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재밌으시라고 올린 글이니 얼마든지 흥미진진하게 읽으셔도 된답니다. 그땐 나이가 어렸으니 망정이지 지금 같았으면 못할 것 같아요. 하하!
러시아 생활에 고난이 많긴 했지만 그만큼 좋은 날들도 많았지요. 자작나무 가득한 눈덮인 벌판을 기차 타고 달려보는 낭만?도 있었고…(이것도 지금 한다고 생각하면 쌩고생이겠지만요.) 러시아에 같이 갔던 동지들 중에 문창과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가져온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읽고 또 읽고 러시아 문학에 처음 눈을 떴습니다(현지에서 읽으니까 더 재밌더군요. 러시아어 발음이나 인명, 지명에 익숙해진 것도 좋은 점!). 뻬쩨르부르그에선 도스토옙스키 문학 투어도 멋대로 해보고 ㅎㅎ
음악회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슴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가면 전세계에서 모인 내로라 하는 유학생들의 무료 콘서트를 저녁마다 감상할 수 있고,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와 오페라도 실컷 봤지요(제일 좋은 좌석 빼고는 표값이 아주 저렴했어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지만 제설은 잘 안 되어 투박한 털장화가 필수품인데, 음악회에 오신 할머니들이 예쁜 구두를 따로 싸와서 꼭 갈아신고 들어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미술관에도 자주 갔지만 그림 보는 안목도 없고 또 워낙 꼬꼬마 때라 그게 조금 안타까워요! 이야기 보따리가 한가득이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할게요 :)
(아, 바선생은 저도 정말 끔찍합니다. 그땐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몰라요. 지금 집에는 고양이가 있어 살충제도 제대로 못 쓰니 더더욱 무섭습니다. 우리 삶에서 다신 만나지 않기를 ㅎㅎ)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향팔

stella15
와, 부럽네요. 정말 그곳에서 읽는 도 선생님의 글이 다르겠어요. 게다가 문학 투어라니! 그러고 보면 사람은 다 적응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든 좋은 것과 나쁜 건 함께 있는 것이니 그냥 좋은 걸 생각해야죠.

향팔
네, 뭐든지 대개 그렇더라고요. 뻬쩨르부르그에선 도시가 넘 아름다워 혼 빼놓고 걷다가 소매치기한테 디카를 통째로 털리는 바람에 사진 남은 것도 별로 없어요 하하하. 도선생님은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인데, 아무래도 어릴 때 그곳에서 접했던 영향이 큰 듯 합니다. 문학 투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한 게 있었던 것 같지만 그냥 도선생 문학에 나온 장소들, 집 박물관과 묘지를 찾아가본 게 다입니다:)

stella15
헉, 소매치기를 당하셨습니까? 이거이거 아무래도 향팔님 하실 말씀이 많은 것 같습니다. 7월 아직 좀 남았는데 하실 말씀있으시면 더 하시죠. ㅎ
근데 소매치기는 어딜 가나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이태리도 그렇게 많다던데.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하다고. 잠시 한 눈 팔면 순삭이겠더라구요. ㅎㅎ 그래도 안 다친 게 어딥니까?
참, 뻬쩨르부르그면 빅토르 최의 활동 근거지인 줄 알고 있는데 그곳 시민들은 실제로 빅토르 최를 좋아하던가요?

향팔
오, @stella15 님 빅토르 초이를 아시는군요! (반가움) 맞아요, 빅토르 최 그분 인기가 겁나 많더만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모스크바의 명동? 대학로?라 할 수 있는 아르바트 거리에 ‘빅토르 초이의 벽’이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다 그래피티도 크게 그려놓고 추모 글에 사진에 꽃도 갖다놓더군요. 저도 기념으로 키노 cd랑 빅토르 최 관련 책도 한권 사 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읽는 <소련 붕괴의 순간>을 살다 간 뮤지션이네요. (아, 또 한가지 기억나는 건 러시아인들이 영화감독 김기덕을 엄청나게 좋아했다는 거예요. 상점이나 길거리에도 김기덕 영화 dvd를 쫘악 깔아놨더라고요.)

stella15
그럼요. 알죠. 아, 그쪽에서는 정말 초이라고 했겠어요. 최 발음이 잘 안 되니.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소련 붕괴의 순간>을 살다 간!
저는 좀 딱딱하고 우울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 노래 보다는 명성을 더 알아주는 정도였죠. 김기덕도 인기가 많았 군요. 우리나라에선 좀 마이너한 감독이잖아요. 원래 우리나라에 인기가 없는 아티스트들이 외국에선 인기가 많긴하죠. 둘 다 이젠 흘러간 옛 시대의 사람이 되었네요. ㅠ

