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안 맞는 서술인 것 같단 생각은 미처 해보질 못했었는데 그렇게 보실 수도 있군요.
사실 이 책을 읽을 때 유기적 연결성까지 꼼꼼히 따져볼 생각은 할 겨를도,그럴 힘도 없었는데 이런 비판을 보니까 나중에 다시 볼 때 참고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도서 증정] 내일의 고전 <불새>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D-29

하료

고양이라니
저도요ㅎ 약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기는 한데, 뒤부터는 저는 흐린 눈으로 읽었습니다.

고양이라니
"성총의 일격. 감전과 전율.
영혼은 낱낱이 해부되었고, 영혼은 미끌미끌한 유약에 싸인 구체 형상의 전해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며, 영혼은 전기 불꽃이다"
145쪽과 342쪽에서 같은 문장이 반복됩니다. 불새가 날아 오르는 장면으로 나아가고요. 또 잠시 읽는 걸 멈추고 생각해 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소전 서가
어떤 의미일까요?! 고양이라니 님의 감각으로 들어보고싶어요!!

하료
저는 오늘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인의 고뇌를 다룬다는 면에서 흥미를 느끼고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어찌어찌하니 좀 늦었네요.
'불새포획'부분 까지 읽었는데 많은 분들이 어렵다 하신 것처럼 저도 생소한 용어들과 지식들이 많이 나와서 검색해보기도 하고 그게 피곤하고 짜증나면 때로는 맥락만 짚어가면서 흘리기도 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워낙 그런 부 분들이 많아서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었을 거라 이해는 가는데 한번씩 짜증날 때 각주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래도 소설 읽는 게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잠깐 투덜거려봅니다만 ^^;; 그래도 앞으로 소설의 전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기대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바오로 신부의 선택과 도난당한 성배를 찾는 과정이 어떤 식으로 맞물려서 전개될 지 궁금하네요. 왠지 헬레나라는 인물이 바오로 신부의 심경과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한 인물로 나올 것 같은데 계속 읽어봐야겠죠.
완전히 다 읽어봐야 좀 더 확실한 비교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왠지 전작 습지장례법에서보다 이번 작품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을 계속 붙잡고 끌고나가게끔 하는 작가님의 능력은 더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무튼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소전서가
<오늘>부터 읽으셨는데 금방 따라잡히겠네요. 각주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독자들이 너무 주변적인 것에 시선을 빼앗기고 집중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소설 밖의 언어로 소설 속의 세계를 설명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 달린 주석은, 불새의 언어로 오직 소설의 세계 안에서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설 외의 텍스트가 아니라 소설 안의 텍스트로서,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을 추가하여 독서해 보시면 어떨까요.
<습지 장례법>을 읽으셨군요. 반갑습니다. 신종원이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작가인지 감을 잡으셨을 것 같아요~

하료
소설 속에 간간이 드 러나는 각주들을 보니 진행자님의 말씀이 무슨 느낌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 각주들도 확실히 텍스트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렵게 완독을 했지만 여운이 짙은 작품이기도 한데 저는 분명히 습지장례법 때보다 이 작품에서 진일보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눈길을 주고 싶은 작가님이네요.

