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앗, 푸틴이 KGB 요원이었습니까? 새로 알았네요. 근데 저...미안하지만 훈타가 무슨 뜻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책을 안 봐서 뭔가 뜻이 나와있을 것 같은데 감이 안 잡히네요. ;;
@stella15 아, 훈타는 에스파냐어로 위원회 이런 뜻인데, 요즘에는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집단을 가르키는 용어로 씁니다. 영어 사전의 뜻풀이를 옮깁니다. a government, especially a military one, that has taken power in a country by force and not by election:
와, 그런 뜻이군요! 고맙습니다.
1931년, 이탈리아 작가 쿠르치오 말라파르테(Curzio Malaparte)는 『쿠데타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성공적인 쿠데타의 핵심 요소를 묘사했다. 그는 1917년 레닌과 트로츠키의 쿠데타를 분석했다. 말라파르테의 핵심 논지는 결연한 리더십을 지닌 열성적 소수파가 모든 것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 급변점에 있을 때, 결과를 걱정하지 말고 과단성 있게 행동해야만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크류치코프는 성공적 쿠데타의 필요조건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할 만한 배짱이 없었을 뿐이다. KGB 의장이 결연한 반혁명 분자거나 광신적 스탈린주의자였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는 대신, 훈타는 권력을 잃을 급변점에 급속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08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러시아 의회 바깥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은 철저한 무방비 상태였지만, 차가운 가랑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켰다. 그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이 일어나면 의회 건물을 보호할 인간 방패 역할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가운데는 영국 대사의 부인인 질 브레이스웨이트도 있었다. 용감한 여성인 그녀는 “고르바초프와 민주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로 가자며 러시아 친구들을 설득했다. 이따금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인물이 나타나 방어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벨리 돔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서 돌아왔다. 모스크바의 부시장 유리 루시코프는 의회 건물에서 밤을 새우려고 임신한 아내와 함께 왔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도 아내인 나눌리에게는 알리지 않고 그날 저녁 의회로 찾아와 건물 앞의 군중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유명 인사들이 나타나자 군중은 폭력 사태를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1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감동스럽고 눈물 나는 풍경이죠. 저는 이 대목 읽으면서 1980년 5월 27일 광주의 도청을 떠올렸어요. 그날 밤에 광주에도 저런 요즘 말로 셀럽들이 함께했더라면 군인의 진압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ㅠ. (알다시피, 그때 도청에 끝까지 남은 사람들은 대체로 힘없고 평범한, 또 지역 정치나 사회운동에서도 존재감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죠.)
그런가요? 그 엄혹한 시절 우리나라 문인들 정치인들 그렇게 많이 잡혀 들어간 줄 알고있는데 정작 있어야 할 자리엔 없었던 건가요? 옛날부터 이름없는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잖아요. 그런 건가 봅니다.ㅠ
저도.. “8월 21일 새벽 2~3시쯤에 공격이 시작되리라 모두 예상했다. 실제로 ‘알파’ 특공대가 계획한 시각이었다.” 이 문장을 읽으니 5월 27일 새벽 도청의 최후 항쟁이 떠올랐습니다.
훗날 정치적 목적을 위해 8월의 사건을 미화할 필요가 더 이상 없어졌을 때, 옐친은 훈타의 구성원이 된 무자비한 냉소주의자와 전체주의적인 폭군이 아니라 “평균적이고, 평범한 소련 사람”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들이 인명과 합법성을 존중했다고도 시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투항하고 권력을 잃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1993년 10월, 모스크바의 헌정 위기 동안에 옐친은 아주 딴판으로 행동했는데, 러시아 의회가 자신에게 대항하자 탱크 부대 지휘관들에게 의사당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했고, 정적들을 모조리 잡아들였으며, 6년을 더 집권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20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내무부 장관 보리스 푸고는 규칙에 따라 행동한 훈타의 유일한 정회원이었다. 그와 아내는 자식과 친지에게 유서를 남기고 총 옆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나는 범죄에 맞먹는, 전적으로 뜻밖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것은 1809년에 나폴레옹이 귀족인 정적을 암살한 것을 두고 프랑스 정치가가 “이건 범죄보다 나쁘다. 이건 대실수다”라고 한 유명한 말을 바꾼 것이다. 암살은 범죄였지만 황제는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일로 적만 늘었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2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한국의 권력자가 이런 모습과 도드라지는 차이라면,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죠;
모름지기 쿠데타를 하는 놈은 실패할 경우 자기 목을 내놓을 각오는 하고 일을 벌여야 맞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작년 12.3쿠데타 세력의 우두머리는 (무능한 것도 모자라) 참 비겁해요.
