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환상

D-29
또 마광수의 장편소설을 접한다. 이건 작품해설까지 있다. 하여간 마광수는 더 오래 살았어야 했다. 같은 생각만으로 돌격하는 한국에서 아까운 인물이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 더 없나? 이런 사람들이 몹시 고프다.
마광수는 똑소리나게 따지는 여자를 아주 싫어한다.
손흥민 같은 애들에게 달라붙어 팔자 고치려는 미친 것들은 뭐냐?
여자는 자기 마음을 잘 알아주는 남자를 원한다.
마광수가 지혜를 더 맘껏 발휘한 책을 내게 더 오래 살았어야 했다. 오래 살기만 해도 별 도움도 안 되는 인간들이 많다. 김형석.
인간들이 주로 하는 신경 쓰는 것을 나는 하지 말자. 아예 본받지 말자.
마광수 죽은 게 아깝다. 살아 있다면 더 많은 삶의 통찰이 담긴 책을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남과 같이 하는 것과 남 앞에서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에 너무나 큰 장점이 있다. 이걸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다.
썩 같은 부사가 한국말엔 많다. 미묘한 문장의 차리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자기 자리 사람이 어떤 틀에서 벗어나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해도 결국은 그 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는 그 틀 안에서 살 수 없어 그런 것이다. 그 틀 안에서 살아야 더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도 물론 있다. 사회가 만든 틀이다. 실은 이런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부터 내려오는 게 안에서 살도록 한 것이기에 거기서 나오는 것에 대해 사회가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자신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체질로 태어났기에 그런 것을 다 감수하고 나오게 된 것이다. 아니 자기를 위해 그런 것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있고, 밖에서 행복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독 안에서만 살라고 한다. 안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사회가 용서하는 틀 안에 있어 자기의 기질과 사회에서도 같이 허용하기 때문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산다. 자신이 원하는 게 사회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안 되는 사람은 사회의 손가락질 때문에 힘들고 무리(다수)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서도 “내가 뭔가 부족한가?”하고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자기도 살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는 용감했다. 그를 응원한다. 아주 올바른 위치로 왔고 자기 행복을 찾았다. 남의 시선을 뚫고 자기 본래 자리로 온 것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自我正體性)에 따른 결과다. 자기를 옮아 매고 있던 곁가지들을 걷어내고 홀로서기를 한 것이다. 자기의 실존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그러나 예전엔 그저 묵묵히 꾹 참고 이런 사람도 틀에 갇혀 힘든, 그저 죽지 못해 산 사람도 많다. 자신을 몰랐고, 사회의 압력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왕 나왔으니 잘한 일이다. 이제 그것에만 맞춰 살아도 된다. 비로소 자신을 찾은 것이다. 이 모든 건 자신을 찾아야 가능하다. 이게 우선이다. “너 자신을 알라.” 사회도 요즘엔 이러라고 말해준다. 사회가 막힘이 열리고 좀 개방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변했다. 맞지 않는 곳에서, 견디며 살지 말고 빨리 나오라고 한다. 반대인 경우에도 속히 들어가라고 한다, 자기 자리로. 밖으로 나온 사람 위주로 응원하고 박수치는 까닭은 그런 사람이 실은 더 힘들고, 주변에서 구박만 했지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한 개 더 주는 식의 옛말을 따른 것뿐이다. 그렇게 힘들면 그저 꾹 참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박차고 나오라고, 자신을 찾으라고 권하는 사회로 점점 나아가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의식 있는 모든 드라마나 영화의 결말도 이리로 향하고 있다. 해피엔딩이라면 주인공이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끝난다. 덜 익은 개인과 사회가 더 성숙해져 가고 있다. 나온 사람은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를 위해 거기서 자기를 구현(具現)해 보라고 권한다. 자신은 이제 진정한 자기 자리, 위치로 온 것이다. 진짜의 삶이 자신을 맞이할 것이다, 곧.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진정한 자기 자리에서 꽃을 피워야 한다. 진정한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자신은 만족한 위치에 있다며 상대를 자신의 위치로 오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그는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 자기 자리가 아닌 남의 자리로 가면 다시 불행이 찾아올 뿐이다. 너는 거기서 살고, 나는 이제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사는 게 진짜 삶이다. 각자의 위치와 자리를 서로 존중하자.
여자의 변신은 무죄, 왜 그런지 변신을 잘 부린다.
주인공은 나가기만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난다.
인간은 어쩔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안정을 추구하는 곳엔 기존 일하던 사람을, 개혁이 필요한 곳엔 그 분야 전문가를 지명했다.
꿈은 여러가지 생각이 많은 여자가 더 많이 꾸고, 드라마틱한 젊은 사람이 늙은이보다 더 많이 꾼다. 안정적이면 꿈을 덜 꾼다.
몸 파는 여자는 어디지 모르게 그런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
마누라가 미인이면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6.25 오늘이 6.25인데, 나는 박통한테서 마취와 최면(催眠)을 당해 6.25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날인 줄 알았다. 광복절보다 더 중요한 날인 줄 알았다. 그래서 6.25 노래는 알아도 광복절 노래는 모른다.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 대회, 마을회관 앞 공터엔 반공 영화가 자주 들어왔다. 학교에 갈 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명단을 부른 후 향우반(鄕友班) 깃발을 앞세워 줄을 맞춰 등교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승복 동상이 떡 버티고 있는 학교 운동장 교단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기한 다음에 교실로 들어갔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6.25만 되면 이 노래를 불렀다. 기억으론 더 자주 불렀던 것 같다. 이 외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도 그 당시엔 다 외웠다. 어릴 적 받은 영향은 무섭다. 평생 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창피한 날이다. 같은 민족, 형제끼리 서로 죽인 아주 수치스러운 날이다. 빨리 잊고, 다신 그러지 말아야 한다. 무슨 자랑이라고 그렇게 떠벌리나? 그래도 그랬던 건, 단지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불만에 대한 입틀막을 하려 했던 것이다. 안보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겁줘 옥죄려 했던 것에 불과하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이...” 다행히 세뇌에서 벗어난 것 같다. 오히려 라이트보단 레프트 쪽으로. 그때의 7080은 거의 다 그랬다. 무슨 큰 뜻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진 않고, 그 이유를 굳이 따지면 철옹성 같았던 독재가 무너지고 그렇게 데모했는데도 취직이 잘되던 황금 시절을 청년으로 지내서 그랬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그 시절이 좋아서. 뭔가 앞날에 희망 같은 게 있었고 그때는 독재 타도라는 뚜렷한 목표도 있었다. 이 두 개(희망과 목적)가 사라진 지금의 젊은이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검열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현실 비판과 음울한 노래보단, 이 두 개가 있어 늘 하늘을 보고 그곳으로 날고 싶은 생각이 있어 「젊은 미소」, 「연」 같은 대학가요제가 유행했던 것 같다.
인간만이 갖는 동성애는 큰 흐름이나 주류를 거부하는 반골 기질과 급진적인 뭔가 새로운 창조적인 것을 꿈꿔 그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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