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본 김에 그루지야와 조지아에 관해서도 물어보았습니다.
1️⃣ ‘그루지야(Грузия)’의 배경
• 러시아어식 명칭: Грузия (Gruzija)
• 소련 시절과 그 이전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사용
• 한국도 소련과 외교하면서 러시아식 지명을 음차해 그루지야라고 불렀음
• 의미상 큰 문제는 없지만,
→ 러시아 중심적 시각이 반영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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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지아(Georgia)’의 배경
• 현지어: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Sakartvelo, 사카르트벨로)
• 영어·국제 표준: Georgia(조지아)
•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이후,
조지아 정부가 **“러시아식 지명(그루지야) 사용 자제”**를 요청
• 러시아와의 종속·식민 기억을 탈피하려는 외교적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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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표기 변화
• 2011년 외교부·국립국어원 결정:
공식 국호 표기 → ‘조지아’로 변경
• 이유:
1. 자국 요청 존중
2. 국제사회 표준(영어 Georgia)과 일치
3. 러시아 영향 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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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 의미 요약
• 그루지야 = 러시아식 명칭 → 소련 시절 습관
• 조지아 = 국제 표준·자국 정체성 반영 → 독립국가 의식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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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그루지야→조지아” 변화는
러시아 제국/소련 시절 지명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서 정체성과 외교적 자율성을 강화한 사례야.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향팔
개와고양이
어제 열심히 15장을 읽으면서 뭐가 다르다는 거냐 생각했는데 지피티가 잘 정리했네요. 감사합니다.

향팔
“ 비스쿨리 문서는 모스크바에서 법적 공격을 받았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인 소련의 헌법위원회는 비스쿨리협정이 “법적 효력이 없다”라고 선언했다. 1922년 조약에 서명한 창립 공화국은 그들이 탄생시킨 연방을 해산할 권리가 없었다. 외무부 집무실에서 셰바르드나제는 항의서를 내놓으려고 했다. “내전을 원하는 건가?”라고 그는 부르불리스에게 물었다. “세 공화국은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 그들은 고르바초프를 축출할 수 없다. 이건 반헌법적 쿠데타다.” 부르불리스의 친구인 니콜라이 트랍킨은 반대 시위를 조직하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찻잔 속의 태풍은 이틀간 지속되다가 그쳤다. 사람들은 고르바초프나 헌법에 관심이 없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58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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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부르불리스는 “세계사에는 법적 정당성이 사후에, 행위가 기정사실이 된 후에 등장하는 선례들이 풍부하다. …… 나는 12월 8일이나 9일 또는 10일에 단 하나의 정부 기관이나 군 부대도” 소련의 해산에 항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볼 때마다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 없다”라고 회상했다. 많은 사람이 이중 권력의 종식을 지지했다. 그들은 정치 적 의지가 굳은 과감한 행동가 옐친이 나라를 경제적 수렁에서 건져줄 것이라 기대했다. 모스크바에서 여론 조사는 국민의 84퍼센트가 CIS 협정에 찬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중적 불만은 몇 주 뒤에 불거졌다. 2년 뒤, 그것은 러시아에 헌정 위기를 불러오고 옐친을 권좌에서 몰아낼 뻔한 정치적 폭풍으로 발전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6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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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옐친이 떠났을 때, 야코블레프는 “승자의 행진이군”이라고 혼잣말을 던졌다. 그러고는 안쪽 방으로 가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소파에 기대앉은 고르바초프를 발견했다. “이렇게 되는 거야, 사샤.” 야코블레프도 “불의한 일이 일어난 듯” 가슴이 먹먹했다. 거대한 변화를 함께 시작했던 두 사람은 이제 여정의 끝에 이르렀다. 고르바초프는 야코블레프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한 뒤, 혼자 있게 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이 광경을 반추하면서 야코블레프는 고르바초프가 요란하게 퇴장하기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80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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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 그는 집무실에서 남은 시간 동안 연설문을 준비하며 보냈다. 이번에는 신레닌주의적 이론화는 더는 없었고, ‘사회주의적 선택’과 그것을 대변해야 하는 당은 사라지고 없었다. 새로운 유럽의 공동 건설을 비롯해 ‘신사고’에 관한 모든 국제적 야심도 소련과 함께 폐기 처분되었다. 러시아는 “유럽의 마구간으로” 데려가길 원하는 기수를 내동댕이친 멍청한 암말처럼 굴었다고 야코블레프는 회고했다. 수백만 러시아인은 다르게 생각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약속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진짜 인플레이션과 경제 붕괴가 뒤따랐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 수사와 국가 대계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브레즈네프의 ‘침체’조차 달성하지 못한 의도치 않은 결과였다. 1991년 12월, 진짜 레닌이 마법처럼 모스크바 시내에 나타났다고 해도 누구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을 찾아 일상의 곤경에 허덕이고 있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80-58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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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소련 역사의 종식에 관한 지배적 서사를 창조하는 미국의 헤게모니는 이 순간 절대적인 것 같았다. 미국 기자들은 뉘앙스 따윈 사절이었다. 당은 진즉 권력을 잃고 이제는 금지당했지만, 그들은 ‘공산주의의 종식’을 기록했다. 미국 언론의 해석에서 국가의 붕괴는 최후의 참된 신앙, 즉 자유 민주주의로 고르바초프의 개종에 대한 하나의 배경일 뿐이었다. 경 제, 금융 위기와 민주파와 중앙 정부 간 대치, 옐친의 분리주의, 고르바초프의 ‘우회전’, 8월 훈타라는 잘못 이해된 그 모든 사태는 전 세계에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여정에 대한 장애물이나 이정표로 제시되었다. 나머지 국제 사회도 대체로 그 각본을 따랐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8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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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전 세계적 쇼가 이뤄진다는 사실이 고르바초프를 일순간 흥분시켰다. 그는 코펄에게 퇴임이 정치적 사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아마도 이곳에서 최초로” 권력의 평화적 이양을 실행했으며, “심지어 이 점에서도 나는 알고 보니 선구자였다”라고 말했다. 중앙 방송의 사장인 예고르 야코블레프는 고르바초프가 카메라 앞에서 사퇴서에 서명하길 원했다. 방송 중계가 시작되기 직전에 고르바초프는 사퇴서에 서명할 때 쓸 자신의 소련제 펜을 시험해봤다. 펜은 말을 듣지 않았다. CNN 회장 톰 존슨이 자신의 몽블랑 펜을 빌려줬다. 현장에 있었던 코너 오클레어리는 “다시 한번 언론의 일원이 소련을 청산할 도구를 제공했다”라고 촌평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58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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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15장을 읽었는데, 휴우… 씁쓸하다고 해야 하나 먹먹하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이상하네요.

부엌의토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