국가 기구의 일부 목격자들은 8월 21일에 일어난 일을 ‘정치적 멜트다운(붕괴)’이라고 묘사했다. 공모자들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을 이뤄냈으니, 바로 중앙 정부의 행정부가 완전히 항복한 것이었다. 실패한 비상 통치는 옐친과 그의 민주파 추종자 및 지지자에게 고르바초프와 헌정 질서를 대신해 집행 권한의 수단을 장악할 역사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필연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소련의 정치적 죽음을 뜻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2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다음 주에 읽을 부분이라서 그냥 두려고 했는데,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때의 다른 평가도 덧붙여볼게요. 다 15장 '청산'의 뒷 부분에 소련이 해체되고 고르바초프가 굴욕적으로 권력에서 쫓겨날 때 나온 얘기들입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기획하고 실행했고 끝까지 그 옆에 지켰던 이들의 목소리입니다.
고르바초프의 자문들은 그 순간을 평화적이고 진화적인 개혁으로, 복잡한 다종족 국가를 하나로 유지하려 했던 시도의 비극적 실패로, 1000년간 이어진 국가성의 종결로 바라봤다.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위업들에 초점을 맞춘 체르냐예프조차도 1991년을 “국가의 퇴락, 경제의 파괴, 사회 혼란의 해”로 묘사했다. 샤흐나자로프는 몇 달 뒤에 “나라는 망했고,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으며, 어디서나 피가 흐른다”라고 논평했다. 그는 낙관적인 어조를 띠려고 애썼다. “이 혼란으로부터 환골탈태한 새로운 러시아가 등장할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의 보좌관 스테파노프는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지루하고, 무색무취하고, 변함없이 아무런 뉘우침이 없”다고 느꼈다. 대다수 소련 사람은 방송을 보지도 않았다. 나라는 얼어붙은 것 같았고, 유일한 활동은 필사적인 장보기였다. 가이다르의 아내와 옐친의 최측근 보좌관의 아내들마저도 식품을 사려고 줄을 서야 했다. 가격 자유화를 예상해, 모든 공급업자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식량을 공급하려 하지 않았다. 화물선들은 대금을 받을 때까지 화물을 내리지 않았다. 창고는 가격 자유화 때까지 물자를 쌓아두려는 ‘마피아’ 거래업자들의 차지였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8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마피아’ 거래업자들의 차지였다... 이후 소련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죠.
이 연설문(고별사)에서, 고르바초프는 리더십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비판에 응답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페레스트로이카의 업적들, 국내의 자유화와 냉전 종식을 열거했다. 그런 성공을 거두었자면 왜 나라가 해체되고 그는 권력을 잃었는가? 고르바초프는 이 실패를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렸다. 당과 경제 관료 집단의 저항, 낡은 관행과 이데올로기적 무기력, 그는 “불관용, 낮은 수준의 정치 문화,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잃어버린 이유”라고 설명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8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반면에 고르바초프는 고별사에서 자기의 행동을 옹호합니다. 이것도 미리 올려둘게요.
사실 독서는 기본적으로는 책과, 다음으로는 책에 녹아 있는 저자의 생각과 대화하고 때로는 대결하는 일이죠. 함께 읽기는 거기에 더해서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다른 분들과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덤으로 대화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책 한 권 읽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 인생의 책' 같은 걸 꼽아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내 인생의 책' 같은 게 없거든요.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 또 그 책을 읽는 나도 계속 변하는데 '내 인생의 책'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책 한 권 읽고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을 보면, 거짓말을 치고 있거나, 평소 책을 많이 안 읽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는 편이에요. 하하하! 그래서 평소 가지던 생각과 책이나 저자의 의견이 다르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 없을 듯해요. :) 또 그렇게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고 또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소화하면 그뿐입니다. 날도 더운데, 벽돌 책 읽으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고 노파심에 말씀을 드립니다. 이 방의 행동 지침이 "#편하게"라는 것 꼭꼭꼭 기억하세요!!!
자세히 얘기해주시고 인용도 감사드립니다. 스트레스는 받지 않고 원래 비판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데 진도를 못 따라가서 뒷부분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하려니까 좀 답답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다른 분들이 스트레스 받으셨을까봐 노파심이 듭니다. 역사의 해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보크의 관점이 주관적으로 마음에 안들다보니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없을까 계속 비판적으로 읽게 되는데 그런 생각들을 여기 올릴 수 있으니까 더 재미있게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읽었으면 진도 나가기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모임 끝나기 전에 1부 마지는 게 목표입니다. 2부는 더 재미있다고 하시니 나중에라도 읽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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