소전서가
4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다들 어려워하시지만, <완독>하면 뿌듯함을 느끼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낯선 방식의 소설을 다 읽어 냈다는! 자신감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도전의식을 불러오는 소설들에 대한, 에너지도 얻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생명을 볼모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진실과 욕망의 관계들, 그 부조리함에 대해 한번 더 환기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 <생명>이 단지 소설 속, 드라마 속, 역사 속의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이라면? 나의 친구라면? 나의 동료라면?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이번주에 같이 나누고 싶은 부분은 <여명>의 뒷부분입니다(288면~). 갤러해드가 브리타니아 지역에서 새로운 성전을 세워야 한다는 희망을 따라 <성배>가 있다는 성을 향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자신을 성으로 데려갈 사공이자, 나루터 주인이자, 천사를 만나죠. 천사는 먼저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온 갤러헤드에게 격려와 암시를 해줍니다. 그 암시는 뒤에 있을 <붉은 기사>에 관한 것이겠죠. 이 부분에서는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장면을 여러번 읽고나서 그 뒤에 이어지는 <붉은기사>와의 만남을 보시면, 다양한 의미들이 읽힐 거예요. 붉은기사는 누구일까요...
다들 이 부분 어떻게 읽으실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외의 상적이거나 소화가 잘 안 거나 하는 장면들은 무조건으로 공유해 주세요. 같이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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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길르앗아, 고단해 보이는구나.」
마침내 안개 바깥에서 해가 완전히 저문다. 적막이 시냇가에 내려앉고, 저녁노을의 어슴푸레한 분광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다가와 기사를 깨운다. 기사는 반나절 내내 사공을 기다리다가 까무룩 잠들어 있던 참이다. 나루터 주인은 일찍이 귀띔받았던 용모와 크게 배치되는데, 어느 아름다운 청년이 웃으며 지팡이를 내려놓은 것이다. 기사는 수년 전 카멜롯에서 목도했던 성배의 환상을 떠올린다. 황금빛 행렬의 선두에 섰던 바로 그 청년이 말뚝에서 밧줄을 풀고 있다.
「두려워 마라. 나는 거룩하신 분의 축복 아래 여행자들을 돕는 시종이다.」
기사는 몹시 놀랐지만 잠시뿐이다. 목소리가 두려움을 몰아내는 힘으로 공명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천사가 다가오라고 손짓하자, 온몸이 즉시 부름에 응답한다. 나룻배 위에 올라타고 앉기까지 모든 일이 결정하기도 전에 이루어지지만, 의심도 불만도 뒤따르지 않는다. 나룻배는 두꺼운 널빤지를 대못과 나사로 보강한 반쪽짜리 목공품으로, 작은 물보라에도 위태롭게 휘청인다.
「꼬마 길르앗아,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널 지켜봐 왔다.」
천사가 이어서 말한다.
「어김없이 여정의 끝에 다다랐구나. 정말 잘해 주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기사가 묻는다.
「정녕 성배가 저곳에 있습니까?」
천사가 눈을 감고 지그시 머리를 흔든다.
「저곳에 있는 건 진실뿐이다.」
기사가 묻는다.
「그렇다면 여정의 끝을 암시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천사가 웃음을 무너뜨린다. 입가에서 환희가 중단된다. 우려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꼬마 길르앗, 너는 네 삶에서 단 한 번도 겨루어 본 적 없는 분노와 유혹, 배신을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가 강물을 건너 다가가고 있는 저 흑암의 성채, 카보넥에서 말이다. 지금까지는 주님께서 널 보호하셨지만, 이 마지막 결투만큼은 온전히 네 힘으로 치러 내야 한다.」
기사가 단호하게 읊조린다.
「주님의 적을 기쁘게 쳐부수겠나이다.」
천사가 눈물 흘리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널 기다리는 자가 주님의 적도, 악령, 마귀도, 괴물도 아니기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괴롭구나.」
천사가 이어서 말한다.
「꼬마 길르앗아, 잊지 말거라. 성배는 한 번도 네 곁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모호한 당부와 함께 천사가 뱃머리를 가리켜 보인다. 천사는 마지막 노질로 나룻배를 물살 밖으로 밀어 올린다. 반질반질하게 다듬어진 잔돌들이 나룻배 밑바닥의 들보와 나무 막대들을 긁는다. 기사가 배에서 뛰어내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천사는 이미 사라져 자취를 감춘 뒤다.

하료
붉은 기사와 갤러해드의 대립, 베드로와 로마 제국의 대립 그리고 현재 시점의 토마스 수사와 페트리로 대표되는 이들의 대립, 이 작품에선 계속해서 대립과 싸움의 이미지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그 속에는 성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이 천사의 말은 저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고양이라니
저는 지금 조로아스터교와 페르시아 전설을 지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성배 전설로 이어진 산만한 곁들임 독서 중입니다. 바스크 분리주의자들 이야기까지는 책으로 찾아보기 어려워서 흐린 눈으로 넘어갔고요, 바스크 치즈케이크(?)로 대신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님이 언급하신 부분을 더 꼼꼼히 읽어봐야 겠네요. <불새>가 가진 이질적인 것들, 수수께끼같은 모호함이 얼마나 저를 매혹시키는지 오랫만에 아이로 돌아가 가슴뛰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경외심 뭐 이런 감정들을 제외하면 전설의 불새를 만난 셈이지요.

