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봤지.. 정도로 하고 넘어갔는데.. (철학사와 동떨어진 ㅎㅎ) 저렇게 섬처럼 있는 지역이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칸트의 산책 도시였군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aida

YG
“ 민주 러시아 운동가를 대다수 배출한 소련의 인텔리겐치아는 사회의 지도적 위상을 예민하게 의식했지만, 관료제를 경멸하고 서류 작업을 꺼렸다. (…) (르네상스) 문학사가 레오니트 바트킨(Leonid Batkin)은 민주파와 국가 조직 간의 협력에 반대하여 열정적으로 연설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남아야 한다.” 민주러시아는 국가 조직에 침투하는 대신, 풀뿌리 운동과 의정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바트킨은 “옐친과 러시아 당국에 우리 덕분임을 상기시키고 그들에게 ‘꼬리 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라고 결론 내렸다.
대표들 대다수는 소비에트연방이라는 ‘악의 제국’ 대신 영연방을 대략적으로 반영한 독립적인 민주국가의 연합이 들어서기를 바랐다. (…) 급진주의적인 면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바트킨은 동료들에게 KGB와 구소련군을 “끝장내고 …… 파괴”할 것을 축구했다. 그리고 소련 핵무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문가인 바트킨은 여기에도 답변을 내놓았다. 장래 연합의 모든 회원국이 전략군에 공동 통제권 및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 제임스 베이커가 이 모임에 참석했다면, 정신 나간 미치광이 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다른 돤찰자인 러시아 학자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살면서 일반적으로 그렇게는 용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 소련의 해체 이후 우리 영역이 구유고슬라비아와 비슷하지만 핵무기까지 있는, 만민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공간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지 않았다는 게 지금도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미국인들은 이를 크게 염려했으나, 우리[지식인들]는 아니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8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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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주보크가 책 곳곳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어쩌고 하면서 슬쩍 조롱한 인사가 바로 레오니트 바트킨입니다. 주보크는 이런 아마추어의 열정이 상황을 더욱더 안 좋은 쪽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한국 현대사를 놓고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대목이죠;

YG
다른 얘기지만, 이 책 전체의 러시아 민주 인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 바로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입니다.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열렬한 지지자였었고, 나중에는 옐친의 자문이었고, 또 소련 해체 과정에서도 비교적 균형 감각이 있었던 민주 인사였죠. 15장에 스타로보이토바를 둘러싼 비극적인 이야기가 나온답니다.ㅠ.

