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페이지 수가 적은 게 챕터 수가 적어서 그런 것 같아요. 대신 한 챕터 당 페이지 (그리고 내용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1990년 8월 말에서 9월 초) 고르바초프는 아카데미 회원이자 1983~1987년 경제 개혁의 설계자 아벨 아간베갼(Abel Aganbegyan)에게 두 프로그램을 조화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소련 지도자는 500일 계획이 연방 정부 및 연방세와 연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이 고르바초프를 비난했고, 일부 역사가들은 이때 소련 지도자가 자신의 비호 아래 개혁을 재개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고 본다. 하지만 고르바초프가 망설인 데에는 나름의 정치적 논리가 있었다. 중앙 정부가 없다면, 대통령은 15개 공화국과 거대한 인민대표대회를 혼자서 상대해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모든 주요 산업이 중앙에서 통제되는 복합 기업들로 구성된 소련 경제에는 광범위한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장 갈림길, 20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참, 안타까운 일이 경제 개혁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이 경제 개혁의 고삐를 중앙 정부가 쥐고 있지 않으면 대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후세 역사학자들이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 대혼란의 원인이 되는 체계를 바로 고르바초프가 만들어 준 거잖아요. 이게 고르바초프의 그 측근의 무능과 한계를 보여준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런 대혼란이 결국에는 폭력 개입의 여지를 만들고, 또 고르바초프는 그런 폭력 사용을 주저하고.
고르바초프는 정치인보다는 뭐랄까 독야청청한 학자나 이론가, 독서가로 살았어야 할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향팔 그래서 저는 "역사랑 대화하는" 지도자는 경기를 일으키면서 싫어해요. 보면, 역사랑 대화하다 보면 꼭 지금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한 결정을 내리더라고요. "역사랑 대화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공부를 하거나, 이렇게 벽돌 책이나 함께 읽는 소시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어떤 리더의 역사적 평가는 그가 "역사랑 대화"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역사학자가 평가하면서 해석해서 기록하는 것이겠죠.
차분히 잘 읽다가 이 대목에서 웃음이 터졌네요. 동의합니다. 지도자의 자질과 연구자의 자질은 조금 다른 것 같더라고요. 후자일 때는 굉장히 멀쩡하던(심지어 존경받던) 사람이 갑자기 정치를 시작하고, '도대체 왜 저러지?' 싶은 경우를 보면, 평가나 해석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상과 현실도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뜬금없지만 벽돌 책 모임 중 『3월 1일의 밤』을 읽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쵸.. 본인이 좋아하는 철학만 파지... 직장을 잘못 택한 듯..
저는 고르바초프가 폭력 사용을 혐오하고 주저했던 것에 대해선 별로 아쉽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장 천안문 학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해서요. (우유부단해서 그랬든 신념 땜에 그랬든..) (폭력을 써야 할 때조차 안 써서 더 큰 폭력을 불러왔다는.. 그건 판단이 너무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무력을 함부로 마구 써서 더 큰 문제가 된 지도자들이 세상엔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다만 @YG 님 말씀대로 폭력 개입의 여지가 필요한 지경까지 벌여 놓은 무능과 오판 등이 너무 아쉽습니다.
근데 측근들도 무능하지만.. 고르바초프 자신도 솔직히 철학과 역사책만 냅다 파고 정작 실제 경제나 소련 사회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1장에서도 Law on Socialist Enterprises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5장에서 아예 파블로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도 못하는 모습을 보였죠. 게다가 심지어 Lukyanov가 경제 개혁을 더 강제적으로 실시하자는 제안을 듣고 모두가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를 회피하며 못 알아듣는 척까지 하죠. 요즘 RFK의 보건정책 실패와 홍역 outbreak에 대한 기사를 보고 있으면 전문적 분야에서 무식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여파를 일으키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돈과 대출을 구걸하고 있었다”라고 체르냐예프는 당시의 고르바초프에 관해 썼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장 갈림길, 20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990년 9월, 고르바초프의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모든 국가와 그 정상입니다.
