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lla15 사실, 저는 정보라 작가님 소설이 제 취향은 아니라서. 그래도 이번 소설 설정은 그럴듯했답니다. 아마, 안 맞으실 것 같아요. 하하하!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YG

향팔
그렇지요. 옐친의 오뚝이 인형에게 냥냥펀치를 날리고 싶은 심정도, 옐친이 소련 국가를 파괴하고 러시아인들을 그런 참혹한 재앙의 수렁에 빠뜨리고 푸틴을 불러왔기 때문인데, 따지고보면 그 옐친의 등장과 부상은 (주보크의 책에서 제가 새롭게 알게 된 대로) 고르바초프의 실책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향팔
이 대목에서 제 러시아 체험기를 한번 또…
(지난번 레닌 묘와 레닌 집 박물관 기행문 이후로 언제 또 떠벌리나 했는데! 마침 제가 살았던 기숙사 생활이 생각나서 써보려고요.)
제가 교환학생으로 러시아에 갔던 건 2000년대의 일이에요. (그때도 러시아 대빵은 푸틴이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참 놀랍습니다.) 주보크 책에도 나오는 아에로플로트 항공을 타고 갔는데, 비행기라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터라 너무 신기했죠. (착륙한 후에는 승객들이 전부 박수를 치더라고요. 아에로플로트가 사고가 너무 많이 나는 항공사라 무사히 도착한 걸 축하하는 의미로 친다고 들었어요.)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 밤, 처음 기숙사 방에 들어갔을 때 마음에 다소 충격을 받았답니다. 낡고 지저분한 걸 떠나서 일단 방 안에 의자가 없었어요. 등이나 전구도 없었어요. (전에 살던 사람들이 뜯어간 것으로 추측되었음.) 창문과 방문은 꽉 닫히지가 않았고요. 섣불리 닫으려고 하다간 문짝이 떨어져 나가니 커튼이나 이불 같은 걸 사다가 바람을 막을 수밖에… 아직은 추운 계절이 아니라고 라디에이터는 안 틀어주더군요.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는 당연히 없고… 있는 것은 오직 바퀴벌레 뿐이었죠. 혹시 영화 <조의 아파트> 보신 분 계세요? 진짜 재밌는 영환데, 우리 기숙사는 그거보다 약간 더 심했답니다 하하하
화장실은 방 두 개에 하나씩 딸려 있는데, 처음 도착했을 때 화장실 천장 배수관에 바선생 오백마리가 모여 있는 상황을 접하고 어찌할 줄을 모르겠더군요. 첫 한달 생활비 중 가장 많이 들어간 게 살충제 값이었죠. 오죽했으면 다른 노어 단어는 다 잊어버려도 바선생은 ‘따라깐’, 그건 잊지도 않아요. 살충제를 하도 많이 사러 가서..
샤워기는 물이 잘 안 나오고 잠겨지지도 않았지요. 머리 감고 있으면 머리 위로 바선생이 툭툭 떨어지는데, 샤워기 물로 흘려보내려 해도 수압이 너무 약해서 그게 안 돼요. 건물 관리해주시는 분도 없고 청소도구도 없어서 시장에서 빗자루, 양동이, 세제 등을 사왔습니다. 대청소를 시작하니 이웃 방 주민들이 다들 ‘얘네 뭐하나’ 하는 얼굴로 들여다보고 갔어요 ㅎㅎ 스탠드랑 냉장고도 돈 모아서 사서 썼고, 의류는 전부 손빨래…
나중에 알았지만 그 학교의 학생 기숙사는 두 동이었는데 하나는 유료 기숙사(학생만 거주), 우리가 사는 16층 건물은 무료 기숙사(학생은 무료+일반인은 유료로 짬뽕 거주)였습니다. 우리 건물엔 학생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살았지요. 학교에서 저소득층이나 이민자, 소수민족 가정에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는 거주지였거든요. 밧줄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도 거기서 처음 타 봤습니다.
부엌은 한 층에 하나씩 있었는데 그곳에서 중국, 몽골, 예멘에서 오신 아저씨 아줌마들과 매일 우연한 회합(?)을 했지요. 중국 사람들은 러시아에 요리 실습을 하러 왔는지 음식 해먹는게 정말 화려하더군요. 큰 칼로 사람 몸뚱어리만한 물고기를 익숙하게 다루는데 정말로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예멘 아줌마는 우리가 가져온 김치를 좋아하셔서 서로 나눠 먹기도 하고… 바선생 잡는 약도 나눠 주시고…
건물 1층에는 출입자 체크 업무를 하는 또래 청년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노어를 잘 못한다고 열라리 무시했지요. 출입할 때마다 왜 각목을 들고 신분증 검사를 하면서 우릴 비웃는지? 그럴 때면 이쪽도 같이 한국 말로 욕해주었죠. 걔네들도 우리가 자기들 욕하는걸 알아서 서로가 철천지 웬수 사이였어요. 가끔 통금시간인 자정 이후에 들어갈 때는 뇌물을 드려야 하는데 그때만 잠깐 친했다가 ㅎㅎ
그렇게 밤마다 맞은편 유료 기숙사의 불빛을 동경하며 바선생을 잡으며 과제를 하고 맥주를 먹고 잠이 들었지요. 들끓던 바선생들은 대략 한달간 집중 방역과 청소를 수행한 결과 옆 방으로 단체 이주를 하셨는지 싹 사라지더군요!

