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클래식 2025] 8월, 순수의 시대

D-29
이 부유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토대 위 단단하게 좁아지는 곳에는 밍고트가, 뉴랜드가, 치버스가, 맨슨가로 대표되는 소수의 명문가 집단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상상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적어도 아처 부인 세대의 사람들은) 전문 족보학자의 눈으로 볼 때 훨씬 더 소수의 집안만이 그 꼭대기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보퍼트는 밍고트 노부인과 마찬가지로 예술에 문외한이었고, ‘글을 쓰는 친구들’을 돈을 받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부유한 사람은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뉴욕 사회는 당신이 살던 곳에 비해서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겉보기와 달리, 음, 다소 구식 사고방식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김영옥 옮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드러내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다, 뉴욕의 신중하고 오래된 방식대로, 표면적인 문제만 고려하는 것이 나았다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김영옥 옮김
아처의 웃음이 약간 거들먹거리는 미소로 바뀌어 입가에 머물렀다. 그 토론을 지속해 보았자 소용없었다. 오명을 입을 위험을 무릅쓰고 뉴욕에서 시나 주의 정치에 입문한 몇몇 신사들이 맞이한 우울한 운명을 모두가 알았다. 그런 일이 가능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 나라는 정계 거물과 이주자의 손아귀 안에 들어갔고, 점잖은 사람들은 운동이나 문화에 의지해야 했다.
이민이라니! 신사가 조국을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신사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물 속으로 곧장 들어가지 못하듯이 이민도 갈 수 없었다. 신사는 그저 고국에 머무르고 절제했다.
직업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지기는 했지만, 돈벌이가 고상하지 않다고 경멸받았으며, 직업으로서 법률은 사업보다 신사다운 소일거리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런 젊은이들 중 누구도 직업으로 제대로 출세할 희망도, 또 그러고 싶어 하는 절실한 바람도 없었다. 그리고 개중에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미 겉치레의 녹색 곰팡이가 눈에 띄게 피었다.
아처는 벽난로 불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솔직히 그렇게 심한 추문에 휩싸일 수 있는데, 아니 휩싸일 게 뻔한데, 그 대가로 부인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제 자유…… 제 자유는 아무것도 아닌가요?”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책읽는수요일 e북 버전에서요. 10장 후반부쯤에서 아래 두 문장 사이에 내용이 짤린 것 같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들의 이런 유별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림만 있는 두 개 페이지 이후에.. “그냥 ‘다르게’ 하자는 것뿐이잖아요!” 아처가 뜻을 꺾지 않았다.
썩 자연스럽게 연결은 안 되어서 저도 읽으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원문이 그런가 봐요. 문학동네 번역판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문학동네 책으로 읽고 있어요. --- “지금보다 훨씬 좋을 수도 있잖아. 둘이 더 가까워질 수 있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메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면 참 좋겠네요.” 그녀는 여행을 좋아했다. 하지만 웰런드 부인은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별나게 구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건데!” 아처가 고집을 부렸다. “뉴런드! 당신은 어쩜 그렇게 특이하죠?” 메이가 탄복했다.
문학동네 버전이 올려주신 거 중에 제일 매끄러운 거 같은데요? 이 부분 보다 이 부분 앞 뒤로 뉴랜드가 메이와 자신에 대해 하는 말들이 기가 막히죠. 잘 자란 여자를 장님 물고기에 비유하질 않나, 다른 척 하지만 하나도 독창적일 게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운 건 알지만 막상 다르게 살 용기는 없고... 속물적인 뉴랜드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가 참 신랄해서 재밌어요.
민음사 번역본은 이렇게 되어 있네요. 고집하다, 뜻을 꺾지 않았다 대신 외쳤다라고 옮겼는데 저는.여전히 이상한 거 같습니다. ^^;;; --- “우린 더 잘 해낼 거예요. 뭐든지 다 함께하고.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지.”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정말 근사할 거예요.” 그녀는 여행을 정말로 좋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왜 그들이 매사를 그렇게 남들과 다르게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르게’라는 말 한마디로는 다 해명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 같군!” 구혼자가 외쳤다. “뉴랜드! 당신은 너무 특이해요!” 그녀는 깔깔대며 웃었다.
