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는 여자를 향한 마음이 지칠 줄을 모른다.
광마잡담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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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아파트 단지가 더 낫다. 아파트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고 주변에 공터와 공원이 많아 더 여유롭다. 지금은 너무 콘크리트만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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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광수의 글을 존중해 여기선이 아니고 여기서는 이라면 그걸 그대로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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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그가 50권 이상의 책을 내고 죽었지만
나는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소음인의 체질을 타고나 그와
통하는 게 있어 그럴 것이다.
지금도 그의 책을 읽고 있고 앞으로 더 읽을 것 같다.
요즘엔 통 내 마음을 끄는 책이 없는 것도 그 한 이유다.
그는 시와 수필과 소설, 문화비평서, 문학 이론,
손수 그린 그림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26세에 홍익대에서 교수가 되어 30대부터
쭉 연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992년「즐거운 사라」라는 소설로
필화(筆禍) 사건을 겪으며 감옥살이까지 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는 너무 앞서갔고 주변 관변 단체와 법으로
먹는 사는 인간들이 자기의 편협한 생각에 예술을
감히 끼워 맞춰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가 1951년에 태어난 2017년에 죽어
66세밖에 못 산 게 너무나 아깝다.
더 살아 자기 생각을 마구 글에 옮겼으면 한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거리낌 없는 그의 생각을 더 듣고 싶다.
거의 모든 인간이 속의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의식해 그렇고 교수라는 체면 때문에.
그는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오직 혼자 독고다이로
움직여 학계나 문단에서 왕따를 당했지만, 그는 조직에
굴복하지 않고 변절 없이 그대로 솔직성을
유지한 채 죽었다.
나는 그가 시퍼런 달빛 아래서 광활한 초원의 늑대가 되어
고독 속에서 홀로 사냥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런 모습을 하고 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가 주장하는 건 실용과 합리, 낭만, 권위가 아닌 유연성,
생산보단 재분배, 자유로운 상상력에 대한 사랑,
표현의 자유, 정신보다는 육체, 솔직성 이런 것을 좋아했다.
사회에서 욕 안 먹으려고 솔직하지 못하고
적당히 양다리 걸치는 글을 경멸했다.
에로티시즘(Eroticism) 글이면 그것으로 끝내라는 거다.
거기에 시대 정신, 이데올로기 같은 걸 넣지 말라는 거다.
그가 특별히 숭상하는 것은 아름다움, 유미(唯美)와 탐미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정신, 신념 같은 걸 지키려고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성에 대해서도 삽입 성교보다 성희(性戲)와 애무에
중점을 두는 사랑을 외쳤다.
그는 사람에겐 성욕, 식욕, 파괴욕이 있는데 실컷
성욕을 자유롭게 충족하면 자연히 식욕, 파괴욕이
사라져 인간들 간의 전쟁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런 생각들을 지지하고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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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나오듯이 일본 AV도 인기를 끌면 배우를 바꿔가며 계속 그 상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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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태국에서 많이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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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기보단 이제 생선이나 나물과 시골에서 먹던 된장찌개 같은 게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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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자들이 태국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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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보다 튀기가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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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하여
사실 나이 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엔 경험이라도 있어서 농사짓다가 어려울 때
노인에게 물었지만, 지금은 검색만 하면 다 나와 이제
그런 노인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기거나 환영하는 곳도 없다.
영화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좋은 게 하나도 없다.
아파 병원에 가면 생명을 존중해 치료하는 게 아니라
붙들어 놓고 돈 뜯어내려고 과잉진료하는 것에 불과하다.
돈 때문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오래 살면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잠을 자도 전처럼
개운한 것도 없고 기분이 좋을 때도 별로 없어
점점 삶의 질도 떨어져 자신도 힘들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점점 가족들에게도 짐이 되고
젊은 세대에겐 연금만 축내는 기생충 취급받기 일쑤다.
요즘은 정년연장으로 젊은이들이 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가난한 세대라서
젊은 층이 힘겹게 오늘을 견디고 있지만 그들의 세금으로
늘어나는, 부양해야 할 고령층만 점점 불어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하루라도 일찍 죽는 게 그나마 그들을 돕는
유일한 길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안락사 찬성도 늘고 있고,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죽음이라도 자기 자의(自意)로 하겠다며 겨우 숨만
붙어 있어 호스로 몸을 사방으로 연결하기 전에
움직일 수 있을 때 자살한다며 자신의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이젠 죽고 싶어도 맘대로 죽지도 못한다.
옛날 같으면 진작에 죽은 목숨인데
119에 실려 가 다시 살아온 게 도대체 몇 번인가.
그러니 나이 들어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
아니 쓸모는 없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계제(階梯)에 놓여 있다.
실은 예전처럼 자연법칙에 따라 죽을 나이가 되면
죽는 게 제일이지만, 그것도 이제 맘대로 안 되니
자기 나름대로 방해가 안 되도록 노력해야
젊은이들의 눈총을 덜 받는다.