stella15
조의 아파트! 저 알아요. 바퀴벌레가 막 사랑스러워지는 영화죠. 이 영화 아는 사람 많지 않은데 향팔님은 알고 계시는군요. 와~근데 목욕하다 머리위에 떨어진다고니? 난 어쩌다 보는 것도 기절초풍 하는데. ㅠ 크기는 어떤가요? 클 것 같은데. 그나마 국산이 좀 작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가까이 두고 살면 그러려니하고 살아지게 될까요?
근데 주거 환경이 그 정도라면 화장실 쓰기도 쉽지는 않았겠는데요? ㅠ

향팔
맞아요, 조의 아파트는 옛날영화라 그런지 아는 분이 잘 없더라고요.
바선생들 크기는 국산이랑 비슷했어요. 고놈들이 계속 보였다면 정말로 힘들었을 테지만, 한달 만에 모두 퇴치해서 더이상 같이 안 살아도 되었기 때문에(정말 너무 뿌듯하고 행복하더군요 ㅋㅋ), 그후 생활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stella15
참, 그러고보니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이 홍콩인가 싱가폴에 잠깐 산 적이 있는데 거기 바퀴는 거짓말 좀 보태 냄비뚜껑만하다고 하더군요. 뭐 중국은 아예 식용으로도 키운다는 말도 있던데.

향팔
맞아요. 유쾌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MTV 스타일 영화!

오도니안
비행기 무사히 도착했다고 박수 치는 장면도 웃기고, 수압이 약해 흘러나가지도 않는 바선생들 ㅎ 얼마전 집에서 한마리 발견하고 심난했었는데 좀 위안이 되네요.

향팔
비행기 착륙시 단체로 박수 치는 게 일종의 문화가 됐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어요.

연해
향팔님의 러시아 체험기는 언제 읽어도 정말 흥미진진합니다(당시 상황이 심각했는데 흥미있다는 말이 다소 조심스럽네요).
말씀하신 여러 상황들 중 하나만 겪어도 힘들었을 텐데, 종합선물세트마냥(선물이 맞나...) 난관이 끝이 없네요. 다른 어떤 것보다 바선생 이야기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무려 오백 마리라니(털썩). 저는 여태껏 혼자 살면서 바선생을 마주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마주할 일이 없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라는데요. 향팔님의 이 글을 읽고 퇴근해서 가장 먼저 했던 건 집안 곳곳에 살충제를... (하하하) 평소에도 청결을 지나치게 중시하는데, 아마 해충들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나타나는 걸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요. 다리가 다섯 개 이상인 생명체들에 유독 취약합니다.
종종 또 이렇게 러시아 체험기를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바선생과 작별을 고하신 향팔님의 모습이 용맹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답니다:)

향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재밌으시라고 올린 글이니 얼마든지 흥미진진하게 읽으셔도 된답니다. 그땐 나이가 어렸으니 망정이지 지금 같았으면 못할 것 같아요. 하하!
러시아 생활에 고난이 많긴 했지만 그만큼 좋은 날들도 많았지요. 자작나무 가득한 눈덮인 벌판을 기차 타고 달려보는 낭만?도 있었고…(이것도 지금 한다고 생각하면 쌩고생이겠지만요.) 러시아에 같이 갔던 동지들 중에 문창과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가져온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읽고 또 읽고 러시아 문학에 처음 눈을 떴습니다(현지에서 읽으니까 더 재밌더군요. 러시아어 발음이나 인명, 지명에 익숙해진 것도 좋은 점!). 뻬쩨르부르그에선 도스토옙스키 문학 투어도 멋대로 해보고 ㅎㅎ
음악회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슴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가면 전세계에서 모인 내로라 하는 유학생들의 무료 콘서트를 저녁마다 감상할 수 있고,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와 오페라도 실컷 봤지요(제일 좋은 좌석 빼고는 표값이 아주 저렴했어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지만 제설은 잘 안 되어 투박한 털장화가 필수품인데, 음악회에 오신 할머니들이 예쁜 구두를 따로 싸와서 꼭 갈아신고 들어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미술관에도 자주 갔지만 그림 보는 안목도 없고 또 워낙 꼬꼬마 때라 그게 조금 안타까워요! 이야기 보따리가 한가득이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할게요 :)
(아, 바선생은 저도 정말 끔찍합니다. 그땐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몰라요. 지금 집에는 고양이가 있어 살충제도 제대로 못 쓰니 더더욱 무섭습니다. 우리 삶에서 다신 만나지 않기를 ㅎㅎ)

stella15
와, 부럽네요. 정말 그곳에서 읽는 도 선생님의 글이 다르겠어요. 게다가 문학 투어라니! 그러고 보면 사람은 다 적응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든 좋은 것과 나쁜 건 함께 있는 것이니 그냥 좋은 걸 생각해야죠.

