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

D-29
베이커는 다시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12월 15일, 셰레메티예보공항에 착륙했을 때 베이커와 그의 국무부 팀은 착륙한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다수의 소련 공항과 공중 수송 시설은 제트 연료유가 없어서 폐쇄된 상태였다. 무국가와 무정부 상태의 회색 지대에서 소련의 원유는 공식 허가 여부와 상관없이 전부 수출용으로 돌려지고 있었다. 수십억의 오일 달러들이 해외 계좌로 빠져나가는 동안, 소련의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띄울 연료가 없었고 소련 전역의 주유소는 비어 있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6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옐친이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에,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는 우크라이나 지도자에게 3~5년간의 유예 후에 협상을 거쳐 국경선 변경 선택지를 제의하라고 건희했다. 그녀는 크림반도를 걱정하고 있엇다.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루썬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 비춰 볼 때, 크림반도 주민에게 우크라이나에 남을지 러시아로 돌아갈지를 생각하고 결정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을 듯했다. 이 선택지는 러시아의 대중을 달래고 국제법에 따라 영토 쟁점을 해소할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었다. 그러나 옐친은 비스쿨리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 하지만 그 회담은 여성 타이피스트와 웨이트리스를 제외하면, 전적으로 남자들의 모임이었다. “러시아 정치에서는 많은 것이 음주와 거친 언어를 동반한 온천의 한증탕에서 결정된다. 여자의 존재는 단순히 기술적인 장애였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빼놓은 이유였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52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스타로보이토바가 협소하고 무익했다고 판단한 고르바초프의 행동을 전기 작가인 타우브먼은 비극이라고 여겼다. 1991년 8월까지 어느 시점에서든 고르바초프가 ‘민주주의’에 기대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을까? 스타로보이토바는 소비에트라는 거대한 조직을 깨부수길 원했지만, 자유주의 성향 지식인들의 능력을 심하게 과대평가했다. 그들이 고르바초프의 손을 잡았더라도, 개혁을 실시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할 만한 역량은 찬참 부족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가 러시아 자유주의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누렸다곤 해도 심각한 역풍을 맞지 않고서 정말로 당을처분하고 ‘제국’을 해체할 수 있었을까? 소련의 자유주의적 통치자와 반공 급진 정치인 간의 논쟁은 참혹하게 중단되고 말았다. 7년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스타로보이토바는 범죄 조직이 고용한 청부 살인범 손에 암살당한다. 스타로보이토바를 추모하며 고르바초프는 말했다. “그녀는 우리가 지금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을 권력 당국에 요구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74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아, 비운의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
옐친은 대필 작가가 쓴 일기에서 “제국의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깨달았을 때 “갑작스레 어깨가 가벼워진 듯한 자유의 느낌”이 자신을 압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에게 “도 다른 길”이 가능했다고도 썼다. 소련 대통령으로 출마해, 고르바초프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라를 하나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왜 이 길을 택하지 않았나? 옐친은 이 문제에 대해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졌다. “나는 심리적으로 고르바초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15장 청산, 552~553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borumis 님, 저도 『순교자』(은행나무)는 읽으려고 찜해 둔 책인데, 벽돌 소설은 『4321』 같은 형식이 아니라면 함께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나눠서 읽기에는 소설이 너무 감질나서 그래요. :(
순교자!미국의 이란 항공기 격추 참사로 어머니를, 고된 노동으로 아버지를 잃은 젊은 시인이 ‘의미 있는 죽음’에 관한 집착 아래 펼치는 ‘순교자 프로젝트’를 그린다. 작가는 아이오와 대학 문예 창작 과정을 이끄는 이란계 미국 시인 카베 악바르로, ‘순교’라는 하나의 행위로 제국주의 미국과 무슬림을 동시에 비판하는 한편, 의미 있는 죽음, 나아가 의미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을 선사한다.
