p) 그로써 모든 하강이 몰락이나 쇠퇴로 이어지는 표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 이따금 어떤 하강의 임의의 낙차를 극복하는 요한 베르누이의 삼각함수처럼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그리며 우아하고 신속하게 진리에 다다른다는 사실을 – 말 한마디 없이 알게 할 것이다. (381p) 바흐의 모테트. 작품 번호 227번. 죽음, 사탄, 지옥에서 낮은 음으로 하강했다가 예수, 기쁨, 자유에서 높은 음으로 상승하는 워드 페인팅 기법에 의해 아찔한 낙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85p) 책은 이제 이런 신성한 분위기를 마련하고, 오랜 시간 찾아온 신성의 실재 성배를 쫓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기에 오랜 신화와 역사, 문학을 가지고 와서요. 압드 알라흐만 왕자의 이야기로 어떻게 스페인에 성배가 오게 되었으며, 원탁의 기사와 프랑코 정권의 이야기로 성배를 찾으려고 했던 사람들 그것이 약간의 신실함에서 탐욕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하고 생각했고요. 지금도 우리는 탐욕으로 성배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때의 성배라는 게 꼭 종교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성찬례의 도구가 한낱 기적의 수단으로 추락하여, 헛된 꿈이나 더러운 야심을 품은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마는 것이다. (132p) 종은 위아래가 뒤집힌 성배이다. (138p), 콘수에타를 알리는 전례의 종을 울리며 도시의 영혼이 타락하지 않도록 감시해 왔다. (133p) 이제야 알겠다. 성배는 단지 형상일 뿐, 깨진 컵도 마법의 가마솥도 아니었구나. (307p) 가로 폭이 14.5센티미터, 세로 폭이 9.7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몸뚱이 안에서 삶과 죽음이 교환된다. (324p)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전쟁들. 권력자나 위정자들이 탐욕의 성배를 찾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 종교가, 민족이, 나라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를 흘리지만, 정작 항상 대립이란 하나가 태어나면 자연스레 태어나는 것으로, 사라질 수가 없어요. 둘은 항상 공존할 수밖에 없으니, 전쟁이나 다른 방법으로 제거하겠다는 것은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그게 불새의 존재로 보여주기도 하고요. 어떤 생명을 살리고 어떤 생명을 죽일지 선택하는 건 언제나 너희 자신의 몫이다. (176p) 네 몸 안에서, 네가 다스리는 너의 왕국 안에서 일어난 일을 남에게 의탁하지 말아라. (177p) 생명도 책과 같다. 모든 고통이 삶의 한 면이다. 잔인한 일이다. 네 의사 따위는 묻지도 않고, 생명은 자기 앞의 일을 치르기 때문이다. 생명은 죽음에 관한 한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으며, 다만 재촉할 따름이니 말이다. 생명은 오로지 한 가지 의무에 복무하라 다그친다. 그것은 사는 것이다. 삶이라는 질서를 옹호하는 것이다. (177p) 진실은 실로 오묘하게 역전되어 있도다. 우리는 모든 삶에 목적이 있으며, 삶 자체가 바로 그 목적을 찾는 탐색의 연장이라고 착각하지만, 틀렸다. 삶 자체가 이미 목적인즉, 이것을 보호하려는 모든 실천이 비로소 생명이로구나. (307p) 세상이 면이라면 삶은 선일 터이다. 선은 탐색하고, 선은 연속되며, 선은 횡단한다. 삶은 구부러지건 펼쳐지려는 충동의 표현인즉, 어느 방향으로든 경로를 형성해야 한다. (316p) 사람을 하나의 점으로, 낱개의 기호로(316p) 점은 제 위치를 옮기려는 갖가지 외력에 저항하여 인내하고 몸부림치는 덩어리다. 오직 확고부동한 영성만이 드물게 점의 지위를 획득할 따름이다. (316p) 세상을 게임판처럼 들여다보고, 사람 목숨을 행마법처럼 다루지 않습니까? (317p) 오늘날 교회를 공격 중인 내부의 전쟁들(407p) 모두 전통과 진보의 대결로부터 비롯됩니다. 성 베드로의 이름에서 가르침을 얻듯,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외부의 전쟁들을 대비하기 위해 다시 한번 하나의 몸으로 결속되어야 합니다. (407p) 모든 전쟁은 생명과 죽음의 대결로 귀결됩니다. (407p) 한국과 스페인은 닮은 점이 참 많아. (320p) 하지만 무엇보다......끔찍한 동족상잔을 벌였지. (320p) 옆집 사는 이웃들끼리 또다시 쏘고, 지르고, 불태워 죽이게 될까 봐. 에스파냐는 그런 땅이라네. 이베리아의 진홍빛 토양 밑에 죽음과 분노와 눈물을 묻어 두고 영영 잊어버리기로 약속한 땅. (321p) 대립되는 하나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함께 하는 것은 가능하고, 그것이 결국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프랑코 독재가 끝난 뒤의 사면법 <팍토 델 올비도>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요. 영성체는 신의 육신을 섭취함으로써 동형 반복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몸과 몸의 차이 없음. 하나의 몸은 다른 몸의 부분이며 전체이다. 어떤 몸을 죽일 수 있다면, 다른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몸과 몸 사이의 계급을 허물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성사는 이 명제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어떤 몸을 살릴 수 있다면, 다른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325p) 책에서 두 번씩 반복되는 문장이 몇 개 더 있지만, 그걸 최초로 인지한 문장을 곱씹어 봅니다. 육체는 현생의 삶을 살고 죽은 후 썩어 없어지고, 영혼은 올라가서 영생을 산다는 기독교의 교리. 