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8장 끝에서 곰과 여우가 소제목인데.. 작가는 고르바초프가 우직하지만 미련한 곰, 옐친이 약삭빠르고 교활한 여우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근데 재미있는 게 곰과 여우가 나오는 이솝우화에서는 곰이 자기는 죽은 자를 건드리지 않는 선한 동물이라고 자랑하는데 그걸 듣던 여우가 '그렇게 선하다면 살아 있는 자를 해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반문해서 곰이 자신의 위선을 깨닫고 벙찌는 이야기였는데요. 위선적인 모습을 비꼬는 거라면 옐친이 곰일 수도 있겠네요..(아니면 고르바초프도?)
8장에서 미국이 고르바초프와 옐친 사이를 파트너 바꾸며 춤추듯 밸런스를 맞추는 게 재미있네요. 둘다 불안하니 어느 쪽에도 올인할 생각은 없는 거죠..
8장에 결국 아쉬운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민다고.. 기고만장하지만 실질적 힘은 없던 옐친이 결국 KGB를 꼬시고 KGB도 솔깃해집니다. 이렇게 야합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워싱턴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쿠데타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걸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7월 17일 목요일 읽을 차례는 9장 '합의'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 유명한 '워싱턴 컨센서스'가 나와요. 워싱턴 컨센서스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IMF와 세계은행 (또 그 뒤에 있는 미국) 등이 한국 정부에 강요한 경제 구조 조정 정책의 패키지를 상징하는 것이라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워싱턴 컨센서스가 처음 시행된 대상은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였고, 1990년대 초반에는 동유럽 국가가 시험대에 올랐죠. 9장에서는 이 워싱턴 컨센서스 식의 개혁을 소련에서도 밀어붙이려는 내외부의 세력과 그것이 결국 소련 해체와 민생 파탄을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 쪽의 짧은 대치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걸 넘어서는 핵심은 미국과 유럽의 지원이었고, 결국 미국의 냉담한 대응으로 지원은 사라지면서 소련 해체에 급가속이 걸리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ㅠ.
9장 초반을 아직 읽고 있지만, 경제학자들의 신념이 참 무섭습니다. 과학은 어쨌거나 인간에 대한 임상을 최후로 하거나 못하게 하는 규제가 만들어져왔는데... 경제정책은 전 국민 대상 실험을 정치권력만 설득하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십계명' 이라니.. 사회의 복잡한 변수들을 그들은 대강의 숫자로 가늠하면서 확신을 하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오만일까... 공부해 보지 않아 참 이해가 잘 안되는 분야에요. (개발자로 산적이 있는데.. 짧은 발전기간이지만 그 간의 시행착오은 변경이 많은 버전이든 한두줄만 고친 버젼이든 즉시 롤백부터 가능하도록 수단을 먼저 갖추게 했었는데.. 말이죠. ) 경제학의 디테일을 몰라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들의 자신감을 믿기엔 고통의 영향력이 뻗치는 곳이 한명 한명의 삶의 시간을 감수하는 일일 텐데 말이죠..
저는 아직 7장인데 마침 이 대목이 눈에 들어오네요.
레이건 대통령은 팔이 하나밖에 없는 경제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지요. 너무 많은 경제학자가 이야기할 때 두 팔을 쓰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한편으로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on one hand, on other hand)이라면서요.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85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ㅎㅎㅎ 레이건의 이 말이 참 위트 있으면서도 경제학자들의 갈팡질팡 얼버무리는 것에 질린 갑갑함을 잘 반영하는 듯합니다. “아,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소리지르기 직전^^;;
그러네요. 어떤 사람들 말로는 경제학은 과학도 아니고 심하게는 학문도 아니라고 하는 얘기도 얼핏 들어본 것 같아요. 저도 문외한이지만, 시행착오가 발생할 경우 롤백이 안되고 사람들의 실제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준다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정말 무섭죠.
9장을 읽으면서 고르바초프가 미국 측의 반응을 애타게 기다리며 이제 가라앉는 배를 떠나려고 하냐? 아예 키를 그쪽에 건네줄까?하는 등 너무 절박하고 간절한 자포자기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참 현실정치는 무섭습니다.
아이고, 7장의 ‘불평등한 파트너들’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어서 읽는 제 가슴이 다 죄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역사책을 읽으면서 너무 과몰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 쉽지 않아요.) 이제 갈수록 더하겠지요..?
