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라는 말은 그 두 부부가 낮엔 싸웠지만 밤엔 또 육체적인 대화가 남아 있어 그것으로 화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컷 싸우면서도 속은 시원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밤의 대화로 이어진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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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는 당한다
일본도 부자를 대놓고 싫어한다.
부자가 아닌 인간들이 많아 그런 것이다.
역시 소수자는 욕을 먹어도 찍소리 못한다.
그래서 다수에 섞이는 게 편하고 쉽게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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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적인 사람을 죽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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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인생 가치
자기가 진짜 한평생 목숨 걸고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그건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한 것이다.
남의 것은 내가 보기에 아주 하찮고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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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방귀를 잘 안 뀌는데 덜 더러워 보인다. 돼지가 언제 방귀를 뀌는지는 모르지만 인간만큼 더럽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인간이 너무 청결에 유난을 떨어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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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에서 영어로 해놓고 한글을 치면 한글로 해놓고 치는 것보다 뭔가 힘이 더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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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보다 더한 것 같다. 일본이 미국물을 더 받는다고 하는데 부자에 대해 뭔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건 한국보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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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미안하거나 부탁할 게 있으면 지나치다 싶게 고개를 푹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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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인간은 분명 한계가 있다.
인간의 눈으로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걸 잠자리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도 인간의 눈으로만 아름답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닭이나 소가 아니고 애완동물로
왜 개가 많은가.
그건 인간과 친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다.
개만 보호할 게 아니라 다른 동물도 적게,
자기에게 맞게 먹어야 한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
그러나 안 그런다.
개를 먹으면 야만인 취급을 받는다.
인간의 시각이라 그런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걸 전제로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건
어린 시절 한때 같다.
인간은 일하고 놀고 사랑하다 죽는다.
일을 놀이처럼 하면 좋은데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
사랑은 시한부(時限附)이고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변한다.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권태(倦怠)가 오고 오히려
아름다운 배우자를 둔 사람이 불륜을 저지른다.
사랑이 변해 권태가 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때는
등수, 진로, 취직 이런 것 생각 안 하고
그저 놀기만 할 때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 같다.
그때의 추억을 가만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어서다.
너무 어리면 기억에 없고 한, 진학 전 3~7세 때가
가장 신나게 놀 때인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엔 이것도 어른들이 빼앗는다.
“어린이에게 놀 권리를!”
가장 아름다울 때를 잃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지워져 버리는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저 놀기만 해야 한다.
놀이터에서 해가 저물도록 놀다가 어머니가
“철수야, 밥 먹어라.” 하고 부를 때까지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마냥 놀 때가 가장 행복하고
그때가 또 부모 입장에서 효도를 다할 때라고 하지 않나.
그 시절을 기억하고 늙어서도 그 힘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 추억으로 사는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기 때문이다.
시골 동네서 TV도 없고 심지어 전기도 안 들어올 때
아이들이 밤에 다 쏟아져 나와 달빛과 별빛 아래
마당에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그저 노는 것이다.
겨울밤에 함박눈이 와서 온 세상이 다 하얗고 하늘엔
휘영청 보름달이 떠 있고 땅은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으면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하얗다 못해 시퍼런 빛을
뿜으면서 마치 숨이라도 쉬는 것처럼 ‘우웅’ 일렁이는 것이다.
이때 세상을 보면, 하늘에서 수많은 별과 보름달이 금방
내 머리 위로 꽂히는 것처럼 빛나고 땅을 덮은 흰 눈으로
차라리 대낮보다 더 밝은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순수하고 놀기만 했던 그 시절에만 보이는 광경이다.
이런 모습이 바로 3~7세 사이의 기억이다.
