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증정] <여성과 전쟁: 우크라이나 소설가의 전쟁일기> 번역가와 함께 읽어요.

D-29
가끔 겁이 나면 내가 물이라고 상상한다. 나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갈라진 틈새에 숨고, 지하의 샘으로 깊숙하게 흐른다. 하지만 포탄이 날아오면서 만물이 떨리고, 땅이 흔들리고, 물도 평화를 잃어버린다. 지금 당장은 평화를 찾을 곳이 없다.
여성과 전쟁 - 우크라이나 소설가의 전쟁일기 121, 빅토리아 아멜리나 지음, 이수민 옮김, 곽보정.조유림 우크라이나어 감수
1. 묵직한 문장들이 많지만, 크게 감정을 담지 않았는데도 조용한 절망이 느껴지는 이 대목이 마음에 남아 골랐습니다.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세계가 외면하거나 무관심하다고 느낄 때, 자포자기나 증오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이 해야한다 믿는 일을 하면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참...읽으면서 아프기도 하고, 무력한 외부인인 자신을 생각하며 죄책감도 느낍니다. 3. 각자의 이야기의 무게가 상당한데, 일단 1장 안까지만 읽은 시점에서 고른 것은 이리나 노비츠카의 이야기입니다. 다리가 자유로웠다면 멀리서 떠나라고 간청만 하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에게 갔겠죠. 그리고 누구에게나 전쟁은 고통이지만, 사회 전체에 여유라는 게 증발하는 상황에서 신체에 부자유한 점이 있으면 생존의 불리함이나 공포가 대체 몇 배가 될지...전기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진 속 휠체어가 전동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지지만 이리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하네요. 이어질 내용들이 매우 알고 싶으면서도 그만큼 두렵습니다.
결국 기록은 전해지기에 기록하고, 기록들을 보존하려 한 사람들이 눈에 밟힙니다. 작가인 빅토리아 아멜리나, 테타나 필립추크, 그리고 율리야 카쿨랴다닐류크가요.
기록하지 않으면 전쟁을 겪었던 개개인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역사를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그래서 소련/러시아가 그토록 끔찍하고 철저하게 작가들을 탄압하고 숙청했던 게 아닐까요.
2.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기보다, 이름들이 생소하다 보니 인명인지 지명인지 단번에 구분이 안 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천천히 곱씹으며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3. 저는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꿈이었던 연출가의 길과 은행에서의 높은 보수를 포기하고, 법을 선택해 약자를 지키는 길을 걸어간 숭고한 선택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나였다면 과연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내가 우선적으로 탐구하려는 대상은 가해자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정의에 관해서 던지는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이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가해자들이 법망을 피해가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고난의 시기에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무기를 선택하는가. 노트북 컴퓨터, 카메라, 국제법, 이야기의 힘, 그것도 아니면 M777 곡사포인가. 진정한 정의를 원하는 자들의 선택은 쉽지 않으며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전투의 결과를 알지 못한다.
여성과 전쟁 - 우크라이나 소설가의 전쟁일기 p18, 빅토리아 아멜리나 지음, 이수민 옮김, 곽보정.조유림 우크라이나어 감수
예우헤니아 자크레우스카는 총과 드론을, 예우헤니아 포도브나는 카메라를, 빅토리아는 노트북 컴퓨터를 정의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 같네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걸 선택하실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라면, 빅토리아처럼 용감하게 전장을 누빌 자신이 없습니다. ㅠㅠ
저라면 일단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겠다는 것 말곤 딱히 떠오르질 않네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작가처럼 글재주도 없고 다른 이들처럼 사진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그렇다고 전장에 자원입대할만큼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내 목숨, 우리 가족 목숨도 건사하기 힘들 것 같은 상황에서 전 책에 나온 이들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질 않습니다. 지금은 독자로서 작가의 글을 읽어주고 그들 소식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책읽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해주는 게 그들을 돕고 정의를 실현하는 데 아주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하료 저도 책에 나오는 여성들처럼 용기 있게 행동할 자신이 없네요.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오케스트라 단원이 생각납니다. 모두 살아남으셨길 바랄 뿐입니다. 어제까지 음악을 연주하던 이들이 갑자기 총을 들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방인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다니, 정말 황당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입국이 허가되어서가 아니라,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내가 아니라 전쟁이 담기고 있는 것만 같아서 울음이 터진다. 우크라이나인은 모두 전쟁이 되어버렸다. 우리와 관련된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으며 참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해졌다.
