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저도 지금 7장을 읽고 있어서인지 롱기누스 님의 감상평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전 부시와 고르바초프의 관계를 '양아치형과 동네 7살짜리 꼬마'처럼 바라 봤어요.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이 책에서 '모든 정치적 행보는 돈이 있어야 제대로 사용될 수 있다?(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라는 식의 말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 말이 나올 때마다 혼자 움찔움찔 합니다. 연방의 대통령이 이나라 저나라한테 돈 빌려 달라고 하는 것도 본인의 이미지 실추에 한몫한 것 같고요.
국가 기구의 일부 목격자들은 8월 21일에 일어난 일을 '정치적 멜트다운(붕괴)'이라고 묘사했다. 공모자들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을 이뤄냈으니, 바로 중앙 정부의 행정부가 완전히 항복한 것이었다. 실패한 비상 통치는 옐친과 그의 민주파 추종자 및 지지자에게 고르바초프와 헌정 질서를 대신해 집행 권한의 수단을 장악할 역사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필연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소련의 정치적 죽음을 뜻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p. 421,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이제 3장을 읽었습니다. 완전 낙오자가 되었네요 ㅜㅜ
1989년의 혁명은 같은 해에 일어난 소련의 급진화처럼, 여러 요인 중에서도 서구식 소비주의가 대중을 유혹하면서 야기되었다. 수천 명의 동독인들이 베를린장벽 위에서 자유에 취해 춤추는 동안, 수십만 명이 서베를린의 호화로운 상점을 뒤덮었다. 그들은 금단의 열매를 보고 만지고 맛보고 싶었다. 미국의 한 연구자는 “동독과 동유럽 전역에서 냉전 종식의 그 혼란스러운 나날 동안, 자본주의에 의해 제조된 소비재는 자유의 상징이자 본질인 듯했다”라고 평가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3장,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이 문장들이 잘못된 내용인 건 아니지만, 역사가는 사실들을 편집해 자기가 그리려는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주보크의 편집은 고르바초프 정권 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베를린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에 대해서도 주보크는 시니컬하네요. 뭘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마치 고르바초프가 소련군을 투입하든 엄포를 놓든 해서 사태를 막았어야 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전 고르바초프가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은 냉전 논리로 타국의 민중을 억압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놓아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후에 동유럽이 많은 혼란을 겪었지만 그래도 냉전이 종식된 건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긍정적 관점에 익숙하니 균형을 맞추어준다고 볼 수는 있겠죠.
이런 상황에서, 서방의 융자와 투자의 문제는 소련 재정과 경제에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베이커는 "그랜드바겐의 대안"으로서 -단계적인" 점진적 접근법을 옹호했다. 이것은 서방 정부들이 특정한 약속 이나 언질을 주는 것을 피하면서 고르바초프가 '진지한 경제 개혁'을 향해 신속하게 나아가도록 자극하는 접근법이었다. "순리대로 흘러가게 놔두자"라고 베이커는 권유했다. "우리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편", 결정의 책임은 소련이 져야 한다. 그는 G7 런던정상회담에서 정치적 지지를 하는 듯 보이면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유지하기는 충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시는 이 권고대로 행동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소련 지도자는 부시를 모스크바로 초청했고 대통령은 초청을 수락했다. 그것이 고르바초프가 런던에서 거둔 유일한 성과였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모든 부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고위 정부 관리들은 고르바초프의 마법 같은 카리스마가 결과를 이끌어내리라 기대했다. 이전에도, 소련 지도자들은 서방의 친구 및 파트너들과의 만남에서 몇 번씩이나 수십억 달러를 뜯어내곤 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마법사가 실패했고, 서방의 지원을 얻어내려던 그의 뻔뻔한 시도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미국 회의론이라는 장벽에 부닥쳤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세일즈맨은 부도에 직면해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0장 '음모' 편 메모 몇 개 올릴게요.