8월부터 12월 사이에 읽으려고 찜해둔 벽돌 책 가운데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의 『모든 것의 새벽』(김영사)도 있답니다! 비주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마지막 책으로, 비정통적 시각에서 인류의 초기사를 다시 쓴 책이랍니다. 그레이버는 유명한 『불싯 잡』(민음사)의 저자로 인류학계에서는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의 연구와 저서는 항상 자의적인 사료 해석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는 비판과 그간 인류학자, 고고학자가 놓쳤던 대목을 과감하게 드러낸다는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데요. 이 책 역시 그 두 가지 면모를 모두 살필 수 있어요. 앞에서 읽은 책들과 상호 보완이 될 듯해서 제가 골라 본 책이랍니다. 당장 8월에 읽을 생각은 아닙니다. 조금 시원해지면 읽으려고요!
모든 것의 새벽 - 다시 쓰는 인류 역사독창적 사상가이자 이 시대 최고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 지난 30여 년간의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 성과를 통해 그간 각광받아온 빅히스토리 계열 역사학자, 지리학자, 경제학자, 진화심리학자, 정치학자 등의 문명사가 실제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2013년 "불쉿 직업이라는 현상에 관하여”라는 장난스럽고도 도발적인 제목의 한 온라인 매체 기고문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직업은 세상에 쓸모 있는가?”
화제로 지정된 대화
고민하다 8월에는 이 책으로 하려고 합니다. 푸코 평전은 나중에 여러분이 관심을 보일 때 제가 다시 제안드릴게요! :) (정말 좋은 책입니다.) 8월에 함께 읽을 벽돌 책의 유력한 후보(사실상 확정)는 2023년에 국내에서 나온 (원서는 2021년) 에익 딘 윌슨의 『일인분의 안락함』(서사원)입니다. 2023년 4월에 나오고 나서 소리 소문 없이 잊혀진 책이라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함께 읽기를 제안해 봅니다. 『일인분의 안락함』은 한때 에어컨 등의 냉매였던 CFC(프레온, 염화불화탄소)가 주인공입니다. 앗, 골치 아픈 과학책이야?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 책은 퀸즈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저자가 오랫동안 취재하고 공부한 기록을 엮은 르포르타주입니다. 굳이 부제를 붙여 보자면 '프레온으로 추적해 본 냉방(쾌적함)의 역사'라고나 할까요? 프레온 같은 냉매와 에어컨이 등장하기 전, 프레온과 에어컨이 등장하고 나서, 그리고 오존층 파괴 위험 때문에 프레온이 금지되고 나서 냉방이나 쾌적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네, 이 책은 프레온과 오존층 파괴와 또렷하게 비교되는 온실 기체와 기후 위기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냉방, 쾌적함, 안락함에 집착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평서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공부와 취재를 바탕으로 한 르포르타주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어느 해 여름보다도 더울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여름에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8월에 함께 읽을 벽돌 책의 유력한 후보로 고민해 봤습니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산업혁명 이후 최고의 발명품, 에어컨은 어떻게 일과 노동의 구조, 인종적 지위, ‘개인의 편리함’을 만들어왔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과 차갑게 빛나는 지적 감수성으로 뜨거운 찬사를 받은 환경 논픽션 에세이다.
저 푸코 평전을 처음엔 푸틴 평전으로 잘못 이해해서 '아직 안 죽었는데?! 벌써?!' 했네요. 아직도 러시아의 망령이.... 푸코의 책은 '광기의 역사'인가 제일 유명한 책이었던 거 같은데, 중세시대에 누구 고문하는 첫부분만 열심히 읽고 뒷부분부터는 이해를 하지 못하여 포기했습니다. 그 책이 아니라 YG 님이 추천해 주시는 책이라면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8월에 선택하신 책은 요즘 같은 날씨에 딱인 책이네요!
하하하! 지하의 푸코가 들으면 엄~청 기분 나빴을 것 같네요. :)
일인분의 안락함! 읽는 재미도 클 것 같고 요즘 시기에 딱 적절한 독서가 될 것 같아 기대됩니다.
