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저도.. “8월 21일 새벽 2~3시쯤에 공격이 시작되리라 모두 예상했다. 실제로 ‘알파’ 특공대가 계획한 시각이었다.” 이 문장을 읽으니 5월 27일 새벽 도청의 최후 항쟁이 떠올랐습니다.
훗날 정치적 목적을 위해 8월의 사건을 미화할 필요가 더 이상 없어졌을 때, 옐친은 훈타의 구성원이 된 무자비한 냉소주의자와 전체주의적인 폭군이 아니라 “평균적이고, 평범한 소련 사람”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들이 인명과 합법성을 존중했다고도 시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투항하고 권력을 잃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1993년 10월, 모스크바의 헌정 위기 동안에 옐친은 아주 딴판으로 행동했는데, 러시아 의회가 자신에게 대항하자 탱크 부대 지휘관들에게 의사당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했고, 정적들을 모조리 잡아들였으며, 6년을 더 집권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20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내무부 장관 보리스 푸고는 규칙에 따라 행동한 훈타의 유일한 정회원이었다. 그와 아내는 자식과 친지에게 유서를 남기고 총 옆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나는 범죄에 맞먹는, 전적으로 뜻밖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것은 1809년에 나폴레옹이 귀족인 정적을 암살한 것을 두고 프랑스 정치가가 “이건 범죄보다 나쁘다. 이건 대실수다”라고 한 유명한 말을 바꾼 것이다. 암살은 범죄였지만 황제는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일로 적만 늘었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2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한국의 권력자가 이런 모습과 도드라지는 차이라면,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죠;
모름지기 쿠데타를 하는 놈은 실패할 경우 자기 목을 내놓을 각오는 하고 일을 벌여야 맞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작년 12.3쿠데타 세력의 우두머리는 (무능한 것도 모자라) 참 비겁해요.
국가 기구의 일부 목격자들은 8월 21일에 일어난 일을 ‘정치적 멜트다운(붕괴)’이라고 묘사했다. 공모자들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을 이뤄냈으니, 바로 중앙 정부의 행정부가 완전히 항복한 것이었다. 실패한 비상 통치는 옐친과 그의 민주파 추종자 및 지지자에게 고르바초프와 헌정 질서를 대신해 집행 권한의 수단을 장악할 역사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필연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소련의 정치적 죽음을 뜻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42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다음 주에 읽을 부분이라서 그냥 두려고 했는데,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때의 다른 평가도 덧붙여볼게요. 다 15장 '청산'의 뒷 부분에 소련이 해체되고 고르바초프가 굴욕적으로 권력에서 쫓겨날 때 나온 얘기들입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기획하고 실행했고 끝까지 그 옆에 지켰던 이들의 목소리입니다.
고르바초프의 자문들은 그 순간을 평화적이고 진화적인 개혁으로, 복잡한 다종족 국가를 하나로 유지하려 했던 시도의 비극적 실패로, 1000년간 이어진 국가성의 종결로 바라봤다.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위업들에 초점을 맞춘 체르냐예프조차도 1991년을 “국가의 퇴락, 경제의 파괴, 사회 혼란의 해”로 묘사했다. 샤흐나자로프는 몇 달 뒤에 “나라는 망했고,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으며, 어디서나 피가 흐른다”라고 논평했다. 그는 낙관적인 어조를 띠려고 애썼다. “이 혼란으로부터 환골탈태한 새로운 러시아가 등장할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의 보좌관 스테파노프는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지루하고, 무색무취하고, 변함없이 아무런 뉘우침이 없”다고 느꼈다. 대다수 소련 사람은 방송을 보지도 않았다. 나라는 얼어붙은 것 같았고, 유일한 활동은 필사적인 장보기였다. 가이다르의 아내와 옐친의 최측근 보좌관의 아내들마저도 식품을 사려고 줄을 서야 했다. 가격 자유화를 예상해, 모든 공급업자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식량을 공급하려 하지 않았다. 화물선들은 대금을 받을 때까지 화물을 내리지 않았다. 창고는 가격 자유화 때까지 물자를 쌓아두려는 ‘마피아’ 거래업자들의 차지였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8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마피아’ 거래업자들의 차지였다... 이후 소련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죠.
이 연설문(고별사)에서, 고르바초프는 리더십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비판에 응답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페레스트로이카의 업적들, 국내의 자유화와 냉전 종식을 열거했다. 그런 성공을 거두었자면 왜 나라가 해체되고 그는 권력을 잃었는가? 고르바초프는 이 실패를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렸다. 당과 경제 관료 집단의 저항, 낡은 관행과 이데올로기적 무기력, 그는 “불관용, 낮은 수준의 정치 문화,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잃어버린 이유”라고 설명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8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반면에 고르바초프는 고별사에서 자기의 행동을 옹호합니다. 이것도 미리 올려둘게요.
