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고르바초프와 부시는 유고슬라비아의 붕괴도 논의했다. 세르비아계가 지배적인 유고슬라비아 군대와 근래에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공화국 간의 싸움이 순식간에 격화되었다.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독일의 콜 총리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하길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반대했는데,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는 소련 내 공화국 분리주의를 반영하는 듯했던 것이다. (…) “어젯밤 옐친이 처신하는 것을 보니 당신의 문제가 이해가 단다. 우리는 …… 기꺼이 더 돕고 싶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5~36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미국은 멀리 떨어진 폭정을 현지의 전제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독립을 추구하는 이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종족 증오에 기반한 자멸적인 민족주의를 도무하는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잭 매틀록은) 루흐에 속한 우크라이나 반체제 인사들이 자유와 정치적 활동의 수단을 준 사람이 고르바초프란 사실을 그새 잊어버렸다는 것이 신기했다. 고작 2년 전, 고르바초프는 우크라이나 당 지도부가 루흐의 등록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는데, 이제 그 지도자들이 소련 지도자를 증오하며 비방하고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8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그(체르냐예프)는 일기에 대통령이 연방(federation)을 언급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 연합(confederation)에 동의했다”라고 적었다. (…) 충직한 보좌관은 곧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흐렸는데, 이는 비단 고르바초프 권력의 종말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초강대국의 종말이었다. 조약은 다른 국가와 외교 관계를 수립할 권리를 비롯해 완전한 주권을 연방 내 공화국에 부여했다. 국제법의 관점에서는, 완전히 헛소리였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만이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고, 옛 연방의 폐허에서 작동 가능한 새로운 연방이 부활할 것을 진지하게 기대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8월 4일, 고르바초프는 오래 미룬 휴가를 보내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그림반도로 갔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6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는 공무로 바쁘지 않을 때면, 모스크바에서 가져온 논픽션을 읽었다. 그중에는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의 운명을 다룬 역사서도 있었다. 1907년 제1차 러시아 혁명을 인기 없는 개혁으로 진정시켰던 러시아 총리로, 결국 1911년에 암살당했다. 또 다른 책은 미국 학자 로버트 C. 터커(Robert C. Tucker)가 쓴 스탈린 전기의 러시아어판이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7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참고로, 주보크가 '결론'에서 고르바초프가 레닌 대신 진지하게 숙고하고 배웠어야 할 과거의 러시아 개혁가 중에 바로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도 있답니다. 고르바초프도 이 시기에는 뭔가 자기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감을 잡았던 걸까요?
8월 18일, 라이사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 신문들을 훑어본 뒤, 수첩에다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연방 조약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어떤 사람들은 관료적인 통일 국가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모너지고 있고 산산조각나고 있다고, 조약의 토대들이 모호하고 막연하다고 말한다. 그런 연방 조약이 왜 필요하겠는가?” 라이사의 서술은 통찰력이 있었다. 민주러시아의 자유주의적 반공주의자들은 연방 조약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높인 비판가들이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72~37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는 “비상 통치 도입은 파멸, 즉 내전으로 가는 길”이라고 결론 내렸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75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는 정부 인사나 측근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자신에게 반기를 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했다. 이 점에서 그는 돌이킬 수 없이 착각했다. (…) 고르바초프가 크림반도로 떠나던 날(1991년 8월 4일), 나중의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수립하고 국가의 비상사태를 선포할 결정에 관한 모든 서류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 서류 작업은 1990년 봄에 리투아니아에 대한 제재 이후로 준비해왔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도 그에 관해 알고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75~37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그(크류치코프)는 권력에 굶주린 모험가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관료였다. KGB 의장은 고르바초프의 혼성적 연방이 안정적 국가와 경제의 기반이 되리라고는 여길 수 없었을 뿐이다. 