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5. <일인 분의 안락함>

D-29
나는 그에게 그런 일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자신은 개인적 책임보다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신의 최우선순위는 지독히도 강력한 온실가스의 파괴임을 상기시켰다. 나는 그 복잡한 심리에 감탄했다. 샘은 좌파 환경운동가와 백인 진보주의자들에게서 곧잘 볼 수 있는 순수주의자들의 화려한 언변, 다시 말해 정작 오염된 곳에 사는 당사자들은 배제한 채 내뱉는 뻔지르르한 말들, 해맑기만 한 행동을 경계했다. 순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은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무시한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는 쉽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훨씬 어렵긴 해도,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정의에 대한 우리 고유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폭력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점점 늘어나는 회복적 정의*의 움직임이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쉽고 보편적인 대답은 없다. 나는 정의가 결코 복수의 모습과 닮아 있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 가해자 처벌이 목표인 ‘응보적 정의’와 달리, 관계 회복, 피해 회복, 공동체 회복을 중시한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182-183쪽,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대기 중 온실가스의 양으로 봤을 때, 우리가 정말로 사태를 안정시키고 싶다면, 앞으로는 제한된 양의 온실가스만 내보내야 해. 그 정확한 숫자는 정치적인 것이고.”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184쪽,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에이해브의 “집요함”과 “미친 투지”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묵묵히 임하는 샘의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에세이를 통해 냉매 판매자들-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백인 남성들의 생각, 태도, 상황들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해주어서 좋았고요. 그러고보면 ‘들어가며’에서도 레이저백의 가족, 경제적 상황 등을 일종의 연민이 섞인 시선으로 언급하고 있었네요. 에세이가 본문과 따로 분리되어 있는 구성도 뭔가 더 특별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것 같아서 저는 더 좋은 듯해요.
미즐리. 책을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는데, 이 정도면 저주받은 재능의 소유자라고 해야할까요. 미즐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 같은 것들이 제법 있을법도 한 드라마틱한 삶을 산 것 같습니다.
미즐리는 전문의를 보러 가는 대신 독성이 높은 정제된 수은 한 병을 구해 2주 동안 그 액체 금속을 맨눈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서서히, 조각조각, 수은이 작은 파편들을 미즐리가 직접 제거할 수 있을 만큼 큰 덩어리로 만들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금속을 모두 뽑아냈다. 그는 임시 의사역을 하며 자신의 시력을 직접 회복시켰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이 무슨...
그래서 젊은(그닥 젊지는 않지만)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거 같아요. 자살의 원인 중 중금속 중독으로 인한 정신착란도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2035년의 세상이 1935년의 세상보다 “더 크고, 더 밝고, 더 안전하고, 더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때쯤이면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신비를 풀 것이고, 교육, 건강, 교통이 더욱 발전할 것이며, 농업 기술 역시 발전할 것이다(미지는 각각에 대해 마치 주술사처럼 말했다). 그는 또한 2035년 즈음이면 화학자들이 ‘지구 대기 중의 오존량을 늘려 농업에 쓰일 자외선을 제한’해 작물 수확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실은 반대로 미즐리가 발명한 프레온의 직접적 영향으로 인해 치명적 오존 손실이 발생하게 되지만 말이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옛날에는 주유소에 무연휘발유가 따로 있었죠. 즉 일반휘발유는 유연휘발유였다는 이야기겠죠. 미즐리가 개발한 납을 넣은 유연휘발유가 옥탄가를 높여 노킹 현상을 막았다면, 납을 금지한 지금은 옥탄가를 어떻게 높일까 궁금해하던 차에 고급휘발유가 생각났네요. 그것이 바로 옥탄가 높은 휘발유거든요. 인공지능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납 대신 다른 화합물을 넣는데 방향족 탄화수소, 산소화합물, 기타 첨가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소화합물 중 하나는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문제가 생겼고 방향족 탄화수소 중엔 톨루엔이 있던데 이거 독성 물질아닌가요? 그래서 제미나이에게 다시 물었더니 답변이 이렇습니다. ‘하지만, 고급휘발유에 사용되는 톨루엔은 매우 소량이 첨가됩니다. 휘발유 자체가 수많은 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톨루엔 소량 첨가가 전체적인 위험성을 크게 높이는 것은 아닙니다. 휘발유를 취급할 때에는 항상 충분한 환기, 마스크 착용 등 안전 수칙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화학의 세계는 복잡합니다. 화학물질이 무슨 부작용을 일으킬지 사전에 다 점검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지의 두려움이 커지네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냉방이 되기 이전, 프레온이 있기 이전의 세계로 마법처럼 돌아갈 순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원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다음에 어디로, 왜 가고자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어떻게 가고자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화학의 힘은 막강하죠. 식량 생산이 늘면서 기근이 많이 줄었지만 질소비료의 원료가 고갈되던 시점에 독일 화학자 하버가 인공적으로 공기 중의 질소를 추출해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운명은 바뀌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 하버가 독가스의 발명자이기도 하니, 화학은 빛과 그림자가 다 짙은 분야 같아요.