사실 독서는 기본적으로는 책과, 다음으로는 책에 녹아 있는 저자의 생각과 대화하고 때로는 대결하는 일이죠. 함께 읽기는 거기에 더해서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다른 분들과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덤으로 대화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책 한 권 읽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 인생의 책' 같은 걸 꼽아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내 인생의 책' 같은 게 없거든요.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 또 그 책을 읽는 나도 계속 변하는데 '내 인생의 책'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책 한 권 읽고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을 보면, 거짓말을 치고 있거나, 평소 책을 많이 안 읽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는 편이에요. 하하하! 그래서 평소 가지던 생각과 책이나 저자의 의견이 다르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 없을 듯해요. :) 또 그렇게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고 또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소화하면 그뿐입니다. 날도 더운데, 벽돌 책 읽으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고 노파심에 말씀을 드립니다. 이 방의 행동 지침이 "#편하게"라는 것 꼭꼭꼭 기억하세요!!!
자세히 얘기해주시고 인용도 감사드립니다. 스트레스는 받지 않고 원래 비판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데 진도를 못 따라가서 뒷부분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하려니까 좀 답답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다른 분들이 스트레스 받으셨을까봐 노파심이 듭니다. 역사의 해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보크의 관점이 주관적으로 마음에 안들다보니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없을까 계속 비판적으로 읽게 되는데 그런 생각들을 여기 올릴 수 있으니까 더 재미있게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읽었으면 진도 나가기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모임 끝나기 전에 1부 마지는 게 목표입니다. 2부는 더 재미있다고 하시니 나중에라도 읽을 수 있겠죠.
ㅎㅎ 맞아요. 날도 더운데! 근데 날도 더운데도 불구하고 한결 같이 벽돌책 읽으시는 분들 보면 대단하다 싶어요. 인생 책에 대한 YG님의 생각에 동감입니다. 정말 책 한 권이 사람을 변화시키면 얼마나 변화시키겠어요. 근데 이젠 질문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몇년에 한 번씩 또는 때때로 뭐하다 생각나는 책이 있는지, 어떤 사람은 그걸 반려책으로 부르기도 하던데 이를테면 손 가까이 두고 싶은 책. 뭐 그런 걸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일 7월 24일 목요일은 13장 '불협화음'을 읽습니다. 13장에서는 1991년 9월 정도를 배경으로 어떻게든 소련(연방)을 살려보려는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안간힘과 권력을 대부분 장악하고 그것을 휘두르는 옐친의 얘기가 나옵니다. 특히, 이제 실권을 잡은 옐친이 경제를 포함한 현안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할지 가닥을 잡는 과정이 서술됩니다. 기가 막힌 얘기가 많습니다;
의견 차이의 원인은 심각하고도 원칙적이었다. 리시코프와 아발킨에게는 장래 시장경제의 주요 행위자는 중앙 정부 부처와 국유법인이었다. 페트라코프와 야블린스키에게는, 경제적 연방의 주요 수혜자는 주권 공화국이었다. 두 접근법 간의 절충점은 사라졌다. 아발킨은 페트라코프에게 '연방'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물었다. "하나의 국가인가, 아닌가?" 그는 분명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페트라코프는 그 만남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장래 연방의 국가성이 중심 쟁점이었음을 시인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96,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국가비상사태위원회 혹은 GKChP가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면 대중적 정당성을 얻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많은 쿠데타에서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교훈, 그리고 러시아 역사의 교훈이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장군 바렌니코프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모험주의적인 옐친 그룹을 처리하기 위해 출입 통제선을 치고, 러시아 의회에 물, 전기, 전화, 그 외 통신선을 차단하라는 것이었 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민주주의'와 '합법성'에 따라 행동하다면 그 자신뿐 아니라 소련이라는 국가를 파멸 시킬 것이라고 했다. 바렌니코프는 쿠데타 음모의 기장 중요한 모순을 정확히 짚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크류치코프와 훈타의 창시자들은 명확한 계획이나 실행 가능한 경제 프로그램 없이, 무엇보다도 무슨 수단을 써서든 저항을 분쇄하겠다는 결의 없이 비상 통치를 도입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사실, 이것은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사망의 시작이었는데, 비상 통치와 그 주동자들을 거부함으로써 권력의 집행 수단도 마찬가지로 잃어버렸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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