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그에게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속한다는 것은 ‘인민에게’ 권력을 위임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개혁은 경제적 수단을 중안의 규제자에게서 현지의 기업으로 넘겼다. 그 다음에는 정치적 수단을 정치국에서 인민대표대회로, 현지 당 조직에서 현지 소비에트로 넘기기로 결심했다. 2년이 채 못되어 이런 노선은 소련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재정을 망가트렸으며, 페레스트로이카의 아버지를 자신이 풀어헤친 파괴적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마법사의 제자’로 만들어버린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앞 문장만 보면 대단해.. 잘했네.. 라고 말해주고 싶은 내용이기는 합니다. 2여년간 더 심각해진 경제를 봉합하지 못한채 민주화에 꽂혀버려 패착이네요. 견제 할 사람들 마저 은퇴시키는 결정에서 고삐는 스스로 놓은 거네요.
갈수록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눈에 들어온 것 같아요.. 반향실 효과처럼
1부 2장 해방을 읽었습니다. 안드로포프처럼 소련이 냉전 대결을 계속한다면 재건되고 현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레이싱을 계속했던 미국이 정말 미웠을 것 같습니다. 그의 진심을 그나마 알아주었던 레이건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고르비는 소련 MIC를 설득하여 소비재 생산 경제로 전환하려고 애를 썼지만, 미국은 이러한 소련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고 소련이 중공업 위주의 경제시스템에서 벗어나게 놔두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이 소련의 핵무기는 거의 변화가 없었고, 소련군은 여전히 동유럽 전반에 걸쳐 배치되어 있었으며, 아프카니스탄, 베트남, 아프리카 등의 여러 정권들을 지웠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참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가장 눈여겨 봤던 부분은 고르바초프의 낭만(?) 이었습니다. 저자도 이를 '고매하다'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참으로 자나깨나 레닌빠 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공산주의 이상에 맞추어서 연방국들의 민족 독립과 자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믿음을 어찌나 그렇게 고집스럽게 유지했는지... 지금은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자신의 생각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신들의 참모, 주변 학자들의 조언과 역사적 교훈(1861년~ 1881년 알렉산드로 2세의 교훈)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이나의 분쟁, 발칸 3국의 독립에서 어쩌면 그렇게 애매하고 모호하게 입장을 취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아닌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사건이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울러 '강한 중심 그러나 역시 강한 공화국들' 이라는 그의 모순되는 원칙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기본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윌리엄 타우브먼이 수레를 말 앞에 두었다라는 평가는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는 매우 뼈아픈 지적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저는 소련연방의 해체기를 생각하면 조폭영화가 자꾸만 생각납니다. 조직이 너무 커져서 오야 혼자서 관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지니까 지역구를 때어주면서 '이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먹고 잘 살아라 대신 내 조직을 떠나는 것은 안돼' 라고 했을 때, 조직원 중에는 꼭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독립하려는 놈들이 있지 않습니까? 보통 이럴 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본보기를 보여주는게 조폭들의 클리셰인데... 고르비는 이걸 못했지 않았나... 뭐.. 그런 엉뚱한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 책 읽으시는 분들 모두 평안하고 시원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2장의 마지막 문단이 매우 기억에 남는데요. 고르바초프가 연방국들에게 개혁과 개방으로 소련연방국이 붕괴된 현상을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에 비유한 것인데요. 이 부분은 유발하라리가 '넥서스'에서 AI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들었던 예입니다. 자신의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 현상을 잘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마법사의 제자가 그런 의미였군요, 어떤 은유인가 했는데,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판타지아에서 천방지축 미키가 제자로 나와서 유명하죠. https://youtu.be/rCAYto7Svwo?feature=shared
조폭 비유 빵 터졌습니다. ㅎㅎ .. 넥서스 읽은지 1년도 안되었는데;;;.. 기억이 전혀 안났는데.. 감사합니다 ㅋ
아, 마법사의 제자가 원래 괴테 작품이었군요! 꼬꼬마 때 봤던 디즈니가 원조인 줄 알았어요.
