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소유정 평론가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함께 읽기

D-29
<강가의 개>에서 처음 이야기가 시작될 때 형에 대한 온갖 소문들에 대해 나오면서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일까 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이 소문들의 진위를 떠나 화자가 받았을 스트레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외출>과 함께 이야기하자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비정상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였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에 대해서, 사람들의 시선과 낙인에 대해서 특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형의 폭력에 대해서는 그날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게 대부분 이미지인 화자가 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형의 “일은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었어, 무슨 뜻이야?”라는 말에 다시 ‘무슨 뜻인지 말하고 싶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아무 뜻 없어”라고 말한다.’라고 답을 합니다. 이랬던 화자가 에세이를 쓰려고 했다는 것은 당시에 두려움이나 죄악감 같은 감정을 느끼고 상황을 회피하려다가 시간이 흘러 그날의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말에서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회에서 한 가족과 그 구성원을 바라보며, 때로는 책에서처럼 상관이 없다는 말로 구성원 중 몇을 상황에서 배제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성원 전체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외출>에서는 아미시 공동체의 레이철과 데이트를 하던 열여섯의 봄을 회상하고 있는데요. 새로운 문명을 거부하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아미시는 십대의 어린 '나'에게 호기심을 일게 하기 충분했던 것 같아요. 어딘가 특별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레이철에게 호기심을 갖게 했던 이 특별한 감정은, 소설의 후반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합니다. "나는 가끔씩, 만약 내가 그날 밤 그 아이에게 아미시를 떠나라고―나와 결혼해서 나와 내 가족과 같이 살자고―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곧 대학에 진학하게 될,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으니까."(176쪽) '지금' 시점에서 화자의 생각을 담은 말이겠지만, 사실 그때에도 '나'는 모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와 레이철의 다름이 처음에는 매혹적이었으나 나중에는 결국 그가 자신이 레이철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소름이 돋았네요! <외출>을 읽으며 여러분께 여쭙고 싶은 부분은 166쪽에 있어요. "한마디로 믿음이었다. 믿음과 타이밍. 미끄러졌다 하면,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 하면, 발이 널판 사이로 미끄러져들어가 정강이뼈가 뚝 부러질지도 몰랐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만약 재수가 없어서 발이 쑥 빠져버리는 날에는, 10미터 아래 강물 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어리고 자신감이 넘쳤던 우리는, 물론 한 번도 미끄러지거나 빠지거나 비틀거려본 적이 없었다. 머리속으로 리듬을 타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그렇지만 말했듯이, 정작 중요한 점은 믿음, 나무 널판이 내가 발을 디디는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맹목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리고 널판은 항상 그랬다." 화자가 말하는 "맹목에 가까운 믿음"은 정말 어리고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일 텐데요, 이 책을 함께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그렇게 어리고,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을 이미 훌쩍 지나오셨을 것 같아요^.ㅠ 맹목적인 믿음을 갖기보다 조심스러울 게 더 많고, 믿음 또한 신중하게 쌓아나가실 텐데요. 여러분들의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던 때가 있을까요?
