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기억하시나요? 지난 달(2024년 6월)에 읽었던 『냉전』에서 베스타가 "옐친의 유일했던 위대한(멋진!) 순간"이라고 비아냥거렸던 그 장면입니다. :)
월요일(8월 19일) 오전 5시 30분에 잠에서 깼을 때, 부시는 후세를 위해 그의 생각을 녹음하기로 했다. (…) 그다음에는 고르바초프로 넘어갔다. 친구 미하일이 음모에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유머 감각, 그의 용기를 생각한다. …… 당신을 지지한 것이 자랑스러우며 TV에서 온갖 전문가란 사람들이 나와서 뭐가 문제였는지 이러쿵저러쿵하겠지만, 당신은 당신의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했고 강하고 훌륭했다.” 이것은 작별 인사처럼 들렸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394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부시는 혼자서 고르바초프에게 작별 인사를 한 것이죠;
1991년 8월 쿠데타를 보면, 다행히 해프닝(역사는 한 번은 비극, 한 번은 희극)으로 끝나긴 했지만, 고르바초프는 자기의 무능과 방만 때문에 자기와 가족의 생명은 물론이고 소련 전체를 끔찍한 유혈 사태로 몰고 갈 뻔했죠. 물론, 그 자신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정말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겠지만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쿠데타 세력에게 저항한 결기는 인정합니다. 그는 항상 진심이긴 했었나 봐요;
4장을 읽고 있지만 제가 계속 느끼는 것은 고르바초프의 과제가 너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고르바초프는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추구했죠. 하지만 그 비전을 지지하는 기반이 너무 약해보입니다. 소련인들은 사회주의를 내던진 서구적인 민주주의를 원하는 이들과 구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로 나뉘었고 민주적인 사회주의의 비전을 믿는 이는 소수인 것 같아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제가 제대로 되는 개혁이 가능했을까요? 안드로포프의 개혁은 성공했으리라는 것에 객관적 근거가 충분한가요? 많은 사람들은 소련의 개혁이 좌절되면 과거의 체제로 회귀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개혁이 혁명과 체제 전복으로 이어지거나 개혁을 폭력으로 억압하고 구체제로 후퇴하는 것 외에 제3의 길이 가능했을지 계속 의문이 듭니다. 진도를 맞추지 못하고 앞부분을 읽으면서 의견을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문외한에 가까워 어떤 확신이 있는 건 아니고 주관적 감상에 가까운 의견들이니 그냥 참고로 보아 넘겨 주셨으면 합니다.
제 의견에 대해 하나의 근거를 얘기해보자면 동유럽 국가들에선 소련의 통제가 사라지자 공산주의 정권이 다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련 역시 분리되고 체제가 전복될 운명이었다는 방증 아닐까요? 공산당 서기장 직위를 물려받은 고르바초프는 체제 수호를 위해 자유화, 민주화의 움직임을 억압하거나, 자기 부정을 하며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쪽 다 고르바초프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민주적인 사회주의의 비전을 추구한 것이고, 지나고 나서 보면 현실에서 통할 수 없는 이상의 가능성을 믿고 추구한 것이 고르바초프의 실패의 근본 원인이지 않을까 합니다.
@오도니안 님과 비슷한 논평이 15장 '청산'에서 나와요. 1991년 12월에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 고르바초프가 권력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상황에서 미국 국무부 장관 제임스 베이커가 현지 상황을 직접 확인하러 방문합니다. 이때 베이커가 고르바초프와 함께 페레스트로이카를 기획하고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자기와 우정을 쌓게 된 전 소련 외무부 장관 셰바르드나제과 대화를 나눕니다. 고르바초프의 최측근이었고 오도니안 님께서 고르바초프에게 호감을 가지는 그 모든 일을 함께 했던 셰바르드나제의 회한과 후회를 베이커가 위로하는데요. 그런 평가가 오도니안 님과 아주 흡사해서 옮겨 봅니다. 나중에 직접 읽으시면서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참고로 15장 뒷 부분에 나오는 베이커와 함께 소련 측 미국 파트너였던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스코크로프트의 회고록의 한 문장(속내를 드러낸)도 옮깁니다.
