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어딜가나 그 화제는 금기(?)사항이긴 하지요. @stella15 님 덕분에 생각이 났으니 간만에 장사익샘 노래 한곡 듣고 독서해야겠습니다. (마흔 넘어 데뷔를 하셨다는데 대체 뭘 드시면 목청이 그렇게 트이는지 궁금) 저는 최백호 샘 노래도 좋아해요! 또래들은 이해를 못해주는 외로운 음악 취향..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향팔

stella15
그러게요. 근데 아까 때리고 부수는 음악 좋아하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음악 취향이 넓은가 봐요. 맞아요. 장사익 선생은 뭘 드셔서 그러는 건지? 예전에 창하는 사람들 득음하려고 인분도 먹는 사람이 있다던데 설마 이 분도...? ㅎ

향팔
네, 종류 안 가리고 다 들어요! (그러나 요즘음악은 전혀 몰라서 조카에게 무시를 받습니다. 조카들 말이, 고모는 빌보드가 뭔지도 모를 거라고 하더군요.) 서편제에선 득음을 위해 눈까지 희생시켰다지만, 인분이라니 처음 들어 봅니다…

stella15
완전 개무시 당하는 고모로군요. ㅎㅎㅎ
근데 그 음악이라는 것도 시절을 타는 것 같기도 해요. 전 사춘기에서 20대 초중반까지 정말 열심히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 팝송에 대해선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을 정도는 됐는데 나이드니까 시큰둥하더라고요. 그리고 옛날에 들었던 음악이 좋고, 클래식이 좋고 그렇더라구요. 향팔님 조카도 한창 음악 쫌 듣는 때인가 봅니다. ㅎㅎ
그런 말 있지요. 또 어쩌면 서편제에선 인분 먹는 장면은 차마 넣을 수 없으니 눈을 멀게하는 걸로 바꾸지 않았을까요? 아님 말고. ㅎㅎ 하긴 눈이 멀면 청각이 발달한다고 하니. 하지만 장사익 선생은 눈은 멀지 않으면서 득음은 하셨으니...
아, 오랜만에 향팔님과 거의 실시간 채팅을 하네요.^^

향팔
책은 안 읽고 수다 떠는 게 쏠쏠하니 재밌네요.(히히) 사춘기에서 20대 초중반까지가 음악 제일 열심히 들을 때가 맞나 봅니다. 저도 그때만큼은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카는 초등학생인데 디게 조숙해요. 요즘 어린이들이 다 그런지..

stella15
조숙하죠. 그 러고 보니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잠깐 클래식을 좋아할뻔 했었죠. 그때 제가 속한 반이 합주반이었는데 서울시인지 아니면 경기도인지 무슨 합주대회가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연주한 게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죠. 저는 거기서 멜로디혼 파트를 맡았는데 연습할 땐 학교 파하고, 남들 집에 갈 때 우리반은 남아서 연습하는 게 억울하고 분했는데, 모든 게 끝나고 나니까 허무해지더라구요. 향수병 같은 게 걸렸던 모양이어요. 하하. 그래서 클래식 열심히 듣다 중학생 되면서 팝송으로 갈아탔죠. ㅎㅎ 그때 언니랑 오빠가 한창 팝송을 들었으니 그 영향도 무시 못했을 겁니다.
그러다 울오빠시키 재수 시작할 때 어디서 기타 한 대 사 가지고 들어와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밤낮으로 바가지 긁듯 박박대고 치는데 오만 정이 다 떨어졌죠. 그때 언니랑 같이 썼던 방이 바로 옆방이었거든요. 팝송 듣는 맛이 이상하게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더라고요. ㅎㅎ

향팔
우와, 빈필 신년음악회에서 매년 연주하는 그 라데츠키 행진곡을 초등학교 때요? 대단하세요! 비록 그로 인해 클래식과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해도..(하하)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때 교내 합창대회에서 저희 반은 ‘향수’를 불렀는데, 그 후유증으로 그후로도 한동안은 그 곡을 별로 안 좋아하게 되었어요. 나~중에야 다시 들어보니 좋은 곡이더군요.
팝과 조금 멀어지게 되신 계기도 웃프네요. 오빠의 기타 소음은 으음, 정말 힘들긴 할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다녔던 교회 오빠들도 보면 기타를 많이들 배우더라고요.
저희오빠는 팝송 세대는 아니고 서태지 세대여서 저도 오빠를 통해 가요를 많이 접했답니다. 오빠는 학교에서 그림이랑 검도는 배웠지만 악기는 (다행히) 안 배웠어요 하하. 저희 할머니께선 ‘아무리 없이 살아도 여자애가 피아노 하나는 할 줄 알아야 한다’시며, 폐지 주워 파신 돈으로 저를 피아노 학원에도 보내 주셨지요.
할머니 덕분에 지금도 집에서 가끔 피아노를 친답니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은 고양이 캣타워 기능만 하는 피아노지만.. (집이 딸랑 열 평인데 피아노에 오디오에 책장에..)
나중에 커서는 기타도 배워볼까 했지만 손가락이 아파서 그만두고 대신 우쿨렐레를 배웠는데 쉽고 좋더라고요! 그치만 언젠가는 기타에 재도전해보고 싶어요.

