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5. <일인 분의 안락함>

D-29
동시에 공공 정책의 시각에서 보아도,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적다고(아는 것이 없다고, 문자 그대로 ‘지식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파멸에 더 가까워졌다. 증거가 있는데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바보, 즉 가능한 모든 증거를 입수할 때까지 아무것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는 바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바보만큼이나 파괴적이다. 이 같은 주장(의심할 여지없이 돈만 밝히는 기업, 즉 우리를 이와 같은 현대 역사 속으로 밀어 넣고 분명히 우리의 죽음에 가담하게 될 진저리나는 흡혈귀가 주도한 무지의 이데올로기)으로 인해 CFC 생산은 최소 10년은 더 늘어났고, 몇 가지 주요 사건이 없었다면 이 기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353쪽,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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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동시에 공공 정책의 시각에서 보아도,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적다고(아는 것이 없다고, 문자 그대로 ‘지식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파멸에 더 가까워졌다. 증거가 있는데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바보, 즉 가능한 모든 증거를 입수할 때까지 아무것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는 바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바보만큼이나 파괴적이다. 이 같은 주장(의심할 여지없이 돈만 밝히는 기업, 즉 우리를 이와 같은 현대 역사 속으로 밀어 넣고 분명히 우리의 죽음에 가담하게 될 진저리나는 흡혈귀가 주도한 무지의 이데올로기)으로 인해 CFC 생산은 최소 10년은 더 늘어났고, 몇 가지 주요 사건이 없었다면 이 기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모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설을 바탕으로 한 즉각적인 대응이었지만, 건전한 과학으로써 필요한 것은 인내심 있는 탐구, 더 많은 토론, 상충하는 관점에 대한 고려였다. 그게 어려운 점이었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353쪽,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꽃의요정님의 대화: 미국이 위대해지면 미국만 잘 살자는 얘기일까요? 전 세계가 자기들 때문에 고통받아도? 그리고 나선 '난 미국인이라서 천만다행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싶은 건가요? 그런 문구에 선동되는 사람들의 심리가 알고 싶은 요즘입니다. 흑흑
냉전 초기에 미군은 이 아이디어를 부활시켰다. 핵무기가 오존층을 태워 ‘구멍’을 낼 수 있을까? 소련에 대항해 그 구멍을 무기화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러한 무기가 소련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을까? 다행히도 오존 파괴를 억제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미국 정부는 공상과학 작가들에게 이 질문들을 넘겼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꽃의요정님의 문장 수집: "냉전 초기에 미군은 이 아이디어를 부활시켰다. 핵무기가 오존층을 태워 ‘구멍’을 낼 수 있을까? 소련에 대항해 그 구멍을 무기화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러한 무기가 소련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을까? 다행히도 오존 파괴를 억제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미국 정부는 공상과학 작가들에게 이 질문들을 넘겼다. "
뭐든 무기로 이용해 보려는 미국...
대중에게 과학적 의심을 심는 것은, 지긋지긋하지만 지난 세기 내내 사용된 고전적인 기업 전술이다. (354쪽) ‘안전한’ 판단이 반드시 완전한 확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존 위기의 경우, 현재의 기후 비상사태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과 정치 지도자들은 애초 그러한 화학물질의 확대를 허용하기 전에 제대로 된 정보를 요구하지 않았음애도, ‘안전성’을 절대적인 확실성(불가능한 것)과 연결 지었다. 절대적인 확실성에 대한 요구는 사실상 현상 유지, 즉 우리가 수십 년 동안 해왔던 것을 정확히 계속하기 위한 싸움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한 게으름은 환경적인 것이든 그 밖의 것이든 정의를 향한 움직임에 대항하는 교활한 방편이다. (355쪽) 점점 심각해지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확실성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잘 봐줘도 무책임한 것으로, 최악의 경우에는 범죄나 다름없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1931년 자신들이 프레온으로 인해 지구의 대기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완전하고 정확한 정보 없이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 채, 입장을 바꾸기 전에 완전하고 정확한 정보를 줄 것을 요구했다. 무지가 첫 번째 행동을 주도했다. 업계는 맹렬한 태도로 완전한 확실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완전한 앎의 날, 심판의 날은 신의 개입 없이는 절대 도래하지 않는다. (357쪽)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11장에 언급되는 책 <의심하는 상인: 어떻게 소수의 과학자들이 담배 산업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진실을 은폐했는가>, 꽤 오래 전에 번역본이 나와 있더라고요. 언젠가 읽어보고 싶(었지만 영원히 안 읽고 있는 수많)은 목록 속의 책이에요.