급진파인지 옐친파인지 이사람들은 고르바초프가 비상조치를 쓰거나 옐친을 제거할까 두려워하고, 공산당 지도자들은 옐친파가 군중을 선동해 당 본부와 크레믈까지 쳐들어올까 두려워하고, 이에 고르바초프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듯 했다가 또 금방 꼬리를 내리고, 그러면 또 옐친파가 기세등등해져서 상대를 아주 잡아 먹으려 들고… 악순환에다가 완전히 혼돈의 도가니네요.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옐친의 반응은 대립을 더 격화시켰다. 3월 22일, 그는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기계제작 공장을 방문하여 폴란드 연대운동을 연상시키는 연설을 했다. 러시아 지도자는 소련 당국이 연간 세금의 절반인 대략 560억 루블을 가져가고, 중앙아시아의 비러시아 공화국들을 보조하는 데 사용하여 “러시아를 강탈”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다른 공화국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이제 그만!” 그는 외쳤다. 자신이 물가 상승으로 노동자들이 입는 손실을 보상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상점의 텅 빈 선반에 성난 수백 명의 산업 노동자가 옐친의 선동적인 언사에 자극받아 “고르바초프는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85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모스크바에서는 민주러시아의 유리 아파나셰프가 앞장섰다. […] 그는 워싱턴 D.C.의 유력한 미국 싱크탱크 기관인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NED)으로부터 대규모 보조금을 막 받았고, 정치적 선전에 이 돈을 썼다. 심지어 당 출판사들도 달러를 받고 반대파의 선거 홍보물을 인쇄해주더라고 그는 말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85-28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야코블레프는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에 병력을 불러들인 것을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체르냐예프의 생각은 달랐는데, 고르바초프는 절대 독재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는 확신했다. 오히려 주요한 위험은 민주러시아의 무책임함이었다. 체르냐예프는 야코블레프에게 반대파가 합법적 정부를 구성하고 건설적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이미 모두 얻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 반대파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극단적인 요구 사항만 추구하며 대중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줬다가는 국가가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없다면 어떤 개혁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87-288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파블로프) 그는 서방의 지혜와 정치적 의지에 의존하는 경제와 금융개혁에 반대했다. 그 대신 방위 산업 중 가장 수준 높은 부문들의 전환에 투자할 수 있도록 경제 자산의 대규모 민영화와 같은 국내 투자 재원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했다. 기업과 협동조합이 외화를 변동환율로 구입할 것도 제안했다. 그리고 공화국들이 중앙 재정에 조세를 납부하게끔 강제하고 재정 규율을 회복시키길 원했다. (..) (크류치코프) KGB의장은 서방이 실용주의적이며 전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대양 저편의 나라에서 구상된 방식으로 하는 근본적인 경제 개혁의 실시” ...“군사지출 삭감”.. 미국의 공식적 의도에 대한 정확한 평가였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941년, 소련 정보 당국은 스탈린에게 나치 공격이 임박했다고 경고했지만 헛수고였다. 미래의 역사가들이 1991년을 두고, “매우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을 마쳤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부시) 부채를 진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처럼, 소련은 IMF의 뜻을 따라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를 수용해야 한다. 즉 급진적 규제완화, 민영화, 그리고 나서 민간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 런던정상회담에 참석한 일부 서방 지도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미국 대표단은 고르바초프를 돕지 않으려고 온갖 구실을 찾고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나는 동유럽을 해방시키고, 바르사뱌조약기구를 해체할 것이며, 통일독일은 NATO에 가입하고, UN군은 이라크에 맞서 전쟁을 개시할 것이며, 소련은 CFE와 START조약에 서명하고, 선거와 민주주의가 있을 것이며, 미국과의 개인적인 유대를 발전시키고, 서방과의 경제적 유대도 늘어날 것이다. (캐나다 총리) 멀로니는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그런말을 했다면 나는 수표를 들고 달려갔을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캐나다 총리 브라이언 멀로니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1985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부시가 모스크바에서 체르넨코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고르바초프가 부시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면 부시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동유럽을 해방시키고,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해체할 것이며, 통일 독일은 NATO에 가입하고, 유엔군은 이라크에 맞서 전쟁을 개시할 것이며, 소련은 CFE와 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조약에 서명하고, 선거와 민주주의가 있을 것이며, 미국과의 개인적인 유대를 발전시키고, 서방과의 경제적 유대도 늘어날 것이다. 멀로니는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수표를 들고 달려갔을 것”이라며 결론을 맺었다. 안드레오티는 1985년에 레이건이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고르바초프가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G7의 참석자 중 누구도 미국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길 원치 않았다. 그리고 돈을 내놓고 싶지도 않았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50~35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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