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디디온의 <상실>을 읽습니다

D-29
"하루 더 사는 것보다 더" 존이 속삭였다. 이것도 우리 식구끼리만 통하는 말이었다.영화 <로빈과 마리안>에서 마리안으로 분한 오드리헵번이 로빈후드 역의 숀 코너리에게, 함께 독약을 마신 후 하는 말이다. 존은 집중치료실에서 나갈 때마다 (퀸타나에게) 이 말을 속삭였다...(중략)... "하루 더 사는 것보다 더 사랑해요" 석 달 뒤에 퀸타나가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검은 상복을 입고 서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처럼."
상실 p.91-92 ,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존이 내내 죽어있었다는 걸 믿지 않는다면 존을 살리기 위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검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망상적 사고의 한 예로, 나에게 전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였다.
상실 p.33,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우리는 애도라는 그 불특정한 기간에, 바다 밑 잠수함 속에서 지내는 지도 모릅니다. 심연의 고요 속에 머물며, 때론 가까이에서 때론 멀리서 회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뒤흔드는 폭뢰의 존재를 느끼면서 말이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한동안은 폭뢰를 조심하며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빨래를 내놓을 수 있었다. 부활절 오찬 메뉴를 짤 수 있었다. 여권을 잊지 않고 갱신할 수 있었다. 비애는 다르다. 비애는 거리가 없다. 비애는 파도처럼, 발작처럼 닥쳐오고 급작스러운 불안을 일으켜, 무릎에 힘을 빼고 눈앞을 보이지 않게 하며, 일상을 까맣게 지워버린다.
상실 p.39-40 ,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최근에 누군가를 잃은 사람은 특유의 표정이 있다. 아마 자기 얼굴에서 같은 표정을 본 사람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얼굴에서 봤고 지금 다른 사람에게서도 알아본다. 극도로 나약하고 헐벗은 무방비 상태의 표정이다.
상실 p.99,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사실 내가 왜 그렇게 기관절개에 거부감을 느꼈는지는 나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저항감은 존이 죽은 뒤에 내가 매달리던 미신적 사고와 뿌리가 같았다. 퀸타나가 기관절개를 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는 다 나아서 먹고 말하고 집에 갈 수 있을텐데..... (중략) ... 미친생각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실 p.169,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비애는 수동적이었다. 비애는 저절로 생겨났다. 그러나 비애를 다루는 행위인 애도는 주의를 집중해야 할 수 있었다.
상실 p.192,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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