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잘 알려진 증거도 달리 보인다. […] 이것은 사후적 지혜로 역사의 행위자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동기와 열정을 역사화하는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2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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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감사의 말’을 보니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자료를 찾고, 얼마나 많은 노력과 사색을 했는지 조금 느껴집니다. 덕분에 독자로서 펄럭펄럭 책장을 넘기며 그 결과물을 접할 수 있으니 감사하네요. 답례로 ‘결론’은 두 번 읽어야겠습니다.
연해
향팔님의 이 말씀은 주보크가 들으면 굉장히 뿌듯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책들은 읽으면서 저자의 노고에 깊이 감동받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벽돌 책 모임에서는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았던 것 같습니다(일단 두께부터 압도적...). 저는 답례로 '결론'을 두 번 읽고 싶었지만 반납하고 말았습니다(미안해요, 주보크. 하지만 저는 좀 힘들었어요).
향팔
앗, 저도 사실.. 결론 두번 읽으려다가 그냥 위의 @YG 님 문장 수집을 읽는 걸로 대체해 버렸답니다 캬캬
롱기누스
저도 막차를 탔습니다. 소련의 마지막을 함께 한 기분이군요. 14장 과 15장은 쓰러져가는 거인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애처롭기까지 했습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미국의 인정을 받으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볼썽사납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에 기대고 인정과 편입의 대가로 미국의 지도와 조언을 기꺼이 따르려는 모습...
"이중 권력은 위험투성이인데 그런 시기에 사람들은 어떤 권위도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더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다. 그러나 옐친도 권력의 수단이 없었다. 이런 상황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보다 나빴다.(p.554.)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책에서 짚어 주었는데, 그것은 소련 붕괴 이후 서방의 경제력이 러시아와 그 연방국들을 도와주려고 했으나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세계의 돈이 흘러가버리는 바람에 소련이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험난한 시간을 겪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클린턴이 1991년 8월의 쿠테타가 없었으면 자신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는데, 중국에 등소평이 권력을 잡지 않았더라면, 소련이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결론부분에서 저자의 고르바초프의 평가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리더십, 성격, 신념은 소련의 자멸에 주요 요인이었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개혁가적 열성과 정치적 소심함을, 도식적인 메시아주의와 현실과의 거리두기를, 비전이 넘치고 숨 막히는 외교정책과 결정적인 국내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모두 갖췄다. "(p.588.)
"고르바초프는 이 실패를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렸다. 당과 경제 관료 집단의 저항, 낡은 관행과 이데올로기적 무기력, 그는 '불관용, 낮은 수준의 정치 문화,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p.581.)
그리고 마지막에 저자가 언급한 말도 꽤나 머리속을 맴돕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속성의 외관상 확실성을 믿지 말라고 가르쳐주며 미래의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리라"(p.603.)
변화는 관료집단에 항상 불시에 닥친다는 후쿠야마의 말은 관료집단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요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7월 벽돌책을 끝냅니다.
6월에 이어 7월에도 벽돌책을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방장 @YG 님을 비롯해서 함께 읽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역시 멀리가려면 함께 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 모두 잘 견뎌내시고, 8월 벽돌책 모임에서 뵙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aida
@롱기누스 님 대단하십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말씀하신 저자의 마지막 말은 많은 독자에게 여운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속성의 외관상 확실성을 믿지 말라고 가르쳐주며 미래의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리라"
저도 이따금 아들에게 이 나라에 이 시기에 태어난 것은 80억 지구인 중에 상당히 좋은 운빨이다.
내가 반백년 살아오면서 전쟁을 겪지 않은 것도 참 운이 좋은 일이다. 라고 말하긴 합니다.
일상으로 잊고는 있지만 "갑작스러운 충격"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ㅎㅎ
이 폭염 정도야.. 하면서 언능 지나길 바래봅니다.
8월에 또 뵈어요~
YG
@롱기누스 님,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달에 유달리 힘들어 하셨던 기억인데 그래도 얻은 게 있으신 독서로 후기 남겨 주셔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연해
막차! 완독 축하드려요. 롱기누스님:)
롱기누스님의 완독은 저에게도 특별히 의미가 있는데요. 중간중간 남겨주시는 의견이 제 미약한 지식에 열매처럼 닿을 때가 많았답니다.