향팔
맞아요 분위기가 좀 암울하죠? 저는 윤도현밴드가 다시 부른 ‘혈액형’이라는 곡으로 빅토르 초이를 처음 알았답니다. ‘우아 가사가 멋지다, 반전 음악가인가보다!’ 했지요.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 줄은 몰랐었는데 대단하더라고요.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해서 그의 삶과 음악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집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상징… 시대와 불화한 롹커!’ 뭐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정작 본인은 그런 규정마저도 싫어했다고 하지만…) 죽음을 둘러싸고도 여러 음모론이 있다고 들었어요.

stella15
윤도현 정도라면 웬만큼 따라 갔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음악은 형만한 아우 없다고 오리지널이 좋을 때가 많더라고요.
시대와 불화한 롹커! 그게 진정한 롹커죠.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이 그토록 빅토르 초이를 좋아했나 봅니다. 당시 빅토르를 취재한 다큐멘터리도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땐 그가 사망한지 얼마 안 됐을 때니.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새라. ㅠ
너무 유명하면 꼭 음모론이 따르더라고요. 마릴린 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 천재 물리학자인 이휘소도 그렇고. 음악 나중에 함 들어보겠습니다.^^

꽃의요정
ㅎㅎ 역시 거친 러시아인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저만의 편견?은 뭔가 야생/야성미예요. 요즘 사람들 특히 도시 사람들은 이것저것 조심하고 신경 쓰느라 너무 닳고 닳은 매너 때문에 어쩔 땐 이렇게 AI처럼 살아야 하나?란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러시아분들 보면 투박하지만 인간미 느껴지는 야성미가 느껴져요. 빅토르 최도 그래서 인기?
오늘 아는 언니한테 이 책 보여줬더니, "내가 이 <소련 붕괴의 순간> 때문에 전공을 바꿨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인 러시아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중어중문으로 바꿨다며....근데 소련이 붕괴 되면서 진짜 중국이 젤 큰 나라가 된 거예요? 근데....지금 찾아 보니 러시아가 젤 크네요? 심지어 2위 캐나다 3위 미국.....중국은 4위네요. 언니에게 얘기해 줘야겠어요;;;;

향팔
불곰국(?) 러시아의 야성미는 인터넷 밈으로도 많이 본 것 같아요. 보드카라든지 사우나의 냉수마찰과 관련한…ㅎㅎ 푸틴도 웃통 까고 승마를 하며 남성성을 어필하는 사진을 많이 찍었죠. 그러다가 불곰 등에 타고 달리는 합성사진도 나왔던 게 생각나네요.
지인께서 러시아어 안 하시고 중국어를 전공하신 건 좋은 선택 같습니다 하하. 예전에 제가 러시아어 배우려고 남산 쪽에 있는 어학원에 다녔을 때 주변에서 노어는 배워봤자 별로 쓰잘데기가 없을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엔 더한 것 같고… 근데 중국어는 다르잖아요!

stella15
그런 것도 있지요. 저 중원을 말을 타고 달렸을 몽골일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요정님은 상남자 스탈을 좋아하시는가 봅니다. ㅋㅋ 빅토르는 그런 것도 있지만 그의 롹커다운 저항 정신이 조금 더 앞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면적이 중국이 4위군요.

꽃의요정
와우! 러시아도 그렇군요! 추운 나라라고는 안 할게요. 러시아가 옆으로 넓어서 추운 지역과 더운 지역이 공존한다는 걸 어떤 책에서 봐서...ㅎㅎㅎ
러시아VS필리핀 하자면
저도 필리핀 살 때 바선생 때문에 불도 못 끄고 잤어요. 불끄는 순간 스스슥 소리가 들리다가 제 머릿속까지 들어왔던 기억이... 몇 달 시달리다가 바선생 출몰이 좀 줄었나 했더니 이젠 쥐선생이 들어와서 에어컨 고무 다 갉아먹고....쥐덫을 여기 저기 놨었는데, 제 신발장에도 놨었나 봐요. 그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제 발꼬락냄새인가 하고 신발 냄새를 맡아도 아니고...뭐지 했는데 구석에서 쥐덫에 걸린 쥐의 사체가 썩....
제가 공공기관에서 수업을 했는데...겉으로는 건물 규모도 웅장하고 화려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쩝
수업할 때 막 팔뚝만한 쥐들이 뛰어다니고...전 그래도 그런 거에 잘 놀라는 타입이 아닌데 그래도 봤으니 학생들한테 쥐가 지나갔다고 해도 학생들은 그냥 어깨만 으쓱할 뿐 뭐가 어때서란 반응이었어요.
거의 20년 전 얘기지만, 전 한국이 좋습니다. 한국의 벌레들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자신감이 있거든요. 회사가 신사인데, 가끔 밥먹을 때 가로수길에서도 식당 많은 곳에선 쥐들이 지나가요. 사람들이 막 웅성거리는데 우리 사는 곳에 쥐가 없을 거라 생각 하는 건지...ㅎㅎㅎ