우리의 지금 여기를 하찮게 만드는 이 분리에서 영혼을 단지 하나의 전기 현상처럼 만들어 버림으로써, 우리의 몸, 생명, 현재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게 타자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총의 일격. 감전과 전율, 영혼은 낱낱이 해부되었고, 영혼은 미끌미끌한 유약에 싸인 구체 형상의 전해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며, 영혼은 전기 불꽃이다! (145p) (342p) 멀리서 산티아고 대성당의 종탑이 울려 퍼진다. 늑대는 소리가 아니라 떨림으로 이것을 듣는다. (343p) 성배는 심리학 융 학파나 조셉 캠벨 같은 신화학자들 사이에서 생명과 재생의 상징이고, 이를 확장해서 자궁에 대한 은유로 확장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오로 신부가 성배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넘겼던 문장인데, 끝내고 나니 가장 슬픈 문장으로 다가오네요. 도스도예브스키의 대심문관이 떠오릅니다. “신부님, 저는 이제 성당에 나올 수 없나요?” (144p)
겨울에 이상우 작가의 <warp>를 읽고 이게 대체 무엇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프리즘>이란 책을 한 권 더 읽었어요. 너무나 낯설어서 이것이야 말로 초현실주의 문학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잘 알지 못하면서), 끝까지 이해가 하나도 안되더라구요. 하지만 예술 감상의 목적 중 하나인 낯설게 보기, 그를 통해 생각하고, 서로 이야기하기라는 행위에 의외로 가장 잘 닿아있구나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그 때 느낀 약간의 분노와 좌절감이 이 책을 음 읽었을 때도 들었지만 다른 자세로 다시 읽게 만든 건, 책이 가진 매혹인 것 같습니다. 모든 책이 그러한 것도, 모두에게 그러할 수도 없지만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는 거 같아요. 각주까지 침범한 종결어미의 자유로운 구사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힘과 장악력이 저는 소설에 잘 어울려서 좋았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음직한 평범한 문장인 “신부님, 저는 이제 성당에 나올 수 없나요?” 이 대목이 바오로 신부를 움직인 그 무엇 같고, 소설을 덮고 난 후 제 마음속을 울리는 문장이 되었으니 작가는 저에게 <낯설게 보기>를 성공한 셈이네요.
'각주까지 침범한 종결어미의 자유로운 구사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힘과 장악력이 소설과 잘 어울린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이 가네요. 글에서 굉장히 권위적인 시선이 느껴진다라고 다른 분이 지적을 해주시기도 하셨는데 음..이것도 어떻게 보면 사람에 따라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같은 경우엔 작년 도서전에서 직접 작가님이 인터뷰하는 걸 옆에서 봤었는데 그 인터뷰에서 제가 느꼇던 작가님에 대한 인상은 본인의 세계관과 문학관이 뚜렷하고 글을 쓰는 데 있어 굉장히 거칠 것 없는 분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저한텐 호감으로 작용을 해서 당시에 습지장례법 책도 궁금해서 구매를 해서 보게 됐던 거였구요. 그 책을 볼 때도 전문적 어휘들이 잇따라 나오는 것이 되게 좀 불친절하다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또 언어와 기호에 대한 관심이 풍부하고 자신만의 믿음이 확고한 분이라는 인상이 이번 불새를 통해 더 확실하게 저한텐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있으니까 불새도 이렇게 쓰신 것이겠지요. 이 작가님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애초에 의도하고 쓰시는 분은 아니신 것 같긴 합니다. 모임 진행자님이 언급해주신 추천사만 보더라도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죠. 분명 어떤 이에겐 경직되고 권위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이거다 싶으면 일단 직진하는 그런 과감함이 있어야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리란 생각도 한편으로 하게 되네요.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독서를 시작하기 전 여러 전문가들의 서평 등 참고자료를 읽고 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은 상태에서, 그저 줄거리를 따라 가다 보면 작가의 깊은 의도나 의미가 저절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저의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완독 후 소전서가님이 일전에 소개하셨던 Diana 님의 북 리뷰 동영상을 보고 나니 제가 놓쳤던 것들이 많았구나 라는 생각에,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서술.전개 방식이 제겐 너무 낯설어 재독한다 해도 술술 읽힐 것 같진 않지만, 최소한 능동적으로 의미를 탐색하고 깊이 숙고하며 읽어볼 생각입니다. 암튼 함께 읽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완독하지 못했을 만큼 읽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Russist님이 지적해주신 코리올리 효과 리우빌 정리 등등 그 밖에 책에 나오는 수많은 전문적 지식들(누군가에겐 아닐수도 있겠지만 저한텐 이 작가님이 내용전개에 동원하는 대부분의 지식들이 거의 다 생소했습니다)과 어휘들이 도대체 왜 쓰여야했는가 저도 무척 공감합니다. 