의혹을 팝니다 - 담배 산업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는 오늘날 지구 온난화 논쟁에서 쓰이는 수법이 과거 담배 논쟁에서 쓰였던 것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용병 역할을 하는 과학자들 역시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이 책에서 지목하는 프레더릭 사이츠와 프레드 싱어가 바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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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의정서와 국제적 협력의 힘이 지구의 위기를 해결한 듯했지만, 해결된 것은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종류뿐이었다. 오존의 불안정성과 지구 파괴의 가능성이 미국인들에게 쾌적함과 안전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되돌아보고 재고할 기회를 주었지만, 미국과 (그보다 덜한 정도로 ‘과도하게 발달된’) 다른 국가들은 여전히 근본적, 심리·사회적, 경제적, 구조적 오류를 해결하지 않고 간단한 기술적 해결책만을 찾았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358쪽,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향팔님의 대화: 11장에 언급되는 책 <의심하는 상인: 어떻게 소수의 과학자들이 담배 산업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진실을 은폐했는가>, 꽤 오래 전에 번역본이 나와 있더라고요. 언젠가 읽어보고 싶(었지만 영원히 안 읽고 있는 수많)은 목록 속의 책이에요.
@향팔 님께서 올려주셨네요. 이 책 좋은 책입니다. 오레스케스와 콘웨이는 답답한 나머지 이런 가상 시나리오도 썼어요.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 - 300년 후 미래에서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을 바라보다하버드대학 교수 오레스케스와 과학기술사가 콘웨이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려낸 가상역사책. 2393년 제2중화인민공화국에 사는 미래 역사가가 반암흑기(1988~2093)와 그에 이어지는 대붕괴와 대이동(2073~2093) 기간의 일을 들려준다.
책을 읽으니 CFC 금지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온갖 속시끄러운 일들이 지구 가열화와 기후위기 문제를 두고도 (더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CFC 문제는 그래도 몬트리올 의정서가 나왔지만(이 분야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전무후무한 문서라니!) 기후위기 문제는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시스템 전체의 문제여서 그런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의 갈등도 크고요. CFC로 인해 당장 위험해지는 건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지구 가열화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탄소 배출도 많이 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거나, 선진국 내에서도 저소득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니 그것도 그렇고요. 거기다 이건 다음 세대나 북극곰들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니야, 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나 북극곰까지 갈 것도 없이 내가 겪을 현실이라는 게 점점 밝혀지고 있지요..
YG님의 대화: @향팔 님께서 올려주셨네요. 이 책 좋은 책입니다. 오레스케스와 콘웨이는 답답한 나머지 이런 가상 시나리오도 썼어요.
와, 두 사람이 이런 책도 썼었군요. 이 책이 더 흥미롭게 읽힐 것 같네요. 앗 그런데 해제에 낯익은 이름이! 더욱 신뢰가 가는데요:)
향팔님의 대화: 와, 두 사람이 이런 책도 썼었군요. 이 책이 더 흥미롭게 읽힐 것 같네요. 앗 그런데 해제에 낯익은 이름이! 더욱 신뢰가 가는데요:)
엇, 지금 읽고 있는 <인류의 미래사>하고 연결해서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관련 책이 뭐가 있을까 슬슬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책 좀 오래됐는데 YG님 해제도 하셨다면 꽤 오래 전부터 유명 인사셨네요. 것도 모르고...;; ㅎㅎ 더불어 지난 번에 내신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북토크도 하시네요. 다음 주 화요일 PM 7:30분에. 알라딘 본사에서. 아시는 분은 가시면 좋겠네요.