아침에 뉴스를 보다 보니, 6000만원 짜리 목걸이나 스위스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5000만원짜리 시계를 사는 것은 30대의 에어컨을 사거나 자가용을 타고 십년간 출퇴근을 하는 것에 비하면 (휘발유값이 대충 그정도 들까요) 무척 친환경적인 소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ㅎㅎ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역시 👍
일종의 농담이란 거 아시죠? ^^;
나는 그 복잡한 심리에 감탄했다. 샘은 좌파 환경운동가와 백인 진보주의자들에게서 곧잘 볼 수 있는 순수주의자들의 화려한 언변, 다시 말해 정작 오염된 곳에 사는 당사자들은 배제한 채 내뱉는 뻔지르르한 말들, 해맑기만 한 행동을 경계했다. 순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은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무시한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는 쉽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훨씬 어렵긴 해도,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정의에 대한 우리 고유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폭력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점점 늘어나는 회복적 정의의 움직임이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쉽고 보편적인 대답은 없다. 나는 정의가 결코 복수의 모습과 닮아 있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에틸사는 유일한 위험이 제조과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런 주장은 공장 노동자를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회사의 의지를 말해주었다. 노동자의 희생은 과학적 진보, 역사적 진보의 대가였다. (...) 진보의 대가는 문제다. 그 말은 일부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귀하고 일부 생명이 위험에 노출되어야 다른 생명이 안전하게, 더 엄밀하게는 안전하다는 인식 속에 살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 외에 무엇을 의미할수 있을까?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8월 13일 수요일에는 2부 2장 '미친 천재, 토머스 미즐리'와 2부 3장 '쾌적 냉방의 시작'을 읽습니다. 이미 읽고 계신 분들이 말씀해 주셨듯이, 이분은 문제적 과학자 토머스 미즐리와 그가 개발한 CFCs가 가능하게 한 현대적인 의미의 냉방의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즐리는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한 인물이죠. 오죽하면, 딱 한 명이 인류에게 미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을 (선의와 열정으로) 자기가 실천한 사람이니까요. 오늘 부분을 넘기고 나면, 이번 주는 계속해서 여유로운 일정입니다.
그들이 안전한 냉매를 찾고 있었다면 불소는 별로 좋은 시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자는 다른 원자들과 결합하면 특성이 바뀔 수 있다. (헨느는 불소가 풍부하게 함유된 굴이 아직 메인주의 사람들을 독살시키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저는 이 대목을 읽다가 (뜬금없지만) 어릴 때 학교에서 했던 불소양치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이 불소가 그 불소랑 같은 거겠죠? 불소 양치, 불소 치약 등의 부작용 사례도 있어서요.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kbs 다큐 중에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자 골치거리 중의 하나인 플라스틱의 분해에 대해 연구하고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우리나라 젊은이의 포부가 나오는데요.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것이거든요. 미즐리를 읽으면서 이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시간 되시면 다큐도 보세요. 링크해놓은 것은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이고 1부도 있는데 <공학에 미친 중국>입니다. https://youtu.be/RbmAyBWJ-7w?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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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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