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6.앨저넌에게 꽃을 - 대니얼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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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술을 통해 지능을 끌어올린다는 소재가 핵심이지만 읽다 보면 과학소설이라는 걸 떠올리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굉장히 현실과 밀접하다고 해야 할까요,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인간의 내밀한 의식과 자아, 기억과 지능을 다루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앨저넌이 돌아다니던 미로는 복잡해도 결국 출구가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내면이란 언어나 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겠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있는 내용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속도를 말씀해주시니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발전 속도가 생각났거든요. 기술의 속도와 인간의 적응 속도가 점점 벌어지고 있고, 다음 기술의 등장 주기가 가속화 되는 현대는 더 이상 개별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느끼거든요. 지능은 선천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후천적 노력과 학습도 요구되는데 앞으로의 기술소외계층이나 적응이 느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분리시키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있을까요. 찰리가 지능의 상승과 하락을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으로 비유하는 내용이 있죠. '나'의 절대적 위치와 별개로 누군가보다 밑에 있다면 찰리 같은 존재로 여겨질지 모른다는 걱정이나 두려움. 우리가 과연 누군가에게는 찰리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지.. 정규분포 그래프는 하나의 곡선으로 이어지지만 상한선과 하한선의 어디까지를 평균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표준에서 제외되는 영역이 생기죠. 누구도 그 기준선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정의하지 못함에도 여전히 서열화하고 나열하고자 하는 건 현대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개인을 '정량화'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연봉을 얼마로 받고, 얼마짜리의 집과 차가 있고, 반이나 학급에서 몇 순위이고 등등.. 미래학자나 사회학자들 중 AI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하지만, 단지 속도와 범위와 양상의 차이일 뿐 과거의 경쟁구도가 되물림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문제는 그 속도가 더더욱 빨라져서 우리 모두 이제는 멈출 수 없는 기관차가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네, @밥심 님 말씀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때로 감정도 울렁울렁 했고요. 어떤 대목에서는 철학소설 같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4) 전 그래도 찰리가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갔다고 봐요. 찰리가 정말 이기적이었다면 그 지능을 이용해서 다른 문제를 일으키거나 시험에 참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능이 높아진 덕에 찰리는 선택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죠. 책에서는 정체성과 선택에 대한 내용도 간간이 나오는데 찰리는 중간에 저항하고 화를 내면서도 끝까지 기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찰리가 아무리 지능이 높아져도 결국 그 또한 다른 존재, 사회의 주류나 기성집단에게는 실험용 쥐 신세로 감시받고, 목적으로서 다루어지는 수단을 벗어날 수 없음을 뜻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 안에서 찰리는 계속 선택을 하고 있었죠. 찰리가 주변인들에게 신경질적이고 까칠하게 대하는 건, 자신이 남들과 지능이 같거나 높아지더라도 어울릴 수 없다는 소외감과 과거의 트라우마를 버티기기 위한 과정 같았습니다. 모두가 친구라고 생각했고 내가 남을 좋아하면 남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과거의 기대가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죠. 타인이 나에게 순수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호의적이라는 보장이 없다면 왜 내가 그들에게 잘 대해줘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계속 답을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봅니다. 정답은 없고, 어떤 관점이 맞다 틀리다를 단정할 수 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과 실험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건 오직 찰리 자신뿐이고 그렇기에 모든 고통과 고민과 갈등까지도 의미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항상 남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기를 바라던 과거에서 나아가, 자신이 남들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찰리에겐 허먼 삼촌이나 빵가게 주인 도너 씨가 더욱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제서야 보였던 것이다. 니머 교수가 말했듯이 나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개자식이었다. 찰리와 달리, 나는 친구를 사귀거나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줄도 몰랐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였다.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 순간에 나는 찰리의 눈으로 나를 보았던 것이고 자신을 내려다보자 실제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부끄러웠다.
앨저넌에게 꽃을 (아트 리커버 에디션) - 운명을 같이 했던 너 p.363~364,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이 분야에 제가 한 기여는 잿더미가 된 이들의 연구와, 저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앨저넌에게 꽃을 p.367,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4장의 거의 끝에 오는 내용답게 이 한 문장에 찰리의 높아진 지성과 그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찰리의 사고관이 모두 다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니머 교수와 재단을 조롱하고 비꼬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 자신에게 다른 삶을 살 기회를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상반된 감정이 모두 전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높아진 지능 덕에 세상의 겉모습을 더 명확히 인식하고, 표면에 감춰진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서 찰리는 개인과 세상의 양면성을 모두 알게 되죠. 그 과정에서 지식과 관계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찾기도 하지만, 신랄하고 비관적인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찰리의 자아가 둘로 나누어지듯 세상이 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나뉘어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흑과 백의 불분명한 회색지대가 훨씬 많은 상태로 양면성이 공존하듯 찰리의 자아와 태도도 모두 '찰리'라는 개인 안에 공존하고 있죠. 자신과 같은 인간에게 실험하기 위해 죽어간 무수한 생명들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감사하는 순수한 찰리와, 자신을 매정하게 내친 세상을 반박하고 싶은 성장한 찰리가 함께 쓴 글 같았습니다.