stella15
와, 향팔님도 인간극장에 나올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할머니 대단하십니다. 근데 고양이 캣타워라니! ㅋㅋㅋ 저도 어렸을 때 피아노를 부모님에 의해 거의 강제로 쳤는데 그래서 그런지 전 꽤 오랫동안 피아노 연주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구요. 차라리 나이 드니까 좋은 줄 알겠더군요. 근데 향팔님 집 문화 가정이었네요. 그 많은 세간살이들 어떻게 다 끼고 사셨어요? 하긴 없어서 그렇지 있으면 다 끼워넣고, 세워놓고 다하게 마련이더라구요. ㅎㅎ
진짜 라디오에서 라데츠키 행진곡 나오면 그때 생각이 물큰나요.ㅠㅠ

향팔
아, 피아노(=캣타워)와 오디오와 책장(=캣타워)이 있는 열 평짜리 집은 지금 제가 사는 집이에요. (예전 어릴 때 살던 집은 반지하에 제 방도 따로 없었는데, 그런 세간들은 꿈도 못 꿨지요 하하)
지금 사는 집엔 TV, 책상, 화장대 같은 살림들이 없으니 그럭저럭 공간이 되더라고요.

stella15
참, 교회 오빠들 기타치면 멋있죠. 남의 집 오빠는 멋진데 우리 집 오빠는 꼴보기 싫더라구요. ㅎㅎ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재밌는 얘기 나눠요. 잘 자요!^^
P.S: 이거 누가 좀 질투해야 하는데...ㅎㅎㅎ

stella15
조만간 그 그럭저럭한 공간도 뭔가로 채워지겠군요!^^

향팔
“ 솔제니친은 소비에트연방을 해체하고, 연방의 슬라브 핵심, 즉 ‘세 형제 민족’이 살아가는 러시아연방,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만 남길 것을 제안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인들’이 개발하고 살아가는 카자흐스탄 북부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논문은 옐친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부르불리스는 솔제니친의 발상을 재해석하여, 크렘린에 맞설 세 슬라브 공화국의 정치 연합을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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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부르불리스는 옐친이 키예프를 방문할 때, 〈러시아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라는 솔제니친의 소논문에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벨로루시인이 지정학적 재앙과 외세의 정복으로 분단된 한 민족이라고 썼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호소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잔학한 분단이 필요하지 않다! 그건 공산주의 시절의 어두운 망상이다. 우리는 소비에트 시절을 함께 겪었고, 이 거대한 구덩이에 같이 빠져 있다. 우린 다 함께 빠져나올 것이다.” 옐친도 유사한 수사법을 이용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 지도자는 옛 소련 국가의 완전한 파괴와 우크라이나 주권의 온전한 인정을 바탕으로 그러한 통합으로 가는 길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점 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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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솔제니친의 생각은 현재 푸틴이 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네요. ‘세 슬라브 공화국(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한 민족성을 강조하는 부분 등이요. 옐친도 그렇고 푸틴도 솔제니친의 논리를 많이 빌려왔나 보군요.

향팔
“ 10월 21~22일, 민주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 부르불리스의 친구이자 최고 준비 위원인 아르카디 무라쇼프는 언론에 이 운동의 주요 목표를 발표했다. “러시아 역사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대를 종식”하고 “공산주의 제국 중심부의 파괴적 활동을 무력화할”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었다. 회의는 반공 자유주의 수사와 인텔리겐치아 종파주의의 바자회나 다름없었다. 500일 계획을 실행하지 않은 고르바초프가 비판과 공격의 초점이 되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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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어느 대표는 “우리가 폴란드처럼 …… 시장경제로 이행했다면 지금쯤 상점에는 상품이 쌓여 있었을 것이고, 파인애플을 길거리에서 팔고 있었을 테고, 루블화가 구석구석에서 달러화와 파운드화로 교환되었을 것이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500일 계획이 폴란드식 개혁을 피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른 대표들은 당과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소비에트 국가 구조를 당장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죽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부인인 옐레나 보네르만이 고르바초프와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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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1990년 내내, 고르바초프는 자신과 중앙 국가에 주도권을 되찾아줄 기회를 여러 차례 얻었지만 다 날려버 렸다. 국가의 통제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규제 장치들을 발전시키면서 체계적인 시장 개혁을 개시할 기회의 창이 아주 잠시나마 열려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붙잡으려면 엄청난 비전과 의지, 행운까지 따라야 했지만 소련 지도부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심각한 경제 상황에 대한 소련(과 러시아) 엘리트의 무지, 포퓰리즘적 혼란, 이렇다 할 만한 서방의 지원이 주어지지 않은 탓에, 기회의 창은 열리자마자 닫혔다. 경제적 파멸에 대한 예감이 분리주의의 주요 동인이 되어감에 따라, 이것은 소련이라는 국가의 미래에 운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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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그는 노릴스크의 세계 최대 니켈 생산 공장의 노동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들이 좋아하고 신뢰하는 지도자를 선출하라고 촉구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부 1장,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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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 오판에 근거한 탈집중화는 다른 오류들과 맞물려 경제와 금융을 망가트렸다. 더욱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안드로포프가 경고했던 대로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다. 고르바초프식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그가 구상한 방식은 성공할 수 없었다. 대신에 그것은 경제 혼란과 정치적 포퓰리즘, 민족주의라는 악령에 소련을 노출시켰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부 1장,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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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회주의의 이상을 믿는 동시에 관료주의의 병폐를 개혁하려는 정치인이 스탈린으로 왜곡되기 이전으로 돌아가 민주화된 소비에트로 관료제를 대신하고자 한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해 보이는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미국의 건국자들도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민주주의제도를 구축하려 한 것이었고, 만약 그 결과가 실패로 돌아갔다면 그들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들로서 오판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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