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마음이 있어야겠죠. ㅎ 저도 한때 소설을 공부한 적이 있고, 지금도 그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환경이나 상황을 그렇게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프로 작가라면 모르겠지만, 작가지망생이나 아마추어라면 혼자 완성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룹으로 모여서 서로의 작품을 품평해 주고, 레지던스 얘기도 나오지만 그렇게 나 자신을 가둘 필요도 있지요.
조정래 작가님도 글 감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잖아요. 그게 어려우면 집에서라도 직딩들 9시 반에 출근해서 5시 반에 퇴근하는 것처럼 그 시간동안 옷 갖춰입고 글 쓰는 등, 정말 작가들 글 쓰기 자세를 갖추는 건 쉬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작가들 마감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자세를 갖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쉽지 않죠. ㅠ
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D-29

stella15
의식의출현
그믐에서 참여하는 첫번째 독서모임이 될 것 같네요.
장강명 작가님 스타일의 소설에 관심이 가서 죽 읽어 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다른 소설 작가분들도 간간히 언급이 되면서 독서 여정에 좋은 소스를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고기먹이
“ 세상에 10년 노력이 아깝지 않은 일이 몇가지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책을 쓰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헌신할 수 있는 직업 정도가 아니잖아. 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이잖아. ”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12p,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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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애호가
책에서 직접 인용
- 작가님, 이 작품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중에서 일부
소설의 모든 세부 사항을 장악해서 자기 마음속에 있는 주제를 글자로 번역하기만 하면 되는 작가가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다들 그저 꾸역꾸역 써가다가 자신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를 더듬더듬 발견하거나, 다 쓰고 나서 ‘아, 내가 이런 걸 쓰고 싶어 했구나’ 깨닫거나, 아니면 책을 내고 난 다음에도 자신이 뭘 썼는지 정확히 잘 모르는 것 아닐까.
제가 소설을 못 읽겠는 이유입니다. 저자도 하고자 하는 말을 (정하지 않고) (다 쓰고도 모르겠는 걸) 과연 독자가 읽고 뭔가를 느낄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그 외에도
- 사실성이 떨어져서 몰입이 깨지고
- 목적 독서를 하는 제 습성상, 소설은 뭔가 쉬운 얘길 괜히 빙빙 돌리는 거 같아 답답하고
-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작가의 분신인게 너무 느껴질 만큼, 작품속 캐릭터들이 세심하고 조리있고 낯가리고 생각을 곱씹는 작가스러운 특징이 많아 역시 몰입이 잘 안 되라구요.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였습니다. ^^;;;

stella15
사실 소설을 두고 잡설이라고도 하잖아요. 이 얘기했다, 저 얘기했다 그런데 이걸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뭐 이렇게까지... 하며 지루하게 하는 작가가 있고. 몰입하기 어려운 장르임에 틀림없긴 한데 한 번 몰입하면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장르가 또한 소설인 것 같습니다. ㅋ
박깨굴깨굴
위트있는 작가님의 글들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재미나게 읽고있는 요즘인데요.
작가님이 지하철에서 본인의 작품을 읽고있는 사람을 마주친 에피소드를 읽고나서 든 시덥잖은 생각~
보통 작가들은 본인의 작품을 읽는 독자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작품을 만나는 일에 대해 무감각할지, 아쉬움이 엄청 크게 들지 궁금해졌어요 ㅎㅎ