그때 본 세상도 가장 아름답고, 부모가 나를 생각할 때의
그 나이대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때
● 그저 놀기만 하는 3~7세
● 이때 겪어 본 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음
● 부모도 이때가 평생 효도를 다할 때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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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겐 그냥 상식 선에서만 대화하고 살면 그만이다. 절대 기대 같은 거 할 필요가 없다. 도대체가 대화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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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은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을 다뤄 천재인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영원히 명작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인간의 폭력과 질투와 성욕을 다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 검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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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중엔 A형이 많다. 다른 형의 작가는 아무래도 글에 깊이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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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나이 들어도 잊히지 않는 어릴 적 황홀한 광경)
어릴 적 TV는커녕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
겨울밤 아이들이 넓은 마당으로 쏟아져 나와 줄넘기와 자치기를
할 때 북극성을 중심으로 셀 수 없이 수많은 별이
그야말로 숨이 막히게 밝은 빛을 발하며 아이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추억의 그 장면을 생각할 때,
소를 뜯기고 가래질해놓은 좁은 논두렁을 밟고 소와 함께
서녘으로 넘어가는 불타는 저녁놀이 써레질 해놓은
찰랑거리는 돈에 비쳐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동시에
온통 붉은 물로 물들어가는 그 장관,
잊을 수 없는 어릴 적 황홀한 광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놀이에만 빠졌던 그 시기)
우린 인생을 살면서 일하고 놀고 사랑하는데 일을 놀이처럼
하면 좋지만 그게 맘대로 안 되고
사랑은 감정이 개입한 거라 감정이 변하듯이 사람도
시한부(時限附)여서 영원성이 결여되어 사랑을 하면서도
불안하다.
3~7세 애가 다른 건 생각 안 하고 오직 골목과 놀이터에서
그저 놀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 질 녘
“철수야, 밥 먹어” 하고 엄마가 부르는 그 소리와 함께
그 놀기만 하는 그 장면은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또 부모에게 한평생 할 효도를
이때 다한다고 하지 않나.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자신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어
그걸 그에게 제공하는 그 희생과 헌신)
영화 「시」에 나온 건데, 상대방을 위해 그가
가장 소원하는 것을 자기 몸과 마음을 희생해 가며
그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들어줄 때,
그는 누가 뭐래도-남이 보기엔 뭐라고 그러냐 하지만- 그는
살아온 게 자기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가장 자기가
태어나서 했으면 하고, 하고 싶은 그것을 상대를 위해
해주는 것, 그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기는 그에게 줄 게 그것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데 마지막으로
상대가 그걸 원하고 자기는 그것밖에 줄 게 없는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그 순간, 그것만이라도 하고
죽으면 여한이 없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고 나도 이것밖에 줄 게 없는 것이다.
그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이다.
인생에서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찾고 결국
그걸 시(詩)로 정리하며 실행에 옮겨 아름다움을 발휘한다.
다른 사람은 하찮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에게 마지막으로
할 가장 아름다운 희생인 것이다.
테레사 수녀의 인간과 그 삶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오는 희생, 사랑, 헌신, 보람인 것이다.
(이해관계가 판치는 곳에서도 이에 아랑곳없이 꽃피는 순수함)
우린 왜 순수를 추구하나?
모두가 그걸 바라기 때문이다.
자기가 현실을 살면서 했으면 하지만 용기나 여건이 안 되어
그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실을 떠나 드라마나 소설, 영화 같은 데서
순수를 노래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순수한 사랑을 원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조건적 만남이 판을 치지만 그런 현실이니까
더 순수한 사랑을 바라는 것이다.
내가 절망에 처해 있고 우울할 때 또는 마지막에 더
그런 순수를 바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 그래도 백마 탄 왕자님이
가시덤불을 헤치고 날 구하러 오는 장면을 꿈꾸는 것이다.
순수하지 않고 계산적으로 굴면 바로 정나미가 떨어지는데
상대가 순수하게 날 위하고 돕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
나는 감동하며 그를 좋아하고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이다. 이때는 진흙탕에서도 순수하고 의연하게
아름다운 연꽃의 순간이다.
소설 「소나기」에서의 소녀의 순수한 사랑과
영화 「용의자 X」에서의 류승범과 영화
「드라이브」에서의 라이언 고슬링의 자신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이상형을 향한 자기희생적 무조건적 사랑.
이들의 희생은 희생이 아니다.
자기에겐 그게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다.
자기 목숨을 버리더라도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그건 자신이 꼭 해야 하고 안 그러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신조차 잊을 정도로 푹 빠지는 자신만의 취향)
식물을 기르고 꽃을 가꾸고 다듬는 것이 되었든
독서가 되었든 등산, 게임, 운동, 여행이 되었든
가장 다 잊고 그만 빠져버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그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체여도 좋다.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나를 잊을 정도로 거기에
빠지는 것이다.