셰바르드나제는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들을 베이커에게 털어놨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왜 실패했는가? 그와 고르바초프는 “시간표나 일정표가 없었고”, 개혁의 단계와 타이밍을 잘못 골랐으며, “경제 분야에서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 베이커는 친구를 위로했다. 그에게는 소련에 일어난 모든 일이 절대적으로 필연적이었다. “악의 제국”은 일단 “자유라는 요정이 램프에서 빠져나오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베이커는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가 그 과정을 시작하는 유례 없는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역사는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아닌] 다른 길은 폭력적인 폭발이었을 것이며, 그때 내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71~57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미국의) 스코크로푸트는 지도자로서 고르바초프의 자질이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믿었다. 그는 “빛나는 재기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치명적 결점이 있어 보였다”라고 성찰했다. “그는 힘든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능력이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을 끌면서 결단을 미루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것이 예술의 경지였다.” 이 결점은 “우리 쪽에서 봤을 때는 ……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 고르바초프가 권위주의적이고 스탈린 같은 정치적 의지와 전임자들의 결단력을 소유했다면, 우리는 지금도 소련과 마주하고 있을지 모른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85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가 기자들과 러시아 민주주의자들에게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동안, 옐친은 전경이 보이는 러시아 의회의 발코니에서 대규모 군중의 환호를 만끽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33,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쵸프는 묵묵히 "동의함"이라고 갈겨썼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36,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우크라이나 독립찬성파)그들은 다음과 같은 '독립선언법'을 기안했다. "소련의 국가 쿠테타와 관련해 우크라이나에 닥칠 뻔한 심각한 위험을 고려하여" 라다는 "1000년에 걸친 국가 건설 전통을 이어갈" 것을 제안하며 "불가분하고 불가침의" 영토를 보유한 우크라이나 독립국가의 창립을 선언한다는 내용이었다 (...)라다의 독립선언법은 346명의 대원이 찬성하고, 두명은 반대, 다섯 명은 기권하여 가결되었다. ....의원들은 또한 국방부의 창설에 투표하고 공화국 영토상의 모든 소련 군부대의 (우크라이나) '국군화'를 약속했다. 이 조치는 그 뒤로 몇 달간 키예프와 모스크바 사이에 심각한 긴장을 일으켰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45,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우크라이나의 분리는 러시아 국가가 흑해의 22개 항구 가운데 19개를 잃을 거라는 의미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합의가 불공평하다는 감각은 앞으로의 갈등에 조요한 원인이 된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51,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붕괴하는 소련 국가에서 런던, 뉴욕,스위스를 비롯한 여러 해외 계좌로 부의 막대한 이전은 계속되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52,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의 임시정부 도박은 마지막이자 가장 필사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자산은 소련의 대통령이라는 헌법적 지위와 국제적 명성, 완전한 경제적 붕괴에 대한 공화국들의 두려움이었다. ...소련의 대통령은 스스로 리어왕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신의를 지키겠다는 약속에 대한 대가로 유형의 자산을 내준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63,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0장 이후는 흥미진진하네요, 12장 고르바초의 굴욕의 연속을 보면서 왜 저렇게 까지 하나 생각이 들다가도, 급격한 소련의 붕괴로 야기될 혼돈을 막을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조선이 망하고 고종이 대한제국을 만들던 모습이 오버랩되었네요.
라이사는 바쿠 군사 작전 다음 날에 남편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안색은 잿빛이었고, ‘영혼의 분열’이라도 겪은 듯 눈에 띄게 나이가 들어 보였다. 이는 고르바초프가 무력 사용을 생리적으로 혐오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였다.[20] 개인으로서는 찬탄할 만한 도덕적 특성이지만, 비극적 역사를 지니고 악성 민족주의의 급격한 대두에 직면한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결점이었다. 1990년 1월, 크렘린의 지도자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무력을 사용해 기존 국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공화국들에 권력을 이양하는 노선을 이어갈 것인가? 결국, 고르바초프는 두 번째 길을 택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장,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주보크는 무력으로 연방해체를 막았어야 한다는 입장인 건가요?
어설프게 할 거면 아예 하질 말든가, 필요한 경우에는 단호한 조치도 적극 고려했어야 한다고 보는 듯 합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이루겠다는 사명감으로 급진파와 보수파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려 줄타기를 하다가 그만 통제력을 상실, 결국은 국가 붕괴를 초래했다는 것 같아요.
고르바초프의 임시정부 도박은 마지막이자 가장 필사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자산은 소련의 대통령이라는 헌법적 지위와 국제적 명성, 완전한 경제적 붕괴에 대한 공화국들의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방이란 전망은 고작 두 달 만에 모스크바의 인디언 서머처럼 사라져버릴 터였다. 옐친은 자신보다 위에서 행사되는 권력 없이 '러시아'가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길 원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 붕괴의 위협과 자신에 대한 서방 지도자들의 지지만으로 공화국 실력자들을 공동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이끌 수 있다고 착각했다. 실상 그는 옐친과 공화국 실력자들을 위해 정치적 짐을 떠맡고 있을 뿐이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p.463,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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