전 그런 것들까지 다 찾아보면서 독서하다간 이 책을 읽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 언뜻언뜻 검색만 해보면서 읽었는데 대신해서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주셔서 지적해주신 것처럼 그런 것들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어떤식으로 기여하는지 명확하게 상관 관계를 찾긴 어렵다에 솔직히 저도 공감했으니까요. 작가님이 새로운 지식을 얻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는 것을 즐기시는 건 확실해보입니다. 학문적 지식과 이론을 문학적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고자한다면 보다 더 신중하게 사용을 해야할 거라는 russist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설령 제가 이해를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하는 주제까지 전문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이런 부분은 계속해서 작가님이 작품을 쓰고자 하신다면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지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저런 지식들을 차용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면 꼭 필요한 부분에만, 그것도 최소한으로 쓸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단순히 지식과 이론의 나열로 비춰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 문장은 마치 과학에 막연히 관심을 갖고는 있으되, 익숙치 않은 독자들이 과학에 가질 법한 호기심과 매혹과 혐오를 살짝씩 건드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rissit님의 의견에 몹시 동의하고요, 다만 저는 작가가 일부러 사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신종원 작가를 접한 첫 번 째 책이라 그런지 오히려 더 잘 받아들였던 거 같습니다. 지적하신 여러 표현 방법들이 오히려 예전에 신비주의 종교나 초기 기독교의 방법(저는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여기는) 이랑 비슷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 분야의 지식이 있으신 분들이 들으면 이게 뭐야? 할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다르게 들린다는 거. 암시와 상징,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이야기들에 경도되고 현혹되는 사람들, 이런 이유가 기독교에 수비학의 흔적이 남은 이유라고 생각하고, 현대에는 그 중 하나가 과학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려운 내용이 아니더라도 약어나 은어로 신조어를 만들고, 밈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들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는 행위도 어떤 의미에선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신성을 부여하기엔 힘들겠지만요. 의도적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진실에 다가가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장치로서, 불새와 성배에 대한 이야기에 그런 표현들을 유난히 많이 사용했다고 봅니다. 저도 첨에는 모르는 건 대부분 찾아가며 읽다가, 흐린 눈으로 읽어야지 더 잘 읽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면서 마음 편하게 멈췄습니다. 불새 역시 종교적 산물이 아닙니다. 신화의 존재를 페르시아 문학에서 종교와 결합시킨 존재하는 점에서 불새와 성배, 기독교를 연결한점이 흥미로웠고요. 제가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작가의 말 중에서 이런 문장을 하나 적어 뒀더라구요. 대충 이런 이야기였는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신화나 전설에 비어있는 틈에 내 이야기를 넣는다" 많은 작가들의 소설 속 내용이 실제와도, 사실과도 다릅니다. 시간이 지나서일 수도 있고, 작가의 주관성이 지나쳤거나, 오해나 부족일 수도 있고, 의도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그래도 이런 다양한 읽기가 독자와 작품, 작가를 만나게 해주는 지점이라 생각해서 몹시 즐겁네요
저는 안타깝게도 이 책이 모국어로 쓰여졌음에도 어느 순간 의미와 문자를 일치시키지 못한 채로 읽기 자체에만 주력해서 오늘에서야 겨우 완독했는데 제가 느낀 뭔가 석연치 않은데 표현하기 힘든 부분들을 russist님이 너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읽는 내내 감탄했고, 대부분 다 공감이 갔어요. (제대로 이해 못한 저같은 이들에 대한 위로까지!) 솔직히 이 소설에 대한 분석은 제 능력 밖이라 저는 한 가지만 언급하고 싶은데요. 일반적으로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즉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서 읽을 가치가 있고,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으로 알고 있어서 '내일의 고전'으로 <불새>가 선정됐다는 건 이런 기준에 앞으로 부합할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과연 이 책이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인지, 아니면 여러 번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작가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전달 방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 '고전'이라는 타이틀은 '전달'이라는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많은 이들로부터 읽을 가치까지 인정받아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곳곳에 난무하는 생경한 어휘와 상징에 대한 해독의 압박을 느껴 참고 자료를 찾아봐야 할 정도로 문맥만으로 내용 파악이 잘 안 된다면 그 시도가 새롭고 독창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전'이라는 카테고리에 적합한 책이 될 수 있을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특히 제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지금껏 소설을 읽을 때 텍스트로 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지던 것들이 이번에는 제대로 기능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인데요. 신종원 작가님의 글이 그런 부분까지 충분히 고려한 상태로 쓰여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들었고, 이런 부분들은 전적으로 작가의 필력에 달려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보니 다 읽고 나서도 편집자님과 몇몇 평론가분들의 호평(문제의 본질에 직행하는 정공법 작가?)에 수긍하기가 어려웠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습지 장례법>도 반쯤 읽어 봤는데 불새보다 사용 어휘는 맥락상 이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중심 주제로의 몰입을 저해하는 복잡한 서사 구조로 인해 역시나 피로감이 느껴졌어요. 그래도 이것이 신종원 작가님만의 고유한 전개 방식이란 건 알게 됐네요. 취향의 문제도 있어서 <불새>를 한 마디로 단정 짓긴 어렵지만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고 가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면 수많은 정보의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글이 쓰여지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에 작가님과 편집자님이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들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제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서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본 게 처음이기도 해서, 나름 관심의 일환으로 쓴소리를 반복해서 늘어놓게 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특별한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시고,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사람들이 갖는 의문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신 편집자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다른 모임에서도 여기 계신 분들의 다양한 식견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에게는 지난 한 달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지적인 여러분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 특히 소수 의견임에도 제일 열심히 활동하시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고양이라니 님! 열정상이 있다면 제가 꼭 드리고 싶어요~ ^^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대화가 참 재밌어지는데 이렇게 끝나게 되어서 아쉽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주의 깊게 보았던, 이 전지적인 시점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이 전지적 화자의 목소리에 꺼림칙함을 느끼는 것인지 거듭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역학적인 사실관계나 수학적인 기술법이 오해와 오류의 여지가 있고, 다분히 현학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저는 이 전지적인 시점이 지극히 인간된 외재적 관점에서 모든 사물과 사안을 설명하려고 할 때, 그래서 자칫 대상의 기계적인 측면이 부각될 때, 어떤 사물의 원인을 거듭 찾아가며 무한히 퇴행하는 과거의 철학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피와 뼈와 살과 근육과 그 각각의 거동 방식을 하나하나 이해하기만 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굴었던 어떤 세계관도 떠올랐고요. 철저히 까마득한 시선과 높이를 점유한 채 어떤 대상을 내려다보고 분해하는 시선 말입니다. 이를테면 인간의 수학과 과학적인 이론으로써 새의 항행을 설명하는 것인데, 아무리 그런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우리는 새의 삶을 단 일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관점이 새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아가 그 불가해함을 불가해함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인간된 외재적인 관점을 개입시켜서 '새'라는 대상의 거동을 이론으로 굴복시키려고 할 때, 그것은 현실의 복잡다단한 요소를 몇 가지 이론으로 환원하려는 야심찬 기획이 될 따름입니다. 