선경서재
완독. 운영자(편집자)님의 질문에 답변을 해 봅니다.
1. 맘에 드는 문장이나 장면 알려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양을 찾아 떠나야 한다. 밀리p11"
2. 선뜻 이해가 어려운 부분, 더 깊게 이해를 했으면 하는 부분을 알려주세요.
; 작가가 선택한 많은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메모한 것들을 일부 적어봅니다.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독자의 몸부림이 이토록 필요한 책이라니...
수메르 사람 아브라함. 페니키아 사람들. 라틴어의 열두 번째 알파벳이 끄트머리가 구부러진 막대 모양의 상형 문자. 목자와 양. 유프라테스 강. 왕실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 아라비아 다마스쿠스 출신 왕자. 아르메니아 고원. 수메르인. 바드르. 스페인 총선. ETA. 바흐 작품번호 227번.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사랑의 딸 수녀회 회원 마르타 수녀. 닭이 세번 울기 전. 아비가일(주의 기쁨), 요안나(주의 은혜), 이사벨(주의 약속)의 죽음. 카를로스 대령. 고대 로마의 보병 대형을 상징물로 내세운 파시스트 정당, 소위 에스파냐 팔랑헤Falange Española는 리베라 장군의 유산. 켈트인. 브리튼 왕국의 궁정. 꼬마 길르앗. ....
3. 본인이 생각하는 줄거리나 주제를 공유해 주세요.
스물 여덟 살에 사제 서품을 받은 바오로 신부는 사제직 수행 중 발생한 신앙적 갈등으로 신부를 그만두려고 한다. 그에 앞서 베드로의 청으로 스페인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는데... 스페인은 총선을 앞두고 발렌시아 대성당의 성배가 도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라진 성배와 그것에 담아낸 인간의 염원은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데...
"네 의사 따위는 묻지도 않고, 생명은 자기 앞의 일을 치르기 때문이다. 생명은 죽음에 관한 한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으며, 다만 재촉할 따름이니 말이다. 생명은 오로지 한 가지 의무에 복무하라 다그친다. 그것은 사는 것이다. 삶이라는 질서를 옹호하는 것이다. p182"
4.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 읽기의 즐거움>이 있다면 공유해주시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공유해 주세요.
어렵다기 보다는 답답한 소설이었습니다. 여러 사건과 이야기들이 중심 줄거리를 관통하지 못했죠. 중반 이후 부터는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마음을 비웠습니다. 비슷한 느낌을 줄 법한 <노트르담 드 파리>와 <장미의 이름>, <죄와 벌> 등의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쉽게도 언급한 고전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게, 이 소설은 낯선 것과 신선한 것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듯 합니다. 나열한 명사들을 모아놓으면 그럴듯한 환타지 소설처럼 보일 정도였지요.
적어도 '내일이 고전'이라면... 편집자님이 언급하신 '플롯, 새로운 표현의 감각, 아름다움, 독특한 세계, 잘 짜여진 한 편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중 어느 하나는 있어야 할 듯 한데, 저는 이 책 소개에 언급된 '오직 하나의 질문과 대답' 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소설은 읽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소선서가가 선택한 '내일의 고전'이라는 타이틀이 아니었다면 이런 참을성을 가지고 완독하지 못했을 책입니다. 많이 아쉽네요.
Rhong
격하게 공감합니다

조이유
겨우 겨우 힘들게 읽었다. 불새를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회복한 신부가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마지막 주교의 공식 의견서가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 그가 자유인으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모든 죄의식을 벗어버리고...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개신교인인데 한때 카톨릭에 1년 남짓 관심을 가진 젊은 시절도 생각났다. 고등학교 동창인 수녀가 된 친구의 안부도 떠올려 진다.
나에게는 읽기가 힘든? 책이지만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언제쯤 다시 읽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책을 통해 개신교와 카톨릭은 같은 성경을 사용하지만 너무 다른것 같다. 마치 진보와 보수 같은 느낌도 들고...
모처럼 어려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의식 영역이 일반적이기 보다는 매우 특별한 영성으로 살아가는 분이 아닐까? 대부분 내가 읽은 소설은 대체 로 가볍게 며칠만에 읽는 편인데 이책은 나에게는 전문서적 보다 더 힘든 경험을 하게하는 매우 생소하고 적응하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괜찮나요? 라는 의문도 생겼다.
한마디로 '불려는 지지만 보지 못한 불새처럼 모호하고 애매함이 있는 소설'

