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5. <일인 분의 안락함>

D-29
하지만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요? 노동시간이 늘어났다는 게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표현 같아요. 에어컨은 노동 시간을 늘린 게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린 것이고 그 덕분에 기업의 소유자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산량이 늘어난 것이 아닐까요? 경제가 성장해야 복지 예산을 비롯해 정부가 쓸 수 있는 세금도 늘어나고 일자리도 생기고 근로시간 단축이나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에의 투자를 비롯해 긍정적인 사회변화의 기반이 되는 역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무척 우파적인 것 같지만 경제 성장과 다른 가치들을 조화시켜야 하는 것이지 경제 성장의 가치를 폄하하는 듯한 시각에는 공감이 잘 안되요.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도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테일러리즘이나 포드의 일관생산도입 같은 일들과 에어컨을 설치해 작업하기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일은 좀 결이 다르지 않나 싶어요.
미국에서 에어컨이 처음 공장에 도입됐을 때라면 시카고 노동자들이 하루에 8시간만 일하자고 시위하고 파업하다가 총 맞고 죽은 메이데이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때가 아닌가요. 초기 자본주의 산업 사회의 노동 시간은 이미 살인적으로 길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이 싸우고 피를 흘려서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해낸 것인데, 그때로부터 100년이 넘게 흘렀지요. 전 이제 하루 4시간만 일했으면 좋겠어요. 주4일 근무제도 빨리 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죠. 제가 고3때 취업 나간 사업장에서는 하루 13시간씩 일을 시킨 적도 많은데, 그 직장을 그만둘 자유는 사실상 없었죠. 오래 전 일이라 그렇다 치려고 해도, 은유 작가의 책을 보면 요즘도 노동 환경이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더군요. 나중에 대학을 나와봐도 야근하는 건 똑같더라고요. 싫으면 나갈 수 있다는 게 다를 뿐… 그래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어딘가에서 또 일을 해야 하죠.
저도 노동 시간 단축에 찬성합니다. 시장 이론에 따르면 기업과 노동자가 자유롭게 협상해서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만, 현실적으로 협상력의 차이가 있고 또 다른 무슨 요인 때문이든 시장 이론대로 잘 안 맞는 것 같고, 노동조건은 사회적인 합의로 정해져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토요일에 출근해 본 시기가 있었는데 주5일 근무제 당시 논란이 많았지만 그 덕을 봤죠. 만약 반대 논리가 이겨서 10년 정도 제도 도입이 늦었다면 제 청춘에 여유가 훨씬 부족했겠죠. 주52시간 근무제도 효과가 느껴졌구요. 다만, 노동 시간을 늘리는 것과 노동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건 서로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에어컨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노동 시간이 줄어들거나 작업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그건 노동자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아요.
더운데 에어컨 없으면 저라도 일 못 하죠, 낮잠을 자겠죠! 하하 제가 생각하기로 9장에서 얘기하는 초점은 에어컨이 노동자가 일할 때 편안하게 해주고 효율을 높인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쾌적함으로 인해 어떻게 노동 시간을 늘리고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자본주의에 기여하게 되었는가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견해가 참 흥미로워서 8,9장 모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특히 8장은 철학 에세이 같기도 하고 역사, 사회학, 과학 얘기도 다 섞여있는 느낌이라 더 재밌었어요.
초기의 에어컨 산업은 불편함은 구식이고, 어쩌다 겪는 불편함이라는 낡은 생각은 진보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며, 예전의 ‘나쁜 공기’나 ‘집단 독’처럼 불편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근절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업계는 대단히 심각하고 유독한 생활수준을 안전한 것으로 인식되도록 세상을 세뇌시켰다. 편안함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갈망하고 획득해야 하는 상품이 되었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163쪽,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그리고 저는 이런 시각도 마찬가지로 공감하긴 어려운데 저희 집에선 지금도 에어컨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 여름을 나면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내년 여름이 되기 전엔 놓기로 했지요. 이런 결정을 할 때 불편함을 정의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진 않았다고 봅니다. 명품 가방이나 고급 자동차 같은 경우는 문화의 영향이 클 것 같지만 냉방에 대한 수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리적 욕구라는 측면이 큰 것 같아요. 산업 초기에는 마케팅 역할이 컸겠지만 마케팅만으로 수요가 확산된 건 아닐 것 같습니다.
이 대목을 저는 ‘초기 에어컨 산업계의 의도와 행위가 그랬구나, 그게 널리 잘 먹혔구나’ 하면서 읽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때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얘기인 것 같아요.
지난 책에 이어 이번에도 계속 이런 의견만 낼 거 같은데 제가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니겠죠? ^^;;
저는 같은 편이 계신 것 같아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외롭지 않아요. ^^;;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완독하시죠!!
당연히 완독합니다. 저 혼자라면 읽지 않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벽돌책 모임의 매력 중 하나라 ^^
저도 그래서 이 모임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ㅎㅎ 게다가 YG님이 추천해 주신 책은 제가 절대 접해 볼 수 없는 책이라서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읽어요.
