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증정] 안톤 허 첫 소설 《영원을 향하여》 함께 읽어요.

D-29
말리 이야기를 읽고 용훈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용훈이 한용훈이어서 시인이름에서 가져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 보고 있어요
맞아요😊 시를 공부하는 용훈의 이름은 만해 한용운에서 따온 거예요. ‘떠나보낸 님’에 대한 시를 썼다는 점에서, 작가님이 그 이름을 떠올리셨다고 하더라고요.
안톤 허 작가님은 편집자 K의 '번역가의 서점사용법'에서 처음 봤는데 명랑, 발랄하게 책을 추천하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분의 첫 책을 에세이도 아니고 번역서도 아닌 소설을 읽게 되어 신기하고 반갑네요 :)
저도 엘렌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특히 간밤에 자고 있는 사이에 녹음된 엘렌의 연주가 분명한 첼로 연주 아마 나노봇이 한 것일텐데 이것도 내가 한 연주인지 기계가 한 연주인지 첼로도 일종의 도구가 아닌지 이런 부분들을 짚어가는 부분이 마치 예술이라는 것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재미있는 구상이네요.
정말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이 책을 먼저 읽은 해외 독자의 후기 중 “언어와 예술에 바치는 안톤 허의 러브레터”라고 표현한 것이 있었는데, 그 말이 새삼 떠오르네요. 몸이 완전히 바뀌었을 때, 과연 나는 여전히 나일까? 연주자가 음악을 완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면, 악기와 같은 기계인 걸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엘렌의 이야기가, 말씀처럼 예술 특히 음악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언어는 단순히 상호참조하는 정보 조각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고 만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나는 이 단어들이 내 피부에 닿는 것을 느꼈고, 마치 단어가 물리적인 물체인 것 같았으며 혹은 프리즘이 된 내 몸을 단어의 빛이 통과해 스펙트럼이 되어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것 같았다.
영원을 향하여 p.125,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저는 파닛의 이야기가 여운이 오래 가더라구요. 파닛은 한용훈 박사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인격과 인간성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설계한 인공지능이었지만 한용훈 박사의 몸에 들어가 데이터로만 습득했던 감정, 생각, 언어들을 실제로 느끼는 순간을 묘사한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1부 '근미래'에서의 주제를 관통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파닛이 신체를 가지게 되면서 감정과 언어를 겪는 존재가 되는데, 언어와 인간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결국 무엇으로 인간다움이 발생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감상을 덧붙이자면, 어떨 땐 단어가 살아 있는 것 처럼 온도나 물리적인 감각,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파닛이 '1200초 안에 담긴 반평생'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부분에서 제가 느껴왔던 생각들이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밀도가 실체를 가진 존재가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1200초 안에 담긴 반평생”이라는 표현이 정말 인상 깊죠. 글로만 알고 있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뒤 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 밀도와 감각이 실체를 가지고 다가왔다는 말씀이 딱 적절한 것 같아요 :)
저는 말리의 일기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사건이 전개되며 궁금한 것 투성이였어요.
나는 이것을 내 딸에게 넘겨줄 것이다. 이 공책은 딸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쩌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조금 알려줄 것이다. 아직도 빈 페이지가 많이 있다. 그 페이지들은 새하얗고 희망차게 놓여 있다―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다.
영원을 향하여 p162,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지구는 언제나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생명도 함께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꼭 인간의 생명이라는 법은 없을 뿐이다.
영원을 향하여 p165,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결말이 의미를 만든다. 죽음은 영원한 의미 생성자인데, 오로지 죽음 속에서만 어떤 새로운 것이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파닛은 사랑도 느끼고 아이도 갖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멸의 존재이지만 아이는 가질 수가 없네요. 그래서 죽음을 통해 아이를 구할 수 있다면 차라리 더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정말 파닛의 이야기에서는 희망이나 사랑이 보였는데 로아의 이야기로 넘어가니 실로 디스토피아였어요. 나노봇으로 불멸의 삶을 산다는 건 부에 따라 그 자원이 편중될테니 공정함의 이슈였다면 미래에서는 나노봇을 전쟁무기로 사용하게 되니 "미키7"도 생각나고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본성은 진화하지 않고 오로지 전쟁 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네요.
파닛이 희망을 품는 장면과 로아의 현실이 나란히 있어서 더 대비됐던 것 같아요. 말씀처럼 기술보다 더디게 바뀌는 게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 씁쓸하게 다가오네요🥲
사랑은 하늘이나 땅이나 공기나 물처럼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그냥 있다.
영원을 향하여 P.72,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우리가 타자를 묘사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 타자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테스트들이 증명한 유일한 사실은 인간성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 부여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영원을 향하여 51쪽,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시를 감상할 줄 아는 것이 지적 능력이겠죠, 분명히. 시를 생성할 줄 아는 것 보다 더요.
영원을 향하여 p.64,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마음 아파하는 것 보다 그 무엇이 더 인간적 일수 있겠는가?
영원을 향하여 p.135,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입구 덮개 앞에서 그녀는 나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총을 내 옆의 땅에 내려놓았다. 신뢰의 증표다. 존중이 주어졌다. 우리를 둘 다 좀 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제스처다. p.185
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언어를 글로 쓰는 것만이 내가 내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손으로 글을 쓰면-원시인 여자가 되어 동굴 벽에 표시를 하는 기분이다-정신을 강제로 조금 더 느리게 하여 생각이 아주 약간은 더 오래 익어가게 할 수 있다.
영원을 향하여 p20,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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