이제는 그 지식의 높이, 그 시선의 높이를 과연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가, 아니 가져도 되는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먼저 물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조차 이미 너무 오래된 고민이긴 하지만요. 저는 여기서 무슨 예술의 자유를 운운하려던 게 아닙니다. 어떤 자유로움은 반드시 성찰되고 반성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대상이든 감히 해부학적 단위로 내려가서 그 움직임을 설명하거나, 정식화된 물리와 수학의 이론을 이용해서 설명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의 움직임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음향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음악을 설명한다고 해도 멜로디 한 마디를 듣는 것만 못하고, 해부학적 지식으로 파편화된 몸을 서술한다고 해도 한 순간 몸이 반응하는 찰나의 움직임은 이해할 수 없고, 과학적 사실을 나열한다고 해도 그 과학이 애초에 설명하고자 했던 현실이 말끔히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음향학적 지식은 음악이 아니고, 해부학적 지식은 움직임이 아니고, 이미 알려진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도 엄밀한 의미로 과학은 아닌 탓입니다. 진짜 예술하는 사람들이 '예술'이란 단어를 입에 한 마디도 올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글을 쓰고, 도자기를 깎는 것과 같죠. 실상 자유자재로 모든 사물에 이입하는 방식이 어려워보이지만 가장 간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해 말기를 바랍니다. 기술법 자체가 간단하다는 게 아니라 기술법 근저에 깔린 사고방식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대중저술가이자 양자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단테의 과학 선생이었던 브루네토 라티니를 언급하면서, 과학자로써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와 시선에 대해서 얘기한 적 있습니다. 브루네토 라티니의 뛰어난 점은 그가 무려 13세기의 이탈리아의 학자였음에도 당시로서는 굉장히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브루네토 라티니는 일찍이 ⟪보배의 서⟫라는 책에서 '외재적 기하학'이 아닌 '내재적 기하학'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쉽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지구를 설명할 때, 바깥쪽에서 본 모습으로 쉽게 "지구가 오렌지처럼 생겼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브루네토 라티니는 얼마든 그렇게 할 지적 능력이 있었고, 당시에도 그렇게 가정할 법한 연구나 사실 관계가 어느 정도 쌓여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손쉬운 길을 피했습니다. 그 대신에 일부러 빙빙 돌려 쓰는 사람처럼 "두 기사가 반대 방향으로 계속해서 말을 달린다면, 결국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쓰거나, "어떤 사람이 바다에 가로막히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면 결국 떠났던 지점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라고만 썼습니다. 그는 지구 전체 모습을 함부로 상상해서 '오렌지'라는 보조관념을 빌린 직유를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 대답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합니다. 그건 사람의 관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체'를 관망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어떤 권력욕이 담기게 마련이고, 지적인 중력에 굴복한 자에게 가장 먼저 찾아드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자기 몸을 밀어넣지 않은 채, 지지고 볶는 대신에, 멀리서 시선을 던지는 관객이 되는 것입니다. 객관을 뒤집으면 관객이 된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소설을 펼칠 때 관객이 되고 싶어서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결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모쪼록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남의 잔칫집에서 쓴소리 늘어놓은 꼴이 되었지만, 저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해볼 만한 시간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누군가에겐 저의 이런 소수 의견이 도움이 조금이나마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들 수고많으셨습니다. Russist님과 고양이라니님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서 이 책을 다 읽고나서 한번 더 생각해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지식과 이론의 과다한 사용에 대해 이를 조금만 덜어내거나 다듬는다면 좀 더 뚜렷하고도 아름답게 작품을 빚어내는게 가능하지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점을 Russist 님이 한번 더 짚어주시고 이런 방식이 가질 수 있을 한계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해주신 것도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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