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보르헤스 읽기] 『또 다른 심문들』 1부 같이 읽어요

D-29
잊혀 버린 고스의 이론을 위하여 그 이론의 두 가지 특성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약간 기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우아함이고, 둘째는 본의 아니게 '무로부터의 창조'를 의도하지 않게 귀류법적으로 환원시켜버렸다는 사실, 즉 베단타와 헤라클레이토스, 스피노자, 기타 원자론자들이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가 무한하다는 견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버틀런트 러셀은 그의 이론은 현실화시켰다. 저서 ⟪심리 분석⟫(1921) 제9장에서 그는 몽환적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인류로 가득 찬 이 세상은 불과 몇 분 전에 창조되었다고 썼다.
또 다른 심문들 56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카스트로 박사가 우려하는 것들] 이 짧은 에세이 안에 오역이 너무 많습니다. 출판사 이름에 걸맞은 감수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상 보르헤스 논픽션 시리즈 전체에 걸쳐 계속 반복되는 문제이기는 한데, 지적하는 자리는 아니니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이 에세이는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문화 역사가인 아메리코 카스트로 박사의 논의를 보르헤스가 비판하는 글입니다. 아메리코 카스트로 박사는 스페인 '본토' 사람으로서 변방이자 신대륙의 라플라타 유역 인근 국가에서 스페인어가 타락하고 있는 현실을 '문제시'하는 글을 썼습니다. 보르헤스는 어떤 사안에 '문제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자체에 커다란 의문을 표합니다. '문제'라는 단어 자체가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안에 일단 문제라는 꼬리표를 붙이면, 그때부터 비로소 문제적으로 보이게 되는 진짜 '문제'를 보르헤스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선결문제의 요구란, 증명해야 할 내용을 이미 참이라고 가정하고 그 위에서 논증을 전개하는 논리학적 오류입니다. 보르헤스는 카스트로 박사가 저지른 오류가 소위 인종 청소를 자행했던 나치의 논리와 같다고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모든 유대인은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혼혈'이라고 섣불리 결론을 내린 뒤, 그런 유대인을 인종적으로 말살하려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고관은 대표적인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에 기반합니다. 보르헤스는 본격적으로 카스트로 박사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카스트로 박사가 타락한 스페인어의 사례로 꼽은 예시들 자체가 오류로 점철돼 있다는 것입니다. 카스트로 박사는 문화 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아르헨티나를 '제국의 변방'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르헨티나 하층민이 쓰던 은어("룬파르도")와 가우초 문화의 영향을 받은 언어 용례를 타락의 증거로 채집합니다. 보르헤스가 보기에 그런 사례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로서 대표성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에든 존재하는 방언과 하층민의 언어, 심지어 커리커처인 패러디 텍스트를 모아서 분석한 뒤, 그것이 그 나라의 언어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겁니다. 마치 어느 곳에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들의 언어 습관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뒤, "그 나라의 언어는 [저열한 방언으로써] 타락했다"고 주장하는 격입니다. 무엇보다 '스페인어가 타락한 사례'를 지적하는 카스트로 박사의 문장부터가 이미 타락한 스페인어의 한 면을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신대륙은 스페인어 방언으로 고통받지 않으며, 오히려 '가짜 방언'의 사례집을 만들어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는 본토의 방언 연구가들 때문에 고통받는 처지입니다. 그렇기에 보르헤스는 씁니다. "그들은 자신이 발명한 일련의 횡설수설을 비난하며 먹고 산다." 평소 보르헤스는 겸손하고 점잖고 온건한 톤으로 글을 쓰기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말년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도드라지는데, '자아의 거대한 서재'가 아닌 익명의 군중이 드나드는 '모두의 도서관'이라고 할 법한 스타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겸손한 보르헤스가 썼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랄한 풍자와 강도 높은 비판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보르헤스가 이 글에서 주력하는 비판의 상당수는 '타락한 스페인어 방언의 사례'를 수집하는 카스트로 박사의 문체에 이상할 정도로 집중돼 있습니다(그 이유는 말미에서 드러납니다). 보르헤스는 카스트로 박사의 글에 담긴 생각이 극히 진부하고 빈약하며, 그것을 감싸고 있는 문장은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한 표현으로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박사의 글은 "상업용 문체"의 전형이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카스트로 박사는 다음처럼 씁니다. “그때 유일한 가능성으로 폭군이 등장한다. 그 자신은 막무가내로 뿜어 나오는 대중 에너지의 응축이었음에도, 그 에너지의 분출을 용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목동이 아니라 은근한 억압자이고 뿔뿔이 흩어진 가축 떼를 기계적으로, 난폭하게 우리 안으로 몰아넣는 거대한 외과 수술 도구이기 때문이다.” ⏤64쪽. 박사는 '독재자가 나타났다'는 간단한 내용을 그냥 쓰지 못합니다. "거대한 외과 수술 장치"나, "에너지의 응축" 같은 괴상한 은유를 동원하여 별 내용도 없으면서 현학적인 수사를 남발합니다. 비유컨대 오늘 비가 왔으면 '비가 왔다'라고 쓰는 게 아니라 “천상의 수분 입자들이 중력의 부름에 응답하여 지표면을 향한 수직 낙하 운동을 개시했다”라는 식의 화려하게 텅 빈 수사를 남발하는 식입니다. 심지어, 카스트로 박사는 이미 자신부터도 은유를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은유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카스트로 박사는 작가 '라스트 리즌'이 경마의 은유를 사용하는 것은 진부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 '안테나'와 '축구'의 은유를 한 문장 안에 뒤섞어 쓰는 엉망진창의 오류를 저지릅니다. 또한 카스트로 박사는 에르난데스의 ⟪마르틴 피에로⟫의 마지막 연들을 베껴쓰면서 문체가 수준 미달임을 비꼽니다. 보르헤스는 그런 카스트로 박사의 비꼼을 되받아줍니다. 다시 한번 ⟪마르틴 피에로⟫의 마지막 연들을 인용하면서, 과연 에르난데스와 카스트로 박사 둘 중에 누가 더 일관성이 없고 스페인어 방언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묻습니다. 언젠가 카스트로 박사는 신대륙의 작가 중 문체가 모범적인 몇몇 작가 목록을 나열하면서, 보르헤스의 이름을 시혜적으로 포함시킨 적이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카스트로 박사가 시혜적으로 "정당한 문체"를 지녔다고 평가한 대목을 고스란히 비판으로 되받아줍니다. 이렇듯 탁월한 아이러니야말로 문학으로써 가능한 최고의 복수가 아닐까 합니다.