‘내’가 아이작 킹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나는 내가 그를 미워한다고 믿었다.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가 미웠다.” (174쪽) <강가의 개>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외출>의 화자 역시 그때는 미워한다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던 것일까요. 평론가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내‘가 레이첼에게 가졌던 우월 의식의 발현인 것 같아요. “우리는 어렸고 왠지 섹스란 것은 다른 문제들—책임과 성장—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았으며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167쪽)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소설집에 나오는 10대 인물 중 뭐랄까 가장 ‘반-성장적’ 인물로 보여서요. “비정상이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162쪽) (그러나 진짜 ‘비정상’인 사람은 자각조차 못 하는 사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책임과 성장’은 청소년기의 주요한 과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소설집의 청소년들이 어떤 책임을 지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비교해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외출>에서는 아미시와 레올라, 학교에서는 ‘나’와 태너의 무리와 부잣집 아이들처럼 이분법적인 세계가 눈에 띄었습니다. 글에서 나온 ‘동류의식’이란 단어에서처럼 한 명의 인간이 어떤 곳에 소속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사람들 사이에서 묘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느끼고, 소속된 곳과 다른 곳에 대해 경계를 만들어 벽을 높게 세울지언정 절대 허물지 않으려 하면서도 다른 곳에서 위협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요. 더불어 <강가의 개>에서처럼 정상과 비정상, 자연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서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와 자신감, 그래서 가질 수 있는 맹목적인 믿음은 정말 그때에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나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고, 원하는 것만 추구할 수 없다는 생각과 가진 것들이 늘어나 이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따라옴과 더불어 믿음보다는 포기가 쉽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결국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않으려고도 해보고 좌절도 느끼겠지만, 반복되다 보면 또 무뎌져 버려서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하기에. 두려움 없이 가지는 자신감과 낙관이 얼마나 큰 용기이고 패기인지 최근 들어 느끼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 당시에는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 되돌아봤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강가의 개"에서는 "당신이 그후 일어나지 않았을까 예상하는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문구가 이 이야기를 요약해주는 듯했어요. 형제가 서로 다르게 성장해가는 과정, 상대방을 지켜보고 기억하는 이야기...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나 성장 하고 나서는 다 잊혀지거나 재구성되는...
맞아요. 청광님께서 짚어주신 문장에 저도 밑줄을 그어두었는데, 정말 이 한 문장만으로도 <강가의 개>를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외출"은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오는 아미시 소녀와 설레임으로 만났던 시간들과 이후 아픈 기억들을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맹목에 가까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요. 자신은 안 다칠 것이라는, 또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청년기 특징 중 하나지요...
나'는 더그 형이 저지른 폭력에 아예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알 권리'가 있지만,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말에 밀려나는 듯하달까요?라는 질문이 거의 저의 독서 단상과 비슷해서 반가웠어요. <강가의 개>를 읽으며 사람들이 무심히 버려버린 애완견들이나 강가의 개들-강을 따라 훌쩍 자란 풀들 사이에 사는 길 잃은 개들의 무리 가운데 속하는-(p138) 속에 거의 모든 단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유기된 기억,훌쩍 자란 풀들 사이 사는 길 잃은 강가의 개들 같은 불완전한 기억.그 기억 속 방관자. "알 권리"를 방관한 나에게 기억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거북바위님이 말씀해 주셨듯 사람들이 무심하게 버린 강가의 개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 또는 어린 존재들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요테>에서도 외롭게 떠도는 코요테의 하울링을 들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듯이요!
'외출'에 대한 @소유정 님의 질문! 여러분들의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던 때가 있을까요? 책을 읽으며 나와 레이철보다 '맹목적' 싸움으로 머리가 찢어진 후 뇌혈전으로 죽었다는 20대의 아미시 청년,'아이작 킹'이 오래 기억에 남는군요. '누군가는 자신을 찾으러 이웃에 가고 누군가는 자신을 잃기 위해 이웃에 간다'고 니체는 말했다지요. 레이첼과 아이작 킹 그리고 나와 테너 각자에게 그때의 외출은, 나를 찾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잃기 위함이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맹목적 믿음. 어린 시절 0-3세 때 할머님댁에 위탁된 경험이 있는데 그 후로 남은 아동 시절에는 '맹목적'믿음 못 가져본 것 같아요. 어리고 자신감 넘쳤던 때가 있었나? 회상 중이요.
앗 3세 미만이라니! 맹목적인 믿음의 시기가 아주 짧으신가봐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맹목적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요, 산타를 믿는 것?쯤이 아닐까 싶어요ㅋㅋ 저는 한 8살 때까지만 해도 산타를 믿었던 것 같아요. 울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어린이에게는 크리스마스에 반드시 산타가 온다. 어린이의 1년을 지탱하는 이 믿음, 다들 공감하시려나요?ㅎㅎ
모임 일정과 맞게 읽지는 못했지만 늦게나마 참여해봅니다ㅠㅠ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수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감정적이고 뜨겁기보단 체념적이고, 개입한다기보다는 관조적이고.. 비밀도 많고요! <외출>과 관련해서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싶은 때는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고 우리 서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거야. 그 날이 오기를, 올때까지 계속 기다릴거야” 하고 중고등학교 시절-20대 초반까지는 강하게 믿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자꾸 인간관계가 흩어졌다 모였다 빠르게 변하니까 점점 서로에 대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덜하게 되는 것 같구요..