stella15
자랑은 아닌데, 경험상 제가 10년 전에 책을 한 권 냈는데, 저의 책 중고샵에서 보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고샵에서라도 발견되라! 뭐 그런 생각으로 바뀌더군요. 지금은 중고샵에서도 발견 안 되니까. ㅋ
도서관에서 보면 넘 반갑죠. 요즘엔 도서관에서도 찾는 사람이 없으면 치워버리는 것 같던데. 제 책이 나오고 몇 개월 있다 도서관에 기증할 책 목록에 한 권 살짝 끼워서 주민센터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아마도 지금은 치워버렸을 겁니다. 책의 운명은 다 그런 거죠. 뭐. ㅠㅠ
박깨굴깨굴
우와 👍🏻 책을 쓰셨다니 대단하신걸요!!!
논픽션애호가
신경숙의 표절을 창비가 궤변으로 옹호하며 표절 기준을 무너뜨리려 한 것에 대해 한국작가회의는 끝내 아무 논평도 내지 않았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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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애호가
이런 지적을 해준 장강명 작가가 (나와 이해관계도 없는데) 참 소중하다
논픽션애호가
가장 높고 큰 차원에서는,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대안적 이데올로기, 대안적 삶의 양식을 이제부터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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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애호가
저는 제 한 목숨 건사하고 제 행복만 쫓아사는데,
이 분은 사회, 미래, 시대, 세대, 대안, 시스템, 구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RAMO
“ “요즘엔 별걸 다 해야 돼요”라는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애써 아닌 척해도 콘텐츠와 책은 다르고, 크리에이터와 작가도 엄연히 다르다.
책은 글자로 돼 있고, 작가는 글자로 작업한다. 책의 본질이 굿즈나 토크에 담길 리도 없다.
우린 다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p.190~191 ”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p.190~191,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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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O
소설가와 라디오 가가
내가 좋아하는 밴드 퀸의 전성기는, 록 음악이 절정에 올랐다가 서서히 가라앉던 시기와 겹친다. 냉전은 끝나가고, 세상은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격동의 한가운데서, 하나의 낡은 매체가 조용히 쇠락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라디오다.
TV라는 새 매체가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라디오는 점점 자리를 잃어갔다. 퀸은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 Radio Ga Ga 〉라는 곡을 발표하며, 점점 잊혀가는 라디오를 향한 헌사를 남긴다.
“아직도 라디오는 누군가가 사랑한다(Radio, someone still loves you)”
이 노랫말처럼, 퀸은 시대에 밀려나는 매체에 사랑과 믿음을 보내며, 음악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되묻는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이 노래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책은 마치 ‘라디오 가가’를 부르는 퀸처럼, 시대의 한편으로 밀려난 존재의 목소리를 담담히 들려준다. 한때 세대의 오피니언 리더이자 지식인이던 소설가는 이제 “누가 활자를 읽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작가는 고백한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케팅도, 홍보도, 굿즈 기획도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토로한다.
“요즘엔 별걸 다 해야 돼요”라는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애써 아닌 척해도 콘텐츠와 책은 다르고, 크리에이터와 작가도 엄연히 다르다.
책은 글자로 돼 있고, 작가는 글자로 작업한다. 책의 본질이 굿즈나 토크에 담길 리도 없다.
우린 다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p.190~191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을까. 어느 직업이든, 이제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책을 사랑하던 소설가도 별 걸 다 해야 하는 시대이지 않은가. 머지않은 미래가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정직한 고백에서 시작된다. 밥벌이에 대해, 자기 직업의 쇠락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사회는 여전히 돈 이야기를 천박하게 여긴다. 특히 문화 예술계에서는 스스로의 위기를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말들이 더 귀하게 다가온다. 업계의 민낯을 드러낸 이 고백은, 그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시대가 변해도 누군가는 여전히 라디오를 듣고, 누군가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지금, 어쩌면 그 이상함 덕분에 우리는 더 애정을 느끼는 건 아닐까.
라디오는 퀸에게, 소설은 우리에게 여전히 사랑받을 이유가 있는 존재다.
RAMO
존경받는 직업, 그리고 소설가의 자리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은 과연 무엇일까요? 몇몇 직업군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과 기준이 다르기에 명확하게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선망받는 직업'은 어떨까요? 이 질문에는 비교적 명확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돈을 잘 버는 전문직 등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모든 것을 줄 세우는 강력한 기준이 되며, 심지어 선망하는 직업에도 이 기준이 적용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은 그저 허공에 맴도는 구호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러스킨은 그의 저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서 존경받는 직업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직업들을 살펴보며 그 의미를 탐구합니다. 의사, 군인, 행정가, 그리고 상인은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해 온 대표적인 직업군입니다. 이들 직업의 의무와 한계를 들여다보면 왜 일부 직업이 존경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의사는 타인의 생명을 살리고, 군인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행정가와 법률가는 자신의 의무로서 국가 기반에 이바지합니다. 이에 비해 상인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데 직업의 사명이 다한다고 보기에, 앞선 직업들에 비해 존경받는다고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러스킨의 주장에 따르면 존경받는 직업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기여가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억만장자와의 점심 식사에 수많은 사람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자 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볼 때, 러스킨의 이야기는 일종의 허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씁쓸하지만 사회 구조가 이미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에서 '존경받는 직업'의 가치를 설파하며 세상을 바꾸기에는 무력감이 앞섭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 모든 선망의 대상이자 '선(善)'으로 자리 잡는 사회에 변화를 바란다면, 소설가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에는 매우 인상적인 챕터, '타자화도 되지 못한'이 나옵니다. 그는 이 챕터에서 한국 문인 단체들이 수많은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정작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현실을 꼬집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타자화'조차되지 못한 존재들이기에, 소설가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소설가란 세상을 비추는 창이라면 소외되고 '타자화'조차되지 못한 이들의 삶을 소설로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그의 주장을 들으며 존경받는 직업의 조건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과 사회에 봉사하는 것. 그렇다면 장강명 작가의 바람처럼 소설가도 그 범주 안에 충분히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존경받는 소설가가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독자로서 저 역시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이러한 소설가와 독자의 노력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시작점으로 소설가가 이상한 직업 대신 진정으로 존경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논픽션애호가
소설가가 존경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북한 주민은 한국 사회에서 타자조차 되지 못한 존재. 라는 얘길 곱씹습니다.
헌데 전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인, 방송인, 연예인이 정치적 의견을 내는 건 언제든 찬성입니다만
몇년전 썰전에서
한국(약소국)이 처해있는 외교현실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 소설가 김훈씨를 초대해서 얘길 듣더라구요.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매우 의아한 느낌입니다. 소설가에게 국제정세를 들을 수 있는 걸까? 이 사람이 어떤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걸까? 라는 삐뚤어진 생각이 들더라구요.
소설은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비출 수 있다곤 생각합니다만, 그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각자 어떤 고찰을 갖게 되면 모를까, 당사자를 전문가로 보고 의견을 듣는다는 건, 어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RAMO
맞는 말씀입니다. 저 또한 비슷한 느낌을 종종 받죠. 과학자가 경제 구조를 설명한다던지 등등. 앞서 말한 제 바람은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자를 바라볼 때 대부분은 '기레기'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네들의 받아 쓰는 것이나 가짜 뉴스 등을 말할 때 기자를 낮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전쟁터에 들어가 취재를 하던지, 오랜 시간 끈질긴 추적을 한 끝에 내놓는 탐사보도 등등. 이들에게는 충분히 기자라 말하며 또한 그들의 말에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정리하자면 소설가가 존경받을 수 있거나 말에 힘이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 분야에 탐구해야 한다는 점이 우선되어야 직업으로서 소설가를 존경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논픽션애호가
네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로
질서없는 (무의미한) 세상에 대한
이해를 조금 넓혀줄 수 있는
소설가들은 당연히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동의합니다.
RAMO
책을 완독하며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함께 다양한 시각을 나눌 수 있었던 점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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