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1990년 9월, 고르바초프의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모든 국가와 그 정상입니다.
전 5장을 보면서 아.. 정작 국내에서는 골치 아픈 대상들과 (심지어 대적하는 쪽 말고 최측근까지도) 얘기하는 걸 꺼리고 아예 나몰랑 나한테만 묻지 말고 니들이 스스로 생각해봐 하고 부하들을 거의 내팽개치듯 하는 찌질한 지도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최대한 국외나 별장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국외에서도 예전의 관계도 상관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 손벌리며 돈 빌려달라고 구걸하고.. 게다가 더 웃긴 건 정작 아제르바이잔의 집단학살 등에서 정당하게 사용했을 수도 있는 군사력은 손놓고 방관했다가 이제 정작 모스코바에서는 실제 아무 폭력이 아직 안 일어났는데도 경찰들이 진압하라고 하는데 반항하는 Bakatin에게 화풀이하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전에도 무능해보였지만 갈수록 막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건 이전에 읽었던 Westad의 냉전에서 나왔던 그의 모습과 좀 대조되는 모습인데요. 거기서는 고르바초프에 대해 He was willing to authorize crackdowns, but only when ethnic violence or a chance for real secession demanded it.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만큼 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의 손은 더럽히고 싶지 않아하는 대외적 이미지를 중요시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폭력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남들이 어떻게 해서 문제가 사라지길 바라는 듯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자기손은 더럽히지 않으려하는 고르바초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네요. 아울러 고르바초프가 폭력에 대한 원론적 반감 보다는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목적의 수단적 활용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하시는 부분도 공감합니다.
저도 그게 좀 맘에 걸렸어요. 정작 그러고서 체르노빌 사건 때는 한참 뒤에 알리고..;; 그리고 장관들이 욕먹고 공격당할 때 도망치고 모른 척하거나... 러시아 정부 등이나 군대와 맞서야 할 때도 도망치고...;; 그저 폭력을 싫어한 것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쓴소리를 듣거나 본인이 쓴소리를 해야 하는 대치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번에 말한 National Security Archive의 영어로 번역된 고르바초프의 서신들이나 대화 내용을 보면 번역/통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평화로운 사람이었을 지..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었던 게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해 베이커랑 얘기하면서도 고르바초프의 표현이 이랬습니다: Let them boil in their own juices over there. 섬뜩하죠? 그리고 결론적으로 한 말: I am concerned about the reputational aspect. 자금 지원을 구걸할 때의 그의 비굴한 모습 외에도 그렇게 좋지 않은 인상이었습니다. https://nsarchive.gwu.edu/document/18270-national-security-archive-doc-17-excerpt
이 책 편집이 좋은 점이 있네요! 방금 책을 읽다가 “야코블레프는 줄곧 침묵했는데, 과거 발트인들에 대한 유화책으로 인해 곤욕스러운 처지였기 때문이다.” (4장 165쪽) 이 문장을 읽으니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 이사람이 언제 발트 유화책을 냈었다는 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책 뒤의 찾아보기를 넘겨보니 야코블레프 이름 아래로 -이 사람과 발트 분리주의 및 독립 이야기는 89~91페이지에 있어!- 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지 뭡니까. 해당 페이지로 돌아가보니 까맣게 잊어버렀던 야코블레프의 유화책 내용이 띡! 나와 있네요. 신통방통.. 근데 분명히 2장에서 읽은 내용인데.. 읽었는데.. 왜케 새로운 건가요.(좌절) 예전엔 책 덮자마자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면.. 이젠 벽돌책이라고 챕터 단위로 잊어버리는 중인가 봅니다.
저도 자꾸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하고 기억을 되짚어야 해서 무한 반복 검색 및 복습을 ㅎㅎㅎㅎ
체르냐예프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기억에 시달리며 우울해져서 정치국 모임을 떴다. 그는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에서 학살을 실행한다면 사임은 말할 것도 없고 …… 십중팔구 다른 일도 할 것이다”라고 일기에 적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여기서 “다른 일”이라는 게 뭘까요? 설마… 자결?