그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게에 앉아서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한 아이구나”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나는 인정받기를 원했고, 오래전에 내가 신발 끈을 묶고 스웨터의 단추를 채우는 법을 익혔을 때, 만족스러워하던 그의 얼굴에 떠오르던 환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지만, 끝내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앨저넌에게 꽃을 272쪽,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나의 빛이 너의 어둠보다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 죽음이 너의 어둠보다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냐고? 내가 뭐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앨저넌에게 꽃을 362-363쪽,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저 아래에서 올라와 빛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를 보고 웃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웃음은 빛에서 나와 동굴로 되돌아가려는 자를 맞이하는 웃음에 비해 더욱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플라톤 「국가」
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책을 읽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서문을 적어주셨네요. 내용이 가물가물하거나, 다시 읽으면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어서 두 번 읽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 책도 딱 그런 유형의 작품 같아요. 처음에는 서문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다시 보게 되니 동굴로 돌아간다는 말이 더 무섭게 느껴지네요.
1) 저는 이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 매트가 찰리를 끝까지 못 알아보고 가게를 나서는 찰리에게 ============================================================== "이봐, 잠깐!" 그는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내 두 눈을 바라봤다. "이게 뭔 수작이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그는 손을 내민 채 엄지와 검지를 문지르고 있었따. "3달러 50센트를 아직 못 받았소." 돈을 내면서 나는 사과 했지만, 여전히 그는 으심이 풀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 윗 문단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아버지가 찰리를 알아보게 되는건가?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장난치는건가? 하고 되묻는 장면이라 순간 생각을 했었는데, 어이없게도 이발비용을 내라는 이 장면이 유난히 씁쓸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뭔가 찰리의 기억이 현실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말이 어찌 될 지 모르겠지만 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지 살짝 고민하게 됩니다. 가족에게도 어쩌면 버림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진 않을런지.. 지금 까지 읽은 부분 중에 어쩌면 가장 슬픈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자신이나 가족들보다 겉으로 비친 모습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엇다. 매트는 몇 번이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니라고 말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노마는 옷을 잘 입어야 했고, 집에는 좋은 가구를 두어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하도록 찰리는 집 안에 있어야 했다.
앨저넌에게 꽃을 (아트 리커버 에디션) - 운명을 같이 했던 너 p.374,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그러더니 엄마는 내가 씻는 모습을 보고 답답했던 모양인지 비누를 가져가선 내 손을 씻겨주었다. 그러는 동안 엄마가 손을 너무 열심히 씻겨주는 바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의 마법을 깨고 싶지 않았다. 때때로 엄마는 혀를 쯧쯧 차고, 한숨을 쉬었다. “찰리야, 찰리야, 항상 엉망이구나. 제 앞가림 하는 법은 도대체 언제 배울 셈이냐?” 엄마는 25년 전 과거로, 내가 엄마의 어린 찰리였고 엄마는 세상에서 내 자리를 마련하려고 고군분투하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앨저넌에게 꽃을 (아트 리커버 에디션) - 운명을 같이 했던 너 p.380,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문장 자체에는 과격하거나 폭력적이거나 공포스런 내용이 없음에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훈훈하거나 뭉클하기 보다는 긴장되고 숨이 멎을 정도로 조용한 침묵감이 느껴졌어요. 찰리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이제는 알고 있기에, 그녀가 갑자기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찰리의 머리가 ‘정상’이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찰리의 장애를 창피해했던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는 설정이 아이러니하네요.
“찰리 오빠! 안 돼. 가지 마!” 노마가 내게 매달렸다. “무서워!” 내가 늘 맡고 싶었던, 믿음직한 오빠 역할이다.
앨저넌에게 꽃을 (아트 리커버 에디션) - 운명을 같이 했던 너 p.393,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전 노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현재의 삶에서 벗어날 탈출구나 기대고 싶은 사람이 필요해서 찰리에게 매달리는 건지... 하지만 어차피 찰리에게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겠죠.
후자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그저 평범한, 그래서 부족한 한 명의 인간일 뿐.. 어린 시절의 노마도 이해가 갑니다. 오빠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감이 되고 집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손해 본다는 생각에 억울했겠지요. 어린 인간도 다른 존재에게 얼마든지 잔혹하게 굴 수 있고요.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삶의 고충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앨저넌에게 꽃을>의 다른 표지들을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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