내친 김에 문예출판사 번역본도 확인해봤습니다. 이 번역이 저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데, 원문에 얼마나 충실한지 궁금하네요. ---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을 거요. 우리는 항상 함께 할 거요―여행을 할 수도 있고.”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좋겠네요.” 그녀는 여행을 가게 되면 자신은 좋아하겠지만 자기 어머니는 그들이 매사를 남들과 너무 다르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털어놓았다. “‘다르게’라는 말만으로는 그 이유가 설명이 안 되는 것 같군!” 구혼자가 우겼다. “뉴랜드! 당신은 너무 별나요!” 그녀가 즐거워하며 말했다.
윌북 번역본입니다. 좀 애매한데요...? ^^ --- “지금보다 훨씬 잘 지낼 거예요. 언제나 같이 있을 거고…… 여행도 하겠지.” 메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정말 멋질 거예요.” 메이는, 자신은 여행을 좋아하겠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고백했다. “그저 ‘남들과 다르다’라는 게 행동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말 같군!” 구혼자가 고집스레 말했다. “뉴랜드! 당신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에요!” 메이가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에고.. 가볍게 던진 의문에 @장맥주 님을 너무 고생하시게 만든 것 같네요. 중간에 그림만 있는 페이지가 들어가면서 더 내용이 짤린 듯한 느낌이 들었나봐요. 다른 번역판을 보니 또 괜찮은 것 같네요. 수고스럽게 여러 번역판을 일일이 확인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러 번역판을 확인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짐작한 것보다 꽤 많이 다르네요. 그러다 계속 생각해 보니 책읽는수요일 버전에 들어있는 그림은 어디서 온 건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영문이 아무래도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아래처럼 나오네요. “It might be a good deal pleasanter—don’t you think so? To be together—and travel.” May’s face brightened. “Oh, that would be lovely!” She loved traveling. But Mrs. Welland would never understand why they wanted to do things so differently. “It’s the very idea of doing things differently that makes it worthwhile!” Archer insisted. “Newland! How original you are!” May exclaimed.
우와, 파면 팔수록 흥미롭네요. 올려 주신 영문을 보니 제가 읽던 버전이랑 달라요. 꽤 많이요. 제가 읽는 버전은 1판 6쇄인데 최초의 버전은 잡지 연재였고, 이를 나중에 책으로 모아서 출판을 했고, 출판을 한 후에도 계속 작가가 수정을 해서, 대략 30번 정도 고쳤다고 하네요. 한글 번역이 왜이리 차이가 많을까 갸우뚱했고, 번역가들이 한글문맥을 위해서 자의적으로 많이 고쳤나보다 추측했는데 서로 다른 원문이 존재하니 그럴수밖에 없었죠.... 괜히 번역가들에 대한 오해만 했네요. 밑에 올린 부분이 중요한 수정이 대부분 반영이 된 버전이라고 하는데 영문을 비교해보면 문장이 더 간결해지고 함축되고 문학적인 느낌이 더 풍깁니다. 역시 작가들 눈에는 출판 후에도 작품이 끝나거나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기란 참 힘든가 봐요. “We might be much better off. We might be altogether together—we might travel." Her face lit up. "That would be lovely," she owned: she would love to travel. But her mother would not understand their wanting to do things so differently. "As if the mere 'differently' didn't account for it!" the wooer insisted. "Newland! You're so original!" she exulted.
정말 죄송한데 아무래도 제가 올린 버전은 잘못 된 것 같아요. AI에게 물어본 것인데요, 처음 제가 올린 원문을 읽었을 때는 사실 뭐가 잘못된 줄 잘 몰랐는데 CTL 님이 올려주신 글을 보니까 차이점이 느껴지네요. 제가 알기로 영어는 주어를 계속 같은 형식으로 되풀이 해서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CTL 님이 올려주신 글을 보면 May 라는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계속 she 나 her 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뉴랜드는 메이가 부를 때만 등장하고 중간에 한번 행위자로 나올 때조차 the wooer 라고 받는데 이러한 방식이 제가 알기로는 전형적인 영어의 글쓰기에요. 아마도 AI가 그냥 한국어를 바로 영어로 번역했나 봅니다. 혼란을 끼쳐드려 죄송하고 원문 직접 찾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하~ 여러가지 미스테리가 풀리네요. 앞으로 AI 생성 지식물로 인해 생길지 모를 여러가지 오해가 될 만할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요. 무엇보다도 이디스 와튼과 같은 맛깔나는 문장을 쓰는 작가의 글 스타일과 전형적인 소설적 묘사 문장과의 차이에 대해서 확연하게 느끼게 되는 기회였어요. 단순한 질문 하나가 여러가지 또 생각해 볼 점을 던져주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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