하료
늦게 시작을 했지만 저도 힘들게 다 읽긴 읽었네요.
다 읽고 나서 읽는사람의 선발대, 독서단 분들의 서평과 그동안 여기서 진행되었던 토론 내용들까지 쭉 훑어봤는데
역시 가장 많이 나오는 반응은 '난해하다'네요.
저 역시 읽고나서 총평을 해보자면...
앞서도 말했지만 생소한 용어들과 지식의 사용, 익숙하지 않은 서술 방식과 전개방식의 난해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 책엔 쉽게 폄하할 수 없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 다 읽고 나서 현재 시대의 바오로 신부의 성배 이야기와 과거 여러 시대들 속 인물들의 성배 이야기들이 모두 인간의 삶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이루는 축들처럼 느껴졌고 그 끝없이 굴러가는 거대한 수레바퀴 의 모습 속에서 그 축들이 보였다 사라지고 다시 보였다 사라지고 하는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네요.
아마 작가도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이런 식으로 구성을 했던 것 아니었을까요.
또한 제가 인상깊게 봤던 챕터는 '불새의 애원' 부분이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가장 핵심이 되는 논지가 다른 챕터들에선 성배를 찾는,성배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들에 빗대서 제시되는 것에 비해 비교적 뚜렷하게 제시되었던 장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작가가 의외로 친절하게 배려를 해준 건가(?) 싶기도 하네요. ㅋㅋ;;
아무튼 내일의 고전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묵직함을 갖춘 작품이라는 것엔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는게 단어의 사용이 너무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어렵다는 점은 지적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굳이 이 문장을 쓰기 위해서 이런 단어를 써야 할 이유가 있나? 싶은 문장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춘 어휘 사용을 해라 당연히 뭐 이런 건 아니지만 작가님이 더 좋은 작가가 되려면 앞으론 어휘를 좀 더 섬세하게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족이지만 습지장례법과 같은 시리즈로 구상하셔서 그런 건지 구성방식이 전작과 상당히 유사하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과거 시대의 이야기들과 현재 시대의 이야기와 함께 병존하는 구성방식도 그렇고 마지막 부분에 천주교의 미사집전과 습지장례법의 마지막 진혼곡 부분이 겹치게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일부러 노린 걸까요? 두 권 다 읽어 보신 다른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하료
불새의 애원 부분에서 세상과 생명의 심오한 원리에 대한 작가의 깊은 생각과 연약한 인간과 그들의 삶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불새와 헬레나의 목소리를 통해 다른 장들보다 비교적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하료
세계는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
0은 점이고 1은 선이다. 0은 영원,1은 하루이다. 0은 false, 1은 true.
『불새』 108p, 신종원 지음, 한규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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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 쓰지 말라는 명령에 거역하며 자기 운명을 기술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글자씩 공백을 쫓아내야 한다. 이렇게 문필가는 안개 같은 공허 속에서 삼라만상을 결정하는 파라미터, 즉 힘의 이미지를 어루만진다. ”
『불새』 p157, 신종원 지음, 한규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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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선을 향해 걷게 될 것이다. 선이 되어 갈 것이다. 그림자는 검고 어둡다.
『불새』 p216, 신종원 지음, 한규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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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을 더 말하자면 메인 서사라고 할 수 있을 바오로 신부와 헬레나의 사연과 목소리가 좀 더 드러났으면 소설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습지장례법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 불새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네요. 그럼에도 전작보다 플롯의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 더 나아졌다고 여기기에 아쉬운 점이면서도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네요.

바나나
겨우겨우 완독했습니다. 중간중간 몰입감 읽게 읽혔던 부분과 무슨말인지 모르겠는 부분이 섞여 있었던것 같아요. 처음으로 돌아가다시 읽어보려고요. 전체 그림을 한번 보고 다시 읽으면 이해 안되던 디테일이 다르게 다가올것으로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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