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책이 도착을 안해서^^; 구멍,코요테가 빛과물질 책 속에있는 챕터인거지요~?^^;;
<평론가의 인생책> 소유정 평론가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함께 읽기
D-29

신나는아름쌤

새벽서가
단편집이구요. 구멍과 코요테가 첫번째, 두번째 단편입니다.

청광
"코요테"에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어머니와 아버지)이 현실적인 삶에서 간극을 느끼고, 그 간극이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결국 한 쪽이 무너지는 결과를 참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나는 두 분이 진정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두 분이 서로 끝까지 이해하고 관용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아주 담담하게 아들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어 읽어 가게 되지만, 중간 중간에 특히 아버지가 느끼는 그 깊은 아픔에 가슴이 저리더군요...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배신하는, 어머니도 아프게 느껴져요.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비극으로 몰고 가는 모습이 정말 슬프게 느껴집니다.

청광
"구멍"은 어릴 적에 겪은 외상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르메뜨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과 일맥상통합니다. 물론 후자가 훨씬 더 강도 높은 이야기이지만...

청광
"코요테"에서 "어머 니가 원한 것은 다만 아버지의 질투심이었을 수도 있다"와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속에다 담아두었다"에서 두 사람이 비극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기행
@소유정
<구멍>에 관한 또다른 감상들
1. <구멍>을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 생각이 많이 났어요.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설정이나 사건 전개 방식, 문체 같은 것들이 하루키랑 비슷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
2. 제가 <구멍>을 읽으면서 태그를 붙인 문장은 ‘탈의 부모님은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였어요. 그래도 어른인데 아이한테 너무 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 입장에서는 혼자 살아 돌아온 ‘나’를 볼 때마다 ‘쟤가 아니라 내 아들이 살았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보는 게 괴롭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나‘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더라면 좋았겠지만 너무나 거대한 슬픔과 자책감(10살밖에 안 된 애가 잔디를 깎도록 내버려두고, 아이들만 남겨두고 부부만 낚시를 가는 등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견디느라 ’나‘의 상처받은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을 것 같아요.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의 희생자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무게를 견디며 생을 살아내고 있을 생존자들이 생각나 마음이 먹먹했어요.

거북바위
앤드루 포터의 단편들을 읽다보면
공간을 드리우는 나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구멍 속 <비술나무>
코요테 속<반얀나무>
그중 반얀나무에 얽힌 안도현님의 글이 있어 첨부해봅니다 ~
<안도현 아포리즘 中 '반얀나무의 슬픈 이야기'>
뿌리가 약한 반얀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제 팔뚝에서 다시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수백, 수천 갈래의 뿌리들이 가지에서 땅으로 내려와 흙을 움켜쥐어야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중략>
지금도 반얀나무를 생각하면 허공에 늘어져 있는 그 쓸쓸하고 슬픈 뿌리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가, 내가 나에게 슬쩍 물어보고 싶어진다.

신나는아름쌤
반얀나무 이야기..너무 슬퍼요ㅜㅜ..
튼튼한 뿌리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소유정
나무 이야기 정말 재밌네요! 외국소설이라 그런지 한국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른 환경을 상상하는 재미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거북바위 님 덕분에 저도 남은 소설 속에서 나무에 좀 더 집중해 볼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유정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원래 일정대로라면 오늘 <아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요, 내일 모레(1/29)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과 함께 두 편을 한 번에 다루는 게 어떨까 싶어요. 앞으로의 읽기 일정도 두 편을 한 번에 이야기하는 게 모두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따라서 변경된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 1/29(일):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2/2(목): <강가의 개>, <외출>
- 2/6(월): <머킨>, <폭풍>
- 2/10(금): <피부>, <코네티컷>
- ~2/17(금): 남아 있는 물음들
* 지난 읽기에 대한 답글은 제가 바로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달아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므므
좋아요💙

day
변경사항 확인했습니다!

