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수를 세는 책 읽기- 7월〕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D-29
십대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즐겨보았던 그것들이 지금까지 내 안의 여름 이미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83, 황인찬 지음
거대한 재앙으로 인해 지축이 흔들려 겨울이 사라지고 영원한 여름이 계속되는 세계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배경인 것이다. 여기서 그려지는 영원한 여름은 성장이 불가능한 세계자체를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83~84, 황인찬 지음
아무튼 다시 여름으로 돌아온다면, 영원한 여름이란 그런 것이다. 영원한 청춘이나 영원한 생명력이면서 성장 불가능의 세계이며 죽음의 세계인 것. 이 여름의 이미지에 영향을 짙게 받은 내게 여름이랑 청춘이면서 파국을 품고 있는 것이고,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면서 이미 끝나버린 무엇이기도 하다. 바글거리는 생명력과 속절없는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해야 할까.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85, 황인찬 지음
생각할수록 아득한 이야기다. 일상이 이토록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것을 일상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87, 황인찬 지음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김종삼이 그리는 여름이 어쩐지 앞서 이야기한 여름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망과 푸름과 죽음과 신이 결합된 여름의 세계라는 점에서 말이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89, 황인찬 지음
내가 김종삼의 시에서 좋아했던 것은 시간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은 어떤 초월성이었고, 그 무시간성을 품고 있는 여름의 이미지들이었고, 그 안에서 자기혐오 짙은 죄의식을 느끼는 김종삼의 자기의식이었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91, 황인찬 지음
김종삼이 시의 언어에 있어 모범을 보여준 작가였다면, 존 치버는 시의 기법적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준 작가이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92, 황인찬 지음
그런데 일단 생각만 하고 혼자 지쳐서 그만두는 일를 그만둬야 한다. 생각만으로 혼자 만족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생각만으로 지치거나 만족하는 일 말고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일까. 이 글은 여기까지만 쓰고 나는 일단 나가야겠다. 여름날의 거리가 밖에 있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97, 황인찬 지음
영원한 여름은 성장이 불가능한 세계자체를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영원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낼지도 모르겠네요. 과거에 보았던 이미지가 현재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크게 미쳐서 중심을 이루나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것들을 보고 싶네요.
이 시는 그다음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이미지와 느낌 사이 어딘가에서 그만 멈추겠습니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80 (7월 10일의 시, 부푸는 빵들처럼), 황인찬 지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나는 모호함과 아름다운 이미지가 가득한 공간. 기억이 추억이 되고 그 다음에는 끊임없이 미화되며 하나의 이미지와 느낌이 되는 순서가 오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언제나 기억할 것만 같았던 사람의 얼굴도 뭉뚱그려진 유화 풍경의 일부처럼 흐릿해지는데.. 그런 순간을 이야기하는 시 같았어요. 이미지와 느낌 사이 어딘가에서. 그땐 그랬는데, 하는 아련한 기운만 풍기면서요.
하금님 글을 읽고있으니 그림을 보고 있는것 같기도하고 그림을 보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하네요 저만의 느낌~~ ㅎㅎㅎ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김종삼이 그리는 여름이 어쩐지 앞서 이야기한 여름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망과 푸름과 죽음과 신이 결합된 여름의 세계라는 점에서 말이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89 (7월 11일의 에세이) , 황인찬 지음
저 신적인 것의 현현은 어쩌면 도피 같은 것이 아닐까. 인간을 지워버리는 일, 관계를 그만두는 일, 신적인 것을 발견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신이 되어버리는 일을 문학이 계속해도 좋은 것일까.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92 (7월 11일의 에세이) , 황인찬 지음
아주 다른 말이지만, 저는 이렇게 파괴적인 여름을 그리고 영원히 성장을 거부하던 청소년을 그리던 에반게리온의 작가가 만화 <슈가슈가룬>의 작가와 결혼한 이야기를 아주 좋아해요. <슈가슈가룬>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하는 인간의 에너지를 크리스탈화하여 취하는 청소년 마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주 화려하고 다정하고 또 외로운 여성 청소년(들)의 성장 이야기거든요. 성장을 거부하던 남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리던 작가가, 사랑과 함께 성장하는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리던 작가와 결혼하여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니. 가끔은 현실이 더 문학 같을 때가 많아요.
문학은 삶의 진실을 비추고, 우리의 남루함을 폭로하고, 그 남루함이 오히려 모종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은 아니다. 문학은 아무것도 구원하지 않는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94 (7월 11일의 에세이) , 황인찬 지음
내가 시쓰기를 계속하며 알게 된 것은 문학은 구원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구원은 문학의 밖에 있거나 어디에도 없으며,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구원을 향해 나아갈 결심을 하도록 아주 조금 돕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95 (7월 11일의 에세이) , 황인찬 지음
나의 부족함과 멍청함을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것들의 탓으로 돌리는 일도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 때문이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pp.95-96 (7월 11일의 에세이) , 황인찬 지음
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온라인 마케터가 되었는데, 되짚어보니 고등학생 때 참 좋아하던 네이버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의 탓이 아닌가 할 때가 있었어요. 광고 기획사를 배경으로 한 웹툰이었거든요. 물론 광고와 마케팅은 분야가 너무 다르고, 제가 참 좋아하던 캐릭터가 하는 일과 지금 제가 하는 일도 서로 전혀 다르지만요. 어쩌면 거기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했어요. 그렇게라도 접점을 유지하고 싶었던 맘 아닐까 싶어요.
웹툰은 저에게는 어색한? 시도해보지않은 장르인데요. 하금님이 언급하시니..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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