stella15님의 대화: 엇, 지금 읽고 있는 <인류의 미래사>하고 연결해서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관련 책이 뭐가 있을까 슬슬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책 좀 오래됐는데 YG님 해제도 하셨다면 꽤 오래 전부터 유명 인사셨네요. 것도 모르고...;; ㅎㅎ 더불어 지난 번에 내신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북토크도 하시네요. 다음 주 화요일 PM 7:30분에. 알라딘 본사에서. 아시는 분은 가시면 좋겠네요.
맞아요, <인류의 미래사> 생각도 나요! YG님 북토크도 재밌겠네요. 오늘 저녁엔 제가 사는 (옆)동네 도서관에 강연하러 오신다고 공지가 떠있던데요:) 바쁘신데도 그믐 벽돌 책 모임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YG님의 대화: 2019년에 쓴 에세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에릭 딘 윌슨이 2021년에 쓴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약간 포인트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 가끔 지구 온난화를 놓고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기후 변화 부정론자(climate denier)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알다시피, 정유 업계 등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당선된 트럼프는 지구 온난화와 이해 관계가 충돌한다. 지구 온난화를 인정하면 해야 하는 여러 행동이 달가울 리 없다. 당혹스러운 상대는 지구 온난화와 그것이 초래하는 기후 변화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람 가운데 일부는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의 과학적 증거가 부실해 보이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그간 몇 차례에 걸쳐서 유엔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내놓은 보고서의 예측이 수정된 사실을 그 부실의 증거로 내놓는다. 일급의 훈련을 받은 과학자 다수가 지구 온난화는 ‘사실’이고(산업화 이전과 비교했을 때 지구 평균 온도가 약 1도 상승했다.), 앞으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안에 잡아두지 못할 경우 심각한 재앙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는데도 이들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도대체 어떤 대목에서 소통이 단절된 것일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현대 과학의 성격 변화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변화에 대한 몰이해야말로 소통 단절의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과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확실성(certainty)’이 아니라 ‘불확실성(uncertainty)’이 되었다. 낯선 이야기일 테니,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 읽어 보자.  과학의 확실성 전 인류를 설레게 한 과학 이벤트를 떠올려 보자. 2019년 4월 10일, 사상 최초로 블랙홀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이 이미지는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블랙홀을 촬영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새삼 강조하자면, 그 블랙홀은 우리가 이미지로 촬영하기 전에도 5,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존재했다. 이렇게 블랙홀을 이미지로 촬영한 일은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아주 익숙한 과학 활동이다. 과학자는 오랫동안 자연에 존재해 온 어떤 원리를 발견해 왔다. 예를 들어,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기 전에도 일상 생활 속의 질량을 가진 물체는 그 법칙을 따라서 움직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인류의 사고 체계 변화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미쳤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기 전에도 우리 우주의 시공간은 상대성 이론을 따라서 존재했다. 20세기 물리학의 또 다른 혁명적 발견인 양자 역학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어떤 과학자와 철학자는 양자 역학의 해석 문제를 놓고서 고민 중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는 별개로 양자 역학은 수학 방정식으로 깔끔하게 기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을 발견하기 전에도 그 논리대로 움직였다. 즉 우리가 익숙한 과학은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의 ‘이해’를 구하는 활동이다. 이런 이해에 성공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20세기 과학 기술은 바로 이런 이해를 통한 ‘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위상을 높여 왔다. 기후 과학은 다르다 현대 과학의 성격이 변했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의 핵심에 위치한 기후 과학의 사정을 살펴보자.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세계적인 과학 저널에 실린 기후 과학 논문에서는 “might” 같은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알다시피, “might”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추측할 때, 그것도 조심스럽게 추측할 때 쓰는 표현이다. 2019년 5월 20일 공개된 기후 과학 논문(「전문가 판단에 따른 미래 해수면 상승에 대한 빙상의 기여(Ice sheet contributions to future sea-level rise from structured expert judgment)」)을 살펴보자. 이 논문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 기체 배출량이 현재 추세대로 이어진다면, 2100년 세계 해수면이 0.62~2.38미터까지 상승하리라 추정했다. (지구 평균 기온 5도 상승) 이런 추정치는 파격적이다. 