롱기누스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벽돌책 모임하면서 함께 하시는 분들의 소중함을 많이 깨닫습니다. 8월에도 함께 하시죠? ^^
YG
저도 여러분이 남겨 놓으신 메모와 겹치는 '결론'의 몇몇 부분을 메모했답니다.
YG
“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신화 속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소련 사람을 억압과 순응주의의 유산에서 해방시키려 했지만, 알렉산드르 2세나 세르게이 비테 백작,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 같은 과거 러시아의 대개혁가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그 대신 그의 롤모델은 러시아 국가의 대파괴자 블리디미르 레닌이었다. 1917~1922년 맹렬한 볼셰비키가 그랬던 것처럼,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운명이 혁명적 규모의 변화를 포용하는 것이 라고 느꼈다. 레닌처럼 그는 존재한 적 없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혼돈의 힘을 풀어헤치길 원했다. 이데올로기적 메시아주의의 위험한 실천이었다. 그와 동시에 소련사의 커다란 역설로서 고르바초프는 레닌의 혁명에서 성공의 핵심이었던 방법과 특징을 시종일관 거부했다. 그는 행동보다 말을, 폭력보다 의회의 합의를, 독재보다 권력 이양을 선호했다. 한마디로 인간적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그의 메시아적 관념은 갈수록 소련 권력의 현실과 그 경제로부터 유리되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587~588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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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고르바초프의 리더십, 성격, 신념은 소련의 자멸에 주요 요인이었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개혁가적 열성과 정치적 소심함을, 도식적인 메시아주의와 현실과의 거리 두기를, 비전이 넘치고 숨 막히는 외교 정책과 결정적인 국내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모두 갖췄다. 그러한 특징이 그를 소련사에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폭력과 무력에 대한 혐오감은 보수주의자들도 공유할 만큼 그의 세대에 전형적이었다. 이것은 스탈린 사후 몇 십 년 동안 소련 엘리트의 더 깊은 문화적, 사회적 변모를 가리킨다. 그들은 정치적, 경제적 폭풍이 들이닥쳤을 때 놀랄 만큼 무기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국의 집단적 의지 마비를 목격한 고르바초프의 보좌관 게오르기 샤흐나자로프는 이를 시스템 위기라고 불렀다. 정치국의 누구도 고통스러운 개혁을 실시하고 필요하다면 무력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눈감고 해낼 뚝심이 없었다. 고르바초프가 선호한 정책, 인텔리겐치아를 달래고 공화국의 지배 엘리트에게 책임을 이양하는 정책은 더 나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는 발트 지역과 남캅카스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핵심 슬라브 공화국들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리주의를 가능케 학 정당화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58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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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그(클린턴)는 부시가 “소련을 역사의 잿더미 위로 연착륙시키도록 고르바초프가 조종하는 동안 그를 유도하는 체계적이고, 주의 깊고, 고도로 유능한 관제사 역할”을 맡았다고 칭찬했다. 클린턴과 탤벗은 이제 미국 주도의 신세계 질서 안에서 러시아의 자리가 잡힐 때까지 옐친을 유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 불분명한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59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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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글로벌 금융 기구들은 국가 주권과 자존심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전 초강국의 엘리트와 국민은 갑자기 세계 먹이사슬의 밑바닥 언저리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59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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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아닌 게 아니라 CIS는 연방의 해산을 가리는 위장에 불과했다. 국내적, 국제적 시장 세력들과 지정학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통합이 아닌 경쟁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옛 로마 경구 ‘바이 빅티스(Vae Victis)’, 즉 “패자는 비참하도다”라는 말은 변함없이 진실한 예언으로 들어났다. 약하고 가난하고 패배한 자들의 운명은 여전히, 강하고 부유하고 승리한 자들의 전차를 쫓아가 결국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당하는 것이었다. 유럽연합과 NATO는 권력과 부, 안보의 구조들을 규정했다. “유럽으로 복귀”하겠다는 한결같은 결의를 보인 발트 3국만이 포스트소비에트 공화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성공했다.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그루지야도 그토록 원하는 서방의 꿈나라 밖에 남았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598~59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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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러시아의 역사는 소련이 무너지고 고작 9년 만인 1999년에 또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해에 건강과 권위가 완전히 망가진 옐친은 1991년에 훈타를 물리치는 것을 도왔던 젊은 전직 KGB 장교 블라디미르 푸틴을 후계자로 골랐다. 