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을 즐기고 있나요?

D-29
에이미에게 문제는 일을 그렇게 나눈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일은 주로 여자가 한다는 식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폄하된다는 사실이었다. 시간강사들은 수업당 급여가 지급되고 연구에는 어떤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캐서린은 연구를 진행하고 싶지만, 강의 때문에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연구는 높은 수준의 일이고 수업은 그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데 캐서린도 에이미와 같은 의견이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42,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시간강사>는 현대사회에서 교육(수업)과 연구가 점차 어떻게 분리되어 갔는지, 대학의 형태가 바뀌어가면서 목적과 기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본말이 전도되어 가는 과정을 알려주네요. 19~20세기에 미국은 주와 연방정부에서 대학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주립/공립대학을 통해 다수 시민에게 교등교육을 제공했습니다. 비록 인종과 성별의 차별이 있긴 했어도 당시로서는 이민자 또는 중산층이 전문적 교육과 지식을 통해 얻은 자격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며 사회적 지위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었죠. 이후 1960년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사회의 평등과 진보에 대한 열망은 대학의 문을 더욱 활짝 열었고, 수익에 대한 부담 없이 교수가 연구와 수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1970년대 경제 위기로 시립대학들은 재정긴축, 교수 종신제에 대한 폐지, 지원 삭감이 맞물려 교육과 연구만이 아니라 수익성이라는 과제가 하나 더 생기죠. 대학들은 이제 기업이나 영리단체처럼 예산 대비 성과를 증명해야만 예산과 지원을 받기 수월하고, 따라서 성과가 있는 영역에 집중하면서 수업보다는 연구에 투자하는 기조가 확산됩니다. 보다 우수한 외부 유명교수나 기업투자 유치에 자금이 쓰일수록 본연의 지식 재생산과 전파에 쓸 수 있는 재원은 줄어듭니다. 할 일은 점점 늘어나고 지원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수들의 수요와 맞물려 수업은 점차 조교수, 대학원생, 시간제 강사에게 외주화 되고요. 이 과정은 다시 서로 물고 물리며 수업은 '교수들'이 할 영역이 아닌,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영역이라는 의식으로 이어집니다. 연구분야에서는 점차 기업 후원의 비중이 커질수록 오히려 연구의 자유도와 독립성이 줄어들고, 대학들은 필요한 학문에 대한 연구보다는 후원자가 원하는 연구를 하게 되고요. 훔볼트는 대학이 수업과 연구를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 되기를 바랐지만, 현대의 대학은 오히려 이 둘을 분업화하고 파편화, 외주화, 전문화함으로서 대학의 형태가 바뀌면서 목적마저도 바뀝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도 취업률이 큰 화두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졸업생들이 특정 자격증을 갖추거나, 기관이나 기업에 졸업 전에 취업을 하면 논문을 작성하지 않거나 수업에 다 나오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간간이 교육 관련 소식들을 보다 보면 대학들이 점점 인구감소와 맞물려 생존을 위해 더더욱 취업연계에 도움이 되는 학과 위주로 재편되어 기존 학과들이 통폐합되는 것을 지적하는 기사들도 보입니다. 저는 사회가 원하고 유도하는 방향성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에 따라 대학도 맞춰 변해간다고 생각하기에 대학의 '적응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저 또한 취업기관으로 변해가는 대학이 과연 대학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졸업장 하나를 위해서, 특정대학을 나왔다는 이력 하나를 위해서, 그저 하나의 '단계'로서 점점 압축되고 기업처럼 영리화라는 이름으로 '군살'을 빼는 모습이 과연 대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인지 말이죠.
이 책에서 계속 여러 직업과 직군을 보여주며 반복되어 나오는 키워드 중 하나가 외주화와 전문화이죠. 직업이 단지 생계수단이나 소명에 머물러 있던 단계를 넘어 '개인이 노력해서 증명해야만 하는 무언가'로 바뀌어 가는 세상, 직업을 통해서 개인의 자아실현과 의미를 찾아내라는 담론이 지배하는 현대 경쟁사회. '본인이 전문가가 될 열의나 열정, 사랑이 없다면 빨리 관두고 남이 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로 정의되는 직업의 세계는 정신세계와 가치관에 있어서는 개인의 전문화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한편에서는 비용절감과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줄이거나 일을 잘게 쪼개어 다른 곳에 외주를 주죠. 서있을 수 있는 땅은 점점 땅따먹기 하듯 한 줌 한 줌 줄어드는 상황에서 떨어지기 싫으면 더 절박하게 매달리라는 압박은 결국 직업마다 차별화되는 존재 이유나 가치관을 모두 '경쟁'이라는 획일적인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직업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이상적인 근무 환경은 규칙을 따를 때가 아니라 규칙에 저항할 때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54,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사람들이 그래요. '왜 그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면 제 답은 이겁니다. 고귀함을 느끼거든요."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61,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우리들의 셈법은 누군가의 급여가 인상되면 다른 사람들의 급여도 인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들을 이간질해 장악할 생각은 안 하는 편이 좋죠."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57,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1980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으로 대학들은 지적재산으로 특허를 출원하거나 연구 결과를 판매해 수익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중략) 외부에서 들어오는 연구자금 지원도 상품화에 기여한다. 제약회사들은 대학 연구를 지원하고 특허를 챙긴다. (중략) 과학 관련 전공들에는 자금이 쏟아지지만, 인문학 계열에 대한 자금 지원이 씨가 말랐다. 그렇게 대학 내 또 다른 형태의 서열이 만들어졌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43~344,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현대 대학에서 박사 과정 학생들은 학위를 따기 전까지, 전임 교수들이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업을 들어가고, 성적을 매기고, 교수의 이름이 들어간 연구도 거든다. 이러한 위계 구조의 중요한 기능은 바로 품질 관리다. 