그동안 IPCC를 비롯한 일반적인 기후 과학자는 2100년에 1미터 정도 수준으로 해수면이 상승하리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IPCC 5차 보고서(2014년)는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한다면 지구 온난화로 2100년까지 세계 해수면이 0.52~0.98미터까지 상승하리라고 전망했다.   과학자의 추정치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그간 IPCC를 비롯한 과학계가 가능성(확률)이 낮은 영역을 무시하는 전략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100년 해수면이 2.38미터까지 상승할 가능성은 5퍼센트 정도로 높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적은 확률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제 흥미로운 진실을 살펴볼 차례다. 여기 두 그룹의 과학자가 내놓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한쪽은 지금 온실 기체 배출이 그대로라면, 2100년에 해수면이 약 1미터 상승하리라고 본다. 다른 한쪽은 최악의 경우에는 2미터 넘게 상승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두 과학자의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fact)에 더 부합하는지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맞다. 2100년까지 인류가 온실 기체 배출을 지금처럼 그대로 하고서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할지 확인하면 된다. 2미터 넘게 해수면이 상승했다면, 21세기 초반의 소수 의견 과학자 그룹이 좀 더 사실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를 내놓은 승자로 확인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지금 기후 과학자가 수많은 시나리오를 내놓은 이유는 자신의 연구가 사실로 확증받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논문을 발표한 과학자가 2100년 해수면이 2미터 이상 상승할 수 있으리라는 추정치를 내놓은 이유는 인류가 온실 기체를 줄이려는 좀 더 긴박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기후 과학과 20세기까지 주류를 차지했던 과학 일반과의 차이점이 또렷해진다. 기후 과학은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할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기후 과학이 관심을 가지는 자연의 변화에 인간은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그런 긍정적인 영향이야말로 기후 과학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다.  기후 변화, 과학에서 정치로 이 대목에서 기후 과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 나타난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그 자체로 복잡한 기후 현상을 다루는 기후 과학의 불확실성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 때문에 더욱더 증폭된다. 즉 기후 과학에서 불확실성은 이전 과학의 확실성만큼이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사정은 기후 과학뿐만이 아니다. 20세기 후반부터 과학 활동의 중요한 영역이 되어 가고 있는 안전, 보건, 환경 분야(the science of safety, health and environmental) 모두 어느 정도는 기후 과학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 분야들의 연구가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고, 또 불확실성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갖는 새로운 과학 활동의 특징을 강조하면서 제롬 라베츠 같은 학자가 ‘탈-정상 과학(post-normal science)’을 이야기하고, 또 많은 이들이 기후 과학 같은 과학을 ‘정책을 위한 과학(science for policy)’이라고 특별히 구별해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후 과학의 불확실성은 그 과학이 과거의 ‘정상 과학’과 비교했을 때, 과학적이지 못함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니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그런 과학 활동의 고유한 특성이다. 또 불확실성은 기후 과학의 연구 대상인 기후 변화가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대상임을 강조한다. 더구나 이런 불확실성을 통해서 우리는 기후 변화가 단지 과학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즉 너와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기후 과학의 불확실성은 기후가 과학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불확실성을 통해서 기후 과학은 기후 정치와 만난다. (2019년)
중간에 심호흡 한 번 하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 대목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어떤 예측을 평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좀처럼 용납되지 않는 일이죠.” 책에서는 하버드 대학의 과학자인 마이클 맥엘로이가 남긴 문장이었죠. 말씀하신 것처럼 적은 확률이라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자꾸 뭔가를 더 확실하게 증명해보라는 듯 말할 때마다('기후 과학자가 수많은 시나리오를 내놓은 이유는 자신의 연구가 사실로 확증받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다'라는 말씀처럼요) 온 인류를 상대로 굳이 실험을 해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2100년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는 건데... 기후 과학이 기후 정치와 만난다는 마지막 문장에도 끄덕끄덕했습니다. 종종 올려주신 칼럼과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글 정말 좋아요. 이해가 쏙쏙, 공감이 쏙쏙.