지금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비밀이 많고 관조적인 인물들이 많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나이가 들고, 자라면서 맹목적인 믿음, 아니 어떤 믿음들이 서서히 희미해져 간다는 말씀에도요. 믿음을 주었다가 크게 실망하게 될까봐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것도 있지요ㅠ.ㅠ
<외출> 에 관련한 질문에 답하자면, 전 ‘아니오’입니다. 저는 제가 겨우 기억을 시작할만한 나이에 유괴되었던 경험이 있고, 그 후로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조차도 100% 믿어본적이 없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여러분,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날씨가 조금 포근해진 것 같아 기분 좋은 월요일입니다.* 오늘은 <머킨>과 <폭풍>을 읽기로 했지요. 우선 <머킨>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저는 처음에는 이 소설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읽게 되었던 것 같아요. 바이섹슈얼인 린이 지금은 여자 애인이 있고, 그 때문에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나'에게 애인 대행을 부탁하지요. 아버지와 약속도 불발되고, 델핀과 이별을 한 그날 밤, '나'와 린이 느끼는 감정이 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213쪽의 내용일 텐데요. "나는 이 순간 내가 그녀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만질 수도 있음을, 그녀의 손을 꽉 잡을 수도 있음을, 그러면 그녀 역시 내 손을 꽉 잡아줄 것임을 느낀다. 우리는 갈가에 차를 세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녀는 내게 키스를 할 것이다." 저는 이 부분에서 '나'와 린이 알고 지낸 시간이 오래 되었지만, 화자가 가끔 린의 애인 행세를 하는 것 말고는 성애적 감정을 느낄 만큼의 감정적 교류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린은 바이섹슈얼이나 '나'는 헤테로로 추정되기에 헤테로 화자의 입장에서의 서술에 조금 멈칫하게 되었던 것도 있어요. 뒤에 곧바로 술, 외로움, 두려움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요. 물론 술, 외로움,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충동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어느 때는 술, 외로움, 두려움을 앞세우며 너무 손쉽게 감정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부분들과는 별개로 호세가 등장하는 장면은 매우 좋았어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215쪽)!
‘관계의 고리’(191쪽)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 알아?” (202쪽) 내가 타인과 맺는 ‘관계’와 ‘관계 속에서의 나‘보다 먼저 분석해야 할 것이 ’나‘(혹은 내가 생각하는 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사람인 듯합니다. “결혼을 깨는 것은 두 사람이야, 허니. 나는 그 두 사람 중 하나였고.” (208쪽) 이 문장 역시 흥미로웠는데, 앞선 맥락과 연관 지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관계라는 것은 두 사람이 각각 그리고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린은 ‘나’보다는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이혼이라는 중요한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평론가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도 이 소설 속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내게 한없는 위안이 되었음을 알기나 했는지.” (185쪽) “나는 가끔, 그녀가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린이 우리의 가상 연인 관계를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0쪽) 또한 진행성 난청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에피소드가 ‘나’와 린의 이야기에 어떻게 접붙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었어요. 그런데 어쩌면 이런 ‘불능’의 감각이 이 소설의 주요한 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들을 수 없어서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아이들. 현재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어려운 ‘나’. 서로를 이해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는 린과 그의 아버지. 독자로서 어쩐지 이해하기 어려운 ‘나’와 린의 관계. 앤드루 포터의 소설은 설사 현재형으로 서술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대부분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발생한 일을 화자인 ‘나‘가 지금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것입니다. (즉, 현재완료.) 그러나 머킨의 결말은 현재진행형인데요.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게 허락하는 동안 그녀를 곁에 안고, 그곳에 린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다만 멀리서 지켜본다. 호세의 입술을, 갑작스레 치몰리는 그의 이맛살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215쪽) 저는 이 엔딩을 읽고 어쩌면 이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단편 중 <머킨>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화자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게 아닐까요.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지금 어떤 시절을 지나치고 있는지, 마주하는 사건들을 어떻게 내면화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그런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독자에게 건네고 있으니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요. 앤드루 포터의 화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위치인 것 같은 이 흔들리며 나아가는 화자. 아직 명쾌하고 시원하게(영원히 불가능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주해하지 못하는 사람. 소설 속의 그런 ‘불능’의 감각이 소설 밖으로까지 뻗어 나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즐거웠어요.