여성과 전쟁 - 우크라이나 소설가의 전쟁일기 p71, 빅토리아 아멜리나 지음, 이수민 옮김, 곽보정.조유림 우크라이나어 감수
나를 잡으러 오는 건가. 자신이 아니라 이웃이 잡히면 그들은 안도했지만 동시에 수치를 느꼈을 것이다. 적의 포탄이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을 때 지금도 많은 이들이 같은 심정을 느낀다. 생존 본능은 행복감을 느끼라고 강요한다. 그래도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 대신 인간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여성과 전쟁 - 우크라이나 소설가의 전쟁일기 p107, 빅토리아 아멜리나 지음, 이수민 옮김, 곽보정.조유림 우크라이나어 감수
내가 늘 겁에 질려있다는 것이 가장 역겹다. 전화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모든 공포를 그냥 잊어버리고 싶어서 이곳의 모든 것과 모든 일을 기록할 수가 없다.
여성과 전쟁 - 우크라이나 소설가의 전쟁일기 p123, 빅토리아 아멜리나 지음, 이수민 옮김, 곽보정.조유림 우크라이나어 감수
1장까지 정말 꾹꾹 눌러 담으면서 읽어왔네요. 인물들의 이름과 관련 사건을 읽어내는 것에 물론 조금 적응이 필요했던 것도 있었지만 그런 것보다 작가의 심경과 등장인물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독자로서 잘 느끼기 위해서(왠지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 피상적으로만 소식을 접한 채 다른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왔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표시라고 해야될까요 독자의 의무라고 해야될까요) 그랬던 게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도 책의 도입부부터 뭔가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굉장히 먹먹했던 기분이었어요. 마거릿 애트우드의 서문도 서문이지만 시작 부분 작가의 말에서 정의란 대체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 더 엄중하게 읽었던 것 같네요. 살아남을 때마다 생존 본능은 행복감을 느끼라 강요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말에서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어 존경스럽기도 하다가 공포감과 비통함이 들어있는 문장들을 보면 참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인물들을 기억하고 싶지만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이리나 노비츠카' '율리야 카큘랴다닐류크' 두 명이었어요. 두 명 다 본인들이 처해있는 그 상황 속,그들이 느꼇을 감정이 읽는 사람인 저한테 소름 돋게 와 닿았던 것 같네요.. 여담이지만 홀로코스트 전쟁 문학은 언제나 참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읽는 게 너무 두렵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끔찍함과 비통함이 너무 처절해서 읽을 때 힘들거든요. 그래서 회피를 많이 하는 편인데 이 책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다루고 있고 동시대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보니 관심도 관심이었지만 회피하면 안되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선물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남은 기간 모임 하시는 분들과 함께 나머지 부분들도 꾹꾹 눌러 담아 읽고 싶습니다.
생존 본능에 대한 부분의 감상도 그렇고, 미안한 마음의 표시나 회피하고 싶은 두려움을 다른 분들도 가지고 계셨구나 생각하니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료님.
유령 같던 평화의 계절은 끝났다. 모든 것이 사막 한가운데의 이 텅 빈 터미널에 쏟아지는 햇살처럼 분명해진다. 이곳에서 크라쿠프로 가는 향공편은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여성과 전쟁 - 우크라이나 소설가의 전쟁일기 p58, 빅토리아 아멜리나 지음, 이수민 옮김, 곽보정.조유림 우크라이나어 감수
저자는 귀국하기 직전, 이집트 공항에서 러시아가 키이우를 침공한 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확인합니다. 고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안 되고, 아들을 데리고 갈 곳은 없고. 얼마나 당황스럽고 막막했을지 가늠도 안 됩니다. 체코, 폴란드를 거쳐 전쟁이 발발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거기에 열 살 아들과 떨어질 것을 예정한 저자의 무거운 심경. 읽으면서 무척 착잡해지더군요.
저는 카사노바가 가장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자가 이분으로 책을 쓸 결심을 했다고 적어놓으시기도 했고, 전쟁으로 인해 꿈을 미뤄야 한다는 대목에 계속 눈길이 머물더라구요 그리고 카사노바의 이름의 뜻이 참 좋았어요..
@물고기먹이 정말 용감한 여성 같아요. 가능하다면 저는 카사노바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빅토리아가 그녀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구요.
2. 아! 그래서 가끔 무슨 소리지? 하는 부분이 있었던 거군요. 서문에서 미완의 원고라는 부분을 읽고도 그 점을 생각 못했네요. 아직은 조금 늦어 1장을 읽는 중이지만, 인터뷰?한 여성들의 사진 한 장 한 장이 인상적입니다.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여성이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얼른 도망가라고 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꽃의요정 러시아군은 시인 볼로디미르 바쿨렌코의 아들이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과 함께 납치하잖아요. 약자를 대하는 러시아군의 잔혹함을 보며 깊은 분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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