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1991년 8월 27일) 슬라브 공화국 간의 최초의 대치는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끝났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는 이제 동부, 남부, 중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선거 운동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측 회담 착석자들은 근본적인 의견 차이를 해소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크림반도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았다. 러시아는 이미 발트해의 소련 항구와 기지를 발트 국가에 양도했다. 우크라이나의 분리는 러시아 국가가 흑해의 22개 항구 가운데 19개를 잃을 거라는 의미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합의가 불공평하다는 감각은 앞으로의 갈등에 주요한 원인이 된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2장 종말, 45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니콜라이 크루치나, 게오르기 파블로프에 이어서) 그로부터 열흘 뒤에는 외국 공산당에 대한 재정 지원을 맡고 있던 또 다른 당 관리가 아파트 자택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런 미스터리한 추락사로 인해 ‘사라진’ 당 자금에 관한 풍문이 끊임없이 무성했다. 여러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붕괴하는 소련 국가에서 런던, 뉴욕, 스위스를 비롯한 여러 해외 계좌로 부의 막대한 이전은 계속되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2장 종말, 45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다시 키를 잡은 고르바초프는 자금 조성을 위해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로 가고, 야코블레프는 독일로 갈 것이며, 누군가가 한국에도 가야 할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6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8월 29일, <뉴욕타임스>는 ‘붕괴 후’라는 제목으로 윌리엄 새파이어의 기명 칼럼을 실었다. 보수적인 대중 칼럼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소비에트 제국이 해체되고 있다. 이것은 인류의 자유에는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우리는 신과 NATO, 러시아와 제국 내부의 반체제 인사 그리고 자신과 세계를 전제적 지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두 세대 동안 치른 희생에 감사하며, 이 순간을 만끽해야 한다.” 칼럼니스트는 소심하게 군다며 부시를 공격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을 비롯한 모두를 자유 세계로 반갑게 맞이하며, 경찰의 해체와 군대의 감축을 촉구하고 번영으로 가는 길을 왜 방송에 나와 보여주지 않는가?” 그 대신, 부시는 “어리석게도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서 워싱턴이 중앙 집권적 모스크바의 편을 들게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는 8월 1일 부시의 우크라이나 의회 연설을 콕 집어서 “겁쟁이 키예프 연설”이라고 불렀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7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부시와 베이커는 우크라이나의 분리가 소련 비축 핵무기에 가져올 파급효과를 고민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연방 탈퇴의 전략적 파급 효과는 특히 우려할 만했다. 지하 격납고에 저장된 총 176기의 ICBM과 42대의 전략 폭격기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배치되어 있었고, 여기에 1800개의 핵탄두가 특수 벙커에 저장되어 있다고 추정되었다. SS-18 미사일을 생산하는 소련 최대의 미사일 공장은 우크라이나 드네프로페트롭스크에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다면 이 막대한 핵전력을 누가 책임질까? 미국 대통령은 새파이어와 비판자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발트 문제를 우크라이나 독립에서 분리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7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9월 2일 아침, 부시는 기자들을 만나 발트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회복했다고 발표했다. (…) 그는 인생에서 이날의 특별한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1944년 9월 2일, 부시가 조종하던 군용기가 일본 남쪽, 태평양 보닌제도에서 격추되었다. 동료 승무원들은 전사하고 그가 유일한 생존자였다. 인생과 행운, 조국에 대한 봉사를 생각한 순간이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7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민주적인 외교 정책’의 예법은 차치하고라도, 이것은 초강대국이라는 소련의 지위에 대한 성급한 해체를 알렸다. 한 역사가는 이 에피소드를 “소련 외교 정책 자산의 급매 처분”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 ‘자산’은 쓰레게처럼 버려졌다. 쿠바와 아프가니스탄과 협의를 시작도 하지 않은 판킨은 고르바초프-베이커의 발표를 듣고 깜짝 놀랐다. 쿠바 정권은 소련 보조금이 끊겼어도 뜻밖에도 살아남아, 미국 측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남았다. 카불의 나지불라 대통령 정권은 4년 뒤에 무너져서 무자비한 탈레반 근본주의 정권으로 대체된다. 이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전혀 이득이 되지 않았다. 만약 베이커가 1991년 9월에 미래를 점칠 수 있었다면, 뉴욕 쌍둥이 빌딩에서 치솟는 연기와 20여 년에 덜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군사 점령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7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3장 읽으면서 이 대목에서 멈칫 하시지 않으셨어요? 정말 개인이든 공동체든 세상사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맞아요..저도 수집!.. 멈칫 하게 되더라구요.. 모든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지만 지대한 흐름에 얽혔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게 될 것 같더라구요.