stella15
그러고 보면 정말 우리나라는 벌레나 쥐가 그렇게 많은 나라가 아닌가 봅니다. 정말 적어도 통제 가능한 정도 돼죠. 시골은 몰라도 도시는 더 철저하지 않나요? 방충 방역 전문업체도 있고. 근데 신사 같은 동네에도 아직 쥐가 사는군요. ㅎㅎ
필리핀은 도마뱀도 흔하다고 하던데. 역시 뭐든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 봅니다. 너무 방충 잘된 곳에서만 살려고 하면 몸도 마음도 약해지나 봐요.

향팔
한국은 겨울이 너무 추워서 곤충들이 커질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기후위기로 앞으로는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stella15
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잖아요. 이미 바뀌기도 했고. 그러니 벌레만 좋은 일이죠. 큰 일입니다. ㅠ

꽃의요정
진짜 @향팔 님 말씀처럼 겨울이 있어서 귀엽나? 봐요.
전 도마뱀이 있었으면 했던게 갸들은 사람 근처에 안 오고 바선생들을 잡아먹어서 제발 한 마리만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도시라 그런지 없었어요 ㅜㅜ
길거리에서도 우글거리던 바선생들....생각은 나지만 그립지는 않네요!!!!

stella15
그리우면 클나죠. ㅎㅎㅎ
아, 근데 바선생의 천적이 도마뱀이군요!

향팔
네, 모스크바도 겨울엔 춥지만 여름엔 더워서 사람들이 죄다 헐벗고 일광욕 하러들 나오더라고요! 필리핀 와 장난 아니네요. 집안에 바선생도 모자라 쥐선생이 출몰하다니 ㄷㄷ 하긴 맞아요 서울에도 쥐 많아요. 저도 몇년 전에 서울역에서 엄청 큰 쥐가 다니는 걸 본 적 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7월 21일 월요일과 내일 7월 22일 화요일에는 11장 '훈타'를 읽습니다. 평소보다 분량이 많아서 이틀로 해 놓았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장이죠. 한국 현대사 속의 쿠데타 시도와도 겹치면서 흥미진진합니다.

롱기누스
이제야 7장을 읽었습니다. 먼저 읽으시고 감상평을 남겨주셨던 독자분들의 여러 부분들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장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을 고르라면,
'의지가 있으면서도 의지를 발휘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 가장 처참한 패배 말고 무엇이 기다리겠는가?' 라는 글머리 문장이이었습니다.
의지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다니...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간에 나온 '고르바초프의 갈지자 횡보'라는 표현도 잘 어울리는 듯 했습니다.
이번장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1차 걸프전을 준비하는 부시와 발트 3국에 대처하는 고르바초프의 구도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YG 께서 일전에 언급하신 counterfactual thinking(반사실적 사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만약 고르바초프가 발트 3국에 대해 단호한 태도와 함께 중동에서도 그 영향력 - 이라크에 대한 지원 - 을 줄이지 않았더라면, 당시 미국은 그렇게 쉽게 사막의 폭풍 작전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서로 싸우지 말자며 안쓰러울 정도로 매달리는 고르비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부시 앞에서는 정말 할말이 없었습니다. 정치인으로서는 너무 나이브한 고르비, 그에 비해 닳고 닳은 부시. 이라크에서의 무력사용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지상군 투입 전날 대사까지 보냈던 소련의 입장으로서는 정말 굴욕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정치에서의 거래(약속)는 그것을 지킬 능력이 있고 안지키면 안된다는 위협을 줄 수 있는 역량이 있을 때에야 성사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두 번째 흥미로웠던 것은 파블로프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앞서도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셨지만, 정말 이 파블로프라는 사람이 추진했던 3가지 재정개혁 - 베즈날 거래 도매가격 세배 인상, 국영기업 20 퍼센트 과세, 화폐개혁 - 이 성공적이로 이루어졌다면, 소련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파블로프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비록 페이스에 뒤쳐졌지만, 그래도 완독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소련의 몰락을 마지막을 이렇게 가까이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흔치 않을 일일테니까요. 나중에 혼자 읽는다? ㄴㄴ 저에게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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