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3.니그로, W. E. B. 듀보이스

D-29
이렇게 해서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이 시작되었다. 점점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이 인종적 계급에 기반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인종적 계급이 새로운 산업 체제의 기반이 되었다. 1450년부터 1850년까지 400년 동안 유럽 문명은 엄청난 규모의 인간을 교역 대상으로 삼아 체계적으로 거래해 왔고, 이 거래의 물리적·경제적·도덕적 영향은 아직도 전 세계를 통해 명백하게 인지되고 있다. 여기에 7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 말까지 거의 아무 제재 없이 맹위를 떨쳤던 무슬림 국가들의 대규모 노예 교역이 추가되었다.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149-150쪽,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그렇다면 노예무역이 니그로 아프리카에서 1억 명의 영혼을 희생시켰다고 말하는 것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사람들은 1600년 이후 이 아프리카 땅에 문화가 정체된 원인을 여전히 묻고 있다!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156쪽,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그렇다고 니그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과정에서 박애주의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나중에는 다른 나라에서, 노예제도가 현대 산업 시스템에서는 만족스럽게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예제도의 대가와 비용이 너무 컸던 것이다. 비용이 높은 요인 가운데 초기 디에고 콜럼버스 대농장의 노예 반란에서 미국 남북전쟁 시기까지 일어난 노예 반란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158쪽,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개인적으로 흑인역사 관련 강의를 듣는 게 있는데 남북전쟁 이전 남부에서는 노예가 도망치는 현상이 심화되자 이런 현상을 흑인들의 '정신적 문제'로 보고 질병으로 진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Drapetomania, 우리나라에는 해당하는 단어가 없지만 위키피디아 중문에서는 漂泊症 (표박증)이라고 번역하고요. 표박이란 말이 생소해 찾아보니 일정한 주거/생계가 없는 채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의미로 실제 있는 단어더라고요. 말이 안되는 얘기지만 노예제도가 흑인 노예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런 노예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흑인들만이 도망가는 것이라는 분석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이런 주장은 북부 자유주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근거 없는 소리로 비웃음을 사게 되죠. 당연히 시대가 지나서는 유사과학이자 과학처럼 보이는 무언가로 둔갑해 인종차별을 합리화하는 인종주의로 분류되어 역사에서 사라졌고요. 표박증 이론을 제시한 미국 의사 사무엘 A. 카트라이트는 오히려 노예주가 노예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동등하게 대하면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유 없이 불만이 가득하거나, 짜증이 나 있는 노예는 도망치려는 전조 증상이니 예방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악마를 몰아낼 수 있게 '채찍질' 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했답니다. 어떤 사회문제의 근원을 정신적 문제로 돌리는 이유는 체제에 대한 비난을 하지 못하게끔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개개인이 타고났거나 또는 후천적으로 얻게 된 정신심리적 문제, 즉 개인이 '치료 받아야 할 대상'으로 문제를 국한시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 한다는 것이죠. https://en.wikipedia.org/wiki/Drapetomania
병증에 대한 부각은 불가피하게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로 몰아가고 문제를 처리하는 장소 역시 개인에게 국한시킨다. (중략) 어떤 문제가 질병의 범주에 포함되면 '질병'의 정의상 그 문제는 비사회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개입 수준 역시 사회적 차원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이 문제를 다뤄야 하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개인들 -주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의 몫이지 나머지 사람들의 문제는 결코 아니며 사회 일반이 맡을 문제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히틀러와 나치스를 병든 정신병자 무리로 몰아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인종학살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책임을 묻는 것이, 4천만 독일인과 이것을 수수방관한 세계가 공모한 일로 의심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의 사회 p.85, 이반 일리치 외 지음, 신수열 옮김
전문가들의 사회이반 일리치 전집 시리즈.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 전문가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삶을 지배한다.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지침서이다.
카트라이트는 흑인들의 문제이자 정신병으로 치부하여 체제를 가리고 싶어했지만, 마찬가지로 그런 사이비 이론을 당당하게 주장한 카트라이트 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만의 문제로 몰아간다면 또 다른 함정에 빠지는 것일 겁니다. 문제는 카트라이트 그리고 그와 같은 백인들이 활약할 수 있던 아프리카 착취의 무대를 만든 서구세계와 체제 그리고 그걸 용인한 지배계층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겠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번 책은 흑인역사와 문화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각주나 역주가 많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책의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공부하게 되는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다음 책은 <아이티 혁명사>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듀보이스의 책에서도 아이티 혁명이 언급되고, 미국 역사와 노예사에도 중요한 사건이기에 흐름을 이어 한 번 읽어보려고요. 한달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C. L. R 제임스의 <블랙 자코뱅>이 나온 뒤 오랜만에 나온 아이티혁명사 개설서이다. 큰 틀에서 제임스의 견해를 따르고 있지만, 혁명가 투생 루베르튀르의 전기 형식으로 서술된 <블랙 자코뱅>의 한계를 넘어 아이티 사회와 카리브 해 노예들의 삶을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이름만 들어봤던 듀보이스의 저작을 직접 읽을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책인데도 내용이 참 알차게 채워져 있네요. 많은 자료를 올려주시고 의견을 나눠주신 @은화 님 감사드립니다. <아이티 혁명사>는 지난 모임에서도 언급해 주셨던 책이지요. 기대가 됩니당. 다음에 또 만나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신으로부터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 가운데 생명권, 자유권, 행복을 추구할 권한이 있다.” 미국이 독립선언서를 당당하게 선포할 때 미국 영토 안에는 무려 50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 한 국가로서 호언장담하며 등장한 이 나라는 157년 동안 인간 노예제도를 유지해 왔고, 이후로도 87년 동안이나 이 제도에 집착했다.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183쪽,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새로운 식민 이론은 상업적 특권과 엄청난 이윤의 세력 범위를 유럽 노동자계급 착취에서 유럽의 정치적 지배 아래 있는 후진적인 인종 착취로 옮겨 갔다. 이 아이디어를 수행하기 위해서 유럽과 백인 미국 노동자계급이 실질적으로 이 새로운 착취를 나누어 갖기 위해 초대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남유럽인’(Dagoes), ‘중국인’(Chinks), ‘일본인’(Japs), ‘깜둥이’(Nigger)보다 태생적으로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만연된 생각에 의기양양했다.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234쪽,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지구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피부가 하얗지 않다. 인류애에 대한 믿음은 유색인에 대한 믿음이다. 미래의 세상은 유색인이 만드는 세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유색인 세계가 전승되려면, 이 지구가 다시 한 번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고 인간을 짐승처럼 올가미를 씌워 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성과 선의가 승리해야 하는가?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241쪽,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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