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ㅎ 레이건의 이 말이 참 위트 있으면서도 경제학자들의 갈팡질팡 얼버무리는 것에 질린 갑갑함을 잘 반영하는 듯합니다. “아,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소리지르기 직전^^;;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borumis

향팔
그러네요. 어떤 사람들 말로는 경제학은 과학도 아니고 심하게는 학문도 아니라고 하는 얘기도 얼핏 들어본 것 같아요. 저도 문외한이지만, 시행착오가 발생할 경우 롤백이 안되고 사람들의 실제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준다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정말 무섭죠.

borumis
9장을 읽으면서 고르바초프가 미국 측의 반응을
애타게 기다리며 이제 가라앉는 배를 떠나려고 하냐? 아예 키를 그쪽에 건네줄까?하는 등 너무 절박하고 간절한 자포자기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참 현실정치는 무섭습니다.

향팔
아이고, 7장의 ‘불평등한 파트너들’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어서 읽는 제 가슴이 다 죄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역사책을 읽으면서 너무 과몰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 쉽지 않아요.) 이제 갈수록 더하겠지요..?

향팔
급진파인지 옐친파인지 이사람들은 고르바초프가 비상조치를 쓰거나 옐친을 제거할까 두려워하고, 공산당 지도자들은 옐친파가 군중을 선동해 당 본부와 크레믈까지 쳐들어올까 두려워하고, 이에 고르바초프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듯 했다가 또 금방 꼬리를 내리고, 그러면 또 옐친파가 기세등등해져서 상대를 아주 잡아 먹으려 들고… 악순환에다가 완전히 혼돈의 도가니네요.

향팔
“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옐친의 반응은 대립을 더 격화시켰다. 3월 22일, 그는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기계제작 공장을 방문하여 폴란드 연대운동을 연상시키는 연설을 했다. 러시아 지도자는 소련 당국이 연간 세금의 절반인 대략 560억 루블을 가져가고, 중앙아시아의 비러시아 공화국들을 보조하는 데 사용하여 “러시아를 강탈”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다른 공화국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이제 그만!” 그는 외쳤다. 자신이 물가 상승으로 노동자들이 입는 손실을 보상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상점의 텅 빈 선반에 성난 수백 명의 산업 노동자가 옐친의 선동적인 언사에 자극받아 “고르바초프는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85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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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모스크바에서는 민주러시아의 유리 아파나셰프가 앞장섰다. […] 그는 워싱턴 D.C.의 유력한 미국 싱크탱크 기관인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NED)으로부터 대규모 보조금을 막 받았고, 정치적 선전에 이 돈을 썼다. 심지어 당 출판사들도 달러를 받고 반대파의 선거 홍보물을 인쇄해주더라고 그는 말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85-28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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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야코블레프는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에 병력을 불러들인 것을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체르냐예프의 생각은 달랐는데, 고르바초프는 절대 독재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는 확신했다. 오히려 주요한 위험은 민주러시아의 무책임함이었다. 체르냐예프는 야코블레프에게 반대파가 합법적 정부를 구성하고 건설적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이미 모두 얻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 반대파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극단적인 요구 사항만 추구하며 대중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줬다가는 국가가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없다면 어떤 개혁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87-288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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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파블로프) 그는 서방의 지혜와 정치적 의지에 의존하는 경제와 금융개혁에 반대했다. 그 대신 방위 산업 중 가장 수준 높은 부문들의 전환에 투자할 수 있도록 경제 자산의 대규모 민영화와 같은 국내 투자 재원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했다.
기업과 협동조합이 외화를 변동환율로 구입할 것도 제안했다. 그리고 공화국들이 중앙 재정에 조세를 납부하게끔 강제하고 재정 규율을 회복시키길 원했다.
(..)
(크류치코프) KGB의장은 서방이 실용주의적이며 전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대양 저편의 나라에서 구상된 방식으로 하는 근본적인 경제 개혁의 실시” ...“군사지출 삭감”..
미국의 공식적 의도에 대한 정확한 평가였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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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1941년, 소련 정보 당국은 스탈린에게 나치 공격이 임박했다고 경고했지만 헛수고였다. 미래의 역사가들이 1991년을 두고, “매우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을 마쳤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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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부시) 부채를 진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처럼, 소련은 IMF의 뜻을 따라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를 수용해야 한다. 즉 급진적 규제완화, 민영화, 그리고 나서 민간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경쟁이 이루 어져야 한다.
..
런던정상회담에 참석한 일부 서방 지도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미국 대표단은 고르바초프를 돕지 않으려고 온갖 구실을 찾고있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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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나는 동유럽을 해방시키고, 바르사뱌조약기구를 해체할 것이며, 통일독일은 NATO에 가입하고, UN군은 이라크에 맞서 전쟁을 개시할 것이며, 소련은 CFE와 START조약에 서명하고, 선거와 민주주의가 있을 것이며, 미국과의 개인적인 유대를 발전시키고, 서방과의 경제적 유대도 늘어날 것이다. (캐나다 총리) 멀로니는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그런말을 했다면 나는 수표를 들고 달려갔을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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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캐나다 총리 브라이언 멀로니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1985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부시가 모스크바에서 체르넨코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고르바초프가 부시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면 부시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동유럽을 해방시키고,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해체할 것이며, 통일 독일은 NATO에 가입하고, 유엔군은 이라크에 맞서 전쟁을 개시할 것이며, 소련은 CFE와 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조약에 서명하고, 선거와 민주주의가 있을 것이며, 미국과의 개인적인 유대를 발전시키고, 서방과의 경제적 유대도 늘어날 것이다. 멀로니는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수표를 들고 달려갔을 것”이라며 결론을 맺었다. 안드레오티는 1985년에 레이건이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고르바초프가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G7의 참석자 중 누구도 미국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 길 원치 않았다. 그리고 돈을 내놓고 싶지도 않았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50~35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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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aida 님 저도 같은 대목 메모했어요.

