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님의 대화: 오늘 읽을 부분의 3부 1장에 등장하는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독일의 문제적 철학자입니다. 저는 호감보다는 반감을 가진 철학자인데, 또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있어서 정말 문제적 철학자 같아요. 어쭙잖게, 슬로터다이크의 개념 두 가지만 얘기해 볼게요.
인간 기술(Anthropotechnik)
슬로터다이크 철학의 핵심에는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통찰이 있습니다. ‘인간 기술’은 이런 통찰 속에서 그가 고안한 개념인데요.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 훈련, 교육, 생활 방식의 선택 등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기술과 실천을 의미합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영성 훈련부터 현대의 유전공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항상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개선’하려는 존재였다고 봅니다. 그는 이러한 ‘자기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수직적 긴장(Vertikale Spannung)
앞의 연장 선상에 놓인 역시 슬로터다이크가 고안한 개념입니다. 그는 인간을 항상 ‘더 높은 곳’을 지향하며 스스로 끌어올리려는 존재였다고 봅니다. 그는 이것을 ‘수직적 긴장’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종교,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주장해요. 인간이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려는 동력이 바로 수직적 긴장이라는 거죠. 그가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도, 이러한 수직적 긴장을 상실하고 안락함과 평범함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죠.
*
‘인간 기술’과 ‘수직적 긴장’ 개념에서 혹시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지 않으세요? 네, 그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적 후계자이자 현대적 재해석을 하고 있다고 자임합니다.
그의 이런 철학적 사유에서 뭔가 불편한 대목이 있죠? 네, 우생학이나 생명공학을 통한 인간 종의 개선을 주장하는 트랜스 휴머니즘과 맞닿아 있어서 위험해 보이는 대목이 있죠. (실제로 독일 철학계의 거장 위르겐 하버마스가 슬로터다이크 철학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
3부 1장에서 언급된 슬로터다이크의 저서 ‘구’ 3부작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세 권으로 나온 그의 저서입니다. 21세기 들어서 ‘인간 기술’이나 ‘수직적 긴장’ 개념을 내세우기 전에 나온 책인데요. (국내에서는 이 ‘구’ 3부작은 번역이 되지 않았고, 저도 리뷰 논문이나 기사를 통해서만 확인했습니다. 사실, 이 ‘구’ 3부작이 저로서는 호감인데요.)
이 3부작에서 슬로터다이크는 인간을 특정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특정한 타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존재로 재정의한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가 ‘공간’과 ‘관계’입니다. 첫 번째 저서 『버블』에서는 자궁 속 태아와 어머니의 관계처럼 두 존재가 하나로 연결된 친밀한 공간과 관계를 ‘거품’에 비유해서 서술하고 있고요.
두 번째 저서 『지구』에서는 공간과 관계가 ‘국가’ ‘제국’ ‘종교’ 그리고 ‘지구화’ 같은 개념을 통해서 점점 커가는 과정을 서술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기가 상상한 ‘구’의 범위 안에서는 친밀성(민족주의 같은)을 그 바깥에서는 배타성을 발휘했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궁극적으로 ‘지구화’를 통해서 모든 것이 균질화(평면화)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비판도 하고요.
세 번째 저서 『거품들』에서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파편화된 작은 공간들(거품들)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를 살펴보면서, 거기서 새로운 형태의 연대나 공존이 가능할지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해체나 개인화가 가속화하는 21세기를 바라보는 사유의 틀을 제시했다는 호평도, 빤한 얘기를 현학적이고 도발적으로 쓴 것뿐이라는 혹평도 있다고 합니다.
*
국내에서는 주로 ‘인간 기술’과 ‘수직적 긴장’ 같은 개념을 설명하는 책이 소개가 되어 있어요.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인간 기술’, 1999)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수직적 긴장’, 2009) 같은 그의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책들만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생명공학이나 트랜스 휴머니즘 같은 흐름에 궤를 같이하는 철학이라서 그런가 봐요.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 보자면, 시대가 좀 지났지만 모라벡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미래상이 흥미로왔습니다. 인류의 후손은 인류가 아니라 디지털 정신이 될 것이고, 그 정신은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무한히 진화하고 발전할 거라는 비전이죠. 어쩌면 미래의 갈림길은 가상 세계에 업로드된 디지털 정신이냐, 생물학 기술들로 증강된 초인간이냐 문제일 수도 있겠죠.
제가 적어둔 내용을 보니까, 마셜 브레인이라는 철학자가 이런 주장과 예측을 했다고 합니다.
" 더 아름다운 몸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기꺼이 당신의 몸을 버릴 것이다…. 몸의 노화는 또 어떤가. 몸을 버림으로써 노화를 면활 수 있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가상 세계로 들어간 당신의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는 완벽한 몸을 지녔을 테고, 그들은 당신도 그 세계로 들어오라고 권할 것이다. 당신은 통증 없는 수술을 통해 당신의 뇌를 가상현실 속의 새로운 몸과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의 10대나 20대한테는 의미가 있는 전망일 수 있는데, 저한테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고, 저는 이런 세상이 빠르게 도래한들 크게 염두에 두려고 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