YG
“ 경제 개혁을 위한 두 번째 진지한 시도는 미하일 베른스탐이 이끄는 스탠퍼드 대학의 경제학자 팀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그는 1991년 3월 이래로 러시아연방 최고경제회의의 후원을 받아 모스크바에서 연구했다. (…) 베른스탐은 이 접근법을 “충격 없는 개혁”이라고 불렀다. 서방의 대형 융자 대신 베른스탐과 동료들은 은행 계좌에 있는 국민들의 개인 저축을 투자금으로 이용해, 시장 조건에 입각해 국영기업에 재융자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식으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소련 기업들은 국가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수백만 소련 국민은 투자자가 되며, 서방 자금에 대한 필요성도 줄어들 것이다. 베른스탐은 그러한 전략이 “탈중앙화된 강한 연방”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8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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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사실상, 소련 혹은 러시아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을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제사에 문외한이긴 합니다만, 베른스탐이 제안했던 방식이 197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추진했던 한국 경제 개발 방식과 흡사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YG
“ 1991년 가을, 크라우츠크는 ‘우크라이나 핵’이 정치적 자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골칫거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핵무기 불량이 체르노빌은 사소한 사건으로 보이게 할 만큼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영토상의 비축 핵무기는 향후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핵심이 되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50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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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베른스탐)는 러시아 개혁가들이 개혁과 평화 모두를 원한다면,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즉각적 자유화를 포기하고, 대신에 장래에 명확한 한계를 두고 점진적으로 도입한다. 둘째, 다른 공화국들이 이런 조치에 동의하고 포스트소비에트 전 공간에 걸쳐 다 같이 조율한 자유화 프로그램을 들고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셋째, 러시아를 연방과 여타 공화국들에서 완전히 분리해 독립국가로 만든다. 베른스탐은 개인적으로는 앞에 두 가지가 이전 소비에트연방의 주민들에게 트라우마가 덜할 것이기에 그 선택지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4장 독립, 517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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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러시아인에게 우크라이나는 잉글랜드인에게 스코틀랜드와 같았으며, 더 가깝게 느낄 뿐이었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는 합의 없이 이혼 신청을 하는 격이었다. 러시아의 이러한 심적 태도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충돌하고 향후 몇 십 년 동안 커다란 긴장과 갈등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별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인상은 엄연한 경제적 사실로 더 강해졌다. 소련 경제는 밀접하게 얽혀 있고, 실질적으로 분리할 수 없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 통합성은 러시아혁명 이전으로 거슬러 가지만, 소련 시절에 훨씬 심화되었다. 러시아연방과 우크라이나는 공동의 산업, 과학기술 복합체를 갖고 있었다. 하르코프와 드네프로페트롭스크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공업 도시에 있는 대다수 공장과 실험실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우랄, 시베리아에 똑같은 공장과 실험실 및 파트너 업체를 두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기업과 가계는 튜멘의 석유와 가스가 없으면 굴러갈 수 없었고, 돈바스 광산은 러시아산 목재가 없으면 굴러갈 수 없었으며, 노릴스크의 알루미늄 제련소는 우크라이나산 보크사이트가 필요했다. 소련 전략 미사일과 대다수의 하이테크 무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조립되거나 ‘메이드 인 우크라이나’ 부품이 필요했다. 수십 년 동안 이 경제는 모스크바 중앙에서 관리하고, 재원을 대고, 발전시켰다. 우크라이나 분리주이자들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런 상황을 끝내고 싶었지만, 그 대가는 막대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4장 독립, 528~529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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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이런 대목을 보면, 최근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의 역사가 간단치 않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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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요점은 캅카스 지방 러시아 국경 지대의 전략 요충지 체첸의 분리주의라는 폭발성 있는 쟁점과 관련이 있었다. 그곳에서 사는 체첸계 주민들은 비극적 역사를 갖고 있었다. 제정 러시아는 그 지방을 정복하고 반란을 진압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스탈린은 체첸인들이 독일 침략자들과 협력했다고 그들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는 체첸인들이 본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허용하고 체첸을 러시아연방 내 자치 공화국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그들의 비극적 역사는 지나간 일이 된 듯했다. 하지만 1991년 8월, 소련 국가의 내부적 파열은 체첸을 무정부 지대로 탈바꿈시켰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4장 독립, 535~53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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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체첸을 둘러싼 폭력의 악순환도 결국 1991년 연방 해체가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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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1991년 12월 1일 투표에서 우크라이나 독립 선언을 지지했던) 중 다수가 나중에 자신들은 속았고 국민투표가 소비에트연방의 종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련의 경제적 위기라는 배경과 대조적으로 미래 우크라이나의 번영에 대한 환상은 분명히 작용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4장 독립, 544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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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결론'에서 주보크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 투표를 이렇게 연방 해체와 독립을 찬성했던 1991년 당시 소련 연방 시민의 선택과 겹쳐서 봅니다.

YG
“ 대다수가 모스크바의 자유주의적 지식인인 참석자는 이 지각변동을 전체주의 제국의 종말과 민주주의 신시대의 시작과 동일시했다. 그들은 옐친이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테고, 그러면 폴란드의 경우처럼 공산당 기권원이 사라진 러시아 정부가 구성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치 않았다. 운동의 지도자인 유리 아파나셰프와 그 외 러시아 민주주의자는 별안간 돌격이 멈춘 기병 여단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반대했던 당은 사라졌고, 가시적인 공통의 공격 대상은 이제 없었다. 러시아 민주 운동 진영은 경제와 국가 건설, 재정 안정화를 어떻게 해결할지 잘 몰랐다. 이런 문제는 군중을 동원하고 선전 유인물을 찍어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3장 불협화음, 480~481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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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aida 네, 저도 다른 책 읽다가 칼리닌그라드가 칸트의 퀴니히스베르크인 줄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 변방의 철학자였더라고요. 하하하!