“여긴 정말 기가 막힌 나라다”라며 베이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달 전에는 KGB 의장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체포하더니만, 이제는 KGB 의장이 CIA 모델을 따르려고 미국 법률을 공부하고 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7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소련군이 이제는 소련의 고립 영토가 된 칼리닌그라드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리투아니아를 통과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워싱턴이 모스크바를 압박해 주길 바랐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7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칼리닌그라드, 이 지명에서 멈칫 하신 분이라면 철학사에 상당히 관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칼리닌그라드의 1945년 이전 명칭이 바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였답니다. 네, 그 칸트가 평생 살면서 시간 맞춰서 산책했다는 그 도시입니다. 당연히, 칸트의 묘지도 쾨니히스베르크에 있고요.
이렇게 발트해 연안에 러시아와 떨어져 있던 영토예요. 칸트가 살았던 때는 프로이센의 주요 도시였어요. 그래서 칸트도 독일 철학자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고요.
어디서 들어봤지.. 정도로 하고 넘어갔는데.. (철학사와 동떨어진 ㅎㅎ) 저렇게 섬처럼 있는 지역이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칸트의 산책 도시였군요!
민주 러시아 운동가를 대다수 배출한 소련의 인텔리겐치아는 사회의 지도적 위상을 예민하게 의식했지만, 관료제를 경멸하고 서류 작업을 꺼렸다. (…) (르네상스) 문학사가 레오니트 바트킨(Leonid Batkin)은 민주파와 국가 조직 간의 협력에 반대하여 열정적으로 연설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남아야 한다.” 민주러시아는 국가 조직에 침투하는 대신, 풀뿌리 운동과 의정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바트킨은 “옐친과 러시아 당국에 우리 덕분임을 상기시키고 그들에게 ‘꼬리 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라고 결론 내렸다. 대표들 대다수는 소비에트연방이라는 ‘악의 제국’ 대신 영연방을 대략적으로 반영한 독립적인 민주국가의 연합이 들어서기를 바랐다. (…) 급진주의적인 면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바트킨은 동료들에게 KGB와 구소련군을 “끝장내고 …… 파괴”할 것을 축구했다. 그리고 소련 핵무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문가인 바트킨은 여기에도 답변을 내놓았다. 장래 연합의 모든 회원국이 전략군에 공동 통제권 및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 제임스 베이커가 이 모임에 참석했다면, 정신 나간 미치광이 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다른 돤찰자인 러시아 학자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살면서 일반적으로 그렇게는 용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 소련의 해체 이후 우리 영역이 구유고슬라비아와 비슷하지만 핵무기까지 있는, 만민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공간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지 않았다는 게 지금도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미국인들은 이를 크게 염려했으나, 우리[지식인들]는 아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8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주보크가 책 곳곳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어쩌고 하면서 슬쩍 조롱한 인사가 바로 레오니트 바트킨입니다. 주보크는 이런 아마추어의 열정이 상황을 더욱더 안 좋은 쪽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한국 현대사를 놓고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대목이죠;
다른 얘기지만, 이 책 전체의 러시아 민주 인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 바로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입니다.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열렬한 지지자였었고, 나중에는 옐친의 자문이었고, 또 소련 해체 과정에서도 비교적 균형 감각이 있었던 민주 인사였죠. 15장에 스타로보이토바를 둘러싼 비극적인 이야기가 나온답니다.ㅠ.
경제 개혁을 위한 두 번째 진지한 시도는 미하일 베른스탐이 이끄는 스탠퍼드 대학의 경제학자 팀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그는 1991년 3월 이래로 러시아연방 최고경제회의의 후원을 받아 모스크바에서 연구했다. (…) 베른스탐은 이 접근법을 “충격 없는 개혁”이라고 불렀다. 서방의 대형 융자 대신 베른스탐과 동료들은 은행 계좌에 있는 국민들의 개인 저축을 투자금으로 이용해, 시장 조건에 입각해 국영기업에 재융자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식으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소련 기업들은 국가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수백만 소련 국민은 투자자가 되며, 서방 자금에 대한 필요성도 줄어들 것이다. 베른스탐은 그러한 전략이 “탈중앙화된 강한 연방”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8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사실상, 소련 혹은 러시아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을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제사에 문외한이긴 합니다만, 베른스탐이 제안했던 방식이 197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추진했던 한국 경제 개발 방식과 흡사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1991년 가을, 크라우츠크는 ‘우크라이나 핵’이 정치적 자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골칫거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핵무기 불량이 체르노빌은 사소한 사건으로 보이게 할 만큼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영토상의 비축 핵무기는 향후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핵심이 되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50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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