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에게 그런 일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자신은 개인적 책임보다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신의 최우선순위는 지독히도 강력한 온실가스의 파괴임을 상기시켰다.
나는 그 복잡한 심리에 감탄했다. 샘은 좌파 환경운동가와 백인 진보주의자들에게서 곧잘 볼 수 있는 순수주의자들의 화려한 언변, 다시 말해 정작 오염된 곳에 사는 당사자들은 배제한 채 내뱉는 뻔지르르한 말들, 해맑기만 한 행동을 경계했다. 순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은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무시한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는 쉽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훨씬 어렵긴 해도,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정의에 대한 우리 고유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폭력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점점 늘어나는 회복적 정의*의 움직임이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쉽고 보편적인 대답은 없다. 나는 정의가 결코 복수의 모습과 닮아 있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 가해자 처벌이 목표인 ‘응보적 정의’와 달리, 관계 회복, 피해 회복, 공동체 회복을 중시한다. ”
『일인분 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182-183쪽,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문장모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