방언을 연구하는 연구소들이야 다르겠지만,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방언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다. 단지 방언을 연구하는 연구소들 때문에 고통받을 따름이다. 이 연구소들은 자신들이 발명한 일련의 횡설수설을 비난하며 먹고 산다. (···) 그들은 이런 찌꺼기에 의존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것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처지에 놓여 있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다른 심문들 6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서글픈 우리의 개인주의] 반(反)국가적이라고 할 정도로 독특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특성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국가를 불신할 뿐 아니라, 모든 관계란 개인 간의 관계일 따름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이는 미국인이나 유럽인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면인데, 국가를 비롯한 일체의 '질서'를 근원적으로 회의하는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흔히 '유럽적'이라고 불리우는 세계관에서는 "영웅"이라는 고독한 개인을 내세워 집단과 맞서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유럽적 영웅은 기실 집단과 제도에 반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집단과 제도를 교묘히 재승인합니다. 외견상 영웅은 집단에 맞선 개인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종내에 새로 만들어질 제도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는 스토리텔링에 가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영웅이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고 집단에 대립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또 다른 자신만의 '질서'를 내세우고 전파하고 뿌리내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영웅전'의 형태를 빌려 널리 구전되어서 명성을 얻고, 또 자기만의 틀 하나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이렇듯 영웅 서사는 지난 수세기 동안 교묘하게 우리 사회의 제도와 집단을 재승인하는 수단이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반면, 보르헤스가 제시하는 아르헨티나의 영웅관은 독특합니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집단' 자체를 배면으로 삼아 자신의 영웅적 선택을 부각하려는 야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도 철저한 개인으로 남아 있으며, 이때도 선과 악이라는 '틀'을 염두에 두지 않기에 고귀하면서도 천박한 모습을 종종 보입니다. 때론 악하고 또 때론 선한데, 흔히들 말하는 다층적인 캐릭터성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의 일환이라고 보기도 애매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선악이라는 가치 판단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때문입니다. 에르난데스의 ⟪마르틴 피에로⟫가 대표적입니다. 보르헤스의 표현에 따르면, 유럽식 영웅관이 질서∙조화∙아름다운 배열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코스모스'를 대변하는 존재라면, 아르헨티나의 영웅은 무질서∙혼돈∙예측 불가능성으로서 ‘카오스’에 가깝습니다. 가우초의 정신을 물려받은 그들은 정처없이 움직이며, 특별히 통일된 의미나 목적으로 수렴하려하지 않기에, 아무런 제도나 권위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명성이 없기에 아무런 제도나 권위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보르헤스는 유럽의 두 작가 키플링과 카프카를 예시로 들며,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질서'를 상정하고 있음을 간파합니다. 키플링이 질서를 안에서부터 옹호한다면, 카프카는 끝없이 질서 바깥을 상상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에 비하면 에르난데스가 내세운 '마르틴 피에로'는 전에 없던 인물이며, 질서의 안팎이 아닌 그 너머로 나아갑니다. 그는 차라리 무정부적인 존재를 지향하며, 유명한 존재가 아니라 철저한 익명의 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점에서 반영웅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독특한 영웅관은 ‘라메드 우프닉스(Lamed Wufniks)’에서 그 원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라메드 우프닉스는 유대교 카발라에서 나온 개념으로서, 히브리어로 "36명의 의인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카발라에 따르면, 이들은 세상을 지탱하는 36명의 존재로서 모든 세대마다 정확히 36명의 정족수로 구성되며, 이들로 인하여 세상은 파괴되지 않고 유지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자신이 '36명의 의인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며, 서로 누구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그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상을 파괴되지 않게 유지시키는, 완벽한 익명의 영웅입니다. 