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문득 연상되는 내용이 있어 (쌩뚱맞지만) 살짝 꺼내 봅니다. 박정희 시대 군사정권 아래서 남한 사회가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남자친구는 “그게 박정희가 한거냐 노동자들이 쎄빠지게 고생하고 죽어 나가면서 다 한 거지”라고 하던데 그 말도 맞는 것 같고, 한편으론 결국 그 말인즉슨 그런 식의 국가자본주의 근대화 방식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제가 누리는 경제 성장의 과실은 없었을 거란 얘기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향팔

오도니안
역사는 과거와 현재 간의 대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쉽의 성격이나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공통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될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와 떼어 놓고 논하게 되면 주장의 의도나 맥락에 오해가 있게 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민주, 자율, 인권 존중, 노동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박정희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 꼭 이런 가치들을 폄하하는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연관성을 무시하면 안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오해에 유의하면서 논하자면, 적어도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임계점이 될 수 있는 자본의 축적과 전략적인 활용을 위해 그런 권위적인 통치방식이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박정희가 없었어도 민주 정권 하에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증명하기 어려운 가상 역사이고,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성장한 사례가 드문 편이니까요.

향팔
네, 권위적인 통치방식이 초기 성장에 기여한 측면이 무척 크겠지요? 마지막에 말씀해주신 내용 관련해서도 더 알고 싶긴 합니다. 민주정부였다면 이만큼의 경제 성장은 불가능했을까? 박정희식 불도저 고속 성장보다 속도가 느렸더라도, 뭔가 다른 방식으로, 노동 착취를 최소화하면서, 좀더 공평한 분배 구조 속에서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YG
“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소련 경제가 직면한 엄청난 도전에 아주 흥미로워했지만, 고르바초프의 실패로 말미암은 파국적 결과 또한 우려했다. 그는 핵 군축에 관한 미국과 소련의 계획에 참여했고, 모스크바가 수만 기의 핵무기를 통제할 수 없다면 발생할 잠재적 위험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냉전에 든 비용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서방은 이전의 적을 동료로 돌아서게 할 수 있다고 앨리슨은 주장했는데, 이는 미국과 전 세계에 아주 싸게 먹히는 거래일 것이었다. 이 계획에 붙인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이라는 이름은 앨리슨의 접근법을 그대로 반영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30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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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막후에서는, 옐친 진영 인사들이 ‘반동적인’ 파블로프 내각에 (미국이) 절대 돈을 주지 말라고 미국인들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코지레프는 베이커의 보좌관들에게 “당신들이 중앙에 돈을 주면 돈 낭비가 될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침몰해야 할 체제를 계속 떠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35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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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웃픈 모습이죠. 한쪽에서는 연방의 생존을 위해서 구걸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쟤들한테는 돈 주지 마세요." 이러고 있었으니.

YG
“ (재무부 장관 니컬러스) 브래디는 (대규모 지원에 반대하면서) 보기 드물게도 솔직하게 미국의 전략적 우선 사항을 표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련 사회가 국방 시스템을 감당할 수 없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소련이 시장 체제로 간다면, 그들은 대규모 국방 조직을 감당할 수 없다. 진짜 개혁 프로그램은 그들을 3류 국가로 전락시킬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바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3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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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냉전의 유산;

YG
“ (1991년 6월) 이때쯤이면, 고르바초프와 그의 자문들은 미국이 소련을 위한 ‘마셜플랜’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했다. (…) 소련 대통령은 자신의 세계적 위상이 서방 지도자들의 지갑을 열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3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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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파블로프는 최고소비에트 연설에서 야블린스키와 그의 ‘하버드 후원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서방의 시혜와 정치적 의지에 의존하는 경제와 금융 개혁에 반대했다. 그 대신 방위 산업 중 가장 수준 높은 부문들의 전환에 투자할 수 있도록 경제 자산의 대규모 민영화와 같은 국내 투자 재원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했다. 기업과 협동조합이 외화를 변동 환율로 구입할 것도 제안했다. 그리고 공화국들이 중앙 재정에 조세를 납부하게끔 강제하고 재정 규율을 회복시키길 원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3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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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파블로프도 정말 문제적 인물입니다. 멀쩡한 듯하다가도 나중에는 쿠데타 세력이 되었으니;
aida
엇 몇 군데 복선은 있었으나 (저한텐) 스포인데요! ㅎㅎㅎ

YG
앗, 죄송합니다. 이미 보셨으니;;; ㅠ.

borumis
ㅋㅋㅋ 약간 복선이 있긴 했죠.. 파블로프는 처음 소개할 때부터 야심차고 독단적이며 너무 똑똑해서 이상은 높지만 실질적 경제 쪽은 잘 모르고 강경책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는 마음 약한 고르바초프에게 불만이 많았을 것 같아요.

YG
“ 프리마코프가 고르바초프의 면전에서 보안을 KGB에 지나치게 맡기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언급했을 때, 소련 지도자는 이를 웃어넘겼다. 고르바초프는 끝 모르는 자만심 때문에 자신이 임명한 부하들이 반기를 들 수도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4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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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고르바초프는 무슨 근자감으로 동유럽이나 국내에서의 폭풍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서방 지도자들이 소련을 위해 지갑을 열 것이라고 믿고, 측근들은 자기를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을까요. 이런 모습이 자꾸 나오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네요.

YG
“ 경제학자(야블린스키)는 옐친의 생각을 다시금 잘못 읽었다. 러시아 대통령에게, 야블린스키의 계획은 배신이었다. 그랜드바겐은 고르바초프와 중앙 정부를 구조할 닻이었기 때문이다. 옐친은 미국인들이 고르바초프의 소련이 아니라 자신의 ‘러시아’에 투자하기를 바랐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9장 합의, 34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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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지질이 옐친;

borumis
심지어 안 읽었다고 거짓말하는 것까지 찌질;;

꽃의요정
좀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어떤 책에서 주정뱅이 옐친의 모습을 다룬 걸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저에게도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꼭 우리나라의 누구 같았어요. 전날 숙취 때문에 오후 2시에 출근해 놓고선 아침 9시에 가짜로 출근한다고 교통통제하던 누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