그가 아는 모든 상황이 정반대를 가리켰으며, 옐친의 러시아는 한때 소련이었던 것을 집어삼키려 했다. 크류치코프는 ‘외국의 개입’에 대해 편집증적이긴 했지만, 중앙 계획 경제의 혼란스러운 해체에 관해서는 옳았다. 이러한 상황 인식으로 인해 그는 연방 조약 서명은 소련 국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일은 막아야 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7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1991년 8월 18일) 나라 최고의 권력자이자 핵무기 ‘버튼’을 통제하는 소련군 통수권자가 크류치코프의 명령으로 모든 연락이 차단된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아내에게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그녀는 혼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뭔가 나쁜 일이, 어쩌면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라고 고르바초프가 말했다. “그들이 나와 만남을 요구하고 있어……. 모든 전화선이 끊겼어. 알겠어? 이건 격리야! 음모일까? 억류인가?” 고르바초프는 충격을 받은 라이사를 침실로 데려갔다. 그는 그곳이 도청에서 안전하여 밀담을 나누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난 어떤 책략이나 거래에도 동의하지 않을 거야. 협박이나 위협은 통하지 않아.”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가족 전체가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어…….” 라이사는 “이건 당신 결정이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난 당신 편이야”라고 대답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8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고르바초프가 고대하던 휴가는 느닷없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날 훨씬 중요한 그 무엇이 툭 끊어졌다. 떨어지지 않고 중간에서 균형을 잡으며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줄 알던 정치적 마법사 고르바초프가 끝났다. 그는 몰랐지만, 그것은 또한 그가 미국과 맺은 모든 국제적 합의와 위대한 민주적인 유럽 공동의 집에 대한 환상의 끝이기도 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84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그들은 ‘핵가방(nuclear briefcase)’을 맡고 있는 KGB 장교 두 명도 함께 데려갔다. 이 순간부터 사흘 동안 소련 전략 핵전력의 지휘 통제권은 야조프와 크류치코프의 수중에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84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대적인 군사력 과시였다. 난생처음으로, 모스크바 시민들은 겁주기용으로 시가지에 줄줄이 늘어선 탱크를 목격했다. 이는 충격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0장 음모, 38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뒤따라오시는 분들 얼른 10장과 11장 '훈타'로 따라오셔야 합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일 7월 21일 화요일도 11장 '훈타'를 마저 읽습니다. 저는 소련의 8월 쿠데타와 한국의 12.12 쿠데타 그리고 12.3 계엄을 자꾸 비교해보게 되더라고요. 이 책의 핵심은 몰락과 파국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랍니다. 주보크는 묻는 거죠. 평온해 보이는 당신이 딛고 선 체제는 그렇게 안정적일 것 같아? 그는 역사가 현재를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라, 불온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역사학자랍니다.
연구를 위해 모스크바에 방문하고 있던 미국 학자 빅토리아 보널(Victoria Bonnell)은 다음과 같은 회상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즉 신중함과 대범함, 희망과 절망, 현장에 있다는 흥분과 자신과 가족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은 지나치게 모순되어 결정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390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호소문은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했다. “쿠데타는 …… 전 세계 앞에 소련의 신임을 떨어트리며, 세계 사회에서 우리의 위신을 무너트리고, 냉전과 고립의 시대로 되돌아가게 한다.” 옐친의 딸 타티아나가 낡은 타자기를 가져와 독수리 타법으로 초안을 타이핑했다. 그러고 나서 가정용 팩스기로 서방 기자와 대사관, 국제 단체에 보냈다. 모든 메시지가 탈 없이 전송되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39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그때 옐친의 두 번째 위대한 순간이 찾아왔다. 안전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부르불리스와 다른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는 의회 건물 앞 광장에서 고르자코프와 경호원들만 대동한 채 차에서 내렸다. 그는 부대 지휘관과 말을 주고받은 뒤 탱크 위로 올라갔다. 이 단상에서,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읽었다. 그는 “우익, 반동, 반헌법 쿠데타”에 맞서 총파업을 호소했다.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내전이 벌어지는 것이냐고 물었다. 옐친이 대답했다. “군은 인민에 맞서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허세였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1장 훈타, 39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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