자결.. 또는 타인으로 분출되는 폭력? 여러모로 위태위태합니다..;; Ryzhkov만 신경쇠약에 걸린 게 아닌 듯..
주요 위험은 리투아니아가 아니라 러시아 분리주의였다. 옐친과 모스크바 야권이 러시아연방에서 권력을 잡으면 “소비에트연방을 손쉽게 파괴하고, 당과 정부 지도자들을 타도할 것”이라고 리시코프는 주장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서방의 관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러시아인들이 왜 자기 나라에서 독립해야 하는가?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단번에,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러시아 분리주의자로 변신한 공산주의자 이단아가 이끄는, 대중적 정당성과 헌정적 권위를 지닌 라이벌 ‘러시아’ 기관을 탄생시켰다. […] 당시에 중앙과 ‘러시아’라는 두 엘리트 집단이 화해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한쪽이 승리하면 다른 쪽은 사라져야 할 운명이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990년 전반기 동안, 고르바초프는 공화국 엘리트층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갈수록 거침없어지는 러시아 대항 엘리트층을 결국엔 상대해야 했다. 한쪽은 러시아연방 최고소비에트에서 옐친이 이끄는 집단이고, 다른 한쪽은 ‘러시아공산당’ 집단이었다. 대항 엘리트층은 러시아 자유주의 인텔리겐치아, 포퓰리즘, 보수적 민족주의라는 상충하는 세력들을 대변했다. 그 결과, 고르바초프의 권위는 추락했고 정치적 기반은 좋게 말해서 위태로웠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빼면, 유일하게 유리한 입지는 세계 정치가라는 독특한 위상이었다. 서방 파트너들의 도움으로,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정치적 수완을 재확인했다. 그는 독일의 재통일과 새로운 유럽 질서의 창건자가 되었다. 서방의 우군과 친구, 특히 부시와 콜의 도움을 받아 소련 지도자는 본국에서 자신의 권위를 재천명하길 바랐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성공을 입증할 만한 근본적인 수단이 없었다. 소련 경제는 계속 나빠지고 있었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믿을 만한 전략이 없었던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레닌이 타계할 때 표명한 소망을 실현할 길입니다. 힘차게, 통일된 의지로, 우리는 더 높이 오르고 전진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운명은 알지 못합니다. 동지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운명입니까!” 5000명의 당 지도자와 간부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한 명만은 확실했다. 바로 고르바초프 자신이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부 1장 ,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앞으로 고르바초프에 대한 비판을 계속 읽게 될 것 같지만, 일단 저는 이 인간을 응원하는 심정으로 읽어보려 합니다. 지나고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라도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죠. 이상과 선의가 어떻게 좌절되어갈지 미리부터 슬프네요.
저도 오도니안님과 같은 생각인데, 저는 이 책을 정식으로 읽지 않고 있는데 올라오는 문장수집을 읽으면서 고르비가 과연 그런가? 좀 놀라고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러시아 사람이고 보면 고르비를 좋게만 볼 수 없는 시각이 존재하긴 할 것 같습니다. 만일 서방의 어느 저자가 그에 대한 평전을 쓴다면 좀 다른 시각에서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누가 쓰던 고르비는 결코 행복했던 인물로 묘사되진 못하겠지만.
@stella15 고르비에 대한 서방 전기 작가에서는 대체로 그를 "비운의 영웅"으로 묘사했었다고 합니다. 주보크는 그런 평가에 대한 교정이 필요하다고 본 듯하고요. 그리고, 주보크가 러시아 출신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밥벌이하면서 연구를 했으니 경계인 정도의 정체성이 더 맞을 듯해요. 벌써 나이가 예순(1958년생)이 넘었는데 여러 회한이 있겠죠. 이 책은 그런 회한과 연구의 종합편 같고요.
그렇군요. 문장수집만 읽어도 괜히 마음이 좀 무겁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또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우리나라의 윤 대통령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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