YG
올해 초에 칸트에 관한 재미있는 책이 한 권 나왔었어요. 이 책도 이런 주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칸트, 하이젠베르크, 보르헤스의 집단 평전을 겸한 실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랍니다.

천사들의 엄격함 -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그리고 실재의 궁극적 본질인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 철학자이기도 한 윌리엄 에긴턴의 책으로,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 보르헤스, 불확정성 원리를 주창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근대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라는 세 사람의 삶과 저작을 독창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실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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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우리 3월에 『3월 1일의 밤』(돌베개) 읽으면서 많은 분들이 '김규식'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 이런 얘기 하셨던 기억 나세요? 역사학자 정병준 선생님께서 『김규식과 그의 시대』(돌베개) 책을 펴내시려나 봅니다. 현재는 펀딩 중이고요. 세 권 1,880쪽. 아직 미출간 도서인데, 펀딩 소식도 공유하면서 나중에 언젠가 도전할 벽돌 책으로 찜해 봅니다. 신간의 경우에는 최소한 전자책이 나오고 나서 픽할 계획입니다.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 부문을 두 차례 수상한(2006년 <한국전쟁>, 2015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 교수가 해방 80주년을 맞아 <김규식과 그의 시대>(전 3권)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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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굉장하구만요! 좋긴한데 전 좀 자신은 없고, 혹시 나중에 같은 저자의 '한국전쟁' 가시면 고려해보겠슴다. 음하하.

롱기누스
저는 이제야 9장까지 읽었습니다. 주말에 속도를 좀 내보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잘 나가지가 않네요.
9장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역시 미국과 IMF의 속내였습니다. 90년대 초에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경제적 철학이 마치 진리인양 굴었고 그것을 도움을 받는 모든 국가들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1997년이 생각났거든요.
"진리를 전파하라. 경제학의 법칙은 공학의 법칙과 같다. 법칙은 어디서나 통한다" 당시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였던 래리 서머스가 한 말이었습니다. 정확한 맥락이 무언지 몰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저 문장을 가지고만 판단한다면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 없는, 학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언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철학을 가졌던 사람들이 기존 국가제도를 치명적으로 약화시켰고(의도적이던 아니던) 그들이 요구하는 거시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보장 정책과 민간소비를 희생시켜 결국 중산층의 붕괴와 서민들의 고달픈 삶이 시작되는 굴레를 씌웠던 것이 아니었나... 사회불평등이 심화되고, 정치적 긴장 그리고 양극화로 발전되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읽는 내내 왜 미국이 그렇게나 소련을 도와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레이건 정부 다음에 정권을 이어받은 부시는 많은 재정적자를 안고 국정을 운영할 수 밖에 없었고 지속되는 국방비 증액, 높은 실업율 등을 고려하면 자기 코가 석자이니까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었지만, 또 생각해보면 걸프천 치르는데 1000억 달러나 썼던 미국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오죽하면 G7 서유럽 국가들의 정상도 고르비를 안쓰러워했을까요. 결국 미국은 소련이 스스로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G2? 이런거 싫다는 거지요. 자기 혼자 유일한 강대국의 대접을 받고 힘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소련을 도와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더 처철하게 망가지길 바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나중에 올르가르히들로 국영기업에 팔려나가고, 생필품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구르는 소련 국민들의 모습이 그려지겠지만, 9장까지 읽은면서는 그러한 그림자가 벌써부터 짙게 드리워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짠하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러워지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방장님 말씀대로 위대한(?) 한 나라가 이렇게 힘없이 천천히 몰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유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그것을 바라보면서 드는 감정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결론까지 16장이라 치면 7장이 남았는데, 어찌됐든 힘을 내서 달려보겠습니다. 혼자 읽기에는 더 힘들고 어려울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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