누구나 교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교수가 되려면 연구를 통해 동료평가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뛰어난 스승이 세워 놓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고, 장시간 일하면서도 웃음기가 가시면 안 되고, 라면도 씩씩하게 먹어야 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45,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과거에는 좋은 직장을 얻는 데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한 모든 난관을 통과했다는 그 자체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던 통과의례였지만,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45,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심지어 대학 안에서도 종신직 교수들은 교내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강의실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의 근무 여건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을 사회와 분리된 세계로 보는 전통 때문에, 다른 지식노동계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교수는 거의 없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46,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대학이 학벌을 따는 곳이 되고 학생들이 시장에서 장을 보듯 졸업장을 사는 곳이 되면, 교수들에게 자기 발전의 시간과 자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점점 더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49,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학위 비용이 임금 상승률보다 거의 8배나 상승해 전문직-경영인 계층 배출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에런라이크 부부가 그 말을 최초로 만들었던 때와 비교하면 2020년 학위 비용은 엄청나게 상승했다. 따라서 학계를 떠나 금융 애널리스트가 되거나 오로지 부호들을 상대로 일하며 자본에 종속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50,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중산층이 옅어진다는 이러한 정서가 퍼지면 누구나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자기가 올라오고 난 후 치워버리고 싶어 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53,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과연 어디까지가 ‘기술’이냐는 문제는 제쳐두고, 요즘 기술 산업은 세계 주요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의 견인차라며 지나치게 치켜세워지고 있다. 프로그래머의 장시간 근무는 비효율적인 작업 처리 방식이라기보다 일에 대한 낭만적 몰입의 증거라고 여긴다. 프로그래머의 능력을 천부적인 재능과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 성장의 요소로 꼽은 근면과 투지 중간 정도의 무언가로 그려내며 프로그래머들을 떠받든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70,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한 개인의 천재성에 집착하면 훌륭한 작품이 협업의 결과가 아니라 단 한 명의 두뇌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진실을 놓치게 된다. 이런 착각이 연대할 생각도 못 하게 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75,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이때쯤 컴퓨터나 컴퓨터 게임은 남자아이들(혹은 늘 아이처럼 사는 남자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깊게 자리 잡혀 있었다. 여자들의 컴퓨터공학 과정 등록률은 1980년대 40퍼센트에서 현재 2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고, 초창기에는 주로 컴퓨터 게임에 알맞게 제조된 개인용 컴퓨터는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광고되고 판매되며 미래의 프로그래머들은 남자들이라는 개념을 더 굳게 다져갔다. 대중문화도 이러한 흐름을 알아채고 백인 남자 컴퓨터 괴짜들을 영웅시했다. 개인용 컴퓨터가 없다면 누구든 컴퓨터 능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성별 장벽과 함께 계층 장벽이 세워졌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78,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인생을 최대한 바치도록 하려고 페이스북 본사 기술자들이 일하는 곳은 퍼즐, 게임, 레고, 스쿠터 같은 장난감들이 널려 있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소녀왕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새로운 놀잇거리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84~385,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즉, 알고리즘이 해결한다고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일을 사실상 사람이 하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들 사이에서는 아마존의 매커니컬 터크 서비스에 감사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비밀이 있다. 메커니컬 터크는 컴퓨터가 나오기 수세기 전 스스로 체스를 둘 수 있는 기계라며 개발됐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체스를 두고 있었고, 결국 속임수였다. 대다수가 미국인인 오늘날 아마존의 ‘터커Turker’들도 마찬가지로 푼돈을 받으며 반복적인 ‘잡일’을 하지만, 천재 프로그래머에 대한 환상 때문에 여전히 인간이 타이핑과 두뇌를 써가며 하는 이 일들의 실상은 가려져 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85~386,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자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장시간 근무도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자율성은 속박의 상징이 아니라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중략) "근로자에게 약속하는 자율성은 사랑하는 일을 하는 '당신'에게 이미 갖춰져 있는 것이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89,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일론 머스크는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테슬라 자동차 공장에서 고생하는 근무자들을 위해 무료 냉동 요거트와 롤러코스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근무자들은 과도한 생산업무로 부상에 시달렸고 아픔을 달래는 데 냉동 요거트는 필요가 없다. 그들은 노조를 원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391,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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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이 자신 있게 고른 이 시대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같이 연극 보고 원작 읽고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그믐연뮤클럽] X [웰다잉 오디세이 2026]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계속계속 책읽기 by Kiara
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2026년에도 한강 작가의 책 읽기는 계속됩니다!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2탄)흰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책 선물] 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다정한 모임지기 jena와 함께...어느새 일 년이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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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책 증정 [박산호 x 조영주] 인터뷰집 <다르게 걷기>를 함께 읽어요 [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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