전 5장을 보면서 아.. 정작 국내에서는 골치 아픈 대상들과 (심지어 대적하는 쪽 말고 최측근까지도) 얘기하는 걸 꺼리고 아예 나몰랑 나한테만 묻지 말고 니들이 스스로 생각해봐 하고 부하들을 거의 내팽개치듯 하는 찌질한 지도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최대한 국외나 별장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국외에서도 예전의 관계도 상관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 손벌리며 돈 빌려달라고 구걸하고.. 게다가 더 웃긴 건 정작 아제르바이잔의 집단학살 등에서 정당하게 사용했을 수도 있는 군사력은 손놓고 방관했다가 이제 정작 모스코바에서는 실제 아무 폭력이 아직 안 일어났는데도 경찰들이 진압하라고 하는데 반항하는 Bakatin에게 화풀이하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전에도 무능해보였지만 갈수록 막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건 이전에 읽었던 Westad의 냉전에서 나왔던 그의 모습과 좀 대조되는 모습인데요. 거기서는 고르바초프에 대해 He was willing to authorize crackdowns, but only when ethnic violence or a chance for real secession demanded it.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만큼 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의 손은 더럽히고 싶지 않아하는 대외적 이미지를 중요시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폭력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남들이 어떻게 해서 문제가 사라지길 바라는 듯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자기손은 더럽히지 않으려하는 고르바초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네요. 아울러 고르바초프가 폭력에 대한 원론적 반감 보다는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목적의 수단적 활용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하시는 부분도 공감합니다.
저도 그게 좀 맘에 걸렸어요. 정작 그러고서 체르노빌 사건 때는 한참 뒤에 알리고..;; 그리고 장관들이 욕먹고 공격당할 때 도망치고 모른 척하거나... 러시아 정부 등이나 군대와 맞서야 할 때도 도망치고...;; 그저 폭력을 싫어한 것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쓴소리를 듣거나 본인이 쓴소리를 해야 하는 대치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번에 말한 National Security Archive의 영어로 번역된 고르바초프의 서신들이나 대화 내용을 보면 번역/통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평화로운 사람이었을 지..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었던 게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해 베이커랑 얘기하면서도 고르바초프의 표현이 이랬습니다: Let them boil in their own juices over there. 섬뜩하죠? 그리고 결론적으로 한 말: I am concerned about the reputational aspect. 자금 지원을 구걸할 때의 그의 비굴한 모습 외에도 그렇게 좋지 않은 인상이었습니다. https://nsarchive.gwu.edu/document/18270-national-security-archive-doc-17-excerpt
이 책 편집이 좋은 점이 있네요! 방금 책을 읽다가 “야코블레프는 줄곧 침묵했는데, 과거 발트인들에 대한 유화책으로 인해 곤욕스러운 처지였기 때문이다.” (4장 165쪽) 이 문장을 읽으니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 이사람이 언제 발트 유화책을 냈었다는 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책 뒤의 찾아보기를 넘겨보니 야코블레프 이름 아래로 -이 사람과 발트 분리주의 및 독립 이야기는 89~91페이지에 있어!- 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지 뭡니까. 해당 페이지로 돌아가보니 까맣게 잊어버렀던 야코블레프의 유화책 내용이 띡! 나와 있네요. 신통방통.. 근데 분명히 2장에서 읽은 내용인데.. 읽었는데.. 왜케 새로운 건가요.(좌절) 예전엔 책 덮자마자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면.. 이젠 벽돌책이라고 챕터 단위로 잊어버리는 중인가 봅니다.
저도 자꾸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하고 기억을 되짚어야 해서 무한 반복 검색 및 복습을 ㅎㅎㅎㅎ
체르냐예프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기억에 시달리며 우울해져서 정치국 모임을 떴다. 그는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에서 학살을 실행한다면 사임은 말할 것도 없고 …… 십중팔구 다른 일도 할 것이다”라고 일기에 적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여기서 “다른 일”이라는 게 뭘까요? 설마…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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