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혼돈과 에로스는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직면하는 딜레마를 상기시킨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선택이야’라고 내면의 목소리는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는 이런 이분법적 시각이 거짓 프레임임을 암시한다. 결정 과정에 이 프레임을 씌우면 우리는 스스로를 옭아매서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게 된다.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볼수록 우리는 더욱 혼돈과 에로스의 중간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다.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할수록 점점 더 그 둘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 옳고 그름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우리의 가장 진실한 욕구를 세계의 혼돈에 어떻게 적용하는가다.
결정 수업 - 그들은 어떻게 더 나은 선택을 했는가? 조셉 비카르트 지음, 황성연 옮김
결정 수업 - 그들은 어떻게 더 나은 선택을 했는가?어떤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을 핵심 원리를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결정의 순간에 마주하는 두려움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의사결정의 단계를 하나하나 살펴가면서 가장 현명한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탐구한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인데, 이런 문구가 인상적이었어요. 정치가와 리더의 경우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책임감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의사결정이 옳았는가, 잘못된 것이었는가 하는 평가는 절대적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후적으로 복기를 해 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카오스를 당면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2차세계대전이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면 처칠이 독일과 협상하지 않고 계속 전쟁을 이어가기로 한 결단도 비현실적이었다고 비난을 받을 것 같습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것이 지금 보면 어리석은 일이지만 당시의 전문가들은 소련이 쉽게 무너질 것으로 예측했다고 하더라구요.
무엇보다도, 고르바초프는 경제 개혁에 관해 여전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미국 대사관은 고위급 정보원을 통해 소련 정부에서는 시장경제로 신속하게 넘어갈 필요성을 누구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망설이는 주요 원인은 이행에 따르는 정치적 비용이었다. 나자르바예프의 측근인 한 전문가는 고르바초프가 사유 재산 개념을 여전히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에, 집단 소유를 통해 동일한 수준의 경제 효율을 이뤄낼 다른 방법이 있는지 미국인들에게 계속 묻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마피아가 매각 대상으로 나온 기업체를 모조리 사들이고” 노동자조합의 권리를 박탈할 것을 걱정했다. 또 다른 정보원에 따르면, 고르바초프는 G7에 어떤 경제 패키지를 제시할지는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반쯤 농담조로 말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344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부에서도 고르바초프는 ‘강한 중심과 강한 공화국들’이라는 모순이 공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경제 정책에 관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앞에서는 좀 냉소적으로 얘기했었지만, 저는 이 책이 정말 김정은에게 참고서 역할을 할 것 같아요. 북한 체제에 개혁을 시도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더불어서 북한을 상대하는 우리 정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게임을 하려면 상대의 입장을 알아야 하니까요. 당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정책들의 영향이 어땠는지도 볼 수 있구요.
스웨덴 방문단의 또 다른 일원이었던 니콜라이 트랍킨(Nikolai Travkin)은 건설 노동자이자 소련 애국자로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신봉하여 MDG에 합류했다. 그의 소비에트 정체성도 스톡홀름에서 무너졌다. 그는 공산주의가 그동안 소련 사람들을 줄곧 속여왔다고 확신하고 화가 나서 모스크바에 돌아왔다. 1990년 3월에 그는 당에서 탈퇴하고 노멘클라투라로부터 권력을 빼앗기 위해 러시아민주당을 창당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3장,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의 실패는 대부분이 소련 공산주의 역사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개방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현실에 눈뜬 민중과 지식인들이 반체제인사가 되었다면, 개방 정책을 주도한 리더의 책임 이전에 체제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게 썩어 있었던 탓이 큰 것이었겠지요. 개방과 민주화의 속도를 늦추고 통제하려는 시도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요? 아니 가능하기라도 했을까요?
네, 저도 스탈린 이래로 특히 브레즈네프가 만들어 놓은 경제적 유산이 워낙 엉망진창이었으니 고르바초프가 아무리 개혁을 하려고 해도 이미 너무 늦었고, 따라서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제가 알던 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지금까지의 내 생각도 틀린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과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마지막 기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이 날아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중에는 고르바초프의 실책도 포함되고요.
물론 당시 개혁이라는 게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죠.. 판단도 어려웠을 테고..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지난번에 글을 올렸던 도서관 강연이 생각나는데, 어르신 수강생들께서 옐친 욕은 다 한마디씩 하시는데 고르비한테 뭐라 하시는 분은 없더군요 하하. (수업 중에 고르바초프랑 레이건이 같이 찍은 사진이 나오니 고르바초프가 배우 출신인 레이건보다 훨씬 더 잘생겼다고 외모 칭찬도 하시고 ㅎㅎ 고르바초프가 호감형이긴 하죠? 저한텐 어렸을 때 TV나 책에서 얼핏 본 ‘이마에 지도 그림 있는 아자씨’ 이미지가 남아 있어요.)
잘 생긴 게 중요해요 ^^ 개혁만 잘 성공했어도 위인 대우 받았을텐데 ㅜㅜ
주보크 책에 고르바초프가 한국에서 열렬히 환영받았다고 한 대목을 읽었을 때도 도서관 강연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생각났어요. 고르바초프는 서방 여론에서도 위인급 대우를 받지 않았나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서가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시야를 확장해주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고르바초프에 대해 좋게 해석하는 얘기만 주로 접한 것 같아서요.
부다페스트의 학살에서 안드로포프의 정치적 신조가 생겨났다. 반대 의견은 가차 없지만 신중하게 처리하라. 너무 늦기 전에 위로부터의 개혁을 준비하라. 유사시에는 무력 사용을 주저하거나 겁내지 마라.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33p,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무섭습니다. 권력을 가져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만요.
저자는 고르바초프 대신 안드로포프 방식으로 했으면 소련이 더 긍정적인 방식으로 개혁할 수 있었다는 건데 저는 그냥 저자의 주관적 상상이라고 봐요. 책을 더 읽어봐야겠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서방 국가들, 무엇보다도 서독에 자연스레 끌렸고, 거기서 얻은 것을 소련이라는 '큰형님(big brother)'과 나눌 마음이 없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77p,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외국에 나갔다가 집으로, 비참한 현실로 돌아온 소련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여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경험은 소련 여행객들을 영영 바꿔놨다. 전에는 상항할 수도 없었던 서방의 생활 수준이 즉시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소련의 현실, 익숙했던 일상이 갑자기 '비정상'이 되어 역겹고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24p,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6월에 본에서 열린 일 대 일 회담에서, 헬무트 콜은 고르바초프에게 동유럽과 동독은 어떻게 될지 물었다. 소비에트 지도자는 분명히 말했다. "동맹국에 관해서 우리는 확고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소련이 동유럽에 개입할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5p,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저자가 비웃는 권력의 포기와 위임은 민주화의 기본 원리이고 미국의 건국자들도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 중점을 둔 헌법을 만들었죠. 민주화를 시도하자 통제할 수 없는 반대세력이 늘어나 체제가 무너졌다면, 그런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무너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리를 해서만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무너져야 하는 게 맞다고요.
혁명은 돈의 통제권을 쥐지 못하면 실패한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90p,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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