본래 건전한 과학은 느리다. 과학은 여러 번 반복되는 실험을 통한 연구가 필요하다.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각각의 실험을 수행하면 동료들이 그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과학은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과학은 보조금과 장비, 시·공간과 같은 자원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오차 범위를 고려한 어느 정도의 건전한 회의론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과학자들이 한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2부 11장.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무기,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향팔님의 문장 수집: "동시에 공공 정책의 시각에서 보아도,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적다고(아는 것이 없다고, 문자 그대로 ‘지식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파멸에 더 가까워졌다. 증거가 있는데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바보, 즉 가능한 모든 증거를 입수할 때까지 아무것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는 바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바보만큼이나 파괴적이다. 이 같은 주장(의심할 여지없이 돈만 밝히는 기업, 즉 우리를 이와 같은 현대 역사 속으로 밀어 넣고 분명히 우리의 죽음에 가담하게 될 진저리나는 흡혈귀가 주도한 무지의 이데올로기)으로 인해 CFC 생산은 최소 10년은 더 늘어났고, 몇 가지 주요 사건이 없었다면 이 기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저도 이 문장 좋아서 읽으며 메모했었습니다:)
향팔님의 대화: 맞아요, <인류의 미래사> 생각도 나요! YG님 북토크도 재밌겠네요. 오늘 저녁엔 제가 사는 (옆)동네 도서관에 강연하러 오신다고 공지가 떠있던데요:) 바쁘신데도 그믐 벽돌 책 모임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대박! 향팔님 가시나요? 저는 옆동네만 오셔도 버선발로 뛰어 갈텐데. 알라딘 본사는 넘 멀거든요. ㅠ 물론 신을 버선도 없기도 하고. ㅎㅎ
"불안정하고 위험한, 실질적인 확실함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확신을 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것들을 배양했다" / 존 듀이
일인분의 안락함 -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에 관하여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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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님의 문장 수집: ""불안정하고 위험한, 실질적인 확실함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확신을 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것들을 배양했다" / 존 듀이"
"대중에게 과학적 의심을 심는 것은 지긋지긋하지만 지난 세기 내내 사용된 고전적인 기업 기술이다."
aida님의 대화: "대중에게 과학적 의심을 심는 것은 지긋지긋하지만 지난 세기 내내 사용된 고전적인 기업 기술이다."
2부 11장 <"과학의 불확실성"이라는 무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YG님 에세이도 잘 읽었습니다.) 업계의 마케팅과 주장이 과학의 불확실성을 파고드는 것은 참 익숙한 장면 같습니다. 오늘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연결되어 떠오르네요 ㅡㅜ 화확물질에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했다는 구절 때문인가봐요. 문제적 듀폰사 관련 영화 <다크 워터스> 기억났습니다. 예전에 본것 같은데. 다시 한번 볼까 해요..
다크 워터스대기업의 변호를 담당하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 롭 빌럿은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PFOA) 유출 사실을 폭로한다. 그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독성 물질이 프라이팬부터 콘택트렌즈, 아기 매트까지 우리 일상 속에 침투해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커리어는 물론 아내 사라와 가족들, 모든 것을 건 용기 있는 싸움을 시작한다.
8장부터 이야기가 재미있어져서 휙휙 넘어가네요. 레이건 정권 때 용케 협정이 이루어졌구나 싶은데, 지금 트럼프 정권은 레이건 때보다 비합리성이 몇 배 더 커진 것 같으니 암울합니다 ㅜㅜ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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