정말 비유가 찰떡이네요! 저도 빵 터졌습니다. @롱기누스 님은 조폭 비유에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지난달에 <냉전> 읽을 때도 미.소 양국의 행태를 “각자 나와바리는 건드리지 말자”에 비유하셔서 무릎을 쳤던 기억이… ‘오야’, ‘나와바리’ 같은 전문용어 사용도 적절하시고요 하하
아... 저는 이 모임의 격을 떨어뜨리는 너무 저급한 표현이 아닐까 걱정하며 적었는데... 개떡 같이 말씀드려도 찰떡 같이 이해주시는 @향팔 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
저도 넥서스 서문에서 마법사의 제자 비유를 읽으면서 섬뜩해지더라구요.. 핵무기보다 더 와닿던.. 당장 우리가 직면한 문제죠
그러니까요... 관련해서 저는 요즘 장강명 작가님의 '먼저 온 미래' 책을 읽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알파고 이후 바둑산업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야말로 AI가 먼저 들이닥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바둑계의 현실에 대해 깊이 있고 폭넓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정말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셨어요...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해 온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이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앗 제목만 보고 이번에 SF인 줄 알았더니 르포르타주라니!! 전 실은 바둑을 아직도 잘 이해 못 하겠는데..(그래서 미생 만화/드라마 보면서 만날 바둑방송 보고 인터넷으로 바둑두는 남편을 많이 괴롭혔죠 ㅎ) 알파고 이후 이게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엊그제도 센코컵에서 최강의 기사 최정이 우에노 리사에게 신기한 수로 졌다고 참 바둑은 예측불가하다고 허무하게 웃던데.. 너무 심오한 얘기여서 과연 제가 잘 이해할 지 모르겠어요;; 전 실은 게임은 바둑이나 체스도 그렇지만 심지어 스타크래프트도 잘 모르겠어서 차라리 양자역학 책들이 낫더라구요..
아.. 아닙니다. 바둑을 모르셔도 읽는데 전혀 문제없습니다. AI가 어떻게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영향력이 생각보다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책입니다.
1987~1988년 고르바초프의 급진적 개혁은 이전 개혁의 실패, 당-국가 관료제에 대한 ‘1960년대 사람들’의 좌절 그리고 몇몇 고매한 당 조직원들의 이데올로기적 이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역사적인 오판을 저질렀다. 1988년 말에 그는 개혁과 나라 전체를 계속 통제할 수 있을 유일한 수단인 당 조직을 해체하려 했다. 그의 진단은 틀렸다. 그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프로젝트의 재활성화와 현대화의 주요 장애물이라고 여긴 당 관료제는 보수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을 선호했지만, 여전히 최고 지도부의 수중에 있었다. 오판에 근거한 탈집중화는 다른 오류들과 맞물려 경제와 금융을 망가트렸다. 더욱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안드로포프가 경고했던 대로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다. 고르바초프식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그가 구상한 방식은 성공할 수 없었다. 대신에 그것은 경제 혼란과 정치적 포퓰리즘, 민족주의라는 악령에 소련을 노출시켰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장 페레스트로이카, 70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aida @롱기누스 @borumis 토크빌 책을 읽으면 이런 식의 세상에 대한 씁쓸하고 때로는 인정하기 싫은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어요. :(
저는 앙시엥 레짐 책은 아직 안 읽었고 '미국의 민주주의'만 읽어봤는데 주복이 토크빌을 French conservative라고 해서 좀 의문이 들었는데요. 물론 요즘 보수적 우파 정당에서 그의 책에서 선택적으로만 발췌해서 많이 인용하긴 하지만 그 자신은 liberal, 그리고 중도좌파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가 읽은 책에서는 토크빌은 레닌만큼 좌파는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보수 우파와는 선을 긋는 대신 레닌이나 고르바초프와 달리 훨씬 더 현실적 통찰력을 갖고 민주주의의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을 균형감 있게 짚어낸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제 읽기에 속도가 붙으시죠? 오늘 7월 9일 수요일은 3장 '혁명들'을 읽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1989년의 그 격변의 시기에 고르바초프의 소련에서 있었던 일을 살펴요. 정말, 읽다 보면 복장이 터집니다. 바로 코앞까지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압박이 몰려오고 있는데도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요.
고르바초프가 이렇게(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갈등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한 가지 이유는 폭력을 개인적으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 성격적 특질은 나중에 그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 개혁에 대한 추진력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치국의 동료들 일부는 “급속한 민주화는 소련의 통합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장 해방, 8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989년 5월,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고르바초프는 지식인 측근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중국식 길을 걷자고 주창했다. 우리는 오늘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봤다. 나는 붉은광장이 천안문광장처럼 되길 원치 않는다.” 소련 지도자는 역사가 자신이 선택한 길을 찬성한다고 믿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장 해방, 95~9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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