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팔님의 대화: ‘제1회 인종회의’에 대해서 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책에 인용된 말을 한 ‘사무국장’은 ‘구스타프 스필러’라고 하네요.)
<1911년 만국인종회의 개요>
1911년에 런던에서 열린 '제1차 만국인종회의(First Universal Races Congress)'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20세기 초의 중요한 국제 회의입니다. 이 회의는 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인류 간의 이해와 우정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개최 배경 및 목적
* 배경: 1906년 국제 윤리 학회(International Union of Ethical Societies)에서 펠릭스 애들러(Felix Adler)가 제안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으며, 구스타프 스필러(Gustav Spiller)가 주요 조직자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만연했던 인종주의적 사상과 인종 간의 갈등을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 목표: 과학과 현대의 양심에 비추어 동양과 서양, 그리고 소위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관계를 논의하고 상호 이해, 우호적 감정, 그리고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인종 간의 차이가 열등하거나 우수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주요 특징 및 참가자
* 규모: 런던대학교에서 4일간 진행되었으며, 전 세계 50개국에서 2,100명 이상의 인류학자, 사회학자, 정치인, 법률가, 학생 등이 참석했습니다.
* 참가자: 이 회의에는 유명한 지식인과 사회 운동가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W. E. B. Du Bois, 모한다스 간디, 제인 애덤스, H. G. 웰스, 브라젠드라나트 실(Brajendranath Seal) 등이 대표적입니다.
* 논의 내용:
* 인종 간의 물리적, 정신적 차이에 대한 과학적 논의
* 인종 혼합의 사회적, 물리적 영향
* 인종 문제에 대한 현대적 양심과 평화적 접촉의 중요성
* 인종차별적 편견을 줄이기 위한 교육의 역할
결과 및 영향
* 학문적 기여: 이 회의는 인종에 대한 당시의 과학적 지식을 한데 모으고, 인종의 개념이 얼마나 모호하고 비과학적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W. E. B. Du Bois는 미국이 인종 철학에 있어 과학계보다 50년이나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 사회적 영향: 회의는 인종 간의 협력과 이해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초기 사례로 평가됩니다. 회의 이후 이집트 작가 두세 모하메드 알리(Dusé Mohamed Ali)는 범아프리카 및 범동양 저널인 "The African Times and Orient Review"를 창간했습니다.
* 한계: 일부 비평가들은 회의가 인종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고정된 인종 범주를 강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종적 편견에 도전하고 인류의 평등을 주장한 초기 시도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제1차 만국인종회의는 인종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 인종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종적 우열 개념에 도전한 선구적인 회의였습니다.
“2차 회의는 안 열렸어?”
1911년 제1차 만국인종회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노력이었지만, 2차 회의는 열리지 못했습니다.
1차 회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후속 회의를 조직하려는 계획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좌절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국제적인 협력과 평화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인종 문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지만, 제1차 만국인종회의와 같은 규모와 성격의 국제 회의는 한동안 개최되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논의는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네스코(UNESCO)**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이어지게 됩니다. 유네스코는 1950년대에 인종 문제에 대한 일련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이는 1911년 회의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