몰아(沒我)의 경지다.
현실의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염증 같은 게
그 순간을 만나면 다 잊고 평정심을 다시 찾고 너그럽고
충만해져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는 다시 여기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자기만이 빠질 수 있는 취미나 오락, 놀이 같은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에 빠지는 그것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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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이쪽으로만 신경 쓰게 해놓고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살인이 발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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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결론은 있는데 그 과정을 너무 상세히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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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회 통념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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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을 묻지 마라
직장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1위가
상사가 자기 사생활을 캐묻는 거란다.
그것도 부정적인 것만.
아니 묻는 것도 아니고, 콕 집어 하는 지적질이란다.
업무도 아닌 그 사람 인격 전부를.
부하직원의 취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것에 대해 모르면, 자기도
관심 가지고 배워볼 생각과
그게 직장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열심히 하라고 격려, 응원하는 게 아니라 단지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걸고넘어져
함부로 평가하는 것과 같은 조언도 아닌
해롭기만 한 충고, 쓸데없는 오지랖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순전히 자기가 그렇게 살아온 것, 자기가 이미 가지고 이룬 것,
그걸 잣대로 평가하는, 그런 것만 묻는다.
자기는 이미 그 잣대를 통과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들어보면 결국,
“이런 데, 넌 왜 그걸 안(못) 하니?” 이 소리다.
직원의 단점(사회 통념이나 주류(主流)에서 벗어난 것)만
콕 찍어 그걸 공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니 누가 앉아서 대화하려고 하겠는가.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살살 피하기만 할 것이다.
각자 자기 자리로 얼른 돌아가려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 자리가 편하지 않고 불쾌감만
조성할 뿐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면 뭔가 해보려고 하는 업무에서도 협업(協業)도 안 된다.
자기를 불쾌하게 한 상사를 과연 그 직원이 도울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하라고 하니까 그저 시키는 것만 할 뿐이다.
그 직원을 이렇게 만든 건 상사의 쓸데없는 사생활 캐기다.
그 직원도 나름 맘에 안 드는
사회 통념(通念)과 싸우느라 힘든 처지인데도,
그걸 알아주고 그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하기는커녕
상사가 그 상처를 덧나게 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도 그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그의 그 노력과 성심(誠心)을 존중해야 한다.
그 자체도 또 하나의 소중한 삶이다.
자기 삶만 소중한 게 아니고 그만큼 남의 삶도 소중하다.
그 삶을 훼손하고 난도질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평가자라 바로 면전(面前)에선,
자기주장과 논리가 갖춰져 있어도
반박하지 못할 뿐이다. 아니 안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 염증, 앙금만 쌓여 갈 뿐이다.
전형적인 ‘입틀막’ 구조의 모양새다.
사생활 묻기 간섭은 자기 생활 습성, 몸에 밴 가치관과
사회 통념만이 기준이다.
사람은 자기와 달리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도 말이다.
사생활 침해는, 그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로 그 상사와의
소통(疏通)과 마음 나눔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줘
회사 성과, 나아가 직원 모두의 발전에도 안 좋게
작용할 게 분명하다.
직원 간의 유대감(紐帶感)을 바탕으로 한 업무 협력이
이런 상태에서 과연 가능하겠나?
사생활 캐묻기는 직원들을 뿔뿔이 흩어놓는,
아무 효과 없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호기심과 호의를 갖고 묻는, 그 자체는 안 좋을 수가 없다.
오히려 만나면 반갑고 무람없이 대화하기를 바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같이 관심 가져주고
호응해 주는데 누가 싫어하랴.
그 직원이 푹 빠진 취미엔 무관심하면서,
자기 기준으로 지적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니까 그게 문제다.
사생활 캐묻기는,
한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결코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직원에게 해만 되는 안 좋은 버릇이고
직장 내 괴롭힘과 하등(何等)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자기가 뭔데, 한 사람 전부와
그의 인생 방향을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裁斷)하나?
그것도 여러 사람이 듣는 데서.
자기 인생관과 가치관이 모든 인간에게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 진리라도 된단 말인가?
