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감정선 따라 읽기] 5. 노랑무늬영원

D-29
바쁘게 움직이는 행인들 사이에서 그녀는 마치 산책 나온 사람처럼 천천히, 깨지기 쉬운 침묵을 보호하듯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p17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밝아지기 전에, 한강 지음
아직 밝아지지 않은 새벽, 시체가 재가 되고 뼛덩이들만 하얗게 남은 자리에 여태 지글지글 끓는 심장. p19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밝아지기 전에, 한강 지음
한 번뿐인 하루를 손아귀에 꽉 쥔 채, 어쩔 줄 모르며 으스러뜨려왔다는 것을. p33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밝아지기 전에, 한강 지음
그러지 마.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뿐인걸. 존재하지 않는 괴물 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 마. 잠 못 이루지 마. 악몽을 꾸지 마. 누구의 비난도 믿지 마. p35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밝아지기 전에, 한강 지음
[ 한강 작가 낭독 - 밝아지기 전에.. 중 ] https://youtu.be/H26-B1SJa3E?feature=shared
하나뿐인 서늘한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을 지우고 기다린다.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쓴다. p37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밝아지기 전에, 한강 지음
저는 실물 책으로 읽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책을 쓰고 난 후에 상당기간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독자 입장에서도 책을 읽으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채식주의자 등 기존의 책도 읽으면서 소설속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노랑무늬영원도 만만치 않네요. '밝이지기 전에' 에서는 주인공이 양곤으로의 떠나기 직전에 여행을 취소하고 뎅기열 쇼크로 급사한 은희 언니 장례식에 가는 장면과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을 지우고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쓰는 장면은 쓸쓸하고 애잔합니다. 그리고 '회복하는 인간' 에서는 평소 열등감을 느낀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자학, 그로인해 삔 발목을 방치해 받는 고통 등은 읽는 내내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함도 느꼈습니다.
(회복하는 인간)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P32)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P34) <밝이지기 전에> 조만간 또 떠날 거야. 돌아와보니까 그래야 한다는 걸 알겠어(P106) 시간이 정말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언제든 무심코 나를 버릴 수 있는 삶을 향해서(P123) '나의 심장' 이라고 이름붙였던 파일을 불러내자, 하나뿐인 서늘한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을 지우고 기다린다.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쓴다(P129)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p63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회복하는 인간 , 한강 지음
언니는 삶에서 해방됨으로써 회복하고.. 동생은 삶과 마주하기 위해 회복하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가 아니었다. 다만 가장 안전한 곳, 거북과 달팽이들의 고요한 껍데기 집, 사과 속의 깊고 단단한 씨방 같은 장소를 원하는 것뿐이었다.' p52 '당신은 이미 잊었다. 자신이 얼마나 재치 있는 농담을 좋아 하는 사람이었는지, 나름으로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는지 잊었다. 작은 키 때문에 늘 굽이 있는 단화를 신고, 자유스러운 밝은색 옷을 걸치고, 흰색과 노랑색 계열의 스카프를 두르고, 눈꼬리가 살짝 처진 눈엔 언제나 어렴풋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던 것을.' p44 / 회복하는 인간
화제로 지정된 대화
A-3. 밝아지기 전에 - 밤과 낮, 어둠과 밝음의 경계가 인물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밤과 낮, 어둠과 밝음의 경계는 암투병, 이혼, 동생의 죽음, 퇴사, 인도/미얀마 여행, 그리고 은희언니의 죽음 등 일상의 변화로 인한 정체성 혼란, 갈등, 두려움, 자기연민, 허무, 그리고 또다른 기대와 희망 등 섬세하고 복잡한 내면세계로 귀결될 것 같습니다. (P123) 시간이 정말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짐승처럼 죽지 않도록, 다음번엔 두려워하지 않을 준비를 하겠다고. 내 안에 있는 가장 뜨겁고 진실하고 명징한 것, 그것만 꺼내놓겠다고. 무섭도록 무정한 세계, 언제든 무심코 나를 버릴 수 있는 삶을 향해서.
죽음에 든 상태를 영원한 안식이 아닌 '회복'이라 했지요.. 어둠과 밝음, 낮과 밤, 죽음과 삶.. 불가분으로 맞닿아 상처이기도 회복이기도 한 것 같네요..
말씀하신 대로 삶과 죽음, 낮과 밤, 어둠과 밝음의 경계는 '회복' 일 것 같습니다. 최근에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부활/죄와 벌/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는데, 불완전한 인간이 저지르는 죄와 벌, 참회, 용서, 구원, 부활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하필 오늘 그 새를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p9 베란다 밖으로 얼어붙은 주차장, 눈 덮인 산, 검게 탄 재 같은 나무들이 보인다. p11 / 밝아지기 전에 목을 덮는 검은 스웨터에 검은 모직 재킷, 검은 면바지에 검은 단화를 신은 당신 p44 / 회복하는 인간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A-4. 회복하는 인간 - ‘병상에 누운 언니’는 동생에게 어떤 감정적 변화와 성찰을 안겨주었나요?
제목 '회복'하는 인간처럼 나의 신체적 상처는 회복되고 있지만, 오히려 정신적인 상처는 심해지고만 있네요. 나와 데면데면한 언니, 사회 통념상 '잘 나가'지만 나를 부러워한 언니, 임신을 위해 노력한 언니, ... 를 보니 언니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주인공의 마음도 얼마나 공허할까 싶어요.
인간의 감정이란 정말 복잡하고 때론 이율배반적인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를 위해 주는 것 같으면서 질투하고 어떤 때는 잘못 되길 바라는 마음, 또 그걸 아니라고 부정하는 얽히고 섥힌 감정 기복의 연속이네요. '회복하는 인간' 의 두 자매의 심리상태도 그런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그녀가 질투한 것들이 어김없이 당신의 결점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P17) 언젠가 당신은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당신과 언니, 둘 가운데 누가 더 차가운 사람이었는지(P18)
그렇게 생각하니, 하지만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통념 뒤에 숨을 수 있어서.
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회복하는 인간, 한강 지음
이제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당신의 구두 속에서 회백색 구멍들이 욱신거린다. 불을 넣지 않은 장판이 당신의 등과 어깨에 얼음처럼 차갑다. ~ p57 ......더 추워지기 전에. 그 어떤 앞일도 알지 못한 채 당신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생각한다. 그 전에 꼭 한 번 자전거를 탄다면 죄일까? ... 그러니까 지난 팔월, 당신의 언니가 친정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형부의 차에 실려 병원을 오가고 있었을 때 당신은 그렇게 미칠 듯한 기쁨을 느꼈다. p58 ~ 59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채 당신은 계속 페달을 밟고 있다. ... 괜찮아. 진짜 금방 낫는대. 시간만 지나면 낫는대. 누구나 다 낫는대. p60 ~ 62 그 모든 것을 아직 알지 못한 채 당신은 갈대밭 가장자리에 누워 있다. ...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또 중얼거린다. p64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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