단 몇 년 만에 푸틴은 소련 붕괴가 낳은 방대하고 깊은 환멸과 민심 이반을 활용했다. 구소련 국가가 해체된 것을 무심하게 혹은 공감하며 지켜봤던 사람들이 이제는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보장할 강력한 러시아 국가 건설을 원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599~600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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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러시아인들은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라 말하곤 한다. 그 말은 일어난 일은 일어나버렸다는 뜻이다. (…)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없었다면 소련은 10년을 더 버티다가 훨씬 더 폭력적으로 붕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련이 안드로포프가 구상했던 대로 더 보수적인 방식으로 개혁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볼 수도 있다. 심지어 당 노멘클라투라와 MIC도 포함해 소련 엘리트 내부에는 변화를 위한 상당한 잠재력이 있었다. 소련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돈의 힘은 소련 엘리트의 행동에 중심적이고 결정적이었다. 크렘린 통치자가 다른 선택들을 내렸더라면, 이 돈의 힘을 이용해 기존의 엘리트를 소외시키는 대신 이행의 이해당사자들로 변신시켰더라면 KGB 장교들조차도 국가자본주의와 민영화를 지지했을 것이다. 나중에 옐친과 푸틴 치하에서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소련은 노멘클라투라 스타일 국가 자본주의로, 그리고 확실히 그 권력 기관들을 보존한 채 시행착오를 거쳐 점진적으로 세계 경제에 진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600~60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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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대다수는 소련의 붕괴와 서방에서 최근에 전개된 사태 간의 병렬 관계에 분연히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구소련 사람들은 불현듯 소름 끼치는 기시감을 경험했다. 2008년에 서구 정부들은 1988~1991년 소련의 파괴적인 정책들과 유사하게 국민의 세금과 심지어 저축을 이용해 기업들을 긴급 구제해야 했다. 고고한 레토릭으로 둘러싸인 노벨 평화상 수상자 버락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에서 수렁에 빠졌을 때 고르바초프와 비교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해법으로 여겨진 것이 오히려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일부 관찰자들에게 1991년 3월 고르바초프의 국민투표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구호는 소련 ‘제국’에 의한 ‘러시아’의 희생을 운운하던 옐친의 수사법을 아득하게 일깨웠다. 심지어 구소련의 일부 나이 많은 시민은 냉전기에 그토록 신중했던 서방 엘리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브레즈네프와 체르넨코, 고르바초프 후반 시대들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결국엔 소련 수수께끼가 우리 시대에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역사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필연적 승리에 관한 도덕극이었던 적은 없다. 그 대신 세계는 항상 그래 왔던 대로, 이상주의와 권력, 훌륭한 통치와 부패, 자유의 고조와 위기와 비상시에 자유를 제한해야 할 필요 사이의 투쟁의 장이다.
사라져버린 소련의 유령은 유럽과 아시아, 세계를 떠돌고 있지 않다. 그러나 소련의 갑작스러운 소멸에 대한 수수께끼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상상 속을 여전히 떠돌고 있다. 전에 승승장구하던 서구 자유주의적 질서의 확실성이 우리 발아래서 흔들리고 깎여 나가는 모습을 목도하는 지금 특히 그렇다. 소련의 종식은 거대한 역사적 의미와 어마어마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인간 드라마였다. 그것은 냉전 종식과 탈식민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구적 서사에서 하나의 각주로 축소될 수 없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속성의 외관상 확실성을 믿지 말라고 가르쳐주며 미래의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리라.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결론, 602~603쪽, 끝,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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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향팔@롱기누스@aida 님 모두 '결론'의 마지막 단락에 주목해 주셨죠. 저자 주보크가 망국의 몰락 순간에 이토록 집착했던 이유가 저 한 단락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어요.
"이 놀 라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속성의 외관상 확실성을 믿지 말라고 가르쳐주며 미래의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리라."
저는 요새 1년 6개월 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공장이 휘말리고, 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더욱더 이 책의 서사와 이 결론에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tella15
에고,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나셨나 보네요. 어쩌나요? 그래도 언젠가는 해결이 나겠죠. 힘든 중에도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네요. YG님 배려와 덕분으로 잘 배우고 갑니다. 8월도 벽돌 책 잘 이끌어 가시고 좋은 시간되기 바랍니다. 종종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