YG
오늘 함께 읽을 차례였던 9장의 메모한 부분을 옮깁니다.

YG
“ 1991년 여름은 소련의 미래와 소련 경제를 세계 시장에 적응시킬 방안에 관한 합의 없이 시작되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은 국가 자본주의와 소기업 자유화의 조합으로, 이미 중국이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진로는 소련 언론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2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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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저는 소련은 중국 모델을 따르기에는 장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이런 해석이야말로 사후 편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련의 객관적 조건을 따져 보면, 중국 모델, 그것도 훨씬 더 산업화된 중국 모델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해요. MIC가 있었고, 산업이나 경제의 체질 자체가 중국보다 훨씬 나았으니까요. 안드로포프가 좀 더 오랫동안 권력에 있었다면 소련의 방향은 이런 식으로 설정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에 대해서 더 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고요.

YG
“ 가능한 서방의 선택지는 단 하나, ‘워싱턴 컨센서스’였다. (…) 국경 경제의 급격한 축소, 민영화, 자유화, 규제 완화, 재정 규율과 균형 예산 등의 정책을 포함했다. 1991년에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가 된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진리를 전파하라. 경제학의 법칙은 공학의 법칙과 같다. 법칙은 어디서나 통한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책은 경제에 대한 규제를 철폐했고 기존의 국가 제도를 종종 치명적으로 약화했다. 주춧돌이 되는 개념인 거시 경제적 안정성은 대개 사회보장적 정책과 민간 소비를 희생시켜서 이룬 것이었다. 동유럽 공산 정권의 붕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실천자들에게 광활한 공간을 열어젖혔다. (…) 워싱턴 컨센서스는 그들(반공주의자들)의 슬로건과 잘 어울렸다. 국가 재정 지원의 급격한 축소는 반공주의 혁명의 의제와 부합했다. 누구도 신자유주의 정책이 거대한 사회 불평등과 정치적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22~32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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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워싱턴 컨센서스를 수용하며 칠레를 방문한 소련의 경제학자) 피노체트의 범죄 행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들은 칠레의 경제적 성공에 감명받았다. 비탈리 나이슐(Vitaly Naishul)이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과 뒤따른 혼란의 시기에 수천만 명이, 대체로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칠레는 3000명이 목숨을 잃고 고도로 발전한 사회가 되었다.” 그 뒤 많은 세월 동안, 나이슐과 그의 지지자들은 소련 경제 개혁에 관한 논의에서 유력한 관계자가 된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24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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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칠레는 3000명이 목숨을 잃고 고도로 발전한 사회가 되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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