오, 이 책도 처음 봅니다. 제목도 좋은데,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더 눈길을 끄네요. 안 그래도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더워 어딜가도 에어컨이 풀가동 중이잖아요(지하철을 탈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들어갑니다). 저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집에서는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 편인데요(사실 에어컨 바람을 좀 지긋지긋해 합니다). 이 책이 제게 날개를 달아줄 것 같네요(하하하). 앞서 올려주셨던 『미셸 푸코 1926~1984』도 철학자의 평전이라 흥미로웠는데『일인분의 안락함』도 저는 좋아요. 사실 책 GPT님 추천 is 뭔들(마침 회사 전자도서관에도 이 책이 있어 더 좋다는 건 안 비밀입니다). 그리고 벽돌 책 모임 관련해서 저도 조심스럽게 한 가지만 의견을 드려보자면요. 문학 작품도 한 번 다뤄주시면 어떨까... 물론 당장은 아니고 언젠가는요. 찾아보니 제가 벽돌 책 모임에 합류하기 전에 문학 작품을 다루신 적도 있는 것 같아(이 장르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시다는 의미?) 말씀드려보고 싶었어요. 이상 벽돌 책 모임 2학년의 소소한 발언이었습니다. 이만 총총...
구매들어가겠습니다. ^^
10장과 11장을 한꺼번에 읽었습니다. 역시 앞서가신 분들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하신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가장 극적인 1991년 8월의 쿠데타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사실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온 고르비의 말에는 이제는 더 이상 힘이 실리지 않는 늙은 사자가 되어버린 모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적 혼락의 불운한 볼모이자 부도난 국가의 지도자였다. 세계는 이미 일극 체계였고,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미래는 부시의 지지에 달려 있었다" p.366. 그나마 부시가 고르비와의 의리(?)를 지켜준 것 같은 우크라이나의 요청 거절 사건은 슬며시 저도 모르게 웃음짓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부시가 양심은 조금 있군...ㅋㅋ' 그래도 그 늙은 여우의 속마음은 모르니, 더 깊은 속셈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10장에서 조금 어리둥절했던 부분은 고르비가 '연합'과 '연방'의 개념을 몰랐을리가 없었을텐데, 왜 실질적으로 연합의 형태를 띄는 연방조약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아직도 잘 안가는데, 조금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았습니다. 아울러 넷플릭스 터닝포인트에서 그 중요한 시기에 고르비가 휴가를 갔다는 부분에서, '헐' 했었는데... 라이사의 고집때문에 갔던 것이었군요. 근데 또 누가 압니까. 못이기는 척 그냥 따라가지 않았을까요?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어디 숨고 싶은데, 와이프가 졸라대니, 울고싶은데 뺨때린 거랄까. 그냥 가버린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불어, 1991년 8월의 소련 쿠데타는 역시 최근 우리나라 쿠데타와 겹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쿠데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반대편 핵심인물을 가두는 것이고, 방송을 장악하는 것은 저같은 민초도 아는 일인데. 그 두 가지를 하나도 안하고 쿠데타가 성공하길 바랬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옐친을 잡지 않고 놔둔 것은 크류치코프가 저지른 크나큰 실수였다. (중략) 공모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가장 막강한 무기인 TV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중략)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무능함의 완벽한 예였다"(p.398.) 이 부분에 대한 주보크의 평가가 너무나도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야나에프의 떨리는 손. 넷플릭스 터닝포인트에서 아주 잘 잡아내고 있었어요.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합니다. 얼굴은 그렇지 않은 척 무심하고 당당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으나, 책상 위에 올려진 손은 그야말로 중풍걸린 사람의 손처럼 벌벌 떨고 있었으니까요. 그랬으니 기자들도 쿠데다 세력들이 우습게 보였겠지요. "기자회견의 청중은 무서워하는 기색을 드러내기는커녕 경멸하고 도전했다"(p.399.) "말라파트테의 핵심 논지는 결연한 리더십을 지닌 열성적 소수파가 모든 것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 급변접에 있을 때, 결과를 걱정하지 말고 과단성 있게 행동해야만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크류치코프는 성공적 쿠데타의 필요조건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할 만한 배짱이 없었을 뿐이다,"(p.408.) 2024년 12월 3일 밤, 용산 사람들은 공부를 했어야 했습니다. 최근의 실패한 쿠데타 정도는 공부해야 했어야 했는데 그만한 노력도 안 한 것이지요. 