거꾸로, 자기 인생을 통틀어 남이
함부로 쓰레기 취급해도 듣기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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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부탁하는 걸 아주 결례로 여긴다. 나하고 비슷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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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어린 시절 황홀한 체험)
TV도 전기도 없던 시절, 어느 깊어가는 겨울밤.
북녘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린 밤하늘의 별빛이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숨 막힐 정도로
영롱한 빛을 발하며-쏟아지는 그 황홀한 광경, 그 광경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되어 절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그 순간을 회상하며 또 어려운 이 현실을
뚫고 오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나.
어릴 적 황홀한 체험-가장 아름다운 순간은-은
삶의 밑거름이 되고도 남는다.
(그저 놀이에만 빠졌던 시기)
미취학 시기(3~7세), 그저 놀이에만 빠질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기임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시기는 전적으로 부모의 보호를 받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부모가 그들 세계의 전부이고,
부모는 절대적 존재와 일치한다.
그 시기는 순간이고 아쉽게도 짧다.
그런데도 요즘 어른들은 그것조차 빼앗는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지우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놀 권리를!’ 다시 돌려줘야 한다.
이 시기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고, 부모에게도 평생 할
효도를 다하는 시기라고 하지 않나.
(상대가 간절히 바라는 걸 자신이 유일하게 갖고 있어
그걸 그에게 제공하는 희생과 헌신)
이창동 감독의 「詩」란 영화에서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걸 자신이 가지고 있다.
자신은 시한부(時限附) 인생이고, 손자는
속죄가 가능하지 않은 죄를 저질렀다.
얼마 안 남았지만,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갚고 자신만이 가진 유일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에게 성(聖)스럽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시(詩)를 읽고 지으며 비로소 자기가
할 일을 찾아낸 것이다.
이처럼 시를 쓰면서 생각하다 보면 중요한 게 뭔지,
앞으로 자신의 방향을 주저 없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나하나 수행하는 과정이 숭고하고 아름답다.
이건, 마치 테레사 수녀의 한 인간과 그 생애(生涯)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오는
희생과 헌신, 사랑, 삶의 보람과 견줄 수 있을 정도다.
생의 수많은 순간 속에, 이것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해타산의 혼탁 속에서 이에 아랑곳없이 피어나는 순수함)
이런 순간은 인생이라는 시궁창에서 고고(孤高)하게
피어나는 연꽃과도 같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소녀의 소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그렇고,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영화 「용의자 X」의 류승범과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의 이상형(理想型)을 향한
사랑이, 그런 순수함(Innocence)이다.
그건 자기 인생에서 함부로 훼손되어선 안 되는,
고수(固守)해야 할 고귀한 그 무엇이다.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지켜야 할 존귀함이다.
반드시 해야 할 자신의 의무이자 사명(使命)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겐 큰 위안이고,
그게 사라진다면 자신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동시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와 그 중 세상에 남을 것을 고른다면
주저 없이 그를 고를 것이다.
좀 더 성스럽게 표현하면 시궁창에서도 피어나는 연꽃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나는 사라지지만 아마도 나와 같은 그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이 세상에 꼭 남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로선,
당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키지 못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살아야 할 하등(何等)이유도 없는 것이다.
지니고 있는 자의 순수와 그 순수를 지키려는 자의
그 순수,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자신조차 잊을 만큼 푹 빠지는 자기 취향)
세상은 스트레스로 넘친다.
그게 나를 마구 헤집어 놓는다.
현실에서 그걸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다.
나만의 가상(假想) 공간(취향, Preference) 같은 걸 만들어
거기에 푹 빠져 현실의 고단함을 씻어버리는 것이다.
거기에서 이완(弛緩)하고 충전한 다음 전열을 가다듬어
현실의 생활전선에 다시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니 그 세계는 현실의 또 다른 연장선상이어선 안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유리(遊離)된 공간이어야 한다.
미친 듯이 빠져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는 게임이나
절대 알아보는 이 없는 오지(奧地)로 훌쩍 떠나는 단독 여행,
존경하는 작가와 넓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독서의 세계 등
이런 가상 공간에 몰입, 침윤(浸潤)하는 순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이런 것들이 가장 아름다운데,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각자 하나 이상, 그 순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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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겸손하고 예의를 잘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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