새벽서가
네, 알겠습니다.
엘리스
네~ 알겠습니다 ^^

신나는아름쌤
어제 책이 도착해서 구멍을 읽었습니다. 영화 '그것'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하수구 구멍 속으로 날아간 풍선을 잡으려다 결국 잡아주지 못한 동생의 죽음이 실수가 아닌 🤡 삐에로란 악의 존재로 인한 사건임을 알게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해서 시간이 순삭했었는데요.
구멍도 비슷하게 훅~몰입하는 사이 끝났네요^^;
외상후유증처럼 오히려 탈의 형과 나에게 큰 트라우마가된 사건의 진실여부.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처럼 안타깝고 속상함 이면에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공존하는 모순적 진실을 담고있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호흡의 단편소설 매력이 듬뿍 느껴지네요~♡♡
기행
<코요테>에서 아버지가 무너지고 망가지는 건 영화에 대한 사랑, 더 근본적으로는 ’당신이 결혼한 열아홉 살의 아가씨, 버클리대 미대 학생, 학생 시절 찍은 자신의 모든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 몇 년에 걸친 그의 유일무이한 팀원‘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인 것 같아요. 아버지는 영화를 사랑했지만 딱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조금의 재능은 단지 좌절의 원천으로만 작용‘했고, 아버지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영화 프리미어 시사회 날 밤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그때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거의 희망이 없어 보이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과 실패를 거듭합니다.
어느 정도 해 보고 안 될 것 같으면 인생의 다른 방향을 찾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영화 감독, 예술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어쩌면 아버지 자신보다도 훨씬 더 아버지의 성공을 바랐는데, 지금까지도 나는 이것이 어머니의 최대 결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17쪽)’는 구절을 보면 실제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서 잘 안 되는 영화(movie가 아닌 film으로서의 영화)에 집착하고, 계속 실패하면서 인생을 허송세월하게 되었죠.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이런 아버지를 언제까지고 계속 기다리며 참아줄 순 없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외도(정신적, 육체적 측면에서 모두)를 직접적으로 목격하는 순간 무너지고 맙니다.
다른 분들이 이미 <코요테>에서의 지하실, 지붕의 공간적 의미나 아버지의 상징으로서의 ’코요테’의 의미에 대해 많이 말씀해 주셔서 저는 한때 ‘젊은 천재’라 불렸던 한 예술가의 애매한 재능과 예술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삶을 망가뜨리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거북바위
'아술' 인증글입니다.
📚아술
앤드루 포터의 소설 속에서는 점과 선과 면을 볼 수 있다.점,선,면.<점>은 홀로 선 나이며<선>은 홀로 선 둘이 연결된 것이고<면>은 홀로 선 둘 이상이 어울어져 입체감을 만드는 것.
'아술 '역시 서술자인 나와 아내,교환학생이자 동거인
'아술'로 이어진 면이자 세 개의 선이고 점이다.
오늘밤 나는 우리집에 묵고 있는 교환학생인 아술을 건너편 동네에 있는 그 아이 연인의 집으로 태워다주고 있다(46)
다그치지 않는다.궁금해진다.그것 때문에라도.
그때의 낙관과 희망이 그립다.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그때만큼 누군가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었던 때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이 그런 형편이 되어버리는 것이 슬퍼지기 시작했다.이럴 바에야 일찌감치 면직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닐까. 불행 같지만 결국 다행한 일 아닐까 싶다. 그 일이 그녀를 이렇게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만 두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노력 중이야.
대체적으로 우리 둘 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너무나 낙담하고, 지치고,모든 환상이 깨진 나머지,다른 누구에게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마흔여섯의 나이에 대마초를 피우는 습관이 들어버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이것은 희극적이며 굉장히 정말 굉장히 슬프게 느껴지는 일이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뭔가 잘못되었어!
나는 대마초에 취한 거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내 아내를 되찾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긴다./서술자
'나'의 점.
행복한 거.그건 죄악이 아니야.당신은 참 자상해.
물러진 기분이 들어.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것 같아./'아내'의 점.
너무 애쓰실 필요 없어요.나는 폴 아저씨 좋아해요.
/'아술'의 점.
우리는 마침내 뒤로 돌아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직면한다.(87p)
소설 말미 마침내 직면하는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읽으며 에드워드 호퍼를 이야기하는 '알랭드 보통'을 소환해본다.
'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황량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황량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준다.'

소유정
거북바위님! 저보다 빠르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XD 문장 말미에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 언급해 주셨네요! 저도 기억이 났어요. 이 소설의 끝에서 '나'와 캐런도 슬픔의 메아리를 직면하기 시작했는데요, 그것이 알랭 드 보통의 감상처럼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행위가 될까요? 부부의 반추가 그런 해소감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더 짓눌리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거북바위
@소유정님 답변 감사합니다😊
오히려 더 짓눌리게 될 것 같다는 말씀에 공감이지만,감정의 유예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지않을까?생각해봅니다.
나와 캐럿이 아니라
나 그리고 캐럿으로 삶의 방향을 바꿀 힘이
아직도 둘에게 있다면 말이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유정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도 푹 쉬었답니다. 오늘은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앤드루 포터의 소설은 모두 읽는 사람의 감정을 콕콕 건드리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늘 이야기할 두 편의 소설 모두 감정의 결을 섬세히 어루만지는 작품인 것 같아요. 우선 <아술>부터 볼까요? 아술의 '나'와 아내 캐런은 불임으로 10년 동안 아이 없이 결혼 생활을 유지했는데요, 교환학생 아술을 하숙생으로 받고난 이후부터 '나'와 아내의 평화롭던 날들에 무언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소설이 그걸 한번에 보여준다기 보다 차근차근 쌓아가는 느낌이에요. 실금이 점차 선명한 균열로 나타나듯이 말이에요. 이 균열은 결국 마지막 장면에 너무나도 분명히 나타나는데요. "우리는 마침내 뒤로 돌아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직면한다."(87쪽) 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듯합니다. 아술과 캐런의 관계에 질투를 느끼는 '나', 아술을 아이/남자의 경계에 두고 묘한 집착을 보이는 캐런, 이 두 사람의 감정과 파국의 결말이 흥미로웠던 소설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아술>의 어떤 부분이 가장 흥미롭게 읽히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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