허구헌날 모여서 술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던 그들에게는 커다란 비극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날 저녁 놀라고 어이없는 가슴으로 3시간 동안 정신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엘친은 훈타의 구성원이 무자비한 냉소주의자와 전체주의적인 폭군이 아니라 '평균적이고, 평범한 소련 사람' 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들이 인명과 합법성을 존중했다고도 시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투항하고 권력을 읽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p.420)" 옐친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2가지 상징적인 사건으로 그렇게 빠른 시간에 권력의 최정상에 올랐으니까요. 탱크위에서 연설하던 모습과 KGB의 침공이 거의 확실했던 순간에도 미국대사관으로의 망명을 거절한 것 입니다. 운명의 주사위는 그렇게 두 번 연속으로 옐친을 권력의 정상으로 올려주었으나, 모두 다 알다시피 그것은 러시아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트리거였다는, 러시아 국민으로서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옐친으로 인해 올라올리히의 등장, 그리고 후계자로 푸틴의 등장.... 마지막으로 이번 장을 읽으면서 고르바초프와 KGB 의장이었던 크루치코프와의 공통점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부분은 잠잠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잠시 위탁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하네요.
와.. 터닝포인트에 그 장면이 나오는군요! 시청을 미뤄뒀었는데 얼른 봐야겠습니다.
10장까지 읽고 진도를 못나가고 있는데 벌써 마무리가 될 시간이 되었네요. 시간이 정말 야속합니다. 중간에 온라인으로 공부를 시작한게 있는데 생각보다 해야할 양이 많아서 며칠간 손을 놓다시피 했어요. 소련을 읽으면서 어렸을 적 철없던 학생들이 모여서 사회구성체 운운하며 열을 올리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이미 소련은 망해가는 중이었는데 ... 풋하는 실소 ㅎㅎㅎ. 소련을 읽으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남은 부분은 며칠내로 읽어보려고 합니당) 고민에 쉼표(마침표가 아닌) 하나를 찍은 느낌입니다. 가치와 현실은 왜 점점 그 간극이 커져만 가는 것일까요? 가치를 앞세우면 현실이 엉망이 되고 현실을 따라가다보면 가치에 대한 현타가 오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이 무더위에 대한 자각을 한층 높일 수 있는 다음달 책도 관심이 가는데 ... 밀린 것이 많아 고민이 됩니다. 잘 고민을 마무리하고 또 뵙겠습니다.
아쉽지만 1부까지만 읽은 상태에서 소감을 올리겠습니다. 남은 부분은 드라마를 보는 느낌일 듯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잘 몰랐던 역사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책이라 읽는 보람은 있었지만 몇 번 말씀드렸다시피 주보크가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관점이 다른 것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저한테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 개인의 문제를 너무 강조하는 것 같았구요. 당시 소련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처한 상황의 복잡함과 어려움을 책에서도 계속 제시하고 있죠.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그 문제들이 만족스럽게 극복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르바초프에게 지나친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저자는 안드로포프 방식의 개혁이었다면, 고르바초프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계속 이야기하지만, 그건 제가 보기엔 그냥 가정일 뿐입니다. 어떤 대안을 선택한 결과로 실패를 했다고 해서 다른 대안을 선택했으면 성공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죠. 고르바초프의 선택은 명백한 어리석음이라기보다 어떤 선택을 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고육지책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공정한 저자라면 그가 처했던 어려움이 무엇인지, 왜 특정 대안을 선택한 것인지, 그 대안을 선택한 결과 예상과 다르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를 성실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평가도 뒤따를 수 있겠고, 온전히 동의하진 않더라도 저자가 성실하게 자기 관점을 주장한다고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제 느낌으로 주보크는 자기가 단정한 결론에 꿰어맞춘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 대목을 에로 들어보겠습니다. 7장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집무실로 돌아온 셰바르드나제는 보좌관들에게 고르바초프가 명백한 현실을 시인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을 파괴하는 분리주의자와 붕괴를 멈추기 위해 비상조치를 쓰길 원하는 강경파 사이에 간신히 껴 있었다. 무력을 써서 피를 흘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대의명분은 전부 의미를 잃겠지.”” 