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했습니다. 진부한 비유이지만, 가슴에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은 직후인 현재로서는 가장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는 2년 전, 공대 4학년 재학 중에 장강명 작가님의 STS SF 창작 워크숍을 들으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좀 더 소설을 써보고 싶었고 그래서 곧바로 취업하는 대신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워크숍에서 배운 것처럼,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의 어떤 가치를 변질시키는지 연구하며 좋은 소설을 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입학했지만, 세 번의 학기를 거치며 현실의 벽에 번번이 가로막혔습니다. 올해는 등단에만 혈안이 되어 방향과 목적은 잊어버리고, 지난 일 년 반을 허송세월했다는 무기력감에 빠진 채 여름을 맞이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먼저 온 미래』는 초심을 되찾게 해준 책입니다. 특히 10장에서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는 말, 인문학이 새로운 가치와 서사를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말은 제가 잊고 있었던 방향과 목적을 재조정해 주었습니다.
10장을 읽으며 요즘 공부하고 있는 21세기 철학의 새로운 흐름 중 하나인 ‘실재론자’들의 주장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퀑탱 메이야수(사변적 실재론), 그레이엄 하먼(객체지향존재론), 마르쿠스 가브리엘(새로운 실재론) 등이 이 흐름 한가운데에 있는 철학자들입니다.(그레이엄 하먼은 ebs <위대한 수업>에 출연해서 인공지능과 예술에 관해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20세기를 지배해온 관념론, 포스트모던으로 대표되는 주류 철학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이후의 시대가 ‘넓이’를 얻은 대신 ‘높이’를 잃어버렸다고 규정하며, 각각의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실재론을 새로운 철학으로 복권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이에 관한 좋은 입문서가 일본의 철학자 이와우치 쇼타로가 쓴 『새로운 철학 교과서』입니다)
어쩌면 이들의 움직임이 인문학판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치가 기술을 이끌도록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고, 미래를 바꾸어가는 현대의 사상가가 필요하다는 『먼저 온 미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저는 인문학의 길을 걷고 있지만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는 사람은 아닙니다. 검색할 때 구글보다 퍼플렉시티를 자주 사용하고, 익숙하지 않은 엑셀 작업은 챗GPT에게 맡깁니다. 하지만 실용주의에서 벗어나, 『먼저 온 미래』와 함께 좋은 상상을 시작하는 일로 한 걸음 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앞으로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책은 언제나 좋은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철학 교과서 - 현대 실재론 입문저자인 이와우치 쇼타로는 1987년생으로 와세다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와세다대학, 도쿄 가정대학, 다이쇼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는 일본의 신진기예의 철학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최초의 저작이다.

사변적 실재론 입문사변적 실재론은 현재 대륙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새로운 조류이다. 사변적 실재론의 최초 구성원 중 한 명이 쓴 이 책은 내부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통찰과 세부사항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사변적 실재론 입문자에게 최적화된 상세하고 친절한 개론서이다.

예술과 객체객체지향 존재론의 창시자 그레이엄 하먼은 미학이 철학의 중심 분야라는 자신의 견해를 펼친다. 과학은 어떤 객체를 그것의 관측 가능한 성질들을 통해서 파악하려고 시도하기 마련이지만, 철학과 예술은 해당 객체에 직접 접근 할 수 없기에 이런 식으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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