내가 보기엔 최소한 남에게 방해만은 안 되는 여생을
보내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그 누구라도 주장하는, 나이들어 해야 할
필수품목으로 권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자신을 알고 이 시점에서 자기가 뭐를
해야 하는지, 지금까지의 인생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조금이나마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별 쓸모없다지만 그래도 내세울 건 자기 삶의
노적(勞積)밖에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부는 실용적인, 다시 먹고살기 위한 그런
공부가 아니라(그건 도저히 젊은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산 것에 대한 이점을 찾아 연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그 시간만은 즐겁다.
즐겁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권태롭고 거기다가
내면 축적의 일천(日淺)으로 무시하고 우습게
보는 것 같은 사회에 “나, 아직 안 죽었어.”(억울함)를
호소하기 위해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국보 숭례문이나 지하철 5호선에 불을 지르는 것처럼.
그러면 머리가 말랑해지면서 꼰대 잔소리도 차츰
줄어들고 생각도 보다 유연해질 거라고 본다.
나이 때문에 몸은 내 맘대로 안 되지만 정신만은
개방적으로 바뀌고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며
관대해진다고 본다.
철이 든다는 말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하나
좋은 걸 꼽자면 나이듦은 무슨 일이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본다.
나이듦은 그것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나이 예순인 이순(以順)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걸 조금이라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늙은 나에게
약간의 관심을 갖고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남은 인생 진짜 공부, 자신을 구현하는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만이 그 길로 가는 첩경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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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누구나 세상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인연으로 그 헤어짐을 만날 때
마음이 쓰라리고 아프다.
그게 비록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이라도 헤어짐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고통에 빠지게 한다.
내 몸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다.
누구나 그걸 겪어야만 안다.
기르던 개나 고양이가 죽이면 겪어보지 않은 무심한 사람은
“다른 걸 사면 되지?”하고 말하지만, 그게 자식 같아
그러질 못한다.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지 못한다.
뭐든 사람은 다 겪을 수는 없으니까 그것을 겪은 사람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자기 입장에선 쉽게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 말로 나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그는 그걸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강점이 있다.
살아 있는 것과 같이 살았지만, 그 이별로 고통을 느끼니까
남에게 무해(無害)하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다.
비록 헤어지더라도 같이 산 그 추억을 머금고
현실의 시름과 고달픔을 견딜 수 있는 것도 있다.
좋은 것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잠시나마 현실의 설움을 잊고
미소를 띨 수 있어서.
그는 나를 다시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을 남긴 채
내 곁을 떠난, 내겐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누가 뭐래도, 그렇다.
그럼에도 인생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른 인연을 또 맺는 것이다.
거듭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인다라망(因陀羅網)의 원리다.
그게 인간 삶의 모습인 것 같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고, 동시에 삶은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 거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게 불완전하고 어떻게 해도 현실에서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혼자 와서 혼자 가지만 또 동시에, 사는 동안엔
서로 인연(因緣)으로 엮여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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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아.
여행할 때 그 준비 과정이 더 흥겹듯이 사랑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몸치장하고 옷을 이것저것 갈아입으면서
쿵쿵 두방망이질 치는 내 심장은 어쩔 수 없네.
지치고 힘들 때 그만은 나를 항상 곁에서 응원하고
박수친다는 생각으로 금방 극복할 수 있고,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으로
세상이 다 나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사랑하는 우리를 축복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네.
주변에서도 그걸 눈치채 “무슨, 좋은 일 있나 봐?
매일 생글거리고 얼굴도 예뻐졌어.” 하네.
아, 사랑하는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과연 이런 순간이 내게 또 올까.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깝고 영원하길 바라지만 또
내게서 사라질까 봐 겁이 나네.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소중하고 아주 귀중한 시간이네.
비록 헤어지더라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지금 나는 힘겨운 삶을 능히 극복할 수 있네.
사랑은 모든 걸 치유하고 이길 수 있네.
그 순간을 내 가슴 한구석에 새긴 것만으로도
이제 여한이 없네.
세월은 흘러 솜사탕처럼 달콤했던 그 순간이 다시
내 머리에 스치는 순간, 나는 날아갈 듯 환희에 찬
미소를 흘린 채 나른하고 포근한 잠에 빠져드네.
그가 날 포근히 안아주던 그때의 그 느낌을 온전히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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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이 좀 부족하니까 컨디션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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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남자를 떠받들고 여자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 여자 신도가 많은 게 이해가 안 간다. 예수가 미남인 33세로 죽어 항상 젊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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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강한 지배를 받으려는 여자와 모성애를 발휘해 남자를 돌보려는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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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평생 어린애라는 말은 여자처럼 자궁이 없어 새끼를 생산하지 못해 그렇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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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는 화려하게 꾸몄으면서도 마치 어머니나 누나처럼 자신을 보살피고 포용적인 여성을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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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일본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주 반가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반대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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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광수처럼 약속은 잘 안 하지만 한번 정한 약속이 잘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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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이 안 온 건 마광수처럼 속에 울화가 있어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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