조금 더 얘기해 보자면 어떤 소비는 잘못 되었고 어떤 소비는 괜찮다고 하거나 소비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소비가 좋은 것인지는 각 사람이 판단을 해야 할 문제인 것 같고, 소비를 줄이는 건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작용이 클 것 같습니다. 다만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등 외부효과가 있는 경우 가격과 규제와 보조금 등을 통해 정부가 개인의 소비 조건을 변화시키고 생산에 들어가는 자원이 재분배되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소비를 해야 경제가 돌아가니까 정부에서 소비쿠폰도 주는 거겠죠. 그런데 가끔 생각을 해봅니다. 소비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의지가 박약이라 주기적으로 이런 생각을 안 해주면 휘둘릴 수 있거든요. 그닥 필요도 없는데 세일해서 사고, 유행해서 사고, 남들이 야 그 나이엔 이런 가방 하나 있어야지 하니까 사고, 이렇게 소비를 해서는 안 되겠다고요. 이게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그 자체가 오늘날의 기후위기에 큰 몫을 한 것 같아서요.
말씀하신 것처럼 대량 생산과 소비를 지향하는 체제 자체가 기후위기의 근본적 원인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도 해결될 수 없다고 보는 주장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대량 소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자본주의를 대신할 만한 대안적 체제가 없어 보여요. 소비와 생산이 준다는 건 성장률이 낮아지거나 마이너스가 된다는 건데 그런 경우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엄청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잖아요. 주식투자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자영업자들, 정리해고를 당하는 노동자, 거기에 세금도 줄어들고 복지예산도 줄고 투자도 줄고 기술혁신 속도도 늦어질 것이고. 그런 방법으로밖에 기후위기가 해결될 수 없다고 하면, 그래도 지구가 뜨거워져서 인류가 멸망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다면 다른 방법들이 있었으면 해요. 제 생각엔 소비나 생산 전체를 줄이지 않더라도 그 구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게 한 가지 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자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는 대신 집 근처에서 댄스 수업을 듣는다거나, 소고기를 먹는 대신 닭고기를 먹는다거나.. 정부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올리거나 어쨌든 기후위기를 발생시키는 데 기여하는 생산과 소비에는 비용을 늘리고 태양열 보급 등 도움이 되는 방향에는 예산을 쓰고 그 와중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최대한 지원하고. 그런 정책을 펴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은 어차피 현실에서 너무 미약하지요. 그런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말을 해봐야 그로 인해 생산과 소비가 줄지도 않고요. (쓸 돈이 없어서 줄면 줄었지 하하) 하지만 한쪽에서 그런 문제를 계속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필요 없는 물건을 안 사고 비행기를 덜 타고 소고기를 덜 먹어야겠다는 등의 대안적 선택도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체제를 갈아엎지 않는 한 다 소용없으니 아무 개선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닐 것이고, 당장 자본주의의 대안이 없다고 해서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지적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요. 고칠 수 있든 없든 이 지경이 된 원인이 뭔지는 알고 살아야 하니까요.
저도 향팔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는 꼭 환경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몸을 써가면 하는 것들이 있긴 합니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 '소비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향팔님 의견과 맞닿아있다 여겨지고요.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일해서 유행해서) 샀으니까 써야 한다는 논리를 가진 분들을 많이 보거든요. 그리고 저 또한 제가 중독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쾌락적인 많은 걸(음식 포함) 제 삶에서 소거했어요. 주변에서는 '거 무슨 재미로 사냐'라는 핀잔을 자주 듣는데 어쨌든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일 테지요(꽤나 지독한 사람입니다). 제가 답답한 포인트는 자본주의 시장의 흐름은 알겠는데, 그 자본주의 시장을 컨트롤하는 기업들이 얼마만큼의 윤리의식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진보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기술이 먼저 가고, 뒤늦게 의식이 따라가니까 세계가 점점 병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 일단 기술은 만들었고, 이제 너희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봐! 라는 느낌이랄까. 그럼 강한자는 살아남고 약한자는...? 장강명 작가님의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을 읽으면서 "기술이 가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한동안 품고 있기도 했는데, 이걸 자꾸 놓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기술이란 가치를 먼저 세우고, 기술이 그 가치를 따라갈 때 비로소 빛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좋은 가치란 무엇인가'를 천천히 숙고하며 토론해봐야겠죠.
기업은 윤리를 중시하다 그때문에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되는 것이 현실이니까 결국은 정부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 대처에 그나마 더 적극적인 정당을 찾고 유권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맞습니다.. 유행처럼 "윤리 경영 그리고 ESG" 이라는 슬로건은 퍼져있지만.. 사실 기업은 이윤이 최우선이겠죠.. 시대에 맞게 요즘은 친환경 마케팅도 많구요. 정부는 규제도 하고 인증마크도 주구요.... 하지만 정책 스탠스도 유권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고, 현명한 소비자가 많아지는 것도 기업과 정부를 움직이는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기업은 윤리의식이 없더라고요. 가만 내비두면 이윤을 위해 뭐든지 하는 게 기업이지요. @오도니안 님과 @aida 님 말씀대로 의회와 정부를 통해 법률과 규제로다가 잡도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겠지요. 그러고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로 사는 것도 골치 아픕니다. 이것저것 공부해야 하고 계속 새로운 걸 알아가야 하고…
하하하. 맞습니다. 플라톤까지 가야 하나 봅니다.. 이래서 철학 소양이 필요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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