머킨에서 복선처럼 등장하는 난청 아이들의 발표. 엔딩에 한번 더 강조된 느낌이라 더욱 주인공의 본인도 해석하거나 결정짓지 못한 마음의 발표를 대신하는 느낌이었어요.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연수)와 비슷하게 과거를 끌어오는 형식이 많다고 느꼈는데, 저도 머킨에서의 주인공은 현존하는 지금조차 불안하고 그래서 사랑인지 명명되지 않은 감정으로 린에게 머물고있는 답답함을 호세를 통해 발현하는듯 하더라구요~제목이 자극적인반면 주제와는 살짝 동떨어진 느낌이었네요^^; '사랑이란 무성영화다.' 소리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이란 문구도 떠오르고..누구나 외롭고 기댈 곁을 찾지만 이유가 목적이되면 사랑이란 진정성은 옅어지는걸까..싶기도 했구요^^; 진정한 사랑이라 여긴 감정들도 어쩌면 식상해진 이별처럼 퇴색되는거라는 허무감등..이 복합적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내는 호세로 표현된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긴 여운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린과 머킨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나 부정하고 있거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흔하디 흔한 미국 가벼운 영화에서 나오는 부모에게 가짜 연인행세를 해달라고 하다 사랑에 빠지는 클리쎄의 약간 변형이라고 할까요. 린과의 나이차이는 서로에게 장벽이 되었을 터이고 옛애인을 만나고 오는 애인을 용납한다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계속 린에게 주인공과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하고 까칠하게 굴었던 것도 이런 그들의 기류를 알아서였던 게 아닐까요. 아버지 앞에서 하는 행세를 즐긴다는 거 자체가 그녀는 그 상태를 기대하거나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습니다. 이전 애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주인공은 섣불리 린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옛애인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무엇을 바라거나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서툰 아직은 성숙된 사랑을 하지 못하였기에 그들의 관계는 진전되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다른 언어로 사랑을 말하던 둘은 호세와 같은 상황이지만 결국 진심으로 서로에게 가닿는 순간을 맞이하는 결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들과 관련된 뭔가가 린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과 관련된 뭔가가, 내 생각에는,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겁을 먹게 한다.] <머킨>에서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왜 린을 꼭 집어 저 상황을 불편하게 여겼을 거라고 작가는 서술한 걸까요? 저 상황이 이 소설의 흐름에 어떤 의미를 주는 설정인지 궁금합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사랑’과‘사랑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외로움, 충동과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부분들과 그 감정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면서 읽었는데, 말 그대로 애인 행세라는 연극에 외로움을 한 스푼 넣어 다른 것들을 외면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 외에는 “델핀은 린보다는 내 나이에 가까운데도, 그 집에 건너가 있을 때 보면 훨씬 나이 든 사람 같은 인상을 받는다.”라는 문장에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마지막 장에 나온 “그러나 떠나기 전, 나는 와인을 한 잔 따르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식탁에 앉아, 눈 속에서 미식 축구공을 던지며 노는 바깥 거리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또래였지만, 그 순간 그들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한 순간이었다.” 문장이 문득 같이 떠오르더라고요. 각각의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진행성 양쪽 귀 난청으로, 그 말은 태어날 때는 아무 이상이 없거나 한쪽 귀에만 문제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양쪽 귀가 다 안 들리게 된다는 의미다. 어찌 보면 그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귀가 안 들리던 아이들, 자기들의 청력이 언젠가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덧없는 희망을 품어본 적 없는 아이들보다 가르치기가 더 힘겹다. 그러나 이런 모습, 자기들이 읽는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나마 입 밖으로 내어보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이 아이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진다.” 이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어떨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이런 상황을 제하고 단순히 ‘나를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떠올려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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