향팔
네, 뭐든지 대개 그렇더라고요. 뻬쩨르부르그에선 도시가 넘 아름다워 혼 빼놓고 걷다가 소매치기한테 디카를 통째로 털리는 바람에 사진 남은 것도 별로 없어요 하하하. 도선생님은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인데, 아무래도 어릴 때 그곳에서 접했던 영향이 큰 듯 합니다. 문학 투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한 게 있었던 것 같지만 그냥 도선생 문학에 나온 장소들, 집 박물관과 묘지를 찾아가본 게 다입니다:)

stella15
헉, 소매치기를 당하셨습니까? 이거이거 아무래도 향팔님 하실 말씀이 많은 것 같습니다. 7월 아직 좀 남았는데 하실 말씀있으시면 더 하시죠. ㅎ
근데 소매치기는 어딜 가나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이태리도 그렇게 많다던데.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하다고. 잠시 한 눈 팔면 순삭이겠더라구요. ㅎㅎ 그래도 안 다친 게 어딥니까?
참, 뻬쩨르부르그면 빅토르 최의 활동 근거지인 줄 알고 있는데 그곳 시민들은 실제로 빅토르 최를 좋아하던가요?

향팔
오, @stella15 님 빅토르 초이를 아시는군 요! (반가움) 맞아요, 빅토르 최 그분 인기가 겁나 많더만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모스크바의 명동? 대학로?라 할 수 있는 아르바트 거리에 ‘빅토르 초이의 벽’이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다 그래피티도 크게 그려놓고 추모 글에 사진에 꽃도 갖다놓더군요. 저도 기념으로 키노 cd랑 빅토르 최 관련 책도 한권 사 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읽는 <소련 붕괴의 순간>을 살다 간 뮤지션이네요. (아, 또 한가지 기억나는 건 러시아인들이 영화감독 김기덕을 엄청나게 좋아했다는 거예요. 상점이나 길거리에도 김기덕 영화 dvd를 쫘악 깔아놨더라고요.)

stella15
그럼요. 알죠. 아, 그쪽에서는 정말 초이라고 했겠어요. 최 발음이 잘 안 되니.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소련 붕괴의 순간>을 살다 간!
저는 좀 딱딱하고 우울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 노래 보다는 명성을 더 알아주는 정도였죠. 김기덕도 인기가 많았군요. 우리나라에선 좀 마이너한 감독이잖아요. 원래 우리나라에 인기가 없는 아티스트들이 외국에선 인기가 많긴하죠. 둘 다 이젠 흘러간 옛 시대의 사람이 되었네요. ㅠ

향팔
맞아요 분위기가 좀 암울하죠? 저는 윤도현밴드가 다시 부른 ‘혈액형’이라는 곡으로 빅토르 초이를 처음 알았답니다. ‘우아 가사가 멋지다, 반전 음악가인가보다!’ 했지요.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 줄은 몰랐었는데 대단하더라고요.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해서 그의 삶과 음악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집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상징… 시대와 불화한 롹커!’ 뭐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정작 본인은 그런 규정마저도 싫어했다고 하지만…) 죽음을 둘러싸고도 여러 음모론이 있다고 들었어요.

stella15
윤도현 정도라면 웬만큼 따라 갔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음악은 형만한 아우 없다고 오리지널이 좋을 때가 많더라고요.
시대와 불화한 롹커! 그게 진정한 롹커죠.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이 그토록 빅토르 초이를 좋아했나 봅니다. 당시 빅토르를 취재한 다큐멘터리도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땐 그가 사망한지 얼마 안 됐을 때니.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새라. ㅠ
너무 유명하면 꼭 음모론이 따르더라고요. 마릴린 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 천재 물리학자인 이휘소도 그렇고. 음악 나중에 함 들어보겠습니다.^^

꽃의요정
ㅎㅎ 역시 거친 러시아인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저만의 편견?은 뭔가 야생/야성미예요. 요즘 사람들 특히 도시 사람들은 이것저것 조심하고 신경 쓰느라 너무 닳고 닳은 매너 때문에 어쩔 땐 이렇게 AI처럼 살아야 하나?란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러시아분들 보면 투박하지만 인간미 느껴지는 야성미가 느껴져요. 빅토르 최도 그래서 인기?
오늘 아는 언니한테 이 책 보여줬더니, "내가 이 <소련 붕괴의 순간> 때문에 전공을 바꿨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인 러시아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중어중문으로 바꿨다며....근데 소련이 붕괴 되면서 진짜 중국이 젤 큰 나라가 된 거예요? 근데....지금 찾아 보니 러시아가 젤 크네요? 심지어 2위 캐나다 3위 미국.....중국은 4위네요. 언니에게 얘기해 줘야겠어요;;;;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