보르헤스는 이런 라메드 우프닉스에 관한 전설이 아르헨티나의 정신과 공명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무명의 가치를 칭송하는 것이며, 권위에 반하는 것이자, 평범해보이는 일개 개인조차 세계를 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단 점에서 감동적이며 교훈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한국이 자연히 연상됩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탈을 숱하게 겪으며 크고 작은 국난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민초들이 들고 일어서서 몇 번이고 나라를 구한,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조금 특별한 역사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2016년과 2025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평화롭게 탄핵해서 정권을 바꾼,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도 갖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권위는 불신하지만, 공동체적인 가치는 높이 사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 사례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한양 도성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에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들고 일어서서 게릴라전을 펼친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런 서사적 DNA가 뼛속에 새겨져 있은 탓인지, 대중콘텐츠에서도 극명히 드러납니다. 예컨대 옆나라 일본에서 흥행한 ⟪신고질라⟫(2016)에서는 괴수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와 각료 차원의 대응이 강조됩니다. 아무리 그들이 우왕좌왕하더라도, 결국 집단 차원의 대응으로 해결됩니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떠올려 보세요. 부패한 공권력을 배면으로 깔고서, 개인들은 크고작은 집단을 이루어 문제를 헤쳐나갑니다. 보르헤스가 말한 아르헨티나인들의 특성, 즉 외부의 권위를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황을 불신하는" 특성을 연상케 합니다. 공교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있어 세상은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코스모스'인 반면, 우리 아르헨티나인들에게 있어 세상은 '카오스'일 뿐이다.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어떤 문학 작품이 상을 받게 되는 경우 그 책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데 비해, 우리 아르헨티나인들은 제아무리 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저 나쁜 책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인다. 통상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상황을 불신한다.
또 다른 심문들 7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케베도] 스페인의 시인이었던 위대한 케베도를 향한 보르헤스의 복잡다단한 심경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케베도는 스페인어권에서나 유명한 작가였음에도, 문인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문인들의 작가'라고 보르헤스는 평합니다. 그는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작가였지만 실력에 걸맞은 명성을 누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인즉, 케베도는 작품으로써 사람들의 파토스를 건드리려고 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고(그것이 중요함에도요), 더욱이 그의 작품에서는 이렇다 할 상징을 떠올리기도 어려웠던 탓입니다. 케베도는 언어적으로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경직된 전통성을 신봉했기에, 윤회설이나 그노시즘 같은 매력적인 상상력을 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언어적으로는 뛰어났지만 사상적으로는 빈곤했고, 문학적으로는 위대했으나 철학적으로는 무감각했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냉철한 평가입니다. 케베도의 시에 대한 평가 역시 냉정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보르헤스는 돈 호세 데 살라스에게 써 보낸 소네트에서는 그나마 개인적인 슬픔과 분노, 환멸 따위가 감지되기는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케베도의 '기지주의(conceptismo)’적 특유의 기교 때문에 가려지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 케베도의 시가 그 유명한 기지주의 덕분에 유의미해졌다기보다는 "기지주의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냉정한 비판임과 동시에 냉정한 칭송입니다. 무수한 케베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서는 예술성이 비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보르헤스는 케베도의 예술적 진실성은 의심치 않습니다. 케베도 워즈워스를 예고하는 사색적 소네트를 썼고,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종교적 깊이는 탁월할 뿐 아니라 고전적 교양마저 듬뿍 담겨있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케베도는 "칼이나 은반지처럼 언어로 형상화될 수 있는 순수하고 독자적인 대상"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케베도라는 시인 자체가 "하나의 광대하고 복잡한 문학"이라는 것이죠.
케베도의 걸작들은 그 걸작들을 빚어낸 영감과 그 걸작들 속에 내재된 보편적 사고 저 너머에 존재한다. 그의 걸작들은 모호하지 않다. 말라르메,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등의 작품들과는 달리, 수수께끼를 심어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어떤 식으로 말하자면) 칼이나 은반지처럼 언어로 형상화될 수 있는 순수하고 독자적인 대상이다. 그 예가 바로 "토가는 티로산 독에 싫증 나서"이다. 케베도가 서거한 지 300주년이 지났건만 그는 여전히 스페인 문단의 최고봉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조이스나 괴테나 셰익스피어나 단테처럼,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역시 한 사람이기보다는 하나의 광대하고 복잡한 문학인 것이다.
또 다른 심문들 8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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