(1991년 7월 29일) 고르바초프는 옐친이 러시아연방과 그곳의 15개 자치구를 대신해 조약에 서명할 유일한 대표임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소련 대통령은 소련 인민대표대회가 기한이 되어 자동 폐지되도록 허용하며, 소련 최고소비에트도 새로운 헌법을 기다리지 않고 정치적 생존을 끝내는 데에 동의햇다. 더욱이 고르바초프는 (부통령) 야나예프, (총리) 파블로프, (KGB 의장) 크류치코프, (국방부 장관) 야조프, (내무부 장관) 푸고를 해임하라는 옐친의 요구도 따랐다. 고르바초프는 의례적인 연방정부의 총리로 파블로프 대신 나자르바예프를 임명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양보한 대가로, 옐친은 새로운 연방의 대통령으로 고르바초프를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러시아연방이 중앙 연방정부의 재원이 될 연방 조세를 “연방이 제시한 경비 내역을 기반으로 공화국들과의 합의에 따라 고정 세율로” 내기로 잠정적으로 동의했다. (…) 고르바초프는 회고록에서 이 밤샘 모임을 예비 대화인 것처럼 설명했다. 실제로는 중앙 권력을 파괴하고 옐친과 다른 공화국들의 힘을 키울 세 지도자 간의 비밀 거래였다. 3인방은 소련 최고소비에트와 공화국의 모든 의회가 휴가 중인 8월 20일에 조인식을 갖기로 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5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와 부시는 유고슬라비아의 붕괴도 논의했다. 세르비아계가 지배적인 유고슬라비아 군대와 근래에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공화국 간의 싸움이 순식간에 격화되었다.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독일의 콜 총리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하길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반대했는데,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는 소련 내 공화국 분리주의를 반영하는 듯했던 것이다. (…) “어젯밤 옐친이 처신하는 것을 보니 당신의 문제가 이해가 단다. 우리는 …… 기꺼이 더 돕고 싶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5~36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미국은 멀리 떨어진 폭정을 현지의 전제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독립을 추구하는 이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종족 증오에 기반한 자멸적인 민족주의를 도무하는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잭 매틀록은) 루흐에 속한 우크라이나 반체제 인사들이 자유와 정치적 활동의 수단을 준 사람이 고르바초프란 사실을 그새 잊어버렸다는 것이 신기했다. 고작 2년 전, 고르바초프는 우크라이나 당 지도부가 루흐의 등록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는데, 이제 그 지도자들이 소련 지도자를 증오하며 비방하고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8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그(체르냐예프)는 일기에 대통령이 연방(federation)을 언급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 연합(confederation)에 동의했다”라고 적었다. (…) 충직한 보좌관은 곧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흐렸는데, 이는 비단 고르바초프 권력의 종말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초강대국의 종말이었다. 조약은 다른 국가와 외교 관계를 수립할 권리를 비롯해 완전한 주권을 연방 내 공화국에 부여했다. 국제법의 관점에서는, 완전히 헛소리였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만이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고, 옛 연방의 폐허에서 작동 가능한 새로운 연방이 부활할 것을 진지하게 기대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8월 4일, 고르바초프는 오래 미룬 휴가를 보내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그림반도로 갔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는 공무로 바쁘지 않을 때면, 모스크바에서 가져온 논픽션을 읽었다. 그중에는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의 운명을 다룬 역사서도 있었다. 1907년 제1차 러시아 혁명을 인기 없는 개혁으로 진정시켰던 러시아 총리로, 결국 1911년에 암살당했다. 또 다른 책은 미국 학자 로버트 C. 터커(Robert C. Tucker)가 쓴 스탈린 전기의 러시아어판이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7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참고로, 주보크가 '결론'에서 고르바초프가 레닌 대신 진지하게 숙고하고 배웠어야 할 과거의 러시아 개혁가 중에 바로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도 있답니다. 고르바초프도 이 시기에는 뭔가 자기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감을 잡았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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