저자는 고르바초프가 분리주의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을 써야 했다는 관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력을 쓰는 데 따르는 나쁜 효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르바초프가 무력을 쓰는 순간 민주화와 자유를 원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적이 되고 그로 인해 고르바초프는 기존 체제를 지키려는 수구파와 한 편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궁지에 몰려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되거나 국가에 더 불행한 상처를 남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좋았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저자는 고르바초프가 처한 딜레마를 충분히 설명하기보다 고르바초프의 현실인식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단정합니다. 그나마 이런 이야기들을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지도 않고 셰바르드나제가 보좌관한테 한 말을 인용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이런 식의 서술 때문에 저자가 정확히 어떤 관점을 주장하는지도 이해하기가 힘든 상태에서 고르바초프를 비난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재정이나 경제적 문제, 정치 상황 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저자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들을 들었는지 평가하긴 힘듭니다. 다른 관점의 책과 비교를 해 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현대사에 대한 많은 지식을 접하고 더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매우 보람 있는 독서였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를 더 접해보고자 합니다.
@오도니안 님의 말씀에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저자의 다소 일방적인 전개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구체적인 사례로 언급하신 부분 - 고르바초프가 분리자들에게 무력사용을 했어야 했나 - 은 여러 각도와 관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더욱 주목했던 것은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으로 소련을 변화시키려하면서도 동시에 '연방을 유지'하려는 모순적 목표에서 방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책의 여러부분에서 등장하고 적절하게 묘사되고 있거든요. 주보크는 고르바초프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소련붕괴의 드라마를 풀어가면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 모순된 목표를 추구하는 지식인(?) 또는 리더의 모습, 그리고 한때 세계를 미국과 양분하던 제국의 몰락의 마지막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옐친은 이제 자신이 모스크바의 실세임을 가르쳐주기 위해 베이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소련 외교 정책은 모두 “쓰레기”라고 말했다. […] 옐친은 소련이 그해 말까지 아바나와 카불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 옐친은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의 동의를 받아내겠다고 약속했고 몇 시간 만에 그렇게 했다. 그날 저녁 베이커와 고르바초프는 기자회견에서 이에 관한 공동 발표문을 내놨다. ‘민주적인 외교 정책’의 예법은 차치하고라도, 이것은 초강대국이라는 소련의 지위에 대한 성급한 해체를 알렸다. 한 역사가는 이 에피소드를 “소련 외교 정책 자산의 급매 처분”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 ‘자산’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7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쿠바 정권은 소련 보조금이 끊겼어도 뜻밖에도 살아남아, 미국 측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남았다. 카불의 나지불라 대통령 정권은 4년 뒤에 무너져서 무자비한 탈레반 근본주의 정권으로 대체된다. 이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전혀 이득이 되지 않았다. 만약 베이커가 1991년 9월에 미래를 점칠 수 있었다면, 뉴욕 쌍둥이빌딩에서 치솟는 연기와 20여 년에 걸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군사 점령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476쪽,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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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스토리의 비밀을 밝혀냅니다
스토리 탐험단 8번째 여정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스토리탐험단 7번째 여정 <천만 코드>스토리탐험단 여섯 번째 여정 <숲속으로>
믿고 읽는 작가, 김하율! 그믐에서 함께 한 모임들!
[📚수북플러스] 4. 나를 구독해줘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AI와 함께 온 우리의 <먼저 온 미래>
책걸상 인천 독지가 소모임[도서 증정] <먼저 온 미래>(장강명)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혼자 보기 아까운 메롱이 님의 '혼자 보